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 한자: 華僑, 海外華人
  • 중국어: 华侨/華僑(huáqiáo), 华裔/華裔(huáyì)[1]
  • 영어: Overseas Chinese
  • 독일어: Auslandschinesen
  • 러시아어: Хуацяо[2]
1. 개요
2. 화교, 화인, 화예의 차이
3. 국적
4. 특징
5. 분포
6. 5대 화교
7. 가상 인물
8. 오덕물에서의 화교


대만의 화교정책 관련 동영상

1. 개요


중화민국 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을 말하는데, 華라는 한자는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화인(華人)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따 온 것이며 僑는 가주거(假住居)를 의미한다.[3] 이 명칭은 중국인 스스로를 높이는 것으로, 중립적인 명칭은 국외 거주 중국인이지만 워낙에 화교란 말이 널리 쓰인다.
화교 출신이 하는 가게는 화상(華商)이라 부른다. 화교가 운영하는 요리점은 중국 요리의 질이 일반적인 중국집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지만 사람의 입맛이 다르듯 짜장면의 맛도 다르니 섣부른 일반화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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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화상(華商)이라는 표현이 있는 일례.[4] 네이버 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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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의 건물은 군산시 영화동에 위치한 영화원이라는 음식점이다.
간혹, 화교임에도 간판에 화상이라 쓰지는 않고 가게 안팎에 아래위가 뒤집힌 복(福)자만 거는 곳도 있다.[5] 그리고 화교가 하는 음식점이면 은근히 빨간색 치장이 많다.[6] 음식 주문 시 생수나 맹물 대신 쟈스민차가 나오고 반찬으로 자차이가 나온다면 화교가 운영할 확률 100%에 수렴. 한국에서는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이나 부산광역시 동구 부산역 인근 차이나타운 혹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마포구 연남동 쪽에 화교들이 하는 중식당이 꽤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대림역건대입구역 쪽도 뜨고 있다. 하지만 그 쪽은 한성화교학교가 있던 연희동 등 화교 밀집 거주 지역과 달리 한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중식당은 아니고, 동북 요리인 양꼬치마라탕 등을 주로 판다. 최근에는 이러한 동북식 양꼬치나 마라탕을 파는 곳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홍콩인이 운영하는 홍콩식 식당도 증가하고 있는데 넓은 의미의 중식당 범주에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중국 색채를 완전히 빼고 순수 홍콩 식당으로서만 운영되고 있으며 식당 주인도 중식당이라는 티를 잘 내려 하지 않는 추세이다. 또한 대만인이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소수라 외식업계에서는 힘이 미약한 편.[7]

2. 화교, 화인, 화예의 차이


명칭
국적
해외 중국계 공동체 참여
문화적 정체성[8]
화교
중국[9], 대만
무관
무관
화인
체류국
참여
중국, 대만 문화의 비중이 높음
화예
체류국
참여/불참
체류국 문화의 비중이 높음
  • 화교 (華僑) :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또는 대만(중화민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해외에서 이민자로 체류하는 사람[10]
  • 화인 (華人) : 체류국의 국적을 취득했으며 중국 문화에 깊이 연관되어 있고 중국계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
  • 화예 (華裔) : 체류국의 국적을 취득했으며 체류국의 문화에 깊이 동화되었고 중국계 커뮤니티에 그닥 참여하지 않는 사람
한국에서는 단순하게 모든 중국계를 통틀어 화교라고 부르지만 사실 중화권에서는 이를 다르게 구분하고 있다. 타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는 화교에 포함되지 않는다.
체류국으로 귀화했으나 문화적으로 중국계와 연관이 깊고 적극적으로 중국계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화인(華人)'이라고 한다.
'화예'는 체류국의 국적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의 문화에 깊이 동화되어 아예 중국인과는 무관해진 중국계를 일컫는다. 태국 화교들도 태국 국적이며 태국 문화에 깊이 동화되어 자신을 태국인으로 정체화하므로, 한국에서는 그냥 태국화교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화예'에 해당된다.

