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원
國立故宮博物院[1]/ National Palace Museum of the Republic of China
공식사이트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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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원'''은 중화민국 타이베이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나라가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문물 없이 살 수는 없다. '''
본래는 중화민국 베이핑(현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고궁(자금성)에 있었으나 국공내전 시기인 1948년 장제스의 명령으로 그 유물 거의 대부분을 대만으로 실어와 타이중 등지에 일시 보관하다가 1965년 11월 12일 타이베이에서 재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엄청난 양의 유물 때문에 가끔 세계 3대 박물관에 포함 된다는 말이 있긴 한데, 이건 일본에서 유행하는 세계 3대 떡밥중 하나로 실제론 그런 리스트는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국립"(國立)이라는 칭호를 빼고 대륙의 고궁박물원과 구분하기 위해 타이베이 고궁박물원(台北故宫博物院)이라고 한다.[2]
중화민국에서는 주로 故宮이라는 약자로 많이 쓰인다(이건 유물의 출처인 베이징 자금성의 통칭이기도 하다). 배경지식 없이 한자만 보고 타이베이에 있는 궁궐로 착각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남부분원은 故宮南院으로 쓴다. 영어로 museum을 병기하기에 헷갈리지는 않는다. 참고로 타이베이에는 왕조의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궁궐도 없다.
2018년 기준 입장료는 성인은 NTD 350(약 12000원), 중화민국 국적자는 NTD 150, 학생은 무료이다(대학생의 경우 국제학생증을 지참하면 입장료가 할인된다).
2. 압도적인 유물 수
국공내전 당시에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이 패주하면서 베이징의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 중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유물 29만 점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유물 60만 8천점을출처 선발해서 가져갔다.[3] 이때 자금성에 있던 사고전서 문연각본 역시 옮겨져 현재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 중이다.
국내에는 일반적으로 2차 국공내전 후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을 가져간 것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 상당 수 유물은 열하사변 시기에 일본군의 화북 침략으로 인한 유물 파괴와 약탈을 피하기 위해 난징, 상하이로 대피시킨 것이다. 이후 중일전쟁 전황에 따라 쓰촨성 오지에 분산 보관하고 있었다. 이 때의 유물 대피 과정은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인데 홍콩 SCMP의 기사의 일러스트만 쭉 봐도 대략 이해할 수 있다.
종전과 동시에 유물들을 다시 난징으로 옮겼는데 이후 국공내전이 재발하면서 베이징으로 옮기는 계획을 연기했다가 오히려 베이징 함락 직전 자금성에 남아있던 유물들 중 중요 유물을 난징으로 들고 왔다. 이 유물들 중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3000여 상자만 추려서 난징에서 지룽으로 실어나른 것이 현재의 소장품이다.
서류상으로 고궁박물원 유물의 주인은 중화민국 정부가 아니라 중국 국민당이다. 국부천대 당시 장제스가 총통 자격[4] 이 아니라 국민당 총재 자격으로 유물을 이송시켰기 때문이다.
장제스가 타이완 섬으로 쫓겨날 때 유물들 가져간게 무작정 '그냥 다 내꺼야!'하는 개인적 욕심 같은 건 아니었다. 위에서 장제스 본인의 발언을 알 수 있듯이 장제스는 중국 전통문화에 애착이 많았다. 그래서 신문화운동부터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고 모조리 뒤집자는 공산주의는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중일전쟁의 급박함 속에서도 유물 먼저 챙겨서 온 것이나 훗날 중화문명부흥운동 등을 보면 중화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알 수 있다.
