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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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군'''
Royal Thai Armed Forces
태국어: กองทัพไท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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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비군
335,425명
예비군
292,000명
태국 육군
전차
542대 (2011년)
장갑차(APCs/IFVs)
1,005대 (2011년)
견인포
741문 (2011년)
박격포
1,200문 (2011년)
자주포
26대 (2011년)
MLRS
60대 (2011년)
수송 차량
4,600대
태국 공군
헬리콥터
443기 (2011년)
항공기 총합
913기 (2011년)
태국 해군
항공모함
1척 (2011년)
GFP 기준 구축함[1]
0척 (2011년)
GFP 기준 호위함(프리깃)[2]
6척 (2011년)
초계함(고속정)
109척[3] (2011년)
잠수함
0척 (2011년)
전투함 총합
164척
1. 개요
2. 상세
3. 수뇌부
4. 군별
4.1. 육군
4.2. 해군
4.3. 공군[4]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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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국의 군대.

2. 상세


태국군은 비록 세계적인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남아시아에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군사조직으로 꼽힌다.[5] 소형이지만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6] 차크리 나루에벳 참조. 이웃 라오스군이나 캄보디아군은 넘사벽으로 태국군에게 밀리고 전통의 호적수인 서쪽 미얀마군과 동쪽의 인구대국인 베트남군, 남쪽의 말레이시아군[7] 정도가 태국군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스웨덴으로부터 조기경보기 1대와 JAS 39 그리펜을 6대를 수입했다. 같은 양의 항공기를 추가로 도입할 예정이다.
이렇게 써놨지만 사실 과거사는 좀 안습하다. 인구와 경제력에 바탕한 군사력으로 동남아에서 한 끗발 했다지만 옆나라 미얀마에게 심심하면 털려서 한때 나라가 그대로 '''망한''' 적도 있었다(…). 다만 당시 미얀마는 버마 제국이라고 하여 동남아 최강국을 자랑하던 국력이 유지된 시절이며 현 라마 왕조가 건국되면서 버마군을 물리쳐 나라를 되찾기도 했다. 그리고 반대로 이전에는 그 미얀마를 태국도 뭉개버린 적이 있으며 미얀마의 가득한 불교 성물들을 한가득 가져와 지금도 태국에 전시되어 미얀마의 반환 요구가 있다. 물론 현재 미얀마는 군부가 집권하고 있을 뿐 그저 국제 왕따 약소국이므로 무시하지만.
근대 이후로는 중립 포지셔닝으로 한동안 싸울 일이 없었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에 그동안의 중립을 깨고 독일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이 결정은 시암(당시의 태국 국명)의 위상을 한층 높이고 전후 세계에서의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시암이 말로만 선전포고한 것이 아니라 직접 서부전선에 병력을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쟁에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국가로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처음에는 의료부대 정도를 파견할 것을 프랑스에 제시했지만 프랑스 외교 당국은 한술 더 떠 병력 수송을 위한 수송부대와 비행기 조종사들도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국위선양을 꾀하던 국왕 라마 6세와 시암 정부는 이를 기쁘게 수락하고 유럽 전선 파병 자원병들을 모집하였다. 그리하여 항공부대원 414명 및 수송부대원들과 의료부대 870명이 모였고, 이들은 약 1년간 적응 훈련을 거쳤다. 그동안 파라야 잔리디 소장을 포함한 선발대가 프랑스로 건너가 주둔을 위한 사전 작업을 마쳤다.