3. 국적


청나라중화민국(현재 대만) 통치 시기에 해외로 이주한 화교의 경우 주로 광동성복건성 출신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을 구화교라고 부르기도 하며, 대부분 중화민국(대만) 국적을 가지고 있다. 세대가 지날 수록 귀화자 수가 많아져서 중화민국의 국적만을 지닌 구화교의 수는 줄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해외 여행이 금지되었다가, 개혁개방 이후 여행금지가 풀리면서 해외에 나가 체류 혹은 거주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 중국인들은 신화교라고 한다. 중국 본토 내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이주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홍콩마카오 출신도 많다.
거주 국가의 관공서 서류에는 중국 국적자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 해당인은 중국 국적이므로 중국인이다. 1949년 이후 중화민국의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화교의 경우에는 대만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경우 중화민국 국적자는 CHINA(TAIWAN)으로 표기한다. 미국타이완 관계법 시행 이후 중화민국 국적자를 Taiwan으로 별도로 관리하고 있으며 중국 국적자(People's Republic of China, Hong Kong, Macau)와 구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중화민국 국적자는 台湾(대만)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의 국적법은 중국인이나 중국계의 후손을 잠재적인 중국 국적자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선조 대에 청나라, 중화민국 국적자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으면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다. 귀화가 아니다. 즉 해외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의 후손이 중국이나 대만으로 돌아와서 그 나라 국적자가 되고 싶으면 귀화가 아니라 회복 신청을 해야 한다. 이 국적법에 따라 홍콩마카오 반환 직후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중국계 후손들에게는 전원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이 부여되었다. 홍콩의 중국계 영국 속령 시민권자(British Dependent Territory Citizen)들은 1997년 7월 1일을 기해 자동으로 영국 속령 시민권이 박탈되고 중국 국적자로 바뀌었고, 비중국계 영국 속령 시민권자는 영국 해외시민(British Overseas citizens[11])이 되었다. 반환 이전에 영국 재외국민(British National (Overseas), 영국 시민권자나 위의 영국 해외시민과는 다르다)으로 등록했다면, 홍콩 이민국에 중국 국적 포기 신청을 하여 영국 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4. 특징


중국을 떠난 화교들은 해외에서 돈을 벌어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금의환향 개념이 강했다. 이는 중국 내에서 하층민이었던 그들의 처지와 중화사상이 섞여 빚어낸 마음가짐이라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현지에서 동화되지 않고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뤄 몇 대씩 자기들끼리만 교류하고 현지언어를 아예 배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흔히 중원문화, 중화문화 등으로 표기되는 중국식 문화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거주지에서 자국어(중국어)를 사용하는 구역(소위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생활 한다. 이런 화교들의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현지인들과의 갈등과 대립이 심해져 동북아, 동남아 등에서는 화교들을 향한 폭동이 몇 번 일어났다. 특히 일본, 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는 반화교 폭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927년 화교배척폭동1931년 화교배척폭동1931년 평양화교 학살 문서로. 일본중일전쟁 등 중국과 전쟁을 벌인 세계대전 시절에는 화교를 거의 부라쿠민 취급하여 이들을 학대했다. 말레이시아는 아예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강제 독립시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해외의 중국인들은 화교 커뮤니티를 유지하되 현지인들과 섞여 사는 쪽을 택했고 되도록 경제권은 장악하되 정치권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오늘날에는 동북아, 동남아의 화교들은 대부분 현지 국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지인 이름으로 개명을 하기도 한다.
특히 태국에서 위와 같은 기질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화교출신이며 화교라고 해서 부유한건 또 아닌게 태국의 차이나타운 베드타운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정착한 화교가 아닌 세계대전시기나 국공내전시절 내란을 피해 태국으로 망명한 난민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경제적 기반이 없어 지금도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화교 출신의 태국인들은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태국에서는 정치 참여도 많은 편이라 총리 중 상당수가 화교 계통이다. 오늘날엔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다시 중국식 이름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내거는 화교들도 많다. 반면 반정부, 반중국 성향의 화교 출신들도 있어서 2020년 태국 민주화 시위때는 홍콩 독립운동, 타이완 독립운동 활동가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12]
한국에 온 한국 화교들도 금의환향 개념이 있었는데[13] 국공내전으로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쫓긴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귀국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한국에 발이 묶이면서 60년 이상 한국에 거주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독재정권들은 외국인이 자국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일부 화교들은 탄압을 피해[14] 중화민국이 도피한 타이완으로 가거나 북아메리카로 가게 된다.
한국 화교들은 이름으로 한국식 독음을 쓰는데 중국어의 한자 발음이 지역마다 달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현지 발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중국식 발음으로 적지만 중국인(특히 중국조선족 동포 출신)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식 발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중국식 발음으로 부르는걸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홍콩 출신 화교의 경우 표준중국어식 이름을 어색해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서 광동어식으로 정정하거나 차라리 한국식 독음을 불러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이외의 국가의 중국계들은 영어 이름을 쓰거나 아니면 아예 그 지역 이름을 쓴다. 전자는 주로 영미권,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이고 후자는 일본,인도네시아[15],태국 등지다.
중국이나 대만 출신의 한국 아이돌 가수의 경우 성소결경처럼 한국식 독음을 예명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 라이관린, 쯔위 처럼 표준중국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5. 분포


