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현대감각으로 디자인된 한복
[image]
삼국시대의 여성 한복. 기본 치마저고리 위에 포(袍)를 입고 허리띠를 둘렀다.
도식화
1. 개요
2. 전통 한복
2.2. 전통 한복의 양식
2.2.1. 전통 양식 (초기~말기)
2.2.2. 전통 양식 (중기~말기)
2.2.3. 전통 양식 (후기~말기)
2.2.4. 서구 양식 (말기~현대)
2.2.5. 서구 양식 (현대)
2.2.6. 남성용 한복 (초기~말기)
2.2.7. 남성용 한복(현대)
2.5. 원단
2.6. 실루엣
2.7. 말기와 가슴가리개
2.8. 동아시아의 전통복식과 비교
2.10. 입는 순서
2.11. 관리하는 법
2.12. 맞출 때 신경써야 할 부분
3. 현황
3.1. 현대에서 한복을 입으려는 시도와 외면
3.1.1. 대량생산의 어려움
3.1.2. 트랜드에 집착하여 한복의 원형이 소멸
3.1.3. 고루한 양식으로 인한 대중의 외면
3.1.4. 대중들의 편협한 인식
3.2. 한복 현대화의 노력과 결과물의 등장
3.2.1. 여자
3.2.2. 남자
3.3. 현대화되면서 생긴 양식
3.4. 현대한복의 입는 법
4. 한복에 대한 해외 인식
5. 대중문화 속의 한복
5.1. 한복을 입은 캐릭터
5.2. 한복 일러스트
6. 관련 사건사고
7. 관련 영상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개요


정자&신자체: 韓服
간체자: 韩服
Hanbok
한복()은 한민족전통의상을 말한다. 북한에서는 '조선옷'이라고 부른다.
한복은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복식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태가 변해온 한민족의 전통의상을 가리키며, 타국에 영향을 미치거나 받아들이며 한민족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변해왔다.[1]
현대의 한복은 주로 조선 말기 이후의 변형된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예를 들어 여성 한복의 경우 붕어배래, 조끼허리풀치마, 조끼, 마고자 등 구한말 이후에 변형된 형태 위주로 입어진다.
이러한 양식은 앞서 서술되었듯 지속적으로 변해온 흔적이며, 현대의 한복은 전통의상의 의미 외에도 소재의 다양성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발전해가고 있기도 하다.

2. 전통 한복



2.1. 전통 한복의 역사




2.2. 전통 한복의 양식


삼국시대~조선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상유하고(上襦下袴)[2] 양식을 따르고 있다. 덤으로 중국의 한푸는 기본적으로 위아래 한 벌인 통옷이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 탓에 대체로 상의하상(上衣下裳)[3]이라 불린다.
북방(알타이)계 호복의 양식을 근간으로 두며, 기원전 7세기의 기마민족 스키타이의 의복문화에서도 꽤나 영향을 받았다. 상의와 하의가 명확히 구분되는것이 특징이며 링크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러한 양식은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4] 또한 야한대성 기후조건 덕에 몸을 감싸는 y형식의 의복문화가 잘 정착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큰 변화없이 이어지던 고대한복양식은 고려에 이르러 원나라의 영향으로 크게 바뀌었고 이때 한복의 상징인 옷고름이 생겨났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양식들이 나타나고 사라져왔으며, 조선에 이르러 밑의 양식들을 끝으로 전통의상이 완성되었다.
[image]
[image]
(일제강점기 초중반의 사진들, 하나의 양식이 아닌 다양한 양식의 한복을 입었다.)
(문서의 설명을 위해 첫번째 사진을 삼총사라 명함)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다보면 한복 문서에 올라와 있는 의상 정리표처럼, 한복이 각 시기에 따라 특정 양식으로 변화하였다고 말하는걸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정리방식이 잘못되었다 말할 순 없지만, 어느정도 정정할 부분이 있다.
사실 정확한 한복의 변천사를 표현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저고리가 "짧은 양식으로 변화" 가 아닌 "짧은 양식도 추가" 이기 때문이다. 구한말 까지만 해도 긴저고리 양식은 당당히 존재했었으며 한 시기에 하나의 양식만이 있는게 아닌, 다양한 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던 것이 한복문화였다.[5] 사진자료 없이 변화양상만을 설명하다보니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긴저고리는 조선 초~중기에만 존재했고 후~말기에 다다를수록 짧은 저고리만 존재했었다." 라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한 오해들은 바로잡힐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모른체 그 영역을 축소시킨다는건, 한복문화의 다양성과 가치를 낮추는 행위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구조나 종류를 세세히 따지자면 그 수가 만만치 않으며, 도포쾌자와 같이 뚜렷이 구별되는 것들은 이미 한복/종류 문서에서 다뤄져있으니, 이 항목에선 가장 기본적인 "치마저고리 or 바지저고리" 와 관련된 다양한 양식들을 자료와 함께 정리한다. 한복의 가장 기본형인 만큼 여러 바리에이션들이 있으며 크게 쪼개보자면 "감추기" and "보이기" 그리고 "전통양식" and "서구양식" 쯤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image]
[image]
참고로 치마 밑 발목부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여성또한 상유하고의 양식에 따라 바지를 입는다. 당시의 여성들도 치마안은 무조건 바지를 입었고, 사진과 기록을 통해 바지차림으로만 생활하는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2.2.1. 전통 양식 (초기~말기)


[image]
[image]
[image] [image]
(일제시기의 사진들, 인물들이 서로 다르지만 허리부근에서 웃도는 긴 저고리를 입고있다.)
(2번째 사진, 3번째 인물은 조선중기의 양식이다.)
삼총사중 오른쪽 인물의 양식, 한복의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형태이다. 현대에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한복과는 정반대의 구조를 띈다. 의상 방향성은 "감추기"
평균길이는 저고리(흉통~허리부근), 치마(정강이~발목) 정도이며, 치마를 허리에서 둘러맨다. 치마를 허리에 묶는것 만으로도 옷에 색다른 실루엣을 가져오기에 후술할 서구양식과는 차별되는 면모를 볼 수 있다. 이후의 양식들과는 달리 긴저고리가 허리까지 다 덮어줘서 유일하게 2피스를 가졌으며, 남성용 한복처럼 원시적인 ▲의 모양을 하고있다. 때문에 위아래가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실루엣또한 ▲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식이 조선초기를 대표한다지만 시간이 흘렀다 하여 그 문화가 사라진것은 아니었기에, 조선의 멸망이후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긴저고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들어서면서 짧은 저고리 양식만 유지되는 바람에, 여러 미디어와 디자인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긴저고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조선중기의 유산이라 여기기도 하는등, 아직 개발 및 발전될 부분이 많은 양식이다.

2.2.2. 전통 양식 (중기~말기)


[image] [image] [image]
당시 조선에서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양식이다. 다양한 사진자료들에서 이러한 양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지금의 입장에서도 신체적, 미적요소가 꽤나 들어나는 양식이다. [6] 동시에 후기양식의 기반이 되는 양식이기도 하다.
평균길이는 저고리(가슴 밑~흉통), 치마(정강이~발목) 정도이며, 모든 양식들을 통틀어 딱 중간의 위치에 있다. 전까지의 ▲모양의 저고리에서 벗어나 인체에 딱 맞는 ■모양의 저고리로 발전하였다. 덕분에 초기양식처럼 쭉 연결되지않고, 위아래가 더 명확이 구분되어 인체의 실루엣을 더욱 살릴 수 있었다. 길이가 허리에서 흉통까지로 짧아진만큼 빈부분이 약간 생기는데, 그부분을 통해 치마허리를 노출시켜서 장식처럼 활용해서 3피스의 시작을 알렸다.
"■모양의 저고리, 줄인만큼 생기는 노출장식" 이러한 개념의 미적요소들은 계속 이어지고 변형되어 새로운 양식의 기초가되었다.
(자료정리중)

2.2.3. 전통 양식 (후기~말기)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일제시대 사진들, 바구니를 쓴 인물들은 기방의 기생들이다.)
삼총사 중 가운데 인물의 양식, 중기양식을 계승하고 발전했으며 지금의 짧은 저고리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양식이다. 의상 방향성은 "보이기"
평균길이는 저고리(가슴 위~밑), 치마(정강이~발목) 정도이며, 치마를 허리에 매기도 하지만 가슴에 둘러매기도 한다. 3피스를 강조하는 양식으로, 일부러 저고리의 길이를 줄여 속이 최대한 많이 보이도록 만들었으며, 줄어든 만큼의 빈부분을 매우는 것은 치마허리가슴가리개라는 의상 겸 장식이다. 단순히 천을 두르는 것만이 아닌 늘어뜰이기, 매듭짓기, 더 감아 부풀리기, 허리띠도 묶기 등 천 하나로 다양한 형태의 가슴장식을 만들어 입었다.
이러한 양식은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기생사대부들도 입었는데, 막 입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평민들이야 별 상관 없이 돌아다닌다지만, 기생에게 있어 외모는 밥줄이기 때문에 막 노츨시키기엔 무리가 있었고, 사대부 규수들은 예법에 따라 지조와 절개를 지켜야 하기에 몸을 함부로 놀려선 않됬음으로 두 계층 모두 뭐라도 자신의 모습을 감출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나오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image] [image]
기생들이야 바구니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양반집 아낙네들은 쓰개치마이전에 치마를 덧입어서 가슴가리게 부분까지 완전히 둘러싸매서 스스로를 감췄다. 이렇게만 보면 별 상관없지만 이게 또 한복이 까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가슴노출과 함께 위와 같은 사진들을 증거삼아 한복이 수준낮은 문화라는 주장을 찾아볼 수 있다.

2.2.4. 서구 양식 (말기~현대)


[image] [image] [image] [image]
(일제강점기~6.25이후의 사진들, 기존의 전통양식들 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삼총사 중 왼쪽 인물의 양식, 일제강점기를 통해 서구열강의 문화가 유입되며 생겨난, 일종의 퓨전양식이며 그 역사가 비교적 짧은 의상이다.
평균길이는 저고리(가슴 위~밑), 치마(정강이~발 밑 이상) 정도이며, 그 구조방식이 현대한복의 기초가 되는 양식이다. 전통적인 "허리묶음치마"가 아닌 서양에서 유입된 "어깨허리치마" 일명 "통치마"가 쓰였기 때문에, 기존의 전통양식들과 비교해 다른 실루엣과 분위기를 보인다. 3피스에서 다시 2피스로 돌아갔는데, 치마 자체가 가슴 윗부분까지 가려주다보니 가슴가리개를 사용할 수 없어졌고, 들어나는 면적또한 적어지므로 자연스레 짧은 저고리가 쓰이게 된다. 치마 하나로 많은 것이 바뀌게 된 셈, 이후 여학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통치마 양식은 널리 퍼지게 된다.[7]
단순히 어깨에 걸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편의성과 낮은 제조단가를 얻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특유의 실루엣과 미적인 부분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그래도 입는 사람이 이를 알다보니 짧은 저고리 중에서도 그나마 긴 것을 입거나 허리띠를 묶어서 장식 및 실루엣을 가지고자 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변화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일제의 문화통치, 6.25전쟁 등 여러 혼란기를 거치며 전통문화의 소실 및 퇴보가 일어났고, 사실상 주류문화가 서양식으로 바뀌며 한복은 의복의 개념에서 멀어져 허례허식화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복문화에서 기존의 서구양식과 동일하지만(짧은 저고리+어깨허리치마) 전혀 다른 양식의 복장이 등장하게 된다.

2.2.5. 서구 양식 (현대)


[image] [image] [image]
(최근의 사진들, 20세기 중반~21세기 초반까지 각종 미디어와 행사에서 주로 등장하던 양식이다.)
한복이 의복에서 예복의 성격을 취하게되며 등장한 양식으로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임산부복" "북한 한복" 등 여러 별칭이 있지만, 하나같이 부정적인 의견임은 동일하다.
평균길이는 저고리(가슴 위), 치마(발 밑) 정도로, 그 구조가 매우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짧아진 저고리 때문에 깊게여미지 못하고 옅게여미는데, 이를 견뎌주는건 지나치게 커진 옷고름이다. 치마의 면적또한 매우 넓어서 자칫 저고리가 없다고 여겨질 정도.[8] 전통이 아닌 서구식 한복으로부터 발전했는데, 위아래 모두 염색을 하고, 다양한 무늬들과 장식을 넣어 화려하게 꾸민다. 당연하게도 의복으로서의 가치는 없으며 오로지 화려함과 보여주기에 치중된 옷이다.
20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남북한 모두 이러한 양상을 즐겨입었으며 2020년 기준, 남한은 그 수가 줄었지만, 북한조선족들에겐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는 양식이다. 허나 그 수가 줄었다 뿐 지금도 여러 미디어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저 그렇게 있는다면 모를까, 현대인들에게 한복에 대한 부정적인(촌스럽다, 허접하다) 입장을 가지게 만들고, 한복문화의 수준낮음을 주장하는 뒷받침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니, 영 좋게 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현대식으로 디자인되는 옷들의 대다수가 이러한 양식을 따르고있으며 잘 봐줘야 조선말기의 한복을 디자인할 뿐 다른 전통양식들은 없다시피 취급되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른 양식들에도 디자이너들이 손을 뻗기 시작했다지만 디자인계의 한복은 아직도 이쪽양식이 대표적이다.

