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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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4. 삼권
4.1. 입법부
4.2. 행정부
4.3. 사법부
6. 정당


1. 개요


마카오는 1999년 12월 21일 이후로 포르투갈령에서 중국령이 되었지만,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일국양제의 특성으로 인해 싱가포르처럼 도시국가와 비슷하게 굴러간다.
마카오의 최고 법률은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 기본법으로 중국 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부조직은 권력분립 원칙에 의거하여 행정부인 마카오 정부와 입법부인 입법회, 그리고 사법부인 마카오 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전국인민대표대회, 최고인민법원과는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마카오의 정치제도는 포르투갈과의 협상 과정에서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정치, 입법, 사법 체제를 반환 후 최소한(at least) 50년간(1999년~2049년) 유지할 수 있고 이와는 별개로 특별행정구 설치로 인해 사회주의 체제를 영구히 적용하지 않기로 한 일국양제(1국가 2체제) 원칙에 따라 외교군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이 중국 본토와는 따로 돌아간다. 일단 관세부터가 별도 관세구역으로 들아가고 여권 또한 따로 나오며 출입국 정책도 크게 다르다. 국제 기구 참여(올림픽 참가 등)도 마카오라는 이름으로 따로 한다.
마카오의 정치 체계는 포르투갈을 따라해서 유럽식 체계에 더 가깝다. 이웃 홍콩이 영국식인 것과 반대. 그리고 법 체계도 대륙법을 따른다. 이웃 홍콩은 당연히 영미법을 따르며 국적 부여도 방식이 달라 마카오는 출생 당시 부모의 국적이 마카오인이어야 마카오 특별행정구 시민권을 부여하고 이주 후 2세대에게도 자동으로 포르투갈령 마카오 영주권이 나오지 않았다.[1] 그래서 마카오에 거주하는 실제 인구의 90% 이상인 중국 대륙 출신자들의 경우 중국 국적자들이다.

2. 역사


홍콩이 영국 직할령으로 완전한 자치가 허락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반면 마카오는 1976년부터 포르투갈의 특수 영토(special territory)로서 속령에 준하는 자치권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본국인 포르투갈은 1976년 이전까지는 군사독재와 문민독재 등으로 인해 별로 민주적이지 않았고 이는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마찬가지였다. 1966년 친중공 중국계 마카오인들이 주도한 12-3 폭동을 계기로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는 본국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음을 알아차리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친하게 지내며, 포르투갈계가 독점하던 고위 공직을 중국계 마카오인에게 개방했다. 포르투갈이 민주화되어 1976년에 해외식민지 포기 원칙이 발표된 후 포르투갈령 마카오는 정부 인사들을 마카이엔사라 부르는 포르투갈화된 현지 중국인으로 구성했고[2] 총독만이 포르투갈 출신 백인이었을 뿐이었다. 이미 경찰총수, 정무사장 등은 전원 중국인이었다.[3] 홍콩은 반환 직전의 순간까지도 영국이 통제권을 완전히 잃은 적은 없었지만, 마카오는 길게 보면 1966년, 짧게 보면 1976년부터 포르투갈이 통제권을 잃고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3. 정치적 무관심


마카오인들은 정치적 무관심이 심한 편이다. 마카오의 2017년 총선 투표율은 '''투표 가능 인구''' 대비의 57.21%이다. 여기서 투표 가능 인구라는 것은 말 그대로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인 명부에 등록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을 뜻하는데도 전 인구의 60%도 투표하지 않은 것이다. 홍콩의 2019년 구의회 선거 투표율이 71.23%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관심도가 낮은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전체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투표율은 '''25.13%(...)'''에 불과하다.
일국양제로 인해 마카오에는 자치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홍콩처럼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데, 홍콩과 달리 대륙과의 갈등이 적은 편이라 아직 홍콩만큼 이 부분에서 문제가 두드러지지는 않는 편이다. 마카오의 정치 체제는 홍콩과 유사한 특징 및 비민주적 요소, 문제점[4]을 가지고 있지만 마카오 주민들은 이에 대해 큰 불만을 갖지 않는 편이다.
마카오에서도 자국 정치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라, 리커창 총리가 마카오를 방문할 때 행정장관 직선제 등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 하지만 확실히 홍콩에 비해서는 그 규모도 작은 편이고, 선거 때마다 민주파+독립파 득표율이 기본 40%는 먹고 들어가는 홍콩과 달리 여기서는 20% 언저리를 맴돈다. 그리고 홍콩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독립 여론은 마카오에서는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왜 마카오는 홍콩에 비해 민주주의에 덜 열정적인가 기본법에서나마 궁극적으로 보통선거를 지향한다고 규정한 홍콩과 달리 마카오 기본법에서는 보통선거 지향이 명문화되어있지 않으며, 홍콩에서 극심한 반발을 받고 무산된 국가안전법이나 애국주의 교육, 표준중국어에 대한 간체자 도입 교육 등도 마카오에서는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4. 삼권



4.1. 입법부



입법부는 입법회(澳門立法會, Assembleia Legislativa de Macau)가 있다. 총 33석 중 14석은 단일선거구 구속명부식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12명은 직능 선거구의 제한된 유권자들 사이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7명은 마카오 행정장관에 의해 임명된다. 임기는 4년이다.
총선에서는 민주파가 득표율에서 앞서지만 선거제도의 문제로 인해 실제 의석 점유율은 친중파가 우세한 홍콩과 달리 친중파 정당들의 지지율 자체가 높은 편으로, 2017년 선거에서는 33석 중 29석을 친중파 의원들이, 4석을 민주파 의원들이 차지했으며 직접선거 득표율로 비교하면 친중파 정당들이 58.3%, 민주파 정당들이 25.8%를 득표했다.