그렇게 시암 국내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출발한 시암 원정군은 1918년 7월 30일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했으며, 곧이어 조종사들은 고고도 적응 훈련을 위해 프랑스 각지의 비행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8] 그리고 8월 1일 일부 시암 수송부대원들이 선발되어 4일부터 2차 마른 전투의 최전선으로 파견되었다. 같은 달 말부터 수송부대는 상파뉴의 최전선으로 프랑스군 병력을 수송하는 임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임무를 용감히 수행하여 프랑스 정부와 시암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만 명이 뒤엉켜 싸우는 서부전선에서 1200명은 한줌도 되지 않았고, 서유럽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미군 병력의 하루치 수송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제국주의와 인종주의가 일반적이었던 유럽에서 동남아 소국 출신인 태국군 병사들은 동등한 전우가 아닌 잡역부 내지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동맹군의 무시와 조롱 속에서 자원병으로 머나먼 타지까지 온 태국군 병사들의 자존심은 '''무참히 손상되었고,''' 라마 6세와 태국 외교부에서는 격노하여 임무중단과 철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도 파병을 스케일 키워서 요청해 놓고서는 동맹의 도움의 손길을 개무시한 꼴이 되었고, 식민지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통해 시암과 국경을 접하는 이상 이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해야 했다. 그렇기에 독일이 항복하자 프랑스는 열 받은 시암을 달래기 위해 점령군으로서 독일 영토 일부를 관할해 달라는 파격적인 요청을 하였다. 이에 노기가 가라앉은 시암 정부와 파병군 지도부는 노이슈타트안데어바인슈트라세 시를 중심으로 하여 바이에른 왕국팔츠 일부 지역(현 독일연방공화국 라인란트팔츠 주)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이듬해인 1919년까지 지역을 관할하였다. 1919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전승기념행사에서 태국군은 연합군의 한 축으로서 거리 행진을 하였고, 곧이어 귀향하였다. 소집된 이래로 총 1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적군의 사격으로 죽은 이는 없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약 절반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사고사하였다. 파병 군인 중 최후까지 생존한 이는 2003년에 106세의 나이로 사망한 요드 상룽루앙 옹이다.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기 직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주둔한 비시 프랑스 해군 함대와 코 창 해전을 벌여 참패하였다. 이후에는 일본 제국과 동맹을 맺고 캄보디아와 미얀마의 일부를 할양받았다.(…). 냉전 이후로는 자신들보다 인구도 경제력도 훨씬 열세인 동남아 최빈국 캄보디아와 지금까지도 국경에서 국지적 교전을 벌이는데 제대로 힘의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긴 해도 캄보디아는 경제력으로 뭉갤 수 있기에 굳이 전투로 나설 필요가 없긴 하다. 캄보디아 전력 및 상당수 경제력을 태국이 움켜쥐어서 캄보디아가 까불면 경제로 매장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장성 숫자가 2600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장군,제독이 많은 군대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당시 태국군 병력이 26만 명이었으니 장성 1명당 상비군이 100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이야기. 오늘날에는 장성 숫자가 좀 줄기는 했지만, 이 때문이 인건비가 너무 많이 나가서 문제다. 60만 상비군을 두는 한국군의 장성이 400명 수준이고 그 거대하다는 미군도 장성 숫자가 천 명이 안된다. 그리고 그 미군은 원래 세계 각지에서 경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성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특이한 점은 현재 라마 10세의 왕비 수티다 나아유타야가 현역 육군 대장, 폐위된 후궁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가 폐위 시까지 육군 소장으로 재직하는 등 왕실 여성들에게도 군 계급이 부여된 점이다.폐위된 시니낫 후궁의 후궁 재위시 군복무 모습
2019년에 모병제 검토에 들어간다.#
대한민국의 연예계에서 태국 육군 장군의 이 활동했던 적이 있다.

3. 수뇌부


통수권자(국왕)
총리
국방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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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와찌랄롱꼰
쁘라윳 짠오차
뽄삐빳 벤야스리 육군 대장

