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어

 


영어: khitan(khitanese) language
한국어: 거란어
중국어: Qìdānyǔ(치딴위)
몽골어: kidan khel
만주어: ci dan gisun(치단 기순)
여진어: ci tan herse
일본어: kittan go(킷탄 고)
1. 개요
2. 어휘
3. 같이 보기


1. 개요


고대부터 중세 말까지 존재했던 선비족의 후예 또는 선비족에서 갈라진 거란족이 썼던 언어. 거란어는 거의 몽골어와 비슷하며, 일부는 퉁구스어와도 비슷한 단어가 보이기도 한다.[1] 거란어로는 "qid-un-i enusg(i)"이다. 거란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다우르족의 언어인 다우르어 역시 다우르어로는 "daghur husgh(usugu)"로 읽는다. 참고로 몽골어에도 "useg"라는 단어가 있다(하지만 이 단어는 주로 문자를 뜻한다. 한 편 문자를 뜻하는 또다른 단어로는 "biqig"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언어를 가리키기도 한다). 여담으로 거란어로 문자를 뜻하는 단어는 "c-er"이며, "츠-어르"로 읽는다.
몽골어와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어서 학자들은 반정도 몽골계 제어들과 비슷한 "준(準)몽골어족"(Para-Mongolic Languages)에 속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로 거란족의 조상 및 전신이자 선조격인 선비족의 선비어 역시 마찬가지로 보며, 선비어 역시 거란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2]
한편, 중세 한국어를 연구하는 알렉산더 보빈[3]에 의하면 거란어 단어 중에서는 한국어와도 비슷한 단어들이 많은데 이는 고려-고구려와 거란 간의 접촉으로 인하여 차용된 단어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4]
흥미로운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있다. "몰래 따라가게 되는 폐단은 요토(遼土) 사람들의 언어와 의복이 우리 나라 사람과 다름이 없으니 어찌 우리 나라에서 몰래 따라간 사람이 아닌 줄을 알겠습니까."-연산군일기38권 6년 7월7일 (1500년)
내용을 요약하자면 평안도 국경지역 조선인이 요나라 지역의 명나라 국적 여인들과 국제 결혼?(아이를 낳는)하는 사례들이 발생한다. 동팔참(東八站)[5]의 땅에 명나라가 만약 영진(營鎭)[6]을 연달아 설치한다면 그 지역으로 그냥 따라가는 폐단이 발생하는데, 문제는 요나라 땅 (遼土) 사람들의 의복 풍습이나 언어가 조선사람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몰래 따라가는 폐단(불법이주,이민)이 있어도 몰래 따라간 사람이 아닌지 알겠냐? 그러니까 왕이 해법을 내놓아 주시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거란인들은 거란어를 표기할 때 처음에는 한자나 위구르 문자를 사용했으나 거란 문자가 나타난 이후부터는 거란 문자(대자, 소자)로 자신들의 언어들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나라가 망하고 그 이후에도 서요 등 요를 계승했던 거란족 거주지역의 국가들이 망하자 거란족들은 다시 한자를 사용하거나 몽골문자 등으로 표기했고, 몽골족에게 동화되면서(일부는 한족에 동화됨) 거란 문자는 물론 거란어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거란의 후손이자 거란에서 갈라진 지파인 다우르족들은 몽골문자나 만주문자를 사용하고 있다(한자나 러시아어의 키릴 문자도 사용한다).
한 편 거란족의 주요 성씨인 야율(耶律)은 "Yaruud"(쓸 때는 i.ra.uu.d 또는 ei.ra.uu.d)로 읽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족 출신이기도 한 중국 태생의 일본 언어학자아이신기오로 울히춘[7]여진어만주어, 거란어 연구의 권위자로서 명성이 자자하며[8], 한국에 전시되어 있는 거란의 청동거울을 보고, 이 유물을 조사하여 이와 관련된 책도 낸 적도 있었다.
거란문자 및 거란어를 보여주는 곳
거란대자와 거란소자 및 거란어 발음

2. 어휘



3. 같이 보기



[1] 예를 들면 나라를 뜻하는 "구룬"은 여진어 또는 만주어로도 나라를 뜻하는 단어이다.[2] 실제로 일부 단어는 거란어와 비슷한 단어도 있다. 하지만 선비어에는 거란어나 몽골어 뿐만 아니라 퉁구스제어나 투르크제어와도 비슷한 단어들도 적지 않으며, 선비어는 투르크어에도 속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는 등 논란이 있다.[3] 고대 일본어, 고구려어, 여진어 등을 포함한 고대 동북아시아 제어의 권위자다. 고구려어가 현대 한국어와 친연 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가설에 강력한 근거를 제시한 학자도 이 사람이다.[4] 2017년에 그가 내놓은 자료가 있다.[5] 명나라와 조선 사이 양국의 국경지대 끝 부분 이라 양국 모두 행정력이 닿지 못하여 자주 도적이나 산적의 약탈이 이루어지는 곳[6] 그런 약탈등을 막는 군사적 행정 기능을 하는 곳[7] 성씨를 보면 알겠지만, 청나라 황족 출신이다.[8] 요나라금나라, 청나라 시대의 사료들을 중국어일본어로 번역하는 연구에도 몸담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