남부분원 개관 이후 6개월 단위로 취옥백채와 육형석은 교차 전시된다. 특히 이 취옥백채는 돈을 벌어다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대만 집집마다 하나씩 있다.[5]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전시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링크는 중국어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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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원 내부 식당 '고궁정화'(故宮晶華)[6] 에는 육형석, 취옥백채를 흉내낸 메뉴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고급 메뉴에 해당하니 값은 꽤 비싼 편.[7]
중국 대륙에 남은 곳도 이름에서 ‘국립’만 빼고 고궁박물원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국부천대 이후에 나온 유물들까지 합세해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타이완 섬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원보다는 아직 훨씬 못하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지금 대만 고궁박물관의 유물들은 청 황실에서 가지고 있던 황실 유물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높으신 분들이 대대로 모은 유물들이다 보니 퀄리티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건륭제가 수집하여 직접 목록까지 정리한 컬렉션은 압권. 실례로 '''법랑채 자기'''의 명품은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1940년대 이전 발굴된 유물들도 죄다 대만 고궁박물원이 소유하고 있어 발굴유물 수준도 상당히 높다. 소장품이 너무 많아 옥제품·도자기·회화·청동의 작품들은 3개월 단위로 한번씩 유물을 바꿔서 전시하는데 60여년째 겹치는 것이 없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다. 참고로 상설배치를 뺀 순환배치 작품들은 '''진짜로 2018년까지 명단이 겹치지 않고 있다'''. 순환배치 작품은 연 8,000여점 정도로, 실제로 '''한 바퀴를 돌리려면 60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남부분원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남부분원의 목적이 유물의 분산배치 보다는 대만 북부와 남부간의 문화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게 주요 목적이라 많은 전시물이 배치되지 않고 있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이라 국공내전 이후부터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도둑질한 유물들 내놔라"라고 하는데 범람연맹 쪽에서는 빨갱이 공산당 불법 정권의 억지 따위 알바 아니라는 입장이고, 범록연맹 쪽에서는 "늬들 문화재 문혁의 풍파에서 보호해준 것부터 감사해라"라는 입장. 오늘날 중국에서도 유물 돌려달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데, 극단적인 대만 독립세력들이 "중국에서 도둑질해 온 것들이니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8] . 아무튼 2008년에 마잉주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중국 고궁박물원에서 오히려 유물을 대여해준 적도 있다. 원래는 국립고궁박물원에서도 중국 측에 유물을 대여해주려 했는데 중국에서 안 돌려주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기사기사2
다만 유물의 대부분이 중국 고대의 청동기와 명나라말과 청나라대의 유물이라는 것은 단점.[9] 아무래도 국민당 정부가 급하게 튀면서 챙긴 것이 대부분인데다가 자금성에 있던 청나라 황실의 입맛에 맞는 유물들을 가져왔으므로 상당수의 유물이 고대 청동기, 그리고 유명한 서예나 그림 작품들, 그리고 명, 청시대의 궁중유물에 편중되어 있는 것을 사실이다. 비록 문화대혁명이 있었지만 50년대 이후에도 중국에서는 진시황 병마용갱, 마왕퇴, 삼성퇴 등등의 굵직한 고고학적 성과들이 있었고, 나름 체계적인 수집과 기증도 이어졌다. 그래서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은 현재 소장품이 160만점,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위상이 같은 중국국가박물관은 소장품이 100만점으로 소장품 60만점의 국립고궁박물원을 이미 까마득히 뛰어 넘었다.[10] 그래서 중국의 전체 역사와 전체 지역을 돌아보고 싶다면, 베이징의 자금성이나 중국국가박물관을 찾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타이완 섬의 역사를 보고 싶으면 타이난의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이 낫다.[11] 그럼에도 중국 고대 왕권의 상징이 정(鼎)이 이렇게 널렸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양이 소장되어 있다. 3층에 가 보면 최소 2~3천년 된 고대의 청동 정과 종[12] 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신석기시대의 옥 유물들을 위시로 2~3천년 된 옥 유물들이 3층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너무 오래 되어 정확한 연대 측정이 불가능한 토기 잔은 물론 국사 교과서에서 어쩌다 마주쳤을 당삼채(唐三彩) 중에서도 거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전시되었으므로 보기도 전에 실망부터 하지는 말자.
하여튼 여기 있는 유물들은 중국 역대 왕조가 수천년 동안 계승한 것이다. 즉, 국립고궁박물원은 중화민국이 중국 정통 정부임을 자처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한 물질적 유산이기도 하다. 1층의 중국 역사 오리엔테이션 전시실에 가면 중국 역사 마지막 부분이 중화인민공화국도 분단도 아니고 '''중화민국'''으로 되어 있는 것이 포인트. 여기 중국 대륙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는 걸 생각해보면 중화민국의 정통성 강조에 이만한 것도 없다.