2.2.6. 남성용 한복 (초기~말기)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일제시기의 남성용 한복들, 여성용 한복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한복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조선시대 남성용 한복, 여성한복 못지않게 다양한 양식들과 멋을 지니고 있다. 여러 가능성들을 품고 있으나, 아직 제대로 빛을 받지 못한체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양식이다.
평균적으로 저고리(허리~손목), 바지(정강이~발목) 정도이며, 초기 여성한복과 같이 원시적인 ▲모양을 띈다. 저고리의 경우 평균적인 길이가 있으나, 흉통만큼 짧은것도 있고, 손끝까지 긴것도 있는 등 다양각색이다. 여성복과는 단순히 치마와 바지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구별/공통 되는 특징들이 여럿 존재한다.
대표적인 차이점으론 남성용 한복은 여성용 한복과는 달리 유일하게 반팔 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름사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정체는 지금의 난닝구와 같은역할을 하는 속저고리이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입은것 보단 반쯤 풀어해친 모습의 사진들이 많으며, 이를 빌미로 한복을 까는 주장을 찾아볼 수 있다.
[image]
[image]
[image]
(비교적 멀쩡한 속저고리들, 저고리와 소매의 길이가 다 다르다.)
대표적인 공통점이라 하면, 그 개념은 다르지만 저고리 밑으로 의류 및 장식을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위에서 콩타작을 하는 남자들을 잘 보면 저고리 밑으로 제3의 영역이 나와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용 한복에서 저고리를 줄인만큼 빈부분으로 속장식을 들어내보이듯, 남성용 한복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다만 여성용처럼 일부러 속을 보이는 개념이 아닌, "남은 부분을 재활용"하는 개념에 가깝다. 보통 "속저고리(속옷)" or "바지허리"가 쓰이는데, "속저고리"의 경우 긴 속저고리가 짧은 겉저고리 밑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바지허리"의 경우 바지허리 밑에 따로 허리띠를 묶고, 그 위를 밑으로 접어내림으로서 저고리 밑으로 노출시키는 것이다.[9]
여담으로 머리수건의 경우, 여러 인터넷, 미디어매체를 통해 보면 단순히 띠를 두르는 것으로 한정되어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허나 이러한 묘사법은 잘못된 것으로, 조선의 남성들은 머리띠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들로 천들을 꾸미면서 둘렀다.
[image]
[image]
[image]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의 머리수건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남성의 머리수건

2.2.7. 남성용 한복(현대)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남성용 한복에도 결국 문제가 발생하게 되니, 위에서도 언급했던 한복문화의 쇠퇴와 허례허식화가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사진, 사진
(6.25이후의 사진들, 왼쪽의 사진의 청학동마을의 초기사진)
전통적인 저고리에서 보이던 ▲의 실루엣이 아예 사라졌으며 후줄근한 느낌을 준다. 현대한복에선 흔한 염색조차 없이 바지저고리 모두 흰색을 유지하는건 덤, 무엇보다 디자이너들의 남성과 여성의 한복을 다루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여성용 한복의 경우 치마저고리의 근본적인 형태와 장식에 손을대는 반면, 남성용 한복의 경우 오른쪽 사진처럼 배자, 쾌자와 같은 겉옷 꾸미기에만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고정된 방향성을 벗어나 근본적인 바지저고리에 집중하여 기본을 탄탄히 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참고로 남성용 한복에게도 서구열강의 영향으로 인해 새로운 양식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것이 뭔지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바로 "단추". 현대한복답게 앞에서 여미며 기존의 옷고름대신 단추를 사용해 연결했다. 간혹 옛사진들을 보면 면직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단추달린 옷을 입고있는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서양식 저고리"의 정체이다. 허나 말이 저고리일뿐 재질을 제외하곤 전혀 다른옷이나 다름없다. 이마저도 유지되긴 커녕 20세기 중후반부터 양복이 주로 쓰여지게되면서 그대로 뭍히게 된다.
근래의 한복들의 경우 전통한복과 달리 입고 벗기에 편리하도록 재래식 한복의 옷고름 대신 단추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재래식 한복에서 단추를 안 쓴 것은 아니지만,[10] 재래식 한복은 깊이 여며서 입은 상태에서 고름을 묶는 게 일반적이라 단추의 사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현대 개량한복은 활동의 편리함을 강조하다 보니 쉽게 벗을 수 있도록 예전보다 여밈이 줄고 고름은 전통적인 디자인인 맺음단추나 그 외 적절한 단추로 대체하고, 추가로 장식성을 강조하기 위해 단추가 만나는 가슴부위에 화려한 자수를 놓은 천을 덮기도 한다. 왕의 곤룡포나 관리들의 관복 단령에 있는 흉배에서 모티브를 얻은 사각형의 화려한 금실자수판을 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11] 이때 마과처럼 단추끈이 긴 것보다는 가사나 면제배갑의 단추처럼 단추끈을 짧게 하고, 단추끈과 옷의 연결부위에 자수 등으로 장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image]
무복으로 입는 쾌자.(출처)복잡한 옷고름을 자수와 맺은단추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image]
조선 순사의 모습. 1890년 5월 10일자 <런던뉴스>에 실린 삽화라고 한다.* 옷고름을 단추로 대체한 모습이 눈이 띈다.

2.3. 전통 장식



원래 성별과 상관없이 귀고리까지 착용하는 것이 기본 착장이었다.[12] 고분 발굴을 통해 신라삼국시대 때부터 그랬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조선 초기(임진왜란 이전)에도 성별 불문하고 귀를 뚫고 귀고리를 착용했다.세종실록 3권, 세종 1년 1월 6일 신해 4번째기사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사대부 자손들이 귀고리를 착용했으며, 금이나 은을 써도 법에 저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선조 5년(1572)에 젊은 남자에 한해 귀고리를 금지시킨다. 선조실록 6권, 선조 5년 9월 28일 신해 두 번째기사 조선 시대에 들어 귀를 뚫는 귀고리가 아닌, 귓바퀴에 거는 귀걸이가 등장했다.[13] 선조실록 186권, 선조 38년 4월 19일 계해 두 번째기사에 '귀고리를 건 노파'가 언급되므로 여자까지 귀고리를 금지당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선조 30년(1597)에 남자의 귀 뚫은 자국을 보고 조선인인지 왜적인지 구분한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 5년에 남자들의 귀고리를 금지시켰음에도 오랜 풍습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법으로 금지되기 전에 귀를 뚫었던 사람이거나.선조실록 93권, 선조 30년 10월 4일 신유 여섯 번째기사
밑의 실루엣 문단에서 설명하겠지만, 조선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의를 크고 풍성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양반가는 3~5 정도의 치마를 껴입었고 그 이상도 가능하다. 다른건 몰라도 미의식만은 복식사에서 한민족만큼 동형성을 지킨 민족도 드물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통 의상은 기모노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자의 옷을 아담한 가슴에 적합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왔고 그 때문에 가슴을 압박하는 형태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으며, 한복의 경우에도 아래쪽은 크고 화려하게 만들고 위쪽은 작고 간소하게 만드는 것을 여성용 한복의 기본적인 디자인 양식으로 삼고 있었기에 딱히 예외는 아니었었다고 한다. 다만 이는 전통적 원형을 지킨 한복의 이야기이고, 현대에 들어 제작되는 개량한복이나 퓨전한복은 현대인들의 체형과 생활 방식에 편리하도록 맞추기 위해서 신체의 굴곡에 맞게 디자인되고 면 소재나 블라우스 소재 등 현대의 소재와 결합하여 가슴을 압박하지 않으며 신체 동작의 용이함이 고려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2.4. 바느질


  • 전통 바느질 방법
    • 홈질, 박음질(온박음질, 반박음질), 감침질(두 가지 방식이 있다.), 공그르기, 시침질, 사뜨기, 휘갑치기 등이 있다.
  • 가장 기본적인 시접 처리 방식은 물겹 바느질이다. 조선 초기에 깎은 바느질[14]이 등장했으며, 중기에 누비, 후기에 깨끼가 등장했다는 언급이 있는 신문 기사가 있다. 1986년 4월 11일 경향신문 기사
  • 시접 처리 방식[16]
    • 물겹: 시접을 넉넉히 남겨 빨래나 수선 등이 용이하다. 주로 두꺼운 소재에 사용한다.
    • 깨끼(곱솔): 재단선을 한 번 박음질한 후 꺾어 접어서 먼저 한 바느질선에 최대한 가깝게 박은 뒤 시접을 최대한 잘라내고, 다시 접어서 박는다. 박음질을 총 세 번 한다. 저고리의 경우 치수 수선이 안된다. 모시나 얇은 소재에 많이 사용한다. 조선 인조 때 인물의 묘에서 출토된 한복에도 깨끼 바느질이 사용되었다
    • 가름솔: 올을 따라 호아서[15] 갈라 다린 뒤, 조금 풀을 발라 다리고 겉으로도 뒤집어 다린다.
    • 쌈솔: 두 겹으로 혼 뒤 꺾어 접어서 박고, 시접을 앝게 잘라내고 꺾어 접는다.
    • 뒤웅솔: 겉에서 박아 꺾은 뒤 시접을 얕게 잘라내고, 자른 시접이 솔기 안으로 들어가게 접은 뒤 박고 꺾어 접는다.
  • 누비: 직물 사이에 솜을 넣거나 넣지않고 바느질로 고정시킨다. 옷감의 날실 한 가닥을 일정한 간격으로 당겨 누비선을 표시한 뒤 그 선을 따라 누빈다.
    • 솜 여부에 따라
      • 솜누비: 솜을 넣어 누빈 것. 목화솜이나 명주솜을 넣었다.
      • 겹누비: 솜을 넣지 않고 옷감 두 겹만을 누빈 것.
    • 누비 간격에 따라
      • 잔누비(세누비): 누비 간격이 0.5cm에서 1cm로 촘촘한 것.
      • 중누비: 누비 간격이 2.5cm 내외인 것.
      • 드믄누비(광누비): 누비 간격이 5cm 내외인 것.
    • 선 모양에 따라
      • 직선누비
      • 곡선누비
    • 바느질에 따라
      • 홈질누비
      • 박음질누비
    • 수단에 따라
      • 손누비: 사람이 직접 만든 것.
      • 기계누비: 기계로 박은 것.

2.5. 원단


  • 구분법: 태웠을 때 재가 남지 않고 모조리 바스라지면 본견, 재가 엉기면서 남아있으면 화학섬유다.
  • 이중직: 이중으로 직조한 원단.
  • 선염: 먼저 실을 염색한 후 직조한 원단. 균일한 염색이 가능하다.
  • 홍두깨: 홍두깨(다듬이)질을 하여 물결무늬를 내는 것. 기계 염색으로는 불가능하다.
  • 비단(본견=실크): 명주실로만 짠다. 다른 실을 섞지 않는다. 자외선에 약하며, 물에 닿으면 얼룩이 생긴다. 흡수성이 높아 습한 곳에 보관하면 형태가 변하고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흡수제거제나 방충제는 화학 성분이라 안좋다. 한지를 먼저 두른 뒤 방충제를 닿지 않게 넣어야 한다.
    • 옥사: 누에에서 뽑은 실 중 가장 거친 것을 반쯤 삶아 만든다. 염색할 때 염료를 많이 먹어 색을 진하게 하기에 좋다. 거칠고 빳빳한 느낌이 살아있다.
    • 견방사: 생사가 아닌, 자투리를 엮고 뽑아서 만든다. 옥사에 비해 구김에 강하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
    • 명주: 고운 명주실로 만든다. 옥사보다 두껍고 견방사보다 광택이 난다.
    • 갑사: 고운 명주를 꼬아서 만든다. 실이 뭉치지 않고 무늬를 잘 살려준다.
    • 생초견: 삶지 않은 생사로 짠다. 염료를 잘 먹으며, 다듬이질을 하면 좋다.
    • 양단: 가늘고 고운 명주로 직조한다. 다른 원단에 비해 실이 많이 들어간다. 한복 원단 중 광택이 제일 강하다. 주로 겨울 한복에 사용한다.
    • 선염이중옥사: 먼저 색을 염색한(선염) 두 가지 색의 원사(이중)를 직조하여 만든다. 씨실[17]과 날실[18]의 색이 다르기 때문에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이 보인다.

  • 화학섬유(혼방=인견=물실크)
    • 물실크: 폴리에스테르에 나일론과 레이온을 섞어 만든다. 인조 실크=인조 본견=줄여서 인견. 가장 저렴하고 물빨래가 가능하지만 형태가 쉽게 무너지고 한복의 태가 잘 나지 않는다.
  • 염색 방식: 자연 염료가 아닌 이상, 산성 염료를 사용한다.
    • 자연 염색(천연 염색): 자연 염료로 염색하는 것.
    • 손염색: 색감이 진하고 고급스럽다. 염색하는 사람과 온도, 습도, 바람, 일조량 등에 따라 미세한 유동성이 있다.
      • 기계 손염색: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여 염색한 것.
      • 사람 손염색: 사람이 직접 염색한 것. 가장 비싸다.
    • 기계염색: 기계만으로 염색한 것. 고열에서 염료를 압착하여 코팅한다. (본견인 경우)단백질인 원단에 높은 열을 가하기 때문에 원단이 약해진다.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똑같이 고르게 염색할 수 있지만 손염색에 비해 색감이 떨어진다.