전세계 현존 화교 인구는 20년 기준 약 5천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이 중 동남아에만 3천만 이상이 거주 중이며 동남아 경제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출신 지역에 따라서, 유입 시기에 따라서 미묘한 파벌을 이루고 있다. 동남아 화교는 주로 민남어를 사용하는 복건성 출신이다. 반면 광동성 출신들은 미주나 유럽 쪽으로 비교적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흔히 서양사람들은 화교들을 대부분 광동성 출신으로 안다. 특히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서방국가와 교류가 많았다보니 더욱 해외 중국인=광동, 홍콩 출신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된 것.
그렇다고 광동성 출신들이 동남아에 적은 건 아니다. 베트남 화교 집단인 호아 족(Hoa, 華族)은 대다수가 광동성 출신이고 싱가포르에서도 중국계 중에서 복건계 다음으로 두번째로 많다. 한편 이들은 거의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에 이주한 구화교들이다. 예외적으로 대한민국의 화교는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다. 아래 항목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인터뷰에 의하면 파벌끼리 싸움 나면 사람 서넛 죽는 게 거의 매일 일어날 정도로 막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외 진출과 화교 사회의 유지까지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이주민 중에서도 굉장히 잘 단합하는 편이다.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족, 친척, 동향 중심으로 잘 뭉치는 데다가 19세기 최초 이주 당시 어디까지나 외지인이었던 불리함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 또한 자기들만의 사회를 조성해 지내는 걸로도 유명하다. 이민 몇 세대까지 현지 말을 모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 물론 지금은 현지어를 모르는 화예들의 경우 극히 드물다. 영미권의 경우 오히려 중국계 언어를 아예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구화교와 신화교의 경우 교류를 아예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런 거 상관 없이 그냥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다. 다만 1949년 이후 대만에서 외국으로 이주한 대만인 화교의 경우에는 대만인들끼리 뭉치며 구화교나 신화교의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16]. 예로 미국에서는 같은 중화민국 국적자라도 구화교 커뮤니티와 대만인 커뮤니티로 나뉘어있다. 최근에는 홍콩인 커뮤니티가 광둥성계에서 분화하는 현상이 보이고 있다.

5.1.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미국 서부 개척 시기에 철도 건설 노동과 광산업 등의 노동자 계급으로 유입된 것이 시초였다. 캐나다에서도 초기 유입은 상당수 철도 노동자였다. 골드러시와 철도 건설 일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중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잔류한 중국인들은 주로 백인 사회에서 여성적인 일이라고 꺼리던 세탁소를 하거나 이민자를 상대로 한 소상업을 주로 하였다. 미국식 중화 요리도 이런 배경 하에 만들어진 요리이다. 미국 사회의 백인 우월주의가 조금씩 감소하고[17] 화교 특유의 교육열로 차별이 없어지는 1960년대 이후에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애틀이 있는, 진보적이긴 하나 2012년 기준으로 백인이 81.6%나 되는 미국 워싱턴 주에선 중국인 3세 게리 로크 지사가 주지사로 두번이나 당선된 적도 있을정도. 미국 화교들 가운데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18] 그의 조부가 워싱턴 주 정부청사와 1마일 떨어진 곳에서 청소부로 일했던 것을 주지사 취임 당시 이야기하며 아시아계의 위상 변화를 얘기한 적이 있다. 워싱턴주는 아시아계가 7% 수준으로 미국 평균인 5%보다 조금 높긴 하다. 이들과 비교하자면 한국계는 아직 대규모 이주의 역사가 짧아 정계에서 차관보급을 배출한 정도다.
북미 화교들은 태평양 연안 캘리포니아에 많고 캐나다에서도 빅토리아, 밴쿠버에 많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과정에서 많은 홍콩인들이 호주나 캐나다로 이민하였는데, 이를 가지고 밴쿠버에 홍콩 출신이 많다고 '홍쿠버'라 비하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토론토 등에 큰 차이나타운이 있다.
북미 도시마다 화교들의 문화나 성격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인데 이를테면 불어권 퀘벡몬트리올의 화교들은 대개 프랑스어영어를 모두 잘해서 사회적 입지가 상당히 좋은 반면,[19] 맨하탄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호텔들은 뉴욕 맨하탄 한가운데 있는 호텔들답지 않게 숙박료가 저렴하지만 대신 육군 내무반만도 못한 숙박 퀄리티로 악명 높고,예시 하나 예시 둘 화교 상당수가 길 물어보는 것 같은 간단한 영어조차 못 알아듣는다.

5.2. 유럽


유럽에도 꽤 존재하며, 대도시에는 중국인 식당도 간간히 보인다. 아시아 물건을 파는 슈퍼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은데 한국 식품 역시 종종 판매한다. 중국계 미국인들이 미국 백인 평균에 비해 평균 학력이 (특히 이공계 쪽에서) 높은 것과 다르게 유럽 국가들은 공교육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편인데다가, 백인 사회 내 반지성주의도 적어서 중국계들이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는 편이다.
대체로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쪽 화교들은 남방 한족이나 동남아 계열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중국 중부, 북부 출신 이민자들이 많아졌고 기존의 남부 출신들과 새로 온 북부 출신간의 지역 감정이 여기서도 재현된다. 남부 출신들은 가톨릭이나 개신교 세가 강하다.
러시아 등 동유럽 쪽 화교들은 대체로 가까운 동북 3성이나 베이징 지방에서 온 한족들이 많으며 이들은 서유럽 쪽 화교들과 달리 정교회티베트 불교 세가 강하다. 위구르인의 경우 자신들을 화교(kitai)로 칭하기보다는 무슬림으로 호칭한다. 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을 지지할 경우 그 경향이 더욱 강하다.