중화민국 정부와 중국 국민당, 그리고 국민당원인 유력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중국 관련 유물을 모으고 있는지 경매시장에 나온 물건들을 대만인들이 많이 사가서 여기에 기증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진보당 정부에서도 국민당 지지하는 외성인들의 민심을 고려하여 유물 사 모으기는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매년 3,000여 점씩 컬렉션이 늘어나는 중. 2015년 이후 컬렉션 증가폭이 커지면서 2019년에는 상반기에만 무려 7,000점이 추가됐다. 그래서 2019년 8월 차이잉원 총통이 참석하여 고궁박물원 유물 70만 점 돌파행사도 개최했다.
2020년 제15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를 앞두고, 차이잉원 총통은 2035년까지 '''국립고궁박물원 100만 점 돌파'''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한궈위 국민당 후보는 100만점 돌파 기간을 2030년으로 단축하고 모든 유물에 대한 디지털베이스화를 공약으로 내놨다. 그런데 한궈위가 제안한 전 유물 DB화는 이미 추진중인 사업으로 2013년부터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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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우정에서 2019년 12월 국립고궁박물원에 있는 자금성 유물들을 소재로 만든 기념우표. 출처 중화우정에서 만드는 기념우표들 중 국립고궁박물원에 있는 유물을 소재로 한 기념우표가 많이 나온다. 중화우정 우체국 뿐만 아니라 국립고궁박물원 본원과 남부분원에서도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3. 재건축 논의
자이시에 있는 남부 분원 개장 이후,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 전체를 재건축하자는 안건이 올라와 있다. 오래된 박물관이라 동선이 불편한데 동선을 개선하고 '''100만 점''' 이상도 최대한 상설 전시할 수 있게끔 유물 전시량을 크게 늘리는게 목적이다. 현재의 고궁박물원은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문화재 개수가 4만 점 정도인데, 최소 30만 점 이상을 상설 전시할 수 있게 타이베이 본원 규모를 10배 이상으로 키우려고 하고 있다. 중국 국민당과 민주진보당 모두에서 대만인 민심 잡기에 이만한 물건이 없는지라 둘 다 긍정적이다. 2017년부터 공론화되었다. 타이베이 첩운 환상선 국립고궁박물원역이 개통될 때에 재건축 착공을 하는 것을 목표로 2019년 현재 사전 검토중이다.
4. 남부 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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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남부 자이(嘉義)에 국립고궁박물원 남부 분원이 완공되었다. 대만 남북의 문화격차 해소가 목적이며, 위에서 서술되었듯 본원 공간 부족으로 수장고에서 잠자는 유물이 많으므로 순환전시를 해도 유물이 넘쳐난다.