2.6. 실루엣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3국은 전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치가 다른 만큼, 옷에 대한 문화적 차이가 전체적인 선에서 드러난다. 중국은 옛부터 몸에 최대한 붙어서 '신체미'를 강조했고. 일본은 직사각형의 단조롭고 깔끔한 '지조미'를 지향했다면 한국은 정 반대로 "크다". 특히 하의를 엄청난 면을 써가며 풍성미를 지향했다. 이는 남성도 마찬가지로 청의 사신은 '조선의 바지 한벌로 청의 바지 두벌은 만들 수 있다.'며 충격을 먹을 정도로 하체의 풍성미를 추구했다.[19] 신라시대 때부터 상의가 아닌 하의를 정체성으로 삼고 노략질을 하는 놈들도 있었으니 1000년을 넘는 미의식인 셈이다.
쉽게 말해서 중국과 일본,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이 ■의 형상을 취한다면 조선은 ▲의 형상을 취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알고 있는 포대자루같이 펑퍼짐한 치마저고리의 실루엣은 최소 구한말에 정립된 형태이며, 한민족은 여태껏 옷을 입은 이래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복은 남녀를 불문하고 허리 선이 드러나 엉덩이를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한복은 흔한 인식과는 정반대로 조선 초부터 시대가 흘러갈수록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image]
[image]
조선시대 여성 저고리의 변천사
상의 저고리가 점점 타이트해지며 짧아지더니 가슴 윗부분까지 올라가 버려서 가슴가리개라는 것을 허리에 두르지 않으면 가슴 아래 선이 전부 노출돼 버렸다.
[image]
신윤복의 풍속화 연소답청에 표현된 가슴가리개. 허리에 넓은 천을 두르고 띠로 고정시킨 것이다. 초기의 브래지어처럼 가슴을 가리고 조이는 역할을 하는, 상의의 맨 아래에 착장하는 속옷이다. 저고리가 너무 짧아져 이 속옷이 노출되는 지경에 이르자[20] 가슴가리개는 가슴부터 허리까지 꽁꽁 가리고 조이는, 맨 아래에 착장한 한복 속옷이다.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퓨전 한복이나 한복 드레스에서 오픈숄더처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치마의 말기 부분이다. 기생들은 여기에 자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수를 놓은 가슴가리개는 전해지는 유물은 없고 이영희 디자이너가 현대에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한말,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들의 사진이 유명한데, 이는 일제가 "미개한 조선을 우리가 개화해줬다"는 의도로 연출한 날조된 사진이다. 19세기 말 당시 사진엽서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는데, 식민지의 모습을 찍은 엽서도 자연스럽게 유행했다. 그리고 일제는 조선의 미개하고 가난한 모습만을 골라 지배국의 시선을 투영했고, 일제의 식민지배가 박애주의적인 선택이었다는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하층민 중 아이를 낳은 여성이 수유를 쉽게 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는 임산부라는 특별한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이지 평민 여성이나 양가집 규수가 공공연하게 밖에서 가슴을 드러낼 리가 없다. 애초에 조선은 부녀자들이 장옷과 쓰개치마로 얼굴만 드러내고는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나라였다. (SBS 스페셜 일제 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 ##)
그러나 실제 일제와 상관없는 구한말 외국인들이 조선인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속에도 가슴이 노출되는 부녀자 복장이 종종 나오고 한국에 우호적이던 외국인들의 여행기에도 아들을 낳은 여인들만 가슴을 드러낸다는 설명도 공통적으로 있는것을 보아 일시적으로 하층민들 사이에 유행한 풍습일 가능성이 더 크다.(https://m.blog.naver.com/CommentList.nhn?blogId=tomtomkor&logNo=221292923422) 일제가 제국주의적으로 이용했다고 이러한 복식사의 변천에대한 제대로된 연구없이 왜곡으로만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고 또한 상류층의 복식 기준으로만 연구가 진행돼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한복은 구한말에 유행하던 스타일인데,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허리에서 여며지던 치마를 길게 만들어 가슴 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구한말의 여성해방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는 일단 조인다. 기능만 보자면 가슴조이개에 더 가깝다. 코르셋이 허리를 조인다면, 이건 가슴에서 허리까지 꽉꽉 다 조인다. 이는 여아들의 2차 성징에도 지장을 주어, 현대에 들어 가슴가리개&치마말기를 유지하고 있는 퓨전한복은 가슴둘레에 맟춰 제작함으로써 가슴부분을 조이지 않는 형태로 나오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저고리가 남성의 것처럼 길고 한복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인체구조상, 치마가 허리부터면 대강 둘레만 맞으면 적어도 밑으로 내려가진 않는다. 그런데 저고리가 짧아지고 가슴가리개와 말기치마가 생기니, 이젠 죄지 않으면 치마가 그대로 벗겨진다.
구한말부터 유행한 치마는 치마에 어깨끈이란 안전장치를 달아, 짧은 저고리는 유지하면서도 여자들이 마음놓고 좀 뛰어도 괜찮게 하였다. 조끼허리 혹은 어깨허리 [21]라 하여, 점퍼스커트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어 여민다. 이 형태는 개화기 때 이화학당미국인 여교장 J.월터가 위의 가슴가리개가 청소년기 소녀들의 건강상 좋지 못한 것도 있고 체조와 농구 같은 운동를 하거나 뜀뛰기를 할때마다 치마가 흘러내렸기 때문에 개량해 보급한 것이다.
저고리를 다시 늘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복 치마 형태에서 활동성을 극대화하려면 이렇게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어깨끈을 달며, 통치마로 만들어 여밀 필요가 없게 하고, 치마 길이는 땅에 쓸리지 않게 짤막히 하는 게 최고다. 즉 현재 북한의 한복 치마 형태나, 유관순이 입은 한복 치마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이화학당 등 구한말 여학교들 중심으로 활동성 높은 통치마 입기를 권장했고, 이렇게 몸매를 드러내는 가슴가리개 한복에서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펑펑한 한복 형태로 바뀌어갔다.
묘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만들어지고 있는(더욱이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한복은 대다수가 이렇게 상하의 구분선을 생략하고 치마가 겨드랑이까지 올라가는 형태이다. 실생활에서 이러한 형태의 개량한복을 접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기회는 바로 결혼식장인데, 컨벤션센터 위주의 현대 혼례에서도 신랑•신부의 어머니는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것이 정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아예 통치마 형태의 개량형 치마를 혼주치마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런 디자인도 충분히 매력이 있으며, 한복의 절제되면서도 가리는 멋과 치마의 풍성한 선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일부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은 이 디자인을 포대자루 같다며 까기도 한다.
그래도 이러한 긴 치마[22]를 응용한 한복 원피스나 한복 드레스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최근 2010년대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생활한복이나 개량한복의 치마가 허리에서 여며지도록 짧아지고, 저고리 길이도 점차 길어지는 추세이니 구한말의 이러한 디자인 변화를 마냥 비난하기보다는 현대의 한복 디자인에 다양성을 부가하는 요소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2.7. 말기와 가슴가리개


말기가슴가리개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치맛허리/바짓허리라고 사이시옷을 쓸데없이 넣어 표기하지 않는다. 또한 '고름'은 상의를 여밀 때 쓰는 끈을 지칭하는 것이지, 말기에 달린 끈을 고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치맛고름/바짓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 책에도 없고 학자들도 사용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용어이다. 남자 바지를 여미는 끈은 말기에 같이 달린 끈이 아닌 분리가 가능한 허리띠이며, 여자의 속옷으로 쓰이는 바지에 달린 끈도 그냥 '바지끈', '바지말기 끈' '바지허리 끈'으로 부르지 바짓고름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는 없다.
말기는 치마나 바지의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국어사전)이다. 즉, 치마허리나 바지허리. 별개의 의복이 아니다.
말기는 저고리에 동정, 길, 섶 등이 있는 것처럼 하의 속옷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치마에서는 한복 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부분이다. 조끼허리식 풀치마의 경우 어깨끈이 달린 그 부위. 이 경우 말기 부분이 가슴에 온다. 이 조끼허리식 풀치마가 혼동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원래 전통적인 치마는 띠허리풀치마라 치마를 허리에 둘렀으며, 어깨끈은 달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말기는 허리에 위치했다. 말기에 두르고 남는 말기끈[23]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성을 보이기도 했다.[24] 한복드레스에서 상의 부분으로 활발히 개량되는 것은 이 말기 부분을 가슴가리개처럼 보기도록 굉장히 넓게 개량한 말기치마를 다시 개량한 것이다.
가슴가리개는 가장 안쪽에 착장하는 상의 속옷이다. '대자'라고도 부르는 그것. 위의 속옷 단락이나 항목 참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가슴가리개
가슴가리개가 말기에 흡수되었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오히려 후기로 갈수록 저고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져 가슴가리개가 더욱 중요해졌으며, 치마말기는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애초에 치마는 허리에 두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말기는 가슴가리개의 아래쪽 절반 가량과 겹치게 된다. 게다가 말기는 허리를 고정할 정도면 됐고, 속옷 역할을 할 정도로 넓지 않다. 다시 한 번 작성하지만,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에 천을 다시 덧대어 허리에 두르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따로 분리되거나 속옷과 흡수된 적 자체가 없다. 저고리에서 동정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과 같은 소리다.
애초에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양 선교사이화학당의 교장 미스 월터에 의해 서양 복식 재단법을 일부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이전 문서에서는 애들이나 입던 것이라고 서술했는데, 문호 개방 전 조선시대에는 애들도 입지 않았다. 조끼허리식 말기는 서구 문물이 들어온 구한말에 생긴 것으로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이 받아들여 입었던 것은 맞다. 애초 그들을 가르치던 서양인 선교사가 고안하여 전파한 것이다. 조선식 의복의 가슴가리개와 그 위를 여러 겹 동여매는 하의의 허리말기가 신체를 압박하여 여성의 건강에 좋지 않고 활동성을 저해한다고 여겨, 어깨끈이 있고 가슴을 안정적으로 감싸주는 조끼허리를 고안하여 보급한 것이다. 조끼허리의 패턴 자체가 서양 의복의 몸통(토르소)을 만드는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입체재단의 일부이다. 현대까지도 이런 조끼허리식 풀치마를 주로 착용하는데다 옛 복식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슴가리개를 한 것처럼 흉내내겠다며 말기의 폭을 대폭 늘린 말기치마나 치마 위에 두르는 말기대같은 것들이 새롭게 탄생하니 이런 혼란과 착오가 생기게 된다. 더군다나 말기치마와 말기대는 전통적인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것을 흉내내려는 목적에서 탄생되었으나, 한복 하의류의 허리 부분을 칭하는 말기가 버젓이 이름으로 붙어버렸다.[25]
예로부터 입어온 전통적인 한복 치마는 띠허리식 풀치마로, 허리에 두르는 랩스커트 형식이었다.[26] 현대에 주로 입는 가슴 위로 올라오고 어깨끈이 달린 것은 조끼허리식 풀치마로, 띠허리식 풀치마에 비하면 비교적 현대에 생긴 것이다.[27] 그러므로 원래 말기 부분은 허리에 오게 된다. 한복은 전통 의상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기 때문에 현대에 입는 한복이 아닌 전통적인 한복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요즘에는 한복을 입더라도 가슴가리개를 비롯한 전통 속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 조끼허리식 풀치마형으로 나온 샤 등의 재질로 만든 속치마를 많아봐야 두 겹 입는게 전부다. 저고리도 전통식과 양장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러니 한복에 관심이 있더라도 전통 한복을 따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한복은 원래 하의는 허리에 둘러서 입지, 가슴 부근이나 그 위로 올라오지 않는 복식이다.
말기는 애초에 섶, 길, 고름, 동정, 화장, 선처럼 의복을 구성하는 부분요소의 이름이기 때문에 독립된 별개의 속옷과 혼동되거나 합쳐질 이유가 없다.
치마말기는 엄연히 치마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가슴가리개는 전통 속옷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가슴가리개는 브래지어, 말기는 바지나 치마의 허리 부분이다. 벨트나 단추가 있는 그 부분. 말기에 달린 끈을 둘러 매어 치마나 바지를 여미고 고정한다.

2.8. 동아시아의 전통복식과 비교


일본기모노중국한푸만주치파오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고, 각자 제조법도 남다르지만, 그중에서 한국의 한복이 가장 견고하고 만들기 까다롭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의 한복이 가장 어렵다. 일단 치파오는 서양복식에 가까운 형태, 한푸와 기모노는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지만 한복은 안감과 겉감을 '창구멍' 이란 구멍을 통해 뒤집기 때문에 바느질이 어렵고 재단도 복잡하다.
하지만 만드는 데에 정성을 쏟은 만큼, 입는 절차와 활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복이 가장 간편하다. 특히 여성 복장의 경우 활동성은 한푸, 기모노와 차이가 크다.[28] 또 한가지 큰 차이는 호복의 영향을 받기 전의 한푸와, 기모노[29]의 코소데나 후리소데가 한 벌 통옷인 반면, 알타이계 호복이 기초가 된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나뉘고 여성도 치마 안에 반드시 속바지를 착용한다.
삼국시대 한복은 한푸, 정확히는 호복의 영항을 받은 한푸나 기모노와 상당히 접점이 많다. 이 시절의 한복, 한푸, 기모노의 기본 형태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슷하다. 백제, 가야 쪽 한복은 아스카 시대 기모노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도 있다. 때문에 2020년대 들어서 일종의 문화 동북공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한복과 기모노를 중국의 전통 복식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유하다면 '한반도에서 건너가 발전했으니 기모노도 한국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급의 논리이다. 한복과 기모노가 한푸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어떤 복식이든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상술했지만 한푸조차도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서역에서 발생한 호복의 일종이었던 단령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관복으로 쓰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기모노와 한복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옷깃이 목을 감싸느냐 감싸지 않느냐로 구분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의미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 깃이 섶과 구분되도록 재단하는 형태가 유행하긴 했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깃의 형태에서 기모노와 큰 차이가 없다.
이는 2000년대 쌍화차 코코아라는 여초카페의 모 유저가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한 글(스크랩본 링크)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옷깃이 목을 바싹 감싸고 동정이 있는 것이 조선시대 한복의 특징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모노와 구분하긴 어렵다. 해당 글은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기모노를 낮잡아 보면서 한복을 띄우는 한편, 한국 만화의 한복 왜곡 사례로 동양 판타지하백의 신부를 들거나, 허리띠를 뒤에 묶는 방식은 일본이 유일하다거나[30], 쾌자도포라고 하는 등, 한복에 대해 극히 한정적이면서 편향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졌지만,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고 엽혹진, 오늘의 유머 등 각종 커뮤니티에 여러 차례 퍼지면서 한복의 특징에 대해 알리는 데에 공헌하는 한편, '한복=(후기) 조선시대 복장'이라는 선입견을 고착시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심지어 2010년도인 현재에도 여기저기 스크랩되면서 한복과 기모노의 차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절찬리에 알리는 중이다.
중국에서 한복이 명나라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려양으로 원나라 때에 고려의 풍속이 당시 갔던 환관, 공녀들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한나라 이후 중국의 복식은 옷 폭이 넓지 않고 통이 좁은 데 반해, 한복은 고대부터 꾸준히 속옷을 여러 겹으로 받쳐 입어 풍성하다. 옷 자체도 한푸는 통옷에서 출발해 하의에 치마를 입었고, 한복은 설령 치마를 입더라도 바지를 필수적으로 입는다.
중세 이후, 각국의 복식은 전체적인 실루엣 자체가 다르다. 이후 명나라에서는 고려양이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되었다. 고려양 자체가 한족몽골에 주권을 빼앗긴 원나라에서 비롯된 풍습이기에 중화사상을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치욕스러운 역사인지라, 중국에서는 이를 부정하며 고려양 한푸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오군(袄裙), 혹은 유군(襦裙)이라는 복식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의 한푸 문서에도 고려양 한푸가 오군(袄裙)이라 소개되었다. 그러나 유군은 원래 이렇게 생긴 옷으로, 짧은 윗옷에 긴 치마를 입는 복식을 뜻한다. 한복과는 전혀 다른 복식이다.
다만 한중일 삼국이 지리가 가까운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에 생긴 유사점도 있다. 특히 관리의 공복이나 고려, 조선의 궁중 예복이 그렇다. 다만, 애초에 동아시아의 관복으로 널리 쓰인 단령조차 서역의 호복이 건너온 것이다. 어쨌든 고려 이후로는 왕이나 관리들이 입는 공식 의관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거의 동일했다고 보면 되며[31] 왕의 관과 옷은 명나라에서 직접 내려주기까지 했다. 명나라후금에 망한 후 강제 변발 시행과 치파오를 입게되고, 그 후 청나라에 온 조선 사신들의 옷차림(단령과 사모)을 보고 중국인(중에서도 한족)들이 "중화의 아름다운 풍속을 조선에서 지키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 이를 두고 한복의 기본 복식이 한푸에서 따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진성여왕 때 중국 공복을 도입한 이후 고유 복식과 중국 공복이 공존하는 이분적 복식제가 유지되었다. 왕이나 관리들도 일상에선 기본 한복을 입었다. 또한, 명나라 복식은 고려양의 영향 이후 폭은 좁아졌어도 한복 같은 투피스 형태가 유지되었기에 그래 보이는 것도 있다. 애초에 한푸는 남방계 복식에서 시작하여 북방계 호복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 복식이고, 한복은 북방계 호복의 영향으로 발전했다. 기모노는 관두의에서 시작해 호복과 한푸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옷이다. 두 복식의 시작이 한푸라는 것은 애초에 한국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중국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2.9. 전통 한복의 종류