4.2. 행정부



행정부의 수반인 마카오 행정장관(澳門特別行政區行政長官, Chefe do Executivo da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은 400명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선으로 선출되며 각 직업별로 위원회 위원 수가 할당된 직능선거구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진다. 이 위원회 위원들은 대부분 주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지만 유권자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2014년 당시 5448명출처) 홍콩처럼 선거인단의 많은 수가 법인으로 이루어진 직능단체에서 선출된다.
행정장관은 무소속이어야 하며 임기는 5년에 1회의 연임이 가능하다. 임명권자는 중국 국무원 총리이지만 임명장 주는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공산당이 인정하는 친중파 인사가 당선된다는 비판을 들어도 일단 민주파 등 공산당이 불편해하는 여러 후보들이 나오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와는 달리 마카오 행정장관 선거는 출마자가 적다. 지금까지 치러진 5번의 선거 중 1번만이 후보가 2명 이상이었고, 나머지는 1명만이 출마해 찬반투표를 하였다. 현재 행정장관인 호얏셍도 단독 출마해 98%의 찬성을 얻어 행정장관에 취임했다.

4.3. 사법부


사법에서도 중국 대륙과 달리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포르투갈 공동선언마카오 기본법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해서 중국 본토의 법률은 특수한 경우[5]를 제외하고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유럽대륙법 체계를 따르며, 최고법원인 종심법원(終審法院, Tribunal de Última Instância)과 2심법원인 중급법원(中級法院, Tribunal de Segunda Instância)과 1심법원인 초급법원(初級法院, Tribunal Judicial de Base)이 있다. 법률 해석도 마카오 종심법원에서 담당하지만, 마카오의 헌법인 마카오 기본법의 해석 등은 중국 본토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 마카오에는 2심인 고등법원(高等法院)까지만 있었고 리스본에 있는 포르투갈 대법원(Supremo Tribunal de Justiça)에서 최종심을 맡았으나 대법원 상고를 할 수 있는 사건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6] 사실상 고등법원이 최종심이었는데, 반환 이후 마카오에 새로운 대법원을 세운 것이다.
여기도 홍콩처럼 외국인 판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법부 수장인 종심법원 원장은 행정장관이 지명하고 입법회의 동의를 얻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임명한다. 종심법원 원장은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국적을 갖지 않는 마카오인이어야 한다.

5. 전국인민대표대회 선거


마카오는 중국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서 5년마다 한 번씩 중국의 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자신들을 대표할 인민대표자들을 선출한다. 마카오는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일국양제에 따라 인민대표대회가 없으므로 별도의 선거인단을 꾸려 전국인민대표자를 선출한다. 마카오의 경우 약 500명 정도의 선거인단에서 15명을 선출한다.
선거인단은 선거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저 선거인단 중 대다수가 친중파이며, 선거에서 민주파는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
이렇게 선출되어 파견된 마카오의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자들은 정당에 관계없이 무소속으로 활동한다.

6. 정당


주요 친중파 정당은 민중건오연맹(民眾建澳聯盟), 광둥마카오동맹(澳粵同盟), 마카오공회연합총회(澳門工會聯合總會)[7] 등이 있다. 옆 3개의 정당이 그나마 지지율이 나오는 편이다. 주요 민주파 정당으로는 신마카오학사(新澳門學社), 신희망(新希望) 등이 있다.

[1] 홍콩과 비교하자면 홍콩은 영주권이 곧 국적이라 2세에게는 물론 7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도 영주권이 부여된다. 홍콩은 영미법계인 만큼 홍콩 특별행정구 출생자는 100% 영주권자가 되고 7년 이상 취업비자 및 학생비자 등을 가지고 합법 거주해도 영주권이 나오며, 홍콩에서는 영주권이 곧 시민권 역할을 한다. 그러나 중국 국적이 없는 자는 홍콩 영주권을 취득해도 본국의 여권을 사용해야 하고 홍콩 여권을 받을 수 없으며, 한국 정부 역시 이를 귀화로 보지 않는다.[2] 이런 포르투갈화된 중국계 혈통의 사람들인 마카오 원주민들을 중국에선 토생포인이라 부르는데, 해석하면 토착 포르투갈인으로 이들에게 포르투갈 피가 섞여서 그렇게 불러왔다. 성명도 포르투갈 성씨와 중국 성씨를 같이 쓰기도 하고 언어도 광동어포르투갈어를 같이 써서 1949년 이후 급증한 중국 대륙 출신 광동인과 확연히 구분됐다. 지금도 이 43만 명의 토생포인들과 그들과 광동인 간 혼혈인들은 전원 포르투갈 국적으로 '''중국의 통제 밖'''에 있고, 광동인 출신들은 중국의 통제 안에 있는 마카오 특별행정구 소속 중국 국적이다.[3] 비교하자면 홍콩은 영국 통치 당시 영국인들이 1980년대까지 정부를 구성했고, 반환을 앞둔 1992년에야 반환을 대비해 정무사장 등을 중국인이 하기 시작했으며 그 전엔 경무처장, 소방처장, 입경처장 등 차장급까지만 중국인이 할 수 있었다.[4] 사실상의 차등 투표, 기업 등 법인의 과대표성 등[5] 거의 중국 본토와 거래를 할 경우나 마카오인이 중국 본토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혹은 중국계 마카오인의 국적 문제.[6] 본국인 포르투갈과 관계가 있는 사건이 아니면 상고가 불가능했다.[7] 마카오노동조합연맹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