남부 분원의 명칭은 故宮南院 亞洲藝術文化博物館(아시아 예술 문화 박물관)이며, 본원이 중화의 문화유산이 컨셉이라면 남부는 아시아권을 망라하는 유물전시를 하고 있다. 남부분원은 중국 유물뿐만 아니라, 테마에 따른 여러 나라의 유물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건물크기에 비해 전시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적고 아시아 불교 문화 등을 테마로 하고 있어 본원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기에는 시범 개관을 한지 채 1주일도 안되어 건물에 비가 새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남부 분원은 타이완 고속철도 자이(嘉義)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접근 가능하며, 버스이용시 106번(4회), 166번(9회), 168번(4회) 버스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되고[13] 아니면 하루 10회 운행하는 무료셔틀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2020년 12월 25일부로 하루 11회 운행하는 7212번 버스가 고속철도역에서 이 곳까지 연장운행하여 버스편이 편해졌는데, 이 버스가 유일하게 시내에 있는 일반철도 자이역까지 운행한다. 고속철도역에서 택시이용시 150~200NT$ 정도이다. 나올 때는 택시 이용이 좀 힘들고 실제 이용 가능한 버스는 이 곳에서 출발하는 7212번 버스와 무료셔틀버스이므로 두 버스의 시간표를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5. 찾아가는 길
세계적인 박물관이지만 주변 지역이 산기슭이여서 타이베이 첩운과의 접근성은 별로 좋지 않다.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타이베이 첩운 단수이신이선을 타고 스린역[14] 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다. 이런 버스들 중 거의 다수는 종점이 고궁박물원인 버스다. 타이베이 첩운 원후선을 타고 오는 경우에는 다즈역에서 하차하여 棕13번을 탑승하는 것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더 낫다. 더운 날에는 정문까지 나갈 필요 없이 박물관 본관 지하 1층 출구 바로 앞에 정차하는 紅30, 小18(스린역), 棕20(젠난루역)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탈 경우 타이베이역을 기준으로 350~400NTD 정도 지불하면 갈 수 있다. 스린역에서 하차한 후 택시룰 타면 NTD130~150 정도에 입구로 갈 수 있다. 향후 순환선인 타이베이 첩운 환상선이 국립고궁박물원을 지날 예정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최소 2025년에나 개통된다.
6. 방문 시 참고 사항
- 대부분의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큰 가방과 음식, 음료는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빈 물통이라고 해도 물병은 절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므로 입장할때 미리 맡기자. 가방검사에서 물병이 발견되면 나가서 보관소에 맡기고 다시 들어가야 한다. (매표소 오른편에 물병만 무료로 보관해 주는 곳이 따로 있다.)
- 백팩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보관해야하며, 크로스백 등은 괜찮다.[15] 짐은 매표소 옆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맡긴다. 물품보관소는 대형마트에 있는 코인락커랑 유사하다. 짐을 보관할 때 10NT가 필요하며, 코인을 넣고 자물쇠를 잠구도록 되어있으며, 짐을 찾을때 반환된다. 잔돈이 없을 경우 물품보관소 앞 Information에서 친절하게 바꿔준다.
- 입장할 때 검표를 하고 금속탐지기를 지나간다.
- 박물관 소장품들을 카메라로 찍을 수는 있으나 카메라 플래시를 절대로 써선 안된다. 과거에는 완전 촬영금지 상태였던적도 있지만 지금은 플래시만 쓰지 않으면 사진 촬영을 저지하지 않으며, 전시품이 진열된 유리벽에도 과거의 사진촬영금지 스티커를 떼고 찍어도 된다는 스티커가 새로 붙어있다. 만약에 직원이 다가와서 뭔가 얘기할 경우, no flash라고 대답하면 괜찮다고 얘기하고 지나간다. 국보급 문화재나 중요 유물은 아예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표시를 유물 제목 옆에 두기 때문에, 촬영금지 표시가 없으면 촬영해도 무방. 다만 2층 회화실은 대부분 촬영 금지니 포기하는 게 속 편하다.
- 한국어 팜플렛이 제공되며 한국어 음성 해설도 지원이 되어 유물앞에 붙어있는 음성 해설 번호를 입력하면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꽤나 충실한 설명을 해주므로,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꼭 음성 해설을 듣도록 하자. 기타 유물 표제에는 한국어가 없이 중국어 간체/번체, 일본어, 영어만이 제공되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오디오가이드는 150NT이고, 대여 시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여권뿐 아니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도 된다.) 여담이지만 오디오가이드 터치스크린의 위, 아래 끝에서 스와이프를 하면 알 수 있는데 이거 iPod touch 뜯어서 만든거다(...) 심지어 계산기와 시계 앱까지 구동이 가능하다!