2.10. 입는 순서


  • 양반 남자
    • 기본: 속적삼ㆍ속고의 → 저고리ㆍ바지 → 버선ㆍ 대님 → 행전 → 중치막 → 대창의 → 도포 (→ 쾌자/전복/답호 등) → 세조대(많이들 세조대가 허리띠인 줄 아는데, 절대 아니다. 즉, 허리에 매는 것이 아니다. 옷고름 위에 매는 것이 정석이다.)
    • 관복 착용시: 중치막이나 대창의 위에 관복을 착용했다. 중치막은 조복이나 겉옷의 아래에 받쳐입었고, 대창의는 관복 아래에 받쳐 입었다. 소창의는 중치막이나 대창의를 겉옷으로 입을 때에 그 아래에 입었다.
    • 출토 유물을 보면 사폭바지를 입기 전에는 남자도 개당고, 합당고, 세가닥바지 등의 형태인 하의 속옷을 여러 겹 겹쳐 입었다.
  • 양반 여자
    • 기본: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바지 → 무지기치마 → 겉치마 → 저고리
    • 궁중: 다리속곳ㆍ가슴가리개 → 속속곳ㆍ속적삼 → 속바지ㆍ속저고리 → 단속곳 → 너른바지 → 무지기치마 → 대슘치마→ 겉치마 → 저고리 → 당의/단삼/장삼
여자는 바짓부리를 정돈하여 고정시키지 않기 때문에 버선을 언제 신어야 한다고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가난한 평민들이 저걸 다 챙겨입기에는 무리가 컸던데다 복식금제로 인한 제약 역시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계층이나 직업에 따른 변화가 있었다. 입는 옷에 따른 변화도 당연히 있었다.
원래는 치마를 오른쪽 자락이 위쪽으로 가게 입는 것이 흔했으나,[32] 개화기 쯤부터 양반은 왼쪽 자락을 위로, 기생 등의 특수계층이나 천민은 오른쪽 자락을 위로 입게 되었다고 한다.
  • 고름 매는 법[35]
    • 긴 고름 위로 짧은 고름을 교차시킨 뒤 위쪽으로 통과시킨다
    • 위쪽에 놓인 짧은 고름을 (자신 기준)왼쪽으로 둥글게 돌려잡아 매듭고를 만든다.[33]
    • 긴 고름을 매듭고 속으로 넣어 왼쪽 고대 끝까지 잡아 빼면서 짧은 고름을 아래로 당겨 고정시킨다. [34]
    • 고름을 아래쪽으로 늘어뜨리고 예쁘게 정돈한다.

2.11. 관리하는 법


  • 원단에 따라 보관법과 세탁법, 다리는 법 등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원단별 특징 및 주의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 한복은 평면재단이기 때문에 절대 옷걸이에 걸면 안된다.
  • 깨끼(곱솔) 바느질로 지었을 경우, 절대 세탁기로 빨거나 비틀어 짜면 안된다. 바느질한 것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시접에 맞춰 박음질한 다음 꺾어접어 재봉선에 가깝게 박은 뒤 시접을 모조리 잘라내고 또 접어서 그 위를 박음질한 것이라, 실이 뜯기거나 손상되면 수선이 어렵고 힘들다. 시접이 없는데다 여러 번 접어가며 박아야 하는데 과연 쉽겠는가.
  • 보관할 때 빛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좋다. 원단은 빛에 노출되면 색이 변한다. 원단에 따라 색이 날아가는 기묘한 현상을 볼 수도 있다.
  • 본견인 경우, 특히 빛에 노출되거나 습하지 않아야 한다. 빛에 노출되면 바래며, 습하면 형태가 변형되고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방충제나 흡수제거제는 화학 성분이기 때문에 직접 노출되면 역시 안좋다. 한지로 옷을 잘 감싼 뒤 방충제를 옷에 닿지 않게 잘 배치해서 보관한다.
  • 종이로 심을 넣은 전통 동정인 경우, 색이 바래거나 찢어지고 물이 들 수 있으므로 오래 보관해야 할 경우 신경써서 교체해야 한다.
  • 개는 법
    • 조선시대의 한복인 경우 저고리에서 동정이 가장 중요하다. 동정이 꺾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여자 저고리: 저고리를 펼친 뒤 고름을 가지런히 모아 서너 번 접는다. 소매는 옆선에 맞춰 깃 방항으로 접는데, 소매가 어깨폭보다 길면 두 번 접는다.
    • 남자 저고리: 저고리를 펼친 뒤 아랫길을 몸통의 3분의 2 지점까지 접어올린 뒤 소매를 옷깃 쪽으로(안쪽으로) 접는다.
    • 치마: 가운데가 겹치지 않게 세로 방향으로 3등분을 한 뒤 다시 3등분 해서 접고 가로로 반 접는다. 가능하면 말기 부분의 주름이 접히지 않게 한다.
    • 바지: 밑위선을 중심으로 세로로 반 접고 가로로 반씩 두 번 접는다.
  • 보관
    • 한복은 평면 재단이기 때문에 옷걸이에 걸면 모양이 변형될 수 있다. 옷함이 없다면 상자에 잘 개서 빛에 노출되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한다. 방충제나 제습제를 넣으면 좋다. 다만, 본견인 경우 먼저 한지로 잘 감싸야 한다.
    • 가장 무거운 옷을 아래에 넣고 그 위로 가벼운 옷을 차례차례 쌓는다. 여자 한복의 경우 치마가, 남자 한복의 경우 도포같은 포 종류가 맨 아래에 놓인다. 많은 옷에 눌리면 모양이 변할 수 있으니 주의한다.
    • 박으로 장식된 부분은 흰 종이로 보호한다.
  • 다림질
    • 반드시 다림천을 덧댄다. 스팀 다리미인 경우 스팀을 끄고 다린다.
    • 다림천: 한복과 소재와 색이 같은 것으로 한다. 여의치 않다면 거즈도 괜찮다.
    • 저고리: 뒤집어서 안감부터 다린다. 도련이 밀려 겉으로 나오지 않게 정리한 뒤 한 번 더 다린다. 곡선 부분이 늘어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겨드랑이 부분은 물수건을 대고 두세 번 다린다.
    • 치마: 안자락 단을 먼저 다리고 치마폭을 아래쪽부터 다린다. 너무 누르면서 다리면 치마의 풍성함이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한다. 주름이 있는 경우 주름을 세워 다리지 않는다.
    • 바지: 뒤집어서 허리와 부리가 밀려나오지 않게 넣어가며 다린다. 다시 뒤집어 허리와 부리, 솔기를 다린다. 솔기는 누리지 않고 살짝 잡아서 다려야 한다. 그 뒤 대님과 허리띠를 다린다.
    • 자수: 세탁 후 마르면서 수축할 수 있어 반 정도 말랐을 때 다림질해서 말린다.
    • 박: 다림천을 대고 낮은 온도에서 다린다. 열에 매우 약해서 고온일 경우 녹는다.
  • 빨래
    • 설령 드라이클리닝이라 해도 세탁을 자주 하는 것이 좋지 않다. 그 어떤 소재든 물빠짐은 필수 불가결하니, 한복을 빨 생각이라면 물빠짐 현상을 막는 것은 일찌감치 마음 접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괜히 옛 선조들이 빨래 한 번 할 때마다 옷 염색과 바느질을 다시 한 것이 아니다.
    • 두세 번 깨끗하게 입고 동정만 바꾸는 것이 좋다.
    • 전체 세탁 시에는 드라이클리닝을 한다.
    •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말린다.
    • 박이 찍힌 한복을 드라이클리닝 하면 박이 녹아내린다.
  • 원단에 따라
    • 비단: 열에 약하고, 물에 닿으면 얼룩이 생긴다.
    • : 물빨래 가능. 다릴 땐 원단 뒷면을 가볍게 다린다.
    • 화학섬유: 약칭 화섬. 열에 약해 드라이 다림질을 해야 한다. 물에 닿아도 줄어들지 않는다.

2.12. 맞출 때 신경써야 할 부분


  • 시접 처리 방식
    • 깨끼(곱솔)인지, 물겹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다른 방식도 있으나, 이 두 가지 방식이 가장 알려져 있다. 깨끼는 시접을 남기지 않아 치수 수선을 할 수 없지만 얇은 원단인 경우 시접이 남지 않아 깔끔하고 세 번 박음질하기 때문에 튼튼하다. 하지만 박음질한 실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겹은 시접을 넉넉히 남기기 때문에 치수 수선을 할 수 있으며 빨래나 보관이 그나마 용이하다.
  • 저고리
    • 전통식인지, 양장식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옷의 태 자체가 다르다.
    • 깃 종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
    • 배래 종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
    • 동정 심지 재질: 전통적으로는 종이(한지)를 사용하나, 보관할 때에도 여러모로 신경써야 하는데다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에는 접착 심지를 사용하거나 나일론, 폴리에틸렌, 인조견 등을 겹치기도 하며, 혹은 아예 빳빳한 심지를 넣지 않기도 한다. 영구동정도 있다고 한다.
    • 속고름: 요새는 똑딱단추로 많이 하지만, 전통 방식대로 속고름으로 하는 편이 태가 더 산다. 편의대로 똑딱단추로 할 수도, 속고름을 달 수도 있다.
  • 원단
    • 본견일 경우: 옥사인지, 견방사인지, 명주인지 등 종류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똑같이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만들었지만 엄연히 다르다.
    • 손염색일 경우: 사람 손염색인지, 기계 손염색인지 확인해야 한다.

3. 현황



3.1. 현대에서 한복을 입으려는 시도와 외면


현재는 정장 자체가 양복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지만 6.25 전쟁 전후 시기만 해도 시골에 가면 대다수 민중의 옷은 흰 한복이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도 갓과 도포를 입은 어르신들을 종종 볼수 있었다.[36]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양반가 어르신네들이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계셨고,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이 졸업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1980년대 이전 학번에서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한복을 입은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전국노래자랑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방송 속에 여성들이 한복 차림으로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다. 이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이 방송에서 제발 한복 좀 입고 나와달라고 하며 어쩌다가 한복 차림으로 나온다면 카메라가 더 일부러 그 사람을 방송한다고 할 정도였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412회에서는 3살 혜수가 한복만 입어서 화제가 되었고, 870회에서는 전라북도 남원시에 사는 75세 할아버지가 한복만 입었으며[37], 973회에서는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22개월 여아 김솔이 16개월 때부터 한복만 입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원더풀 금요일에는 한복 전도사 남녀가 나왔으며 직업은 둘 다 회사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한 젊은 여성이 한복을 입고 유럽여행을 해 화제가 되었다.# 이외에도 한복을 입고 세계여행을 한 남성도 있었다. #
명절이거나 특별히 민족정신을 고취해야 할 이유가 없는 한 한국인들은 입지 않는다. 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의 경우 생일잔치에서 한복을 입기도 한다. [38] 과거 개량한복이 일부 유행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다.[39] 다른 많은 한국의 문화 요소가 그렇듯 실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라기보다는 그저 대외에 쇼윈도우식으로 한국을 돋보이려할 때만 쓰이는 일종의 상징적인 박제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중학교고등학교에서 한복을 입은 선생님들은 거의 한문 아니면 국사 선생님이다. 또한 과목을 가리지 않고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나 전통을 지키려는 자들 위주로 유학자, 민족주의자들도 한복을 많이 입는다. 대학교에서 한복을 입은 교수들은 거의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한문학과 교수님이다.
메가스터디수학 강사 현우진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한복을 입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학의 국악과에서는 실기 시험을 한복 차림으로 치르는 경우가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곳도 있다. 대개는 학교에 비치된 한복을 입고 실기 시험을 치르지만, 만약 개인 한복이 있을 경우에는 개인 한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3.1.1. 대량생산의 어려움