5.3. 동남아시아


기타 지역과 차원이 다르다. 수백 년 전부터 이민 오고[20], 교육 수준이 현지인들보다 월등히 높고, 인구의 5~20%까지 차지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경제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많다. 대체적으로 못 살고 가난한 이미지가 강한 동남아시아이고 국가간의 국력이나 경제력 차이도 큰 편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화교는 잘 살고 나머지는 못 산다라고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화교에게 부의 편중이 심하다. 심지어 화교 비율이 높은 나라일 수록 국력과 경제력도 강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는 상당히 동화되었을지언정, 그들이 소속국에 끼치는 영향력은 아직도 막대하다.
말레이시아를 예로 들자면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22% 가량이 화교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쿠알라룸푸르같은 도시 지역에서는 인도계와 중국계가 주류 인종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화교 전용 학교를 다니면서, 화교들끼리 결혼하고 중국어를 사용하는 등[21] 거의 다른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인의 말레이시아' 정책을 견지하며 과도한 말레이계 우대/화교 차별 정책을 쓰기 때문에 화교들이 힘들어한다.[22] [23] 그러나 먼저 들어온 화교들이 나중에 들어온 화교들을 견제하는데다가 말레이시아 내 반 화교 감정의 영향도 있어서,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75%가 화교이고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잘 나갔던 싱가포르 주를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학살에 맞서 싸운 화교들이 공산 게릴라로 전향하여 세력을 상당히 크게 불려서 일본의 패망 이후 화교들이 각국에서 반란을 일으켜댔기에 각국 정부에서는 큰 골치거리이기도 했다. 다만 최근에는 어느 정도 민족 간 폐쇄성이 줄어들어 중국계와 말레이계/인도계의 통혼이 증가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줄이며,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족이든 중국계든 인도계든 모두 말레이시아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말레이족을 대체할 단어로 "말레이시아족"이라는 단어까지도 나오고 있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순위를 매기면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순이 되는데, 재미있게도 각각 화교 혹은 중국계 비율이 약70%>25%>10%>4%>1.5% 정도로 1인당 소득 순위와 일치한다. 심지어 화교의 비율이 어떠하든 그들이 국가 경제의 50% 이상을 점하고 있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그만큼 뒤로 갈 수록 화교에의 부의 편중도 심하다는 의미가 된다. 동남아 최빈국인 캄보디아와 미얀마의 경우 20세기 중반부로 중국계, 인도계 인구를 추방, 학살한 이후 경제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민족주의가 강한 동남아 입장에서는 중국인들이 얍삽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식으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지만, 단순히 비하적으로만 평가할 일은 아니다. 유교문화권의 영향으로 공과 사를 어느 정도는 구분하는 동아시아 문화권과 다르게 동남아시아 사회에는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개념 자체가 약한 편이다. 형제 정치인이 함께 정부 돈을 횡령해서 언론에서 비판하면 반대편에서 "왜 아름다운 형제애를 비판하는가? 너희는 형제도 없냐?"라고 오히려 비판 언론을 공격하는게 동남아 빈국들의 현실이다.
사실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그 나라 주류 민족에 동화된 모습을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는 대조적으로 독립 이래로 중국어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펴면서 현재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못하고 인니어가 모국어이며, 성도 중국어에서 변형된 형태로 변했다. 다만 수마트라나 칼리만탄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알고 종교도 자바 쪽 화교들과 다르게 불교다. 그러나 소수의 화교에게 경제적 이권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 부유한 화교와 경제적으로 낙후된 현지인 사이의 갈등이 커서 유혈사태도 발생한바 있고 두 차례에 걸쳐 수하르토 독재정권의 희생양이 되는 모습도 보였다.[24]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이 일어났었다. 21세기 들어서 민주화되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보수주의자들이 반화교 정서를 자극하는 경우도 많은 편.
필리핀의 경제권 역시 대부분 화교가 쥐고 있다. 필리핀의 화교 역사는 의외로 역사가 깊어서 거의 중세 시절로까지 올라가며 이슬람 왕조가 한창 세를 떨쳤을 때에도 세력권을 갖추고 있을 정도였다. 근세에 경제권 문제로 인해 여러번 스페인 당국과 현지 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학살이 여러 번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필리핀에 어느 정도 문화적으로 동화된 화교들이 명맥을 이어 나가면서 경제권 유지에 성공했다. 필리핀 내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SM 그룹[25], 졸리비 같은 기업들이나 가문들은 십중팔구 화교 내지 화교와의 혼혈 집안의 차지이다. 그러나 필리핀이라는 나라 전체가 혼혈화가 오랫동안 지속된 만큼, 화교 및 화교 혼혈 집안들은 스스로 중국인이라는 자각이 별로 없다. 필리핀이 화교의 영향력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차이나타운이 거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필리핀 화교는은 스페인 식민지배 시절부터 혼혈화가 이뤄져 중국인이라는 자각이 없었고 이들이 기득권이 되면서 중국과 전혀 무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필리핀 독립운동에 기여한 호세 리잘조차도 화교 피가 흘렀지만 그는 생전에 신경도 안쓰고 중국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했었다.
태국은 인구의 14% 이상이 화교이며 중국계와의 혼혈까지 합하면 40%에 달하는데, 이들 역시 경제권을 쥐고 있다. 어차피 이들도 본인을 화교라 자각하고 있다고 해도 태국에 완전히 동화되어 중국어를 못하고 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그 때문인지 타국에 비해 화교가 두드러져 보이진 않는다. 한편으로는 구 일본 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태국의 과거 군사 정권들이 다민족 국가인 태국을 강제로 동화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화교들이 중국식 이름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다. 오히려 태국 사회에 동화된 중국계 태국인들은 비교적 근래에 이주한 화교들을 앞장서서 배척했는데, 결과적으로 현재까지도 태국의 화교들은 경제적으로 극과 극의 위치에 있다. 또한 태국인들의 조상이 원래 중국 남서부(쓰촨성, 윈난성, 구이저우성, 광시좡족자치구 등)에 살던 사람들이었기에 남중국인들과 인종적/문화적으로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다. 참고로 2PM닉쿤 어머니도 중국계 2세인데 중국어를 전혀 못한다. (여자)아이들민니 역시 중국계 태국인 3세인데, 부모님과 본인은 중국 이름이 아예 없다고 한다.
베트남의 경우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가깝기도 하고, 아예 1000년 동안 중국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베트남으로 들어왔지만[26] 시간이 지나며 이들 대부분은 킨족에 동화되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동화되지 않은 화교들도 수십만 가량 주거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중국으로 추방되거나 보트피플이 되는 등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다만 도이머이 정책이 시행되고 베트남과 중국간의 관계도 정상화되면서 추방된 화교들의 상당수가 귀환하면서 베트남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금 자리잡았다. 그러나 중국이 베트남에 횡포를 부리면서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반감이 커지고 있어 서로 사이가 좋을수가 없는데다가 태국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처럼 이들이 경제권을 쥐려는거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베트남 일각에서 이들을 고깝게 보내는 시선이 많다.