- 금토일과 휴일 낮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여기 유물들은 앞에서 설명했듯 중화권 문화유산의 정수다. 즉 박물관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야시장마냥 우글우글하는 중국대륙 여행객들의 인파 물결과 소란함에 유물 구경도 제대로 못할 수 있다. 특히 유명한 박물품의 경우 이어진 줄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박물관 구경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평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육형석이나 취옥백채를 편하게 보려면, 평일 오전에 도착하자마자 3층으로 직행하거나, 평일 3시 이후에 가는 것이 좋다. 오전 9시 오픈에 맞춰서 가도 조금 지나면 단체 여행객들이 시간차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반대로,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 기준으로 평일 오후 3시 지나서는 줄도 안서고 제법 한산하게 육형석이나 취옥백채를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다. [16] 중국인 관광객을 피해서 추천받는 관광 코스로는 보통 화요일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화요일에 가면 의외로 한산하고 조용하게 관람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남을 신경쓰고 조용하게 돌아다니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주로 화요일에 오기 때문에 더욱 조용.
- 상기한 이유로 인해 모든 전시실을 꼼꼼히 느긋하게 관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고로 고대 청동기 시대 및 명/청대의 유물이나 취옥백채 등을 위주로 알짜배기만 관람하고 나오거나,[17] 그냥 아예 박물관 관람에만 하루 전체를 투자한다는 식으로 한나절 넘게 구경하거나 하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 가이드들도 6시간 정도 관람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하니 알아서 타겟을 정해서 갈 것.
- 전시관 안을 구경하다 보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전시실이 상당히 많다. 예전에 설계되어 그런지 동선이 다소 중복되거나 움직임을 최소화 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아 많이 걸어야 한다.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욕심 내서 너무 많이 보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 휴게 장소라도 건물 내부인 경우 신발을 벗지 못하게 제지하므로 주의하자.
- 택시를 이용하고 싶다면, 박물관 지하1층의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얘기하면 택시를 불러준다. 대체로 5분 이내에 택시가 오는 것 같고, 인포데스크 왼쪽 출구 앞에서 곧바로 탑승할 수 있다.
- 본관은 오후 6시반에 문을 닫으나 매주 금,토요일은 9시까지 야간개장을 하므로 넉넉히 보고싶다면 금토 오후 시간대를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본관 옆에 있는 제2전시관은 오후 5시에 문을 닫고 상설 개관이 아니므로 미리 검색해보고 가는 것이 낫다.
7. 기타
중국 역사에 관심있거나 박물관 덕후라면 하남(河南)박물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역사박물관(國立歷史博物館) 관람도 추천한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 국민당에서 유물들을 모아 임시수도 충칭까지 옮겼다가 국공내전으로 원대복귀 시키지 못하고 계속 보관하던 중 국부천대할 때 모두 가져왔다. 박물관 자체는 아담하지만 당삼채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규모에 비해 볼 만한 전시품이 많다. 게다가 고궁박물원에 비해 훨씬 여유있게 관람할 수 있다. 고궁박물원에서 버스를 타고 스린역으로 가 샹산 또는 다안행 지하철을 탄 다음 중정기념당역 1번 또는 2번 출구로 올 수 있다. 샤오난먼역이 좀 더 가까우며 입장료는 30NTD. '''아쉽게도 2019년 하반기부터 리모델링으로 인한 휴관중이다. 빨라야 2021년 초에나 재개관 예정이다.'''
반면 국립고궁박물원 근처 도보 5분 정도 거리에는 대만 원주민을 주제로 한 사설박물관[18] 인 순이 대만원주민박물관(順益台灣原住民博物館)이 있다. 중화권 문화의 총본산과 대만 고유문화의 상징이 서로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준다. 대만원주민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원의 통합 티켓도 팔고 있으니, 방문 예정이라면 참고하면 좋다.
대만에 대한 역사를 다루는 곳은 국립'''대만역사'''박물관(國立臺灣歷史博物館)이 있다. 타이베이가 아닌 타이난에 있는데 타이난 시내가 아니라서 교통편이 매우 불편하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융캉역이지만 간선열차가 일부만 정차하는 역이다. 대만 역사에 대해서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긴 하나 전시된 유물이 적을 수 밖에 없는지라 커다란 교육전시관 느낌을 준다.