전통 한복은 옷본이 입체패턴인 양장과 다른데다 재단이 복잡하며,[40][41] 만드는 방식이 손이 많이 가고[42] 만드는 법 자체가 어렵다. 의외일지 모르나 반드시 치수에 맞게 만들어야 제대로 태가 나는 옷이기까지 한지라 여러모로 대량생산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를 통해 양산되는 한복은 백이면 백 양장식이다. 얼마든지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양장 옷본을 바탕으로 한복처럼 보이게 디자인해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한복을 입으려면 사람이 직접 만들 수밖에 없다.남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 치마 옷본 그리기 여자 저고리 옷본 그리기(다른 링크)

3.1.2. 트랜드에 집착하여 한복의 원형이 소멸


예복용 한복의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여 기성복으로 쓰기에도 충분히 손색없는 여러 디자인의 생활한복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브랜드의 대다수가 양장 패턴을 사용하거나, 아예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은 정도이다. 생활 한복을 만든다 하여 찾아보면 대부분 양장에 깃과 고름을 달아놓고 차이킴의 허리치마[43]와 철릭 원피스를 모방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한복 원단으로 양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생활 한복을 원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 양장과 차별화가 잘 되지 않을 바에는 굳이 개량 한복을 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대적인 활동성 및 계절 감각(반소매, 민소매, 반바지, 스커트 등)을 차용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멋은 한복 특유의 느낌이 멀리서도 한 눈에 살아나는 것이다. 단순히 셔츠에 고름 좀 단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각종 게임에서 명절 기념 코스튬 및 스킨으로 출시하는 개량형 한복을 생각하면 된다. 한복 특유의 멋은 한눈에 살리면서도 반소매, 민소매, 장신구, 구두 등의 현대적 실루엣 및 핏을 동시에 만족한 예가 많다. 이러한 디자인을 창작물에서만 적용할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한다면 한복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이런 생활한복에 대해 알고는 있으나 입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원단과 바느질이 미덥지 못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평도 있다. 혹은 한복 특유의 기계 작업의 어려움 때문에 수제작으로 된 것이 많아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많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니 함부로 입고 다니기에도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3.1.3. 고루한 양식으로 인한 대중의 외면


'왜 한복은 사랑받지 못할까? '라는 통계청 기사에서 나온 한복을 선호하지 읺는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 인기 없는 한복은 매우 촌스럽다. 예식용도 잘 해봐야 알록달록한 저고리와 조끼, 마고자 정도이고, 생활한복은 나이 지긋하신 국사선생님이나 스님이 입을 법한 전형적인 형태를 지닌 칙칙한 개량한복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참조: 네이버 쇼핑에 '남성 생활한복'을 검색해 본 결과)[44]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입는 대부분의 한복들의 대다수가 구한말 스타일이다. 물론, 가장 최근의 복식을 재현하기가 수월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점도 있으며, 중국의 한푸 입기 운동처럼 조선 한복을 배제하고 '우리도 고구려 한복을 입자!'는 식의 주장까지 갈 필요는 없고 그런 아집도 위험하지만, 한복의 정의를 굳이 축소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은 한복이라는 복식 자체가 조선시대, 그중에서도 구한말 한복에 한정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짙고, 기술자들이나 디자이너들 역시 출토복식 재현을 제외하면 구한말 한복을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재질을 전통적인 비단으로 하면 활동성이 제약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옛날에 농민들이 입었던 옷 같은 경우엔 재질이 빳빳하고 튼튼해서 동적인 활동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한복집에 가도 그런 빳빳하고 튼튼한 한복은 찾기 어렵고 양반들이 입었을 법한 고운 재질의 한복뿐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세탁도 불가능하고, 무조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며 다림질까지 정성들여서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에 드는 노력이 기성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이 경향이 개량한복에도 반영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이런 요소들도 (개량) 한복을 꺼리게 만들고 있으며, 높은 가격 또한 개량 한복에 대한 접근을 막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3.1.4. 대중들의 편협한 인식


2017년에도 게임 오버워치한국인 캐릭터 D.Va 한복 스킨이 공개됐는데 아티스트 데이비드 강은 인터뷰에서 '한복 치마를 짧게 바꿔봐서 이게 괜찮을지 몰랐는데 다행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 큰 이슈가 없어서 안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경우는 다행히(?) 큰 이슈는 아니었지만, 2017년 현재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것들은 '자유' 롭게 표현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복이라는 의상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문명의 영역에 포함되는 본질이다. 고로 한복이라는 의상또한 서로 개개인이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을 하고 그리고 사회의 환경(여기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자유를 이해하는 수준을 의미한다)이 이렇게 개개인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움직일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구축되어야 개개인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저마다의 영역을 탐구함으로써 한복의 영역이 확장되고 깊어지며 풍성해지고 거시적 관점에서 발전하는것이다. 게다가 오로지 전통의 원형만을 고수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전통을 보존하는 방법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결국엔 현대식 복장을 입고 다니고, 한복은 명절때 반짝입거나 그마저도 안입는 정도가 되었는데. 이게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다고 해서(실제로는 그렇지도 않고 계속 변화해 왔지만) 전통을 잘 보존한다고 할수 있을까? 그렇기에 개량으로 평상시에도 입어 볼만한 한복을 만들고 입는것이 오히려 전통 보존에 있어선 훨신 유효한 방법이다. 또한 한류 컨텐츠 시각으로 봐도 세계에 더 알리고 접하게 하기 위해선 현대적인 개량이 필수적이라고 할수 있다.
대중들이 한복에 대한 견해가 대단히 짧다는 것은 비단 개량된 한복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고려 이전의 고대 한복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하다보니 고대 한복을 표현한 그림이나 재현품을 보면 "'기모노 아니냐"'는 말이 꼭 나온다.[45] 비단 고려 이전 한복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한복조차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왜색이라는 주장이 꼭 따라붙곤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기모노에만 있는 형태'라면서 주장하는게 대단히 웃긴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동정이 없이 y자로 여미는(직령 교임) 옷깃 형태는 기모노에만 있다 - 직령 교임 형태는 고대부터 동아시아의 매우 일반적인 옷깃 형태이다. 중국의 한푸는 물론 한복의 근간이 되는 호복도 대개 직령 교임이다. 한복에 반드시 있어야 할것 같은 동정#s-7 역시 여말선초 대에나 등장한다. 애초에 기모노가 호복과 한푸, 한복의 영향을 고루 받아 발전한 옷이다.
  • 허리띠로 옷을 여미는 것은 기모노에만 있다 - 역시 한복에는 옷고름만 있다고 여기는 헛소리.
  • 허리띠를 뒤에서 리본처럼 여미는 것과 그 허리띠가 길게 늘어지는 것은 기모노에만 있다 - 상당히 자주 논란이 되는 부분인데 당장 고구려 벽화만 봐도 말이 안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 여자 예복이나 무복을 보면 뒤에서 긴 허리띠를 묶는다. 그리고 많이들 착각하지만 기모노의 전통적인 오비 중에 매듭이 길게 늘어지는 형태는 마이코의 다라리 오비에서나 사용되지, 전통적인 여성용 기모노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그나마 일본 만화 등에서 등장하는 퓨전 기모노에나 등장하는 편.(ex. 신의 괴도 잔느) 그러니까 심지어 기모노에 대한 지식도 없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매듭이 길게 늘어지는 것은 조선 궁중예복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신윤복의 풍속화 검무를 보면 기녀의 옷에 리본 같이 묶은 허리띠(대대)가 보인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조선시대 여염집 규수 스타일의 치마저고리에는 없는 스타일이라 일반 대중에겐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 폭이 넓은 허리띠는 기모노에나 존재한다 - 고대 중국과 한국 역시 귀족층 이상의 복식에서 흔히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넓은 허리띠가 있었다. 남자 한복의 광대(廣帶)와 전대(戰帶), 여자 한복의 대대(大帶)를 보면 폭이 넓다. 전대와 대대는 길이도 길다. 심지어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보고 오비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말이 안되는 소리. 이건 브래지어를 겉에 드러나는 허리띠로 사용한다는 소리다.
  • 넓은 허리띠 위에 좁은 허리띠를 한겹 더 두르는 것(오비지메)은 기모노에만 존재한다 - 오비지메는 일본에만 있지만 굵기가 다른 허리띠를 이중으로 두르는 것은 한중 복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넓은 소매(활수형)는 기모노에만 있고 한복은 좁거나 볼록한 소매(붕어배래)다 - 본문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겠지만 활수형 복식은 한푸 계열 복식에서 들어온 형태로 당나라 복식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한복과 기모노 소매 모두 활수형을 띈다. 그리고 전통 한복의 필수요소 쯤으로 여겨지는 붕어배래는 기껏해야 20세기에나 등장한다.
  • 상의를 치마 속에 넣어 입는 것은 기모노에만 있다 - 2010년대에 허리치마와 더불어 유행하는 개량한복을 보고 이런 소리가 자주 나오는데, 아니다. 저고리가 치마 속에 들어가는 형태는 당나라 한푸 스타일이며, 그것을 받아들인 신라-고려에도 유행하던 스타일이고 하카마도 당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장 후술할 흑요석이 비판한 기사의 댓글에도 '저고리를 치마에 넣어 입는 복식은 하카마 이외에는 없다'는 잘못된 정보를 주장하고 있고, 이 기사이 블로그도[46][47]그러한 오해를 기정 사실인양 보도했다. 애당초 하카마는 치마가 아니라 통이 넓은 바지이고, 치마 하카마도 메이지 유신 이후에나 등장한다. 허리치마를 위에 입는 건 개량한복조차 아니라고 주장하는 문제의 블로그도 개량한복에서조차 지극히 편협한 시선과 왜곡된 보수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복식과 매듭장식, 문양 등에서 격한 왜색 논란이 일어났던[48] 다음 웹툰 환상스케치 당시 직접 각종 서적과 논문을 참조하고 이대 복식관이나 운현궁, 한복 전문점 등을 탐방하며 논란에 일일히 반박한 유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럼 어찌하여 왜색 복식 논란이 일어났는가.

모르기 때문이다. 위에 사료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어 유사한 것들도 많다. 헌데 이 유사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것을 먼저 접하고 한국것을 나중에 접했다면 당연히 일본것을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만약 조선 초중기의 한복 양식으로(저고리는 길고 배래는 직선이며 소매는 길고 소맷부리통을 넓음)그렸어도 지적이 나왔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복 양식은 조선후기때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 환상스케치 복식논란. 그 오해와 진실.아카이브

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에 등장하는 복식들도 고증이 제대로 된 경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접하기 쉬운 조선의 한복만이 한복으로 인식되어 고대 한복에 대한 인식이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서 일본의 기모노가 만화나 게임 등의 매체에서 적극적인 대외 홍보를 통해 기모노와 디자인적 접점이 큰 고대 한복까지 이미지 잠식이 일어나버린 것.[49] 대중들이 한복에 대해 편향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현상의 대표적인 예로 네이버에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웹툰 문아를 연재했던 팬마 작가는 2014년 9월, "등장인물들의 옷이 일본 옷같다"는 댓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것에 분노하여 트위터에 '둥근 소매와 옷깃의 동정이 달린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라는 설명이 달린 고려 복식에 대한 간단한 도식화(원문 삭제됨)와 함께 "고중세 배경에 흔히 알고있는 한복이 나오면 그건 틀린 고증이다. 작품에 나오는 한복은 일본옷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복을 자주 그리고 직접 디자인해서 한복 업체와 콜라보 전시회를 열기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은 2017년 10월, 트위터를 통해 섹시하게 만든 한복을 만드는에 디자이너에 대한 기사에 전통을 파괴한다거나 기모노같다는 억지 비난이 쏟아지는 현상에 대해 '전통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대적인 코드를 가미해서 생활에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한복은 박물관 속 박제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해당 기사에 전통을 파괴했다거나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듯 "전통 한복을 조선시대로만 국한하는 것도 애매한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한복조차도 생김새는 계속 변했고 18세기 한복은 저고리가 짧아 섹시하다. 심지어 우리가 아는 '전통' 한복은 상당히 근대에 들어 정착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본문은 물론 앞서 흑요석의 트윗으로도 언급되었지만, 대중들은 전통 한복을 조선 시대 후기에서 구한말 스타일로 국한해 인식하고 있고 대부분의 업체가 만드는 한복 역시 그 시대 한복으로만 제한되어 있다. 현대의 한복은 조선 후기보다는 구한말 이후 스타일에 가깝다. 애초에 붕어배래는 조선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양식이고, 가슴 위로 올라오는 조끼허리풀치마는 개화기에 외국인 선교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고려 이전의 한복은 사극이나 행사 재현용으로나 만들어질 뿐이고 그조차도 당시의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 이 문제는 한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중들이 고대 복식을 왜색으로 치부하는 부끄러운 현상에는 이런 편향성도 한 몫 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
이와 같이 상당수 사람들은 '창작물을 통해 접하여 형성된 한복의 스테레오 타입'만이 전통 한복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것이 조선시대에 존재하였던 것이라 할 지라도 익숙하지 않다면 한복이 아니라고 몰아가며, 심지어는 일본의 옷이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한복이란 옷의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기존의 익숙한 이미지가 아니면 아예 한복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는 것.

또한 치마가 짧은 경우 한복 치마는 저렇게 짧지 않다며 '일본 옷 같다'는 이야기가 더러 나오기도 하는데, 쿠노이치 캐릭터 등으로 대표되는 오덕 분야에서 종종 보이는 짧은 기장의 기모노도 원래 그렇게 짧은 옷이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서 현대인의 관점에 따라 예쁘게 개량한 한 갈래일 뿐. 지금 우리가 한복치마를 짧게 만드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애초에 동양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전통의상 중 무릎 언저리로 올라올 정도로 치마가 짧은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은 동양의 한푸나 치파오, 기모노 역시 원형은 발목을 덮는 기장이지만 형태와 기장이 변한 것일 뿐이다. 다리를 드러내는 치파오는 애초에 바지를 입는 형태였던 게 하의실종이 된 것이고.
심지어는 이런 오해와 편견 몰아가기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벌어지기까지 했다. 2018년 서울 종로구청에서 각종 '퓨전 한복'들에 대한 고궁 입장권 할인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 이 때문에 2018년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아예 한복을 입고 출석해서 '한복의 기준을 너무 가볍게 다루려 하고 있다', '복식 문화의 절대적 보존이 아니라 효율적 보존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게 더 옳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문화재청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퓨전 한복'에게도 기존의 입장권 할인 혜택을 계속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더 안타까운 부분은, 이러한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의 정착과 오해가 한복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는 점이다.