5.4. 일본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이 이주해오곤 했다만 대부분이 동화되었기에 논외로 치고 일본의 화교는 1900년대 초반에 민남이나 타이완에서 온 사람이 주류로 요코하마, 고베 등지에서 집단 거주하며 제법 영향력이 크다. 반중 감정이 강한 일본이라서 차별이 매우 많다. 재일교포인 경우에는 성공한 사람들과 일본인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많지만 화교들은 중국어 발음이 잘 고쳐지지 않아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귀화하지 않는 이상 정치권 및 공무원 사회에서도 차별받는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재일 화교 대부분이 대만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27]
근래에 일본에서도 화교는 신화교와 기존의 구화교로 나뉜다. 신화교는 1972년 중일수교 이후 들어온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이고 구화교는 중화민국 사람들이다. 신화교 중엔 일본계도 꽤 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중국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일본 제국 시절에 식민지에 체류, 중국인으로 살다가 중일수교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로서 이들을 히키아게샤라고 부른다. 약 27년 동안 중국에 남은 4천명의 일본계 중국인들은 중국인들과 통혼하는 등 많은 중국인 친족을 만들었고 중일수교 이후 일본 국적을 회복하는데 이들은 비자를 이용해 수십 명씩 일본에 건너가게 된다. 일본 사회는 이런 일본계들을 가이진(外人)[28]에 걸맞게 당연히 중국인 취급.
한국의 화교들이 중화민국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신화교와 구화교로 나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다. 다른 점은 한국의 구화교들이 대부분 산동 출신인데 비해, 일본의 구화교는 진짜로 대만 출신들이 많다. 대부분 본성인 출신들이다.[29] 이는 1895년부터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대만인들이 일본으로 많이 왔기 때문. 구화교와 신화교는 민단조총련이 대립하듯이 일본 내에서 2개의 중국계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또 일본에도 일본과 거리가 가까운 산둥 출신들도 꽤 된다.[30] 특히 구화교와 신화교 중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은 일본 극우의 사상에 동화되는 경우가 많아 화교사회에서도 극단주의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유명한 일본 화교로는 왕전즈(일본명 오 사다하루)가 있다. 아울러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 역시 화교출신이다. 애니 성우인 한 케이코, 한 메구미, 루 팅도 있다.
재일 중국인1980년대까지 5만명 수준으로 그리 많지 않았지만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과 일본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면서 현재는 일본 내 최대 소수민족 집단이다. 이 재일 화교와 중국 본토에서 최근에 건너 온 재일 중국인들은 따로 노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내에서 한국 화교와 대륙 중국인들이 교류가 드문 것과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이후에 재일교포 및 한국계 일본인들의 인구를 일본 화교들은 추월했다.

