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중기
郭仲奇
(106 ~ 171)
후한 말의 인물. 원성군의 넷째 아들.
이름은 비석의 글자가 없어져 알 수 없고 중기는 자이다.
그의 조상은 주나라의 자손으로 우나라와 괵나라가 건국되자 봉토를 받았는데, 진(晉)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비석에는 괵나라가 아닌 곽나라로 적혀 멸망한 것만 언급되나, 괵(虢) 대신 발음이 비슷한 곽(郭)을 성씨로 삼아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작위만 알 수 있고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첫째 형은 죽읍후상, 둘째 형은 상서시랑, 셋째 형은 제북상을 지냈다.
순하고 공손해 임기장이 되었다가 서주자사, 중산상, 낙양령을 지냈고 효렴으로 천거되고 공부에서 무재로 천거되었으며, 군의 오관연의 공조, 도관종사를 지냈다. 대장군부에서 세 번 벽소했고 청렴하다고 해서 비양장에 천거되었다.
비석의 문장으로 인해 소실된 부분이 있어서 완전히 알 수 없으나, 형이 질병으로 죽자 관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사도부에 벽소되었다가 북군중후에 임명되었고 171년 66세로 9월에 사망했다.
기주종사곽구비에 따르면 곽구가 원성군의 손자인 것으로 보아 곽구는 곽중기의 조카이거나 아들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