3.1.5. 고증 오류


2000년대 이후의 사극들은 부정확하고 이상한 고증으로 인해 다 큰 성인이 배씨댕기를 하고 나오더니[50] 이젠 아예 배씨댕기도 뭣도 아닌 고급 화과자같은 것을 머리에 얹고 나온다. 이것도 모자라 앞의 고급 빵떡과 첩지를 합치더니 여기에 가체까지 합쳐버렸다. 이 정체불명의 가체빵떡첩지배씨댕기는 날이 갈수록 화려하고 거대해지는 실정이다. 상투같은 경우, 상투관을 쓰고 나올 때에는 안채에서 몰래 꺼내온 듯한 화려한 비녀로 장식하는 것은 기본에[51] 아예 쌍상투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상투는 중국 상투와 달리 단단한 매듭이라 어지간히 머리숱이 적지 않고서는 가운데에 비녀를 가로지르기 어렵다. 더군다나 상투를 틀면 고정시킬 목적으로 동곳이라는 일종의 상투용 비녀를 세로로 꽂는다. 원래 머리숱 많으면 상투를 두 개 틀었다. 젊은 사람은 특히 쌍상투가 흔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와 미적인 이유로 인해 배코치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댕기 역시 정석으로 드리지 않으며, 두 번 접어 고무줄로 고정시키는 게 전부다. 옛 복식과 두식 고증은 이미 다른 고증들과 함께 안드로메다 저 너머로 간 지 오래다.
조끼허리식 풀치마도 모자라 현대에 만들어진 말기치마가 사극에 등장하는 실정인데다 한복 속옷도 특별히 속옷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 이상 재질의 패티코트같은 현대의 한복 속치마를 입고 나온다. 현대의 패티코트를 입은 것과 전통 속옷을 갖춰입은 것은 태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상술했지만 가슴가리개에 수를 새기는 것 역시 현대에 들어 창작된 것이지 고증에 맞지 않다. 고려나 삼국시대가 배경인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아예 중국의 한푸나 시대를 초월한 국적 불명의 의상이 버젓이 등장한다. 2000년대 이후의 사극은 복식과 건물, 음식, 채소 고증조차 당당히 씹어먹으며 현대에 생긴 어휘가 사극에 등장하는 판국이다. 옛 복식이나 두식을 공부한다고 사극을 보면 정말 낭패다. 부정확한 정보를 얻기 쉽다. 커뮤니티에서도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가 상당히 퍼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게 낫다.[52]이외에도 여기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필요하다면 참고하자.[53] 또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간한 왕실문화도감- 조선의 왕실복식이라는 책도 좋은 자료로 참고할만 하다.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황실 복식이긴 하지만 왕족들도 일과가 끝나면 평상복을 입었기 때문에 조선 말기 양반계층 일반 복식 참고용도로도 사용할만 하다.

3.2. 한복 현대화의 노력과 결과물의 등장


치파오도 근대 시기를 거쳐가며 하의가 퇴화하고 상의만 남아서 차이나드레스로 현대화했듯, 여러 한복 동호인들과 한복 디자이너들의 노력, 그리고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의 소프트파워 발전과 맞물려 한복도 자연스럽게 현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간편+다양+실용적인 생활 한복
이처럼 전통 복식을 현대적으로 개량하는 것은 중국, 일본에서도 이미 널리 행해지고 있다. 만주족의 창파오의 바지를 없애서 (말 그대로 하의실종 패션이다) 옆의 트인 부분을 통해 드러나는 맨다리에 포인트를 주는 중국의 차이나 드레스나, 길이를 극단적으로 줄여서 미니스커트로 만드는 일본의 유카타 등등... 한복만 그렇게 만들지 말란 법이 없다. 실제로 한복 패션쇼에서는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한복을 다룬 보그지에서도 그런 스타일을 보여준 바 있다. (관련 포스팅)
대표적으로 철릭을 원피스처럼 입고 위에 허리치마를 걸치는 퓨전 착장법이 2010년대 중반부터 차이킴 브랜드차이킴+단하가 본 영화 상의원를 시작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그 외에 저고리를 볼레로처럼 걸치는 변형이나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응용한 셔츠나 코트를 만드는 등, 현대인들이 착장하기 편하게 서양식 복식 패턴이나 관리가 편한 재질로 제작되면서 접근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3.2.1. 여자


【펼치기 · 접기】

[image]
[image]
[image]
}}}
한복은 포대자루 같다는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보면 알겠지만 서양식 여성의복과 비교해도 여성 신체의 맵시를 대단히 잘 드러내는 편인데에다가 뭔가 싼티나는 느낌이었던 개량한복이 아닌 한복 특유의 전통적 스타일의 넓은 동정깃, 넓은 고름, 광택이 나는 단색의 재질, 붕어배래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누가 봐도 한복인데도 전혀 안 촌스럽고 오히려 패션용품으로 입어도 될 정도로 예쁘다.
상술한 미니스커트 스타일이나 치마만 입는 스타일의 거의 한복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파격적인 변화가 아닌 전통 한복에 가까운 디자인이지만, 이전의 디너드레스를 연상케 하는 미친 듯이 긴 기장이 아니라 칵테일드레스나 에이프런 드레스 정도의 기장인, 한복의 넓게 펴지는 치마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면서 활동성도 뛰어난 형태로 진화했다.
또한 가장 파격적인 변화로는 몸에 착 달라붙는 상의의 몸통 부분과 마치 코르셋을 연상케 하는 실루엣의 말기치마이다. 특히 말기치마의 경우 조선 후기의 가슴가리개의 경우 브래지어의 일종으로, 그냥 밑가슴까지 가리고 그 밑으론 바로 치마주름이 펴지는 구조인지라 허리의 맵시를 드러내질 못해서 포대자루 같다고 엄청 까였지만 이 가슴가리개 부분이 꽤 넓어져서 거의 허리부분까지 내려올 정도가 되면서 구시대적인 말기치마보단 오히려 캡나시 위에 플레어스커트를 착용한 듯한 서구적인 핏이 나오게 되었고 실루엣상으로는 착 달라붙는 상의 몸통이랑 가슴가리개 때문에 허리 위까지의 상체 부분은 착 달라붙다 허리부터는 치마주름이 쫙 펴지는, 마치 에이프런 드레스를 연상케 하는 실루엣이 만들어진다. 치파오처럼 서양식 의복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이 성공한 것이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서에서 대차게 까는 왜곡된 보수성과 한복에 개량을 하려는 파격성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이전엔 그냥 치마만 입고 우기는 행위나, 거의 비키니처럼 마개조된 한복을 두고 '이게 뭐가 한복이냐'라고 지적하면 '조선시대에 갇혀사는 수구꼴통 꼰대' 취급을 받고는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수구꼴통'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동정깃, 고름 등의 요소가 유지된 채 서양식 개량이 이루어졌고, 그랬기에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한복 개량에 성공한 것이다. 한쪽의 의견만 옳다고 할 게 아니라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3.2.2. 남자


[image]
[image]
2016년 이후 오버핏 코트가 유행하면서, 품넓은 로브코트를 연상케 하는 전통 방식 두루마기가 아이돌들 사이에서 패션 아이템으로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혹시 말하지만 두루마기를 개량한 거 아니라 20세기 스타일 검정 두루마기를 그대로 코트처럼 입고 다니는 것이다.

3.3. 현대화되면서 생긴 양식


사진, 사진, 사진
(20세기~21세기의 사진들, 일명 "임산부복")
전통 한복은 아니지만, 최근 퓨전한복 업체나 동호인들에 의해 생겨나는 복식과 부속품들이 있다.
* 향대 - 눈속임용 장식품. 말기끈에 걸쳐서 늘어뜨리는 장식이다. 새색시가 시집갈 때 눈물을 훔쳤다고 해서 눈물고름이라는 설도 떠도는데, 이는 근거가 없으며 반대로 일제가 조선 여성들의 나약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라는 설도 있지만 이 역시 근거가 없다. 애초에 눈물고름의 어원 자체에 대한 논문 등의 자료가 없다. 띠허리풀치마에서 말기에 달린 끈을 둘러매고 늘어뜨린 것을 따라하기 위해 생겼다.
* 말기대 - 말기나 가슴 장식용, 혹은 눈속임용 허리띠. 가슴가리개를 입은 듯한 눈속임을 위해 착용하거나 치마가 가슴 위로 올라오는 경우 말기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착용한다. 자수 등으로 장식된 경우 화려한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치마허리를 둘러맨 말기끈이 없어 전통 한복의 모양새를 따라했다 하기에는 허전하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가슴가리개는 원래 속옷인지라 어지간해선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전통적인 한복 치마는 가슴가리개를 착용한 뒤 허리에 두르기 때문에 말기(치마허리)에 의해 허리가 강조되지만 현대에 주로 입는 것은 가슴 위로 올라오는 조끼허리풀치마이기 때문에 전통 한복처럼 허리를 강조하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조끼허리식 풀치마 위에 대어 띠허리식 풀치마를 입은 것 같은 눈속임을 하기도 한다. 이것도 가슴가리개와 혼동하는데, 그건 전통 속옷이고, 이건 현대에 들어 생긴 장식 허리띠다.
* 말기치마 - 전통적인 가슴가리개를 하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고안된 것으로 치마말기를 넓혀서 가슴가리개를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치마이다. 말기 부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한다. 수 놓은 말기치마는 한복디자이너 이영희가 신윤복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했다.출처 이영희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카피해도 제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로 인해 한복이 더 편해졌거나 눈이 더 간다면 그만이며, 디자인을 카피하더라도 거기에 자기 걸 하나 더 얹고 발전시킨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어깨허리식 말기 치마 - 말기에 어깨끈을 단 치마. 옛날에는 어린 아이의 옷에만 어깨끈을 달았다. 이것도 구한말에 조끼허리식 말기 재단법이 보급되고 나서 생긴 것이다.
* 공갈 속고름 - 속고름도 눈속임용으로 따로 만들어 단추로 달기도 한다.
* 지퍼 사폭바지 - 지퍼를 달고 밑위를 올려 만든 사폭바지. 한복디자이너 이영희가 고안했다. 출처
* 허리치마 - 말기에 구멍을 뚫어 끈을 통과시켜 입는 생활한복. 한복 디자이너 차이 김영진(차이킴)이 고안했다. 띠허리식 풀치마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전통 한복치마는 양쪽 끈이 달리는 위치가 다르며[54], 무엇보다 말기에 구멍을 뚫지 않는다.
* 철릭원피스 - 전통 군복인 철릭을 여자 원피스 형태로 변형시킨 생활한복. 그러나 외형이 철릭과 유사할 뿐, 구조를 보면 철릭과 상당히 다르다. 철릭은 여미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 생활복으로 입기엔 번거롭다. 한복 디자이너 차이 김영진(차이킴)이 고안했다. 철릭원피스 위에 허리치마를 입는 경우가 많다.

3.4. 현대한복의 입는 법


* 나비고름 매는 법
* 외고름(일반 고름)을 맨다.
* 늘어진 고름 중 위에 있는 것을 나비(리본)모양으로 차곡차곡 접는다. 취향에 따라 각 단의 너비를 같게 하거나 점점 작아지게 한다.
* 나비 모양으로 접어둔 고름을 남은 고름으로 감싸맨다.
* 한 번 더, 혹은 여러 번 돌려매어 튼튼하게 고정한다.

4. 한복에 대한 해외 인식


현대에 들어 한복이 한국적인 대표 문화 요소로 자리잡았다고는 하나, 아직 갈 길이 먼 듯 하다.
서구권에서는 y자 모양 옷깃의 동아시아 전통의상을 통틀어 기모노로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의 동양의 전통의상이라는 뜻으로 보통명사화 했을 정도이다. 이에 의해 한복이 기모노(그들이 생각하기에 동양 의상을 총칭하는)의 하위개념이라고 아는 이들도 많다.[55] 2008년 캐나다의 모 잡지에서 셀린 디옹이 내한해서 한국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한복을 기모노로 표기했다. 다행히 국내의 모 블로거가 그에 대해 정정요청을 했지만, 아직 해외에서 한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Google에 Korean Kimono라고 쳐보면 한복이 나온다.
이미 패션 용어에서는 넓은 소매y자 옷깃, 세조대(술띠) 같은 부분을 통틀어 기모노 스타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만큼 서구에서도 기모노가 대중화돼서 그 이미지가 정형화되어 고대~근대를 아우르는 한복의 형태까지도 기모노로 인식하게 만들어 주객이 전도되는 안습한 상황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미국 할로윈 축제 한국팀 참가 후기 포스팅에도 현재 서구권 일반인들의 한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적나라하게 나온다. 목가리개까지 상당히 적절하게 고증된 고구려 갑옷을 사무라이라고 하거나 한복전문가 자문 아래 철저히 고증하여 사극에서 사용됐던 한복을 게이샤 의상으로 부르는 등.
외국 특히 문화가 다른 지역의 전통의상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56] 가장 인지도 있는 아시아 국가인 일본의 의상으로 부르는 것이겠지만, 올바른 명칭은 아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한류로 인해 한국이 아시아권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지고, 늘 생소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패션산업의 특성에 따라 패션디자이너들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고, 이에 따라 "한복 Hanbok"에 대한 인식 역시 높아지고 있다. 한복을 알리는데 가장 공헌한 한복디자이너 이영희는 1993년 처음으로 파리 컬렉션을 시작한 이래 13년간이나 꾸준히 컬렉션을 해오며 서양 패션계에 한복을 알려왔다. 그녀의 컬렉션에 영감을 받은 프라다미우치아 프라다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방한시 그녀의 가게를 찾고 직접 한복을 입기도 했다.#
[image] 이영희의 작품
[image]
[image]
아르마니
미우치아 프라다
2011SS 뉴욕컬렉션에서 카롤리나 헤레라는 컬렉션 전체를 한복 모티브로 선보였는데, 여성한복만 아니라 갓을 비롯하여 다양한 요소들에서 모티브를 따와 한복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음을 보여준다.
[image]
카롤리나 헤레라 2011SS 컬렉션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 역시 2011SS 파리 컬렉션에서 한복 모티브의 드레스를 선보였다.
[image]
미국에는 김미희(Kim MeHee) 한복디자이너가 활약하고 있는데, 그레이 아나토미에 출연하여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명한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산드라 오가 여러 행사와 화보에서 착장하였고, 제시카 알바패리스 힐튼의 여동생 니키 힐튼 등은 내한할 때 김미희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었다.
[image] [image]
[image]
물론, 이런 해외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통한 새로운 디자인 시도들은 상당수가 오트쿠튀르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며, 서구권은 물론, 한국에서 입는 여타 브랜드들의 기성복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중국, 일본의 복식과 비교해보면 아직 많은 부분이 뒤쳐져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복의 고유의 패턴이나 실루엣이 패션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인 만큼 향후 인식의 변화와 한복의 새로운 재해석을 볼 수 있을 날이 올 것은 분명하다.
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딕 아드보카트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에도 한복을 입었는데 저고리와 마고자를 바꿔 입었다고 한다.

