박재흥

 


성명
박재흥(朴再興)
이명
박재흥(朴在興)
생몰
1896년 1월 14일 ~ 1950년 2월 14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
사망지
경상북도 영덕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재흥은 1896년 1월 14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이현석(李鉉奭)과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등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이에 참여했다. 당시 창수동은 도로공사로 인해 일제에 전답을 빼앗긴 농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시위군중은 곧 1백 50명으로 불어났다.
오후 4시경, 그는 4백여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창수주재소로 가서 몽둥이와 도끼 등으로 건물을 파괴하고, 주임순사 타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의 비품과 숙소내에 비치되어 있던 장총 3정과, 대검 2개를 빼앗아 파기하였다. 이어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의 비품을 파기하는 등 오후 7시까지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 방해·건조물 손괴·기물 손괴·공문서 훼기·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2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박재흥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