5.5. 대한민국


화교/대한민국 문서로.

5.6. 북한


조교 참조.
북한의 경우 김일성 집권 당시 갑산파를 제외한 모든 파벌을 제거하였으며, 그 와중에 화교를 도울 수 있는 중국계 세력인 연안파도 쓸려나갔다. 대장정 참가자이며 중공군 장성 출신이던 무정마저 6.25 전쟁의 책임을 구실 삼아 실각하였다. 대장정 생존자들은 중국에서도 영웅 대우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31] 김일성의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에 대해 알 수 있다. 게다가 후에는 주체사상의 확립 등으로 인하여 실제 중국인이나 중국 세력이 힘을 뻗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군은 화교와 재북 일본인[32]도 입대시킨다. 다만 근무하는 부대에 제한이 있다.

5.6.1. 김일성 사후


고위 간부와 친분을 맺은 일부 화교는 김일성 사망 직후 압록강을 넘어 중국과 북한의 무역에 참여했다. 만주 일대에 머물면서 북한에 남은 친척을 통해 대북 거래를 하는 등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신의주와 나진 선봉 경제특구에도 화교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있었고, 지금도 만주 일대에서 대북 무역을 한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북한 화교는 한국보다 많은 5만명 수준이었으나 전쟁통에 자본주의자들은 월남하고 일부는 중국이나 대만으로 갔다. 전쟁 직후엔 1만까지 줄었으나 중국에서 대약진 운동실패와 문화대혁명등 사고가 터지자 중국에 있던 화교의 친족 등이 입국하면서 2만 5천명까지 늘었다. 90년대 초반 동유럽과 소련이 차례로 붕괴 되면서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거지가 된 북한이지만 당시엔 소련의 지원 등으로 생활 수준이 중국보다 괜찮았다. 79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및 화교에 대한 귀국지원정책과 더블어 80년대 중반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역전되면서 많은 화교들이 중국으로 되돌아가서 현재는 약 5000명 정도가 남아 있다. 2009년 기준이라 더 줄었는지 아니면 보따리 장수 등으로 더 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에 비해 너무 낙후한 북한의 경제사정과 화교를 돈주머니 쯤으로 여기는 북한 현지 관료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젋은 화교들은 아버지 세대와 달리 중국에서 거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요식업에 종사한 한국 화교와 달리 북한 화교들은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 이는 주로 이 화교 농민들이 북한의 토지개혁 당시에 농토를 받은 탓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재북 화교들은 당연히 북한 내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일례로 북한의 공민증에는 '민족'란이 있는데 이는 주로 화교를 가려내기 위한 것. 또한 북한은 순혈주의를 강조하면서 매우 배타적인 국가인데 화교, 재일교포, 조선족도 민족간부(김일성고급당학교를 졸업한 리당비서 이상의 간부들)가 될 수 없게 못 박아 놓았다. 단, 성적 수석이나 고위급 당 간부와 친분이 있을 경우 소수지만 김일성고급당학교에 입학이 가능했다. 조선족 연고자와 결혼한 북한 토박이도 민족간부는 못 된다. 그래서 안그래도 정치 중심 사회인 북한에서 당 간부로 진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생활에서 많은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
이때문에 몇몇 북한 화교는 북하넹 대한 불만이 커서 순수한 북한 주민처럼 탈북을 시도했다가 남한 정부에 걸려 중국 국적을 가진 이들을 강제출국시키기도 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유우성도 이런 케이스다. 몇몇 화교들은 북한에서 보내는 편지를 외지로 몰래 전해주다가 들통나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편, 최근에는 탈북 여성이 데리고 오는 중국 국적의 자녀가 여러모로 문제가 되고 있다. 많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 팔려가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조선족 혹은 한족 남성 사이에 낳은 자녀를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고자 중국 호구를 돈으로 구입하는데, 법적으로 중국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중국 호구를 취득한 탈북민과 중국인 사이의 한중혼혈이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가 중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 국적이 일단 상실된 사람으로 규정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국적회복을 허가하고 있다. 다만 이것은 초반에만 문제가 되었을 뿐 현재는 국적회복 제도를 이용해서 큰 문제없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중국호구를 취득하지 않은 혼혈아는 국내에 귀국하면 원래부터 한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보지만, 북한에서 산 적이 없으므로 북한이탈주민의 혜택은 받지 못한다. 현재는 이런 혼혈 탈북청소년이 북한 출신 탈북 청소년의 수를 넘어서고 있다.
당연히 북한에서도 잘나가는 화교들은 잘먹고 잘 산다. 물론 그정도 김일성 대학까지 들어갈 수준의 북한 화교들은 대부분 탈북을 하겠지만(...) 특히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가 파탄나고 소비생활을 거의 전적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의존하게 되면서 이런 경향이 심각해졌다. 당장 북한 시장화의 서막을 연 자금 조달처는 여지없이 중국이다. 주로 화교자금과 조선족자금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건수로 따지면 후자가 우세하긴 하다. 또 중국과의 보따리 무역의 상당수는 북한 화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북한과 중국 국경 연선에 있는 모 군의 경우 단 한 가정의 화교가 있는데 이 화교 부부가 군 전체에 들어오는 농자재의 절반 정도를 충당한다고 한다. 물론 지역 관청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강을 넘는 조선족 연고자나 돈 많은 장사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부의 경우 두 사람 모두 화교다 보니 번갈아가며 강을 넘어다닐 수 있는 것이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밀수품도 많이 들여오는 듯 하다. 청진 등지에 화교학교도 남아있다고 한다. 청진화교학교는 저우언라이가 설립했는데 대만 교재를 쓰는 한국의 화교학교들과는 달리 북한 교재를 쓴다고 한다. 주로 신의주 등지에 화교 보따리 장수가 많다고 한다. 또, 중국을 드나드는 화교들에게 급행 비자를 강제로 발급해 고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중국 국적의 북한 화교가 중국으로 가서 살다가 6개월 이내 북한으로 들어오면 다시 북한에 거주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평양에도 화교학교가 있다.
북한 화교들이 남한으로 와서 거주 의사를 밝힐 경우에는 탈북의 이유와 탈북 루트 등에 따라 한국에 거주할 수 있는지 없는지 갈린다고 한다. 국정원 심사를 통과하면 한국 국적을 받고 한국에 거주할 수 있다. 이만갑배나TV에 출연한 북한 화교 3세의 말에 따르면 신분증(한국 국적)은 받았지만 다른 탈북민처럼 임대아파트 우선권, 정착금 같은 지원은 없었다고 한다.