4. 군별



4.1. 육군




태국 육군
Royal Thai Army'''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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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210,000명
총사령관
찰름차이 시티삿 육군대장
소속
왕립 태국군
육군본부
태국 방콕 펫차부리
유형
육군
국가
태국
창설일
1874년 5월 4일
타이 왕립 육군(Royal Thai Army)(RTA)이 공식 명칭으로 분류된다. 타이어로는 กองทัพบกไทย 라고 되어있다. 총병력은 19만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타이 육군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재정비를 함으로서 성립되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한국전쟁베트남 전쟁 등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에 협력했지만 일본군에 대항하는 게릴라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덕분에 지역에 대한 무관심+박쥐 경력으로 전범군대로 낙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유엔군 휘하에서 한국군과 함께 싸웠으며 베트남 전쟁에서도 1만 2천명 규모까지 파병하여 서방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했다.
현재 2014년 태국 육군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9개 보병사단/1개 기갑사단/3개 기병사단(경기계화사단)/1개 특수작전사단/1개 포병사단/1개 방공사단/8개 포병대대/3개 육군항공중대
미군과 마찬가지로 특이하게 기병사단이라는 용어를 전통차원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19세기와 20세기 초중반까지는 기병사단이었다가 현재는 거의 차량화보병사단 수준으로 개편되어 있는 부대라고 할수 있다. 여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조금 다르게 서방제 장비들을 주력 장비화하고 있다. 2010년 이후부터는 TAR21 이스라엘 불펍형 소총을 주력제식소총으로 맞이하여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게릴라들과 교전등의 목적으로 AK-47(중국제 56식 자동소총)와 중국제 56식 기관총을 운용하기도 한다. M1 개런드M1 카빈, M79 유탄발사기를 예비군에서 한국군만큼이나 운용하고 있으며 M14 소총도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특이하게 최신전차를 우크라이나T-84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2세대급 장비들을 주로 운용하고 있으며 도태 시기가 넘은 무기들도 주력으로 운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주변국의 기계화세력이나 장비들이 타이군보다 낮은 수준인 경우들이 많고 주적이자 무력충돌이 국지전으로 있기도 했던 미얀마등도 타이군보다 장비의 질이 훨씬 떨어진다. 더욱이 현재 타이 육군의 주 임무는 자국내 무슬림 게릴라과의 비정규전 수행이 주로 이루는 지라 기계화장비들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비정규전 수행 관련해서의 장비들이 그렇게 질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태국군 역시 우리나라처럼 육군의 비중이 크다보니, 태국군 내에서도 육군의 주요 직무 독식이나 높은 비중의 육군 예산 편성에 대한 비판이 있다.
특수전부대는 1개 특수전사단과 제31레인저연대로 운영되고 있으나 실질적인 특수전부대는 1개 특수전사단이며 31레인저연대는 근위연대임으로 별도로 분류하는 것으로 보인다.
태국군 보병들의 군장이 동남아 국가치고는 예사롭지 않은데 이는 태국군이 독립을 요구하며 게릴라전과 테러로 대항하는 남부의 이슬람 무장단체에 맞서야하기에 주로 일반 보병 위주의 대게릴라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에서 미군과 연합훈련을 자주 하는 편이며 싱가포르군이나 필리핀군과도 군사교류가 잦은편이다.
우크라이나크림 위기에 이은 돈바스 전쟁으로 혼란에 빠져 T-84 인도에 어려움을 겪자 태국은 새로운 전차 획득 사업을 벌였고 여기에 T-90이 유력하고 K-1A1이 경쟁하던 상황이었는데, 2016년 5월 중순 뜬금없이 중국의 수출용 전차 MBT-3000[9]가 선정되었다.
추가적인 정보는 https://en.wikipedia.org/wiki/Royal_Thai_Army 통해 확인해 볼수 있다.