그 외에 타이베이역 근처에 위치한 국립대만박물관(國立臺灣博物館)도 있는데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건물 규모도 작고 전시 컨텐츠도 적은 편이다. 1913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현존하는 박물관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타이완성 성립였다가 많은 성립 기관의 국립 전환 때 같이 전환된 것이다. 본관 외에 분관이 있는데 박물관 맞은편 옛 대만토지은행 건물에 위치한 토지은행 전시관은 자연사박물관 같은 곳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옛 토지은행 관련 물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입장권 한 장으로 동시에 관람 가능하다. 중정기념당 근처에 위치한 남문분관은 여러 잡다한 내용이 전시되고 있다. 베이먼역에 있는 철도부분관은 과거 타이완철로관리국 건물로 쓰였던 곳을 철도박물관으로 개조하였다.
KOF 98 UM에서 대만 스테이지로 등장한다.
[1]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쓰는 간화자로는 国立故宫博物院이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정체자를 사용해야 할 때에는 國立故'''宫'''博物院이라고 쓰는 게 원칙이다. 물론 원칙을 안 따르고 '宮'으로 적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참고로 宮/宫에 들어 있는 呂/吕(음률 려)는 원래 전통적으로 서로 통용되던 이체자이다.[2] 국공내전 직후 모든 시설을 국유화하였고 1950년대 초반 중화민국 시절에 붙인 국립이라는 글자를 일제히 떼어낸다. 이런 비슷한 사례로는 국립칭화대학이 있다.[3] 현재는 약 69만 7천여점에 이른다.[4] 당시 장제스는 총통직을 사임한 상태였기 때문에 총통이 아니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중화민국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장제스였다.[5] 아이러니하게도, 배추 위에 여치와 메뚜기가 올라가 있는 것에서 보듯, 원래는 '''부를 갉아먹는 벌레와 같은 부정부패를 경고하는''' 의미로 제작된 보물이라고 한다. 백채의 발음이 '돈을 벌어다 준다'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기 때문인데 어느 새 전자의 의미(부정에 대한 경고)는 퇴색되고 배추만 남은 것. 대만 집집마다 있고 기념품점마다 지겹도록 널려 있는 옥배추도 취옥백채처럼 생긴 것보다는 그냥 옥으로 다듬어놓은 꽃핀 배추에 가깝다.[6] 타이베이에서 꽤 유명한 호텔인 리젠트 타이베이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7] 육형석 요리는 380 NTD(한화 1만 X천원 대), 취옥백채는 220 NTD(한화 8천원 대 중반). 취옥백채는 당연하겠지만 여치와 메뚜기가 올려져 있지는 않고, 새우가 올라가 있다. [8] 사실 이들은 '동산'인 이 유물들뿐만 아니라 '부동산'인 진먼과 마쭈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진먼, 마쭈가 정치적으로 국민당 성향이 매우 짙은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9] 그래도 고대 청동기와 자기 유물들은 상설전시, 명청대 유물은 순환전시로 진행되고 있어 둘러보는 데 있어서 비율상으로 부족하지는 않다. 그만큼 소장품의 수가 방대하다는 이야기.[10] 베이징 수도박물관의 30만점, 국사박물관, 원명원박물관 등등을 합치면 베이징에 있는 유물의 수는 결코 만만치 않다.[11] 전시품은 대다수가 복제품이지만 타이완 섬의 역사를 전시 순서에 따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물을 보고 싶다면 그리 추천할만하지는 않으나, 역사를 보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 [12] 복제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좋은 유물이 널려있다. ㄷㄷㄷ[13] 중간에 정차할 곳이 없어 한 정거장이지 4km 떨어져 있으니 걸어갈 생각 말자. 여기는 역도 박물관도 시내와는 엄청 떨어진 시골이다.[14] 장제스 부부가 살던 스린관저가 근방에 있으며 관람 가능하다.[15] 이는 많은 인파때문에 등에 맨 가방이 통행에 불편을 줄 수 있고 예술품들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16] 솔직히 전시 설명을 자세히 정독하지 않으면 그저 '사람들이 많이 보는 유물'에 불과하다.[17] 단체 관광객들이 주로 이렇게 한다.[18] 미쓰비시자동차를 수입판매하는 순이자동차그룹에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