5.7.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계 러시아인, 둥간족 참조.

5.8. 아프리카


인도계가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는 것과 비슷하게 화교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점차 진출 중이다. 중국-아프리카 관계 문서로.
[image]
가봉의 정치인으로 아프리카 연합 위원장을 지낸 장 핑중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키백과 영어판을 보면 아프리카계 아시아인에 대한 설명이 꽤 나와 있다.

6. 5대 화교


5대 화교는 푸젠, 광둥, 하이난, 차오저우, 하카를 의미한다.
한국은 특이하게도 산둥 출신 화교가 많기 때문에 5대 화교 + 산둥으로 설명되는 경우도 많다.
비슷하게 일본의 화교는 대만 본성인들이 많다.
해외 거주 홍콩인들은 넓은 의미의 광둥 화교에 포함되지만 2014년 홍콩 우산 시위 이후로 본토주의가 대두하면서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을 그냥 홍콩계라고 일컫고 중국계, 혹은 광둥계 화교 정체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7. 가상 인물


성명
작품명
비고
마봉팔
극한직업(영화)
극중 자신이 마작중 직접 언급했다.
김태극
쾌타지존
복장과 중국식 검을 지닌 산둥성 출신이지만 국적을 한국으로 공개했다.
리 샹페이
아랑전설, KOF 시리즈
리 젠랴, 리 시우촌
디지몬 테이머즈
홍콩 출생이다.
리 파이론
용호의 권 시리즈, 네오지오 배틀 컬리시엄

리 차오랑, 링 샤오유, 마샬 로우, 포레스트 로우, 줄리아 창
철권 시리즈

왕오춘, 곽청호, 팽진양
외모지상주의

이자성, 정청, 석무
신세계(영화)

잠파노
도둑들

헤이 린
W.I.T.C.H.

D 백작
펫숍 오브 호러즈

마빅 첸
닥터후
클래식 시즌3 The Daleks' Master Plan에 나오는 악역이다. 태양계의 수호자이며 우주정복을 위하여 제5은하의 지배자 제폰을 비롯한 외은하의 여러 지도자들과 동맹을 맺고 시간의 흐름을 조종할 수 있는 시간 파괴기를 개발한다. 




8. 오덕물에서의 화교


일본 오덕계(특히 만화)를 보면, 외국 화교들은 약방을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지하세계의 정보통이나 혹은 엄청난 배후로 나오는데 이건 하세 세이슈(주성치를 좋아해서 그의 이름을 거꾸로 한 뒤 일본어로 발음)의 불야성의 영향이 크다. 이 소설에서는 대만이나 중국 출신의 화교는 뒷세계의 악마들로 묘사했다. 그덕인지 건 스미스 캣츠 시리즈에서도 그런 영향이 짙게 배어나온다.
여성 캐릭터일 경우 높은 확률로 개조한 치파오와 만두머리, 상당한 무술 실력에 섹시한 모습으로 나온다.
한국에서 화교를 다룬 영화.