5. 대중문화 속의 한복


현대에 들어서는 각종 사극, 게임이나 패션쇼 등에서 활발하게 복원과 재창작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인영화에서는 벗기면 또 나오고 벗기면 또 나오고 벗기면 또 나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고증이 맞는게, 상류층은 치마를 부풀리기 위해서 안에 입는 속치마와 속바지를 몇겹씩 덧입기도 했다.
  • MMORPG마비노기》에는 남녀 각각 4종류의 한복 세트가 있다. 구군복/기녀복을 제외하면 정확한 명칭은 없고 처음 나온 년도를 붙여서 부른다.
    • 05한복의 경우 조선시대 이후의 복식을 토대로 디자인 되어 있다. 여성복은 당의를 기반으로 한 치마저고리이며, 남성복은 마고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
    • 06한복은 2005년도 한복에 군데군데 포인트를 주었다. 여성복은 밑동과 곁마기, 소맷부리의 색을 달리하여 포인트를 주었으며, 남성복은 쾌자를 입고 있다. 염색을 잘 하면 예쁘지만 어울리는 복장과 캐릭터가 한정되는지라 인기는 비교적 적다.
    • 07한복은 고구려를 위시한 삼국시대의 한복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다. 여성복은 고유의 주름잡힌 치마에 무릎 위까지 오는 긴 저고리를 대(허리띠)로 여민 형태이며, 남성복은 반비(조끼)를 입고 역시 대로 앞섶을 여민 형태를 하고 있으며, 관모도 있다. 이 의상은 북미 서버에도 2011년 추가되었다. 깔끔한 디자인으로 단순한 이벤트 의상을 너머 평소에 입고다니는 유저도 많았던 복장이다. 또한 일본 유저가 디자인한 양 로브의 디자인도 07한복을 베이스로한 디자인이다.
    • 2011년엔 한복이란 이름이 아닌 구군복과 기녀복이 이벤트로 등장했다. 마비노기 특성상 남성 한복의 인기는 여성 한복에 비하면 안습한 수준이었으나 구군복은 마비노기 역사상 여캐 의류에게 비교당해 까이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옷 중 하나다. 특히 남성 자이언트가 염색 잘 된 구군복을 입으면 포풍패기가 느껴지므로 여성유저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기녀복도 한복 이벤트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의류로 손꼽히며 특히 반투명 처리된 무릎 아래 부분에서 나오는 묘한 색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뽑기형 상자에서 나오는 의상이지만 확률도 높은 편이라 구하기도 쉽고 입고다니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던전 앤 파이터에는 몹시 많이 개량된 한복이 나온다.
  • 사이퍼즈에서는 미국인이 개량 한복을 입고 나온다. 다만 원작에서의 미국 서부 분위기+동양적 복식 설정을 가져온 것이므로 이상할 것은 없다. 신비의 린신령의 하랑의 추석 스페셜 코스튬은 한복이며, 이후 다른 캐릭터들 버전도 출시되었다. 2015년 10월 24일에 공개된 ‘극.한.알.바’ 코스튬을 두 벌 구매하면 이
한복 코스튬을 한 벌 줬다. 훨씬 이전에 출시된 코스튬 중에도 ‘강강수월래’라는 한복 코스튬이 있다.
  • 세계관에 한국적인 소재를 많이 넣은 블레이드 앤 소울에서도 한복 형태의 옷이 많이 등장한다.
  • 네이버 웹툰 '까치 우는 날'은 한복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웹툰 자체는 그냥 묻혔다.
  • 네이버 웹툰 별의 유언의 캐릭터들은 전부 한복을 입고 있다. 고증은 조금 미흡한 편이나[57] 캐릭터성에 있어서는 성공한 편에 속한다.
  • 네이버 웹툰 둥굴레차!에서 한복을 상당히 정밀한 퀄리티로 표현했다. 참조
  •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국 런칭기념 챔피언으로 아리가 추가되어 한복을 입고 나왔다.
  • 2014년 EBS수학술사 세미가 한복을 입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 비주얼 노벨 작가 지나가던개가 한복 덕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스토리를 담당한 무인세계,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데드엔드 99%, 당신을 기다리는 여우의 등장 여캐들 중엔 꼭 한명 이상은 한복이나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 비주얼 노벨 용님과 희생양의 등장인물이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 비주얼 노벨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의 등장인물인 *뮤트가 한복을 입는다.[58]
  • 라이트노벨 포목점 은여우의 연애기담은 외세의 간섭 없이 문물을 개방하여 개화를 이룬 가상의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여, 한복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변화해가는지에 대한 내용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한복 덕후 흑요석의 수려한 일러스트로 재현된 현대적인 한복이 특징으로 2015년 5~6월에 한복 전문 업체인 온지음 옷공방과 협업하여 소설 속 한복을 실제로 제작하여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참조
  • 설날 시즌이 되면서 한데마스 아이콘에서 임유진이 한복 입은 것으로 바뀌기도 했다. 참조
  • 한국 보컬로이드 시유가 나오는 일러스트를 보면 한복을 입은 시유로 나오는 일러스트도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흑요석이 디자인한 일러스트이며, 특히 개량한복을 입은 시유와 화관무 한복을 입은 시유가 유명하다. 참조
  •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리 리(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스킨중 달의 축제 리 리 스킨이 색동저고리 형태의 모습으로 나왔다. 무과금 유저도 한번쯤 질러볼까 고민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 라이트노벨 내래 북에서 왔습네다의 등장인물이 마법소녀로 변신할 때 개량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변신한다.
  • 라이트노벨 요희전기에서는 동양 느낌이 가득한 세계관과 그에 걸맞는 판타지스럽게 개량된 한복이 등장하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은 편.
  • 라이트노벨 나와 호랑이님에서 랑이, 세희, 치이 등등 많은 여자 등장인물들이 개량된 한복을 입고 있다.
  • 라이트노벨 꼬리를 찾아줘!에서 박월화가 개량된 한복을 입고 있다.
  • 고대 한국사 의인화 만화인 천손의 시대에 고대 한복과 관모 등이 상당히 자세한 고증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하의를 배제하고 저고리만 입고 있는 고구려나 속바지를 없애고 주름치마를 미니스커트로 입고 있는 신라, 가야 등 퓨전을 가한 형태도 공존하고 있다.
  • 한국 애니메이션 플라워링 하트에서 마법계에서 입는 옷이 한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5화에서는 슈엘잠시 입고 나온다.
  • 우리나라의 일부 방송의 경우 설연휴, 추석연휴 때는 출연자들이 한복을 입고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으로 해외에 한복이 유명해지자, 뜬금없이 중국 사극 영화에서도 한복이 나오고 있다. 명나라의 고려양 한푸라서 고증에 맞다는 의견도 있지만, 갓이나 망건까지 씌워대고 있는 판이다.#

5.1. 한복을 입은 캐릭터


  • KOF 맥시멈 임팩트 시리즈 - 김갑환[59], 채림(KOF)[60]
  • SVC카오스 - 드미트리의 미드나이트 블리스를 맞은 김갑환과 최번개
  • 가담항설 - 모든 등장인물[61]
  • 갓 오브 하이스쿨 - 김웅녀, 나봉침
  • 강철의 왈츠 - 유진 크라이슬러, 서리화[62]
  • 골든체인지 - 여기 나오는 신들의 대부분
  • 길티기어 Xrd -REVELATOR- - 금혜현
  • 까치우는날 - 이단아
  • 꼬리를 찾아줘! - 박월화
  • 나와 호랑이님- 호랑이(나와 호랑이님), 강세희(나와 호랑이님), 까치(나와 호랑이님), 냥이(나와 호랑이님)[63]
  • 던전 앤 파이터 - 천계인 대다수(웨스피스,군인 제외) - 여성 거너, 리아 리히터, 마를렌 키츠카, 네빌로 유르겐, 마리안 유르겐, 에드윈 유르겐, 안제 웨인, 페럴 웨인, 린지 로섬, 휴 피츠래리, 나엔 시거
  • 둥굴레차! - 현우[64]
  • 라스트오리진 - 금란 S7
  • 러브라이브 선샤인 - 쿠로사와 루비 월드 와이드 이미지 걸 투표 대한민국 이미지 걸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사이드 스토리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을 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 아리의 한복 아리 스킨(영어명 Dynasty Ahri)
  •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 명정[65], 명아연, 납작이
  • 벽람항로 - 뉴캐슬, 새러토가, 일러스트리어스[66]
  • 별의 유언 - 등장인물 대부분
  • 사이퍼즈 - 신비의 린, 흑영의 테이, 거너 J[67]
  • 새와 같이 - 여기 나오는 캐릭터 대부분
  • 세미와 매직큐브 - 여기 나오는 캐릭터 대부분
  • 소녀전선 - K2, K5[68]
  • 신 구미호 - 구미호, 옥매향
  • 신의 탑 - 아낙 자하드[69], 유한성, , 아를렌 그레이스
  • 야인시대 - 심영의 어머니, 문예봉
  • 어비스 호라이즌 - 세종대왕[70], 광개토대왕[71]
  • 엘소드 - 로제(엘소드)
  • 오늘은 자체휴강 - 송아람
  • 오버워치 - D.Va, 아나, 맥크리, 트레이서
  • 은하연인전 - 환성현
  • 이런 영웅은 싫어 - 오수
  • 인챈트-나람이야기 - 나람
  • 전함소녀 - 강원
  • 좀비고등학교 - 유빛나, 김원봉
  • 차차차 - 유아씨
  • 천년구미호 - 반야
  • 카운터사이드 - 가은[72]
  • 쿠키런 시리즈 - 구미호맛 쿠키, 달토끼맛 쿠키, 의적맛 쿠키
  • 탈(웹툰) - 여기 캐릭터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다닌다
  • 특수 영능력 수사반 - 강바람
  • 한복이 너무해!(웹툰) - 소촌
  • 훈장 오순남 - 오순남
  • Sdorica - 공수현


5.2. 한복 일러스트


  • 한복을 자주 사용하는 일러스트레이터김형태, 이명진, 흑요석, 글림자 등이 있다.
  • 일본인임에도 한복에 모에하는 작가로는 스메라기 나츠키(블로그)가 있다. 아니, 모에하는 정도가 아니라 작품중 하나인 '이조암행기' 등을 보면 한복의 '선'과 '태'를 너무나도 잘 살려놓았다.
  • 국내 외 몇몇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한복을 그렸을 때, "이건 한복이 아니라 기모노다"란 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섶을 안 그린다거나, 동정 부분을 속옷을 겹쳐 입은 것으로 그린다거나 하는 식이 대표적인데 한복을 많이 접해보지 못해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인 듯. 물론,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을 보고 기모노라고 착각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장 상당수의 한국인이 접하는 한복은 사극 등에서 등장하는 일부 양식일 뿐. 고대 시절의 한복이 정확히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복에 대해 잘 알고 잘 그리는 작가들도 많다. 요컨데, 그리는 과정에서 샅샅히 조사해서 그리면, 보는 쪽은 평소에 관심도 없다가 "내는 근본없는 한복 안 볼란다!"하고 역정을 내는데... 그림쟁이 입장에선 정말 한숨만 나오는 풍경.
  • pixiv에서 韓服으로 검색하면 이것저것 많이 나온다.
  • 디비언트아트에도 검색하면 그럭저럭 많이 나온다. 그룹도 생성했다.