4.2. 해군




4.3. 공군[10]




5. 징병제



태국도 한국처럼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지만(당연히 신검도 받는다) 지원만으로 병력 대부분을 충원할 수 있어서 큰 의미는 없다.[11] 지원병의 복무 기간은 2년인데 고졸은 1년, 대졸은 6개월만 근무하면 전역할 수 있다. 육·해·공 중에 원하는 군종을 고를 수 있다.
지원으로 인원을 충당할 수 없는 지역에 한해 징집을 실시하게 되는데 '''제비뽑기'''를 통해 대상자를 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징병제/태국 참조.[12]
태국의 경제 수준이 동남아 기준으로 괜찮다지만 중진국 수준이고, 빈부격차도 크고 상대적으로 군 생활이 괜찮은 편이라 한국과는 반대로 적표를 뽑길 바라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장교가 되면 고위직으로 출세하기 용이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관학교로 진학하려는 인원도 넘쳐나는데다, 군 고위 간부들이 정계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데 지상파 방송국 등 군에 딸린 사업체가 많아 재력은 충분하므로 입막음을 위해 두둑한 월급과 성과급을 내어주므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병 월급이 대략 30만 원 정도로, 대졸 초봉에 육박하는 수준이고 한국군 병과 동일한 월급을 받는다(…).
다만, 현재 태국 남부지방은 독립을 요구하며 내전을 벌이는 이슬람 반군[13] 때문에 7년 동안 4500명 이상이 사망해 병역을 기피하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 승병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고…….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군대를 가더라도 널널한 곳으로 가는 걸 선호하지 빡센 곳으로 가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벌이가 시원치 않은 이산 지방 등 동북부 낙후 지역이라면 군인으로 근무하는것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하지만 산업이 발달되어있고 일거리도 많은 방콕이나 파타야같은 지역에서는 얘기가 달라서 군대를 가는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끔씩 여장을 해서 트랜스젠더인척을 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해서 이슈화되기도 한다. 군대 가기 싫으면 자신이 뽑았던 적표를 면제자에게 양도하면 되지만[14] 이것도 보통은 돈이 들고 지역별 쿼터제를 정해서 군대를 내보내기 때문에 쿼터가 안찬지역에서 이용하기가 좀 부담스럽다. 물론, 돈이 있으면 쿼터가 꽉 차서 추가징집하지 않은 지역으로 위장전입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에게 적표를 양도하면 되겠지만...

6. 관련 문서



[1] GFP는 한국이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기준으로 삼는다.[2] GFP는 프리깃이란 단어를 한국 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부를 때 사용한다. 한국은 이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는 1000~2000 톤급의 배도 호위함으로 부른다.[3] GFP는 초계함이나 고속정을 모두 초계함으로 처리했다.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기습전'''이나 '''해안방어용'''으로 건조된 함정으로, 이 때문에 대규모 함대전에 '''매우 취약하다.''' 하지만 함정 보유 수가 극도로 절망적이고('''정규항모 1척, 호위함 6척, 초계함 109척'''), 대규모 함대전에 대응되는 최대급의 함정 등급이 구축함도 아니고 '''호위함'''이기에 대규모 함대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요약하자면 호위함이 구축함 노릇을, 초계함이나 고속정이 호위함 노릇을 하는 것이다.[4] <영문>Royal Thai Air Force[5] 과거 냉전 시절에는 아시아 친미 국가들 중에서는 일본 자위대를 제외한다면 대한민국 국군 다음의 강군으로 꼽혔다.[6] 한국에선 나룻배라며 비웃음거리가 되는 항모이지만 동남아 이웃 국가들은 해역 갈등에서 이 항모를 보면 쫄아버린다.[7]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국경 지역은 각 두 나라에서 가장 정세가 불안한 지역이다.[8] 이들이 훈련을 마치기 전에 독일이 항복하여, 시암 조종사들의 참전 기록은 없다.[9] 수출명 VT-4[10] <영문>Royal Thai Air Force[11] 태국의 연간 입대자는 10만 명 수준으로 현재 태국의 입대 자원인 1990년대생은 연간 남성이 50만 명 가량 태어났다.[12] 사실 제비뽑기로 병역을 정하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기 프랑스에도 있었던 유구한 전통(?)의 방식이다. 프랑스는 교대로 근무를 시켰던 것이 차이지만.[13] 태국 입장에선 반군이 맞긴 한데 원래 이 지역은 무슬림이 대다수인 지역이다.[14] 심지어 '''불법이 아닌 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