[1] 화교가 거주국에서 낳은 자녀와 그 후손을 말한다.[2] 화챠오(Khuachyao). 화교의 중국어 발음을 그대로 음차한 단어가 정착되어 있다.[3] 僑라는 말이 원래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육조시대 중원의 전화를 피해 남방으로 유입된 중원 귀족들이 남조의 상류 귀족 계층이 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남방의 호족들과는 철저히 혼인하지 않으며 동진 왕조와 송제양진 왕조의 고위 귀족 자리를 지키면서 남조 정권의 특권 계층으로 자리잡았다.[4] 거리뷰를 봤다면 알아챘겠지만 부산 동의의료원 근처이다.[5] 복(福) 글자를 거꾸로 걸어놓은 것은 "복이 거꾸로 걸려있다"는 중국어 福倒了의 발음(푸따오러)이 "복이 온다"는 뜻의 중국어 福到了의 발음(푸따오러)과 같아서 생긴 관습 때문이다. 즉 복을 거꾸로 걸어놓으면 복이 온다고 믿는 것.[6] 잘 알려진 것처럼 중화권 문화에서 빨간색은 행운과 부(富)를 상징한다.[7] 이러다 보니 베이징대학 등에서 온 학생은 음식에 쉽게 적응하는 편인데, 난양 공과대학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으로 교환유학을 온 학생들은 이화여자대학교 앞을 제외하고 학교 앞에 양꼬치, 마라탕, 한국식 중화요리집밖에 없어서 음식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8] 이는 화인과 화예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로서 국적과 상관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정체성을 의미한다.[9]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마카오.[10] 한국과 일본의 구 화교들은 대만 국적이며, 북한 화교들은 중국 국적이다.[11] 구 영국 식민지에서 출생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국적.[12] 일명 "밀크티 동맹"인데, 홍콩과 대만의 독립파들이 태국의 민주화를 응원해주면 태국의 민주파가 홍콩독립과 대만독립 지지로 화답하는 식.[13] 물론 조선 말기 이전에 온 한족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한국인으로 동화되었기는 했다.[14] 다만 대표적인 화교혈통의 요리사인 이연복의 부모님처럼 1980년대까지 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화교억제정책이 풀릴때까지 식당을 운영하면서 버텨나간 케이스도 있다.[15] 다만 상류층들은 영어 이름 쓰기도 한다.[16] 랴오닝에서 태어났지만 국공내전 때문에 타이중에서 성장한 사람이 한국에 유학을 왔다가 눌러 앉게 되고 이후 중화민국 국적으로 한국 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교수가 되어 오래 살다가 한국으로 귀화한 사례도 있는데 이 사람은 그 지역 화교 사회에서 인맥을 쌓긴 했지만 그들에게 편한 상대는 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그저 '대만에서 온 사람'으로 취급했다고.[17]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언론을 통해 목격한 미국인들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자성을 하게 되고 이는 유대인과 중국계 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무너트리는 계기가 되었다.[18] 본토 중국인들에게는 전형적인 서구식 마인드의 중국인이라 좋게보지만은 않는다.[19] 프랑스어가 중시되는 몬트리올 사회 특성상 이쪽은 중국계가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일본계, 한국계 주민들보다 입지가 훨씬 더 좋은 편[20] 물론 한국과 일본, 베트남도 매우 오래전부터 이민온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문화적인 차이점은 비교적 적은 편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대다수가 동화되기는 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베트남이나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인것도 있기는 하고[21] 그래서 말레이시아에 가보면 중국어 TV, 라디오 방송이 어디에나 있다.[22] 대조적으로 싱가포르중국계 싱가포르인을 지나치게 우대하여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편이다.[23]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말레이인들의 경우 외양이 동북아시아인과 그닥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들도 흔하다.[24] 정작 수하르토 독재정권 치하에서 화교기업들이 많이 성장했다는 아이러니도 존재한다.[25] 한국의 SM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필리핀 현지 그룹이다.[26] 특히 베트남이 참파의 영토를 하나하나 병합했을때 명나라가 멸망했을 시기라서 이때 수많은 명나라 유민들이 베트남으로 몰려왔는데 이들을 참파 영토에 배치시켰다.[27] 대만은 일본의 요나구니섬과 가깝다. 대만인들이 1910년대부터 일본으로 노동자로 이주했고 개중에는 대만섬이 아닌 광동성, 푸젠성에서 온 외성인들도 있다.[28] 가이진은 외인(外人)의 일본식 독음으로 외국인과 달리 좀 배타적인 뉘앙스가 있는 단어다.[29] 소수의 광동,푸젠 출신의 외성인들도 있다.[30] 다만 한국에 비하면 매우 적다.[31] 그래서 김일성무정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고도 한다.[32] 대부분이 납북 일본인이나 북송된 재일 한국인의 배우자들의 후손이며, 극소수 월북한 공산주의 성향 일본인도 있었다. 다만, 8월 종파사건 이후로 북한이 무늬만 공산주의인 나라가 되면서 새로 월북하는 사람이 없어진 탓에, 대부분이 북한 사회에 동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