  • 아야나미 레이치요짱의 한복 일러스트가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
  • 최근엔 일러들이 다 여캐밖에 없어서 여자 한복은 잘 아는데 남자한복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사극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을 쓰고 도포나, 쾌자 등을 입은 선비는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

6. 관련 사건사고


  • 2011년 서울신라호텔에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가 한복을 입고 식당에 들어가려 하자, 한복은 위험한 옷이다라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금지한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텔 신라 객실에는 유카타가 비치되어있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6.1.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




6.2. 샤이닝니키 한복 사태




7. 관련 영상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예를 들어 고려양원나라명나라 초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이로 인해 칙령으로서 금지된 바 있고, 반대로 북송, 명나라의 복식인 심의, 단령조선동아시아 각국에 유입되어 자리잡기도 하였다. 한편 단령의 유래가 호복이라던지, 한복의 기원이 스키타이 민족과 관련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동아시아의 복식 문화는 고정적이기보단 유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셈.[2] 위는 저고리, 밑은 바지.[3] 위는 옷, 밑은 치마,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건 몇몇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한복의 근원은 중국이다." 라는 의견에 대한 반증이 되어준다는 것이다.[4] 벽화를 보면 그때부터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의 치마 안을 보면 똑같이 바지를 입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동시에 스키타이의 영향인지 그들과 같은 점박이 무늬를 즐겨만들어 입었다.[5] 어찌보면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이다. 역사가 어느정도 있는 중국과 일본도 대표적인 이미지의 옷들을 제외하고도 세세히 따지면 그 수가 다양하다. 그저 자료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이지 없는것이 아니다.[6] 시장 또는 마을처럼 여러인물들이 모이는 곳의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러한 양식을 입었으며, 후기양식보다 더 쉽게 찾아볼수 있다. 서구양식이 판치던 일제말기~6.25시절의 사진에서도 이 양식이 확인될 정도였으니, 다른 양식들에 비해 꽤나 인기있던 옷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7] 그덕뿐인지 일제말기~6.25전후의 사진들을 보면, 그전까지 입어오던 다른 양식들은 죄다 바꿔먹었는지 온통 서구식 통치마 만이 판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8] 물론 조선 당시에도 저러한 양식이 있긴 했지만 대표를 자처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진추가예정 [9] [image] 여성한복의 바지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꽤나 윗부분에서 바지허리가 위치한다. 이는 남성또한 동일하며, 이러한 구조에서 현재의 허리부분에 허리띠를 묶으면 그 위로 넗은 영역이 생겨나는데, 그렇게 남게된 윗부분들을 말거나 내려서 노출장식으로 삼는 것이다. 생긴건 비슷하지만 전혀다른 개념인것[10]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근대에 등장한 마고자 단추를 떠올리지만 조계종 스님들의 가사(태고종 가사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맺은단추가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매듭으로 만든 맺은단추(이건 삼국시대 단령과 같이 들어왔다고 추정된다), 원삼에서 사용한 원삼단추(암단추와 수단추로 나뉘어 있으며, 수단추로 암단추를 이어 고정한다. 고정이 끝나면 단순한 고정장치가 아닌 하나의 예쁜 장식이 된다.), 그 외에 수많은 단추 유물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추 자체는 예전부터 존재하였다.[11] 단추 한두 개 만으로 잘 여며지지 않을 때는 재래 한복처럼 허리띠를 두르거나 단추를 더 단다. 다만 맺음단추를 더 다는 옷들의 경우 차이나 칼라에 맺음단추를 죽 달아 마과랑 구별이 안 가는 것도 있다. [12] 부수적으로 목걸이, 팔찌, 가락지, 반지 등의 장신구도 착용했다. 이 역시 남녀불문이었다.[13] 맞춤법 상으로는 귀고리와 귀걸이를 같게 볼 수도 있지만, 역사 쪽에서는 귀고리는 귀를 뚫고 착용하는 장신구를, 귀걸이는 귀를 뚫지 않고 귓바퀴에 거는 장신구를 뜻한다.[14] 기사에는 깨끼의 원초적 형태라 한다.[15] 호다: 헝겊을 겹쳐 바늘땀을 성기게 꿰매다. (네이버 국어사전) [16] 이 링크를 일부 참조했다 [17] 위사. 가로실[18] 경사. 세로실[19] 그래서인지 왕이 직접 염색해라 타령을 해도 주구장창 흰색만 입던 조선백성들이 최소 하의는 염색을 하고 다녔다.[20] 원래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21] 어깨치마라는 명칭은 현대 동호인들이 간편히 부르는 명칭이다. 말기 부분을 조끼로 만든 치마는 구한말에 생겨난 조끼허리 풀치마와 어린 아이들이 입는 조끼허리 통치마로 나뉜다.[22] 어깨끈도 있겠다. 원피스 형태겠다. 저고리만 제거하면 그야말로 우아한 드레스가 된다.[23] '치마고름'이라는 용어는 복식사/의상사에서 쓰지도 않는 정체불명의 말이다. 쓰지 말자. 흔히 가슴가리개를 치마말기로 서술하며 가슴가리개의 끈을 말기끈으로 서술하곤 하는데,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24] 말기끈은 조끼허리식 말기가 생겨난 후로 말기끈이 작고 짧아진 1960년대 이후 향대, 혹은 눈물고름이라는 이름의 장식품으로 나왔다. 시집가며 이걸로 눈물을 훔쳤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허구. 현대에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치맛'고름'도 아마 이 눈물'고름'이라는 허구의 장식품이 생겨난 이후로 오개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말기끈은 그냥 끈일 뿐 고름이 아니다.[25] 말기는 치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치마를 보면 속옷 겸용이라 하기에는 말기 부분의 폭이 매우 좁다. 딱 치마끈 정도의 폭.[26] 어린 아이들은 실용성을 이유로 조끼허리식 통치마를 입었다-지만 이것도 구한말에 조끼허리가 보급되고 나서 생긴 것이지, 조끼허리식 말기 보급 이전에는 애들일지라도 띠허리식 치마를 입었다. 애초 서양식 재단법을 모르던 시기인데 어떻게 서양 의복의 토르소 재단법에서 나온 조끼허리를 만들어 입었겠는가?[27] 개화기에 한국에 온 선교사에 의해 생겼다[28] 한복을 처음 접한 일본인들이 제일 놀란 것이 성큼성큼 걷는 여성들이었다는 말도 있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은 옷의 특성상 종종걸음을 하게 된다.[29] 남성용 기모노, 쥬니히토에, 무녀복은 한복처럼 상의와 하의가 나뉘어져 있다.[30] 한국 내에 매우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이다. 다음 웹툰의 <환상스케치>라는 작품에서 비슷한 이유로 왜색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그것을 보다못한 어떤 유저가 직접 자료를 조사해 비난에 대해 일일이 반박한 사례가 있다. 실제 한복에서 허리띠를 뒤에 묶는 경우는 흔한데, 삼국시대 복식은 허리띠를 앞이나 뒤에서 매듭짓는 게 일반적이었고, 링크에도 나와있듯 정재복(呈才服)의 대대 역시 뒤로 묶는다.[31] 세부 형태는 한복과 같았으나, 외형은 중국에서 도입할 때 모양새가 유지되었다.[32] 딱히 정해진 게 없었다.[33] 조선 말기에 천민은 치맛자락을 오른쪽으로 여미고, 고름도 오른쪽으로 고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방향을 크게 따지지 않았다. 치마나 바지를 여미는 방향 역시 마찬가지로 딱히 방향을 신경쓰지 않았다.[34] 여기서 그냥 잡아빼지 않고 고를 만들면 쌍고름이 된다. 허리띠를 맬 때에나 사용하는 방식이다.[35] 일반적인 고름은 외고름이었다.[36] 지금은 드물지만 과거에는 서울의 대치동이나 잠실, 천호동, 홍대앞에서까지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37] 그는 평생 한복만 입고 살던 그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면서 입기 시작했다.[38] 다만, 이는 유치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생일잔치를 2~3개월에 한 번씩 할 경우 생일이 훨씬 지난 사람이 한복을 입고 생일잔치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39] 절에서 템플스테이할때 일반인이 입는 경우로는 지금도 많이 쓰인다. 혹은 무속인들이나 나이든 불자들이 종종 입기도 한다.[40] 서양 복식처럼 다트(평면인 천을 입체적인 몸에 맞추기 위해 일정 부분을 긴 삼각형으로 주름 잡아 꿰매어 줄이는 것.가슴 다트)를 넣어 곡선을 만들지 않으며, 평면재단이다. 당연히 겨드랑이의 암홀이 없다. 평면 재단이기 때문에 바닥에 놓으면 납작하게 붙는다. 시접을 모두 안감 안으로 넣는다는 점 역시 큰 차이다. 재단의 차이로 인해 옷 주름의 차이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입었을 때 어깨와 겨드랑이, 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복은 겨드랑이에서 어깨까지 八자 모양의 주름이 생기며, 어깨 부분이 뾰족하게 각지지 않는다. 팔 부분에도 여러 주름이 생긴다. 이는 전통 저고리와 양장 저고리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41] 여자 민저고리 기준으로 양쪽 소매와 뒷길 두 장, 앞길 두 장, 깃, 안섶, 겉섶, 고름이 필요하다. 회장저고리인 경우 그 부분을 따로 재단한다. 색동저고리 역시 색동을 각각 재단하기 때문에 조각이 더 늘어난다. 치마의 경우 몇 폭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바지는 허리, 마루폭 두 장, 작은사폭 두 장, 큰사폭 두 장이 필요하다. 하의의 경우 말기를 덧대고 고름을 달기도 한다. 여자 속바지류는 말기와 고름을 달지만 남자 바지는 허리끈으로 여민다. 허리에 고리를 달아놓고 허리띠를 끼우는 것은 서양의 벨트를 차용한 개량식이다.해평윤씨 묘역 출토 사폭바지. 염의로 쓰였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남자아이 바지[42] 도저히 기계로 하기 어려운 작업이 많다. 전통방식의 바느질은 곱솔이라고 하는 천의 이어붙임을 이용하며, 이는 박음질을 3번하여 연결된 부위를 매우 짧게 잘라 이어붙이기 때문에 자동화가 어렵고 재봉틀을 쓰더라도 자를 때는 사람이 집적 해야한다. 여분을 남기지 않아 튿어진 경우 수선하기 어렵다.[43] 원래 띠허리풀치마는 구멍이 없다.[44]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은 더더욱 한복을 기피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45] 기모노의 동아시아 전통의상 이미지 잠식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라 서구권의 사람들 역시 고대 한복을 기모노로 인식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중국인들도 자국의 한푸를 보고 기모노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46] 상의를 넣어입는 개량한복 허리치마는 한푸/하카마일 뿐, 개량한복이 아니라고 악착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치마형 하카마는 메이지 유신 때 나온 근현대 개량 복식이다. 결국 현대에 만들어진 개량한복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 블로거의 논리라면 치마형 하카마도 한푸라고 불러야 하는데, 하카마 치마를 한푸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치마를 위에 입는 것은 당풍의 영향을 받은 신라~고려 때 입었다라는 설명을 해도 그것은 한푸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고려양 명나라 한푸를 한복이라고 부르지는 않듯이 당의 영향을 받은 신라~고려 복식은 신라,고려 옷일 뿐이다. 허리치마 역시 현대의 디자이너가 만들었으니 엄밀히 전통 한복은 아니지만, 한복이 아니라는 주장은 어불성설. 현대 여성용 한복으로 가장 흔히 입는 조끼허리식 치마도 개화기 선교사가 토르소 재단을 도입해 만든거고 엄밀히 전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끼허리 치마를 한복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47] 심지어 고려는 원나라의 중국속국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한다. 원나라는 중국의 역사가 맞긴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대한민국의 역사가 맞는것처럼 몽골에 지배당해서 지배당한게 중국역사와 같은 논리이다.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때 일본에 지배당해서 병합당한 것이라고 일본제국이 한짓이 대한민국이 한 짓이 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지적하는 댓글은 말돌리기를 하며 차단하는 추태를 보인다.[48] 물론 반박글이 올라온 뒤 왜색 소리가 쏙 들어갔을 정도로 사실 왜색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49] 이건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재현된 고대의 한푸를 보고 상당수 중국인들이 한복이나 기모노 아니냐며 불편해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50] 배씨댕기는 원래 서너 살 짜리 아이들이 착용하는 장신구다.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면 성인이 젖병 들고 삑삑이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자.[51] 상투관은 상류층의 전유물인데, 특히 머리숱이 적은 노인들이 사용했다.[52] 한복에 대한 최초의 책은 이여성의 「조선복식고」이다. 현대에 출간된 대다수의 한복 서적 역시 제작 관련이 아닌 이상 조선복식고를 참고하였다. 그러나 조선복식고 역시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오류가 지적되는 상황이므로 폭 넓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간혹 일부 서적은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서술을 싣는 경우도 있어 역사와 고고학 및 복식(한복, 한푸, 북방계 호복, 남방계 복식, 기모노 등 복식 전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다소 곤란할 수 있다. 애초에 이러한 책은 대부분 전문도서라 관련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술술 읽을 난이도가 아니긴 하지만.[53] 다만 병자호란 이후에서 조선 말기 의상들이 대부분이라 조선초기 및 중기의 궁중복식을 찾아보는건 불가능하다.[54] 안으로 들어가는 자락의 끈이 위쪽에 달린다.[55] 단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지, 학술적으로 동양의 전통의상이란 개념이 기모노로 보통명사화가 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모노' 자체를 일본의 옷뿐만이 아닌, 동아시아 전통 의상을 총칭하는 뜻으로 쓴다면 그들이 '기모노'라는 단어(기표)를 쓸 뿐, 내포하고 있는 의미(기의) 자체는 틀린 것이라 보기 어렵다. 다만 그렇더라도 동아시아 전통 의상의 종주국이 일본일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바로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56] 한국인 중에서 유럽까지 아니라도 아랍권의 각각 서로 다른 전통 의상들을 잘 구분해내고 해당 국가와 지역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57]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다. [58] *현애의 경우는 오버라이드 터미널에서 change_outfit 명령어를 입력해서 한복으로 바꿀 수 있다.[59] 어나더 버젼 한정.[60] 맥시멈임팩트2 새로운 복장 한정.[61] 종종 이 분이나 이 분처럼 한복과 현대 복식을 결합한 옷도 보인다.[62] 인게임에 등장한 순서이며 K국(한국)의 전차소녀이자 전투복이 한복이다.[63] 일러스트에서는 한복과는 다른 느낌이 들지만, 강성훈의 4권 독백으로 보아 한복.[64] 한복만 입고 다닌다. 변장할 때에나 사복으로 갈아 입는 편.[65] 취미가 개량한복 만들기이며, 명아연납작이에게 한복을 입힌 것도 그녀다. 하지만 본인이 입고 있는 옷은 한복이라기보단 무복에 가깝다.[66] 물론 스킨으로...[67] 기본 복장이 개량 한복이다.[68] K2는 개량한복 형태, K5는 전통한복에 가까운 형태.[69] 1부 한정.[70] 세종대왕급 구축함네임쉽인 세종대왕함을 모에화한 함희다.[71] 스킨으로 한복이 추가되었다.[72] 잔잔한 햇빛 스킨 한정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