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탓
1. 개요
기분 탓(한국어)
気のせい(きのせい)(일어)
You're just imagining it(영어)
일본어 관용구 気のせい(키노세이, 직역하면 기분 탓)가 어원인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표현이다.
명사의 바로 뒤에 '탓'이 붙는 것은 아무리 늦어도 1920년대 이후부터 널리 쓰이던 표현이고 국립국어원 역시 질의응답에서 '-탓'이라는 표현은 15세기 이후부터 쓰인 것이므로 해당 표현은 일본어의 잔재라 보기 어렵다는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명사 + '탓'이라는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기분 탓'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한국에도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본래 '~탓'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원인으로 쓰거나 혹은 잘못된 것을 원망하거나 그에 대한 핑계나 구실로 쓰는 표현이다.[1] 하지만, 실제 '기분 탓'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착각했거나 확신이 없을 때, 자신의 기분이 안좋아서라는 변명을 하는 구실로 쓰인다. 즉 기존의 '내가 잘못봤나?' 나 '내가 착각했나봐.' 등등 상황에 따라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던 말이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기분 탓'이다라는 말 하나로 합쳐진 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분 탓'이라는 표현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약 1990년대말 이후이다. 실제로 1990년대의 PC통신에서 기분 탓이라는 용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인터넷 상에서도 2002년 들어서 처음 발견된다. 게다가 정말로 'XXX의 기분/감정이 원인이다'라는 의미가 아닌, 착각/고정관념 등이 원인인 경우에 '기분 탓'이라고 말하는 어법 자체를 사용하지 않거나, 모르는 한국인들도 매우 많다. 특히 1980년대 이전 태생의 한국인은 기분 탓이라는 말이 굉장히 어색하고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기분과 의미가 비슷한 '감정'이라는 말로 바꾸어 '감정 탓'이라고 해보면 (정말로 기분 때문에 그렇다는 뜻이 아닐 때에) 매우 어색함을 알 수 있다.[2] 1960년대 이후에 출간된 수많은 일본어 번역서적, 혹은 일본어 버전 중역을 통해 들어온 서양 서적에 수록된 직역체 단어가 현재까지도 마치 원래 한국어였던 것처럼 쓰이는 경우는 흔하다. '기분 탓' 역시 그것들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1980~90년대생들은 Elf사의 동급생이라는 성인용 게임을 통해 익혔을지도 모른다.
각종 매체나 인터넷상에서는 반어적으로 많이 쓰이며 어찌보면 ~하면 지는 거다와 비슷한 용례. 말하고 싶은 바를 유머러스하게 강조하거나, 혹은 아예 대놓고 간접적인 스포일러 요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픽션에서 등장인물이 무언가를 보거나 생각하고 '기분 탓이겠지'라며 넘어가면 99% 그 무언가에 의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그런 것을 알아채고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경우도 있다.XXX가 OOO로 보이는 것은 기분 탓입니다
=(사전적 의미)XXX는 마치 OOO같지만, 아닙니다
=(실제 의미)강조하건대 XXX는 OOO입니다
2. 적용된 예시
개그 콘서트의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안영미가 '기분 탓이겠죠'를 꾸준히 유행어로 밀었다. 물론 표현 자체는 안영미가 밀기 전부터 통용되고 있었다. 보통 안영미 자신의 특정부위 신체사이즈와 관련한 개그와 함께 쓰이기도 한다. 이후에는 나는 킬러다에서도 비서 송병철이 줄기차게 사용해댄다.
잠입 요소가 있는 액션 게임에서는 은근히 자주 보이는 대사 중 하나이다. 그 의도는 NPC가 플레이어에게 '나는 뭔가 미심쩍어서 여기로 왔었지만 아무런 눈에 보이는 문제를 찾을 수 없어서 기분 탓이라는 판단 아래 의심을 거두고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알려주는 장치 정도(...).
엘더스크롤 시리즈와 폴아웃 시리즈(중 베데스다가 인수 후 만든 시리즈)들에서도 은신 상태에서 어떤 행위로 NPC의 경계심을 살만한 짓을 했다가 잘 숨어서 NPC의 경계 시스템이 해제되면 '바람 소리였나...'혹은 '또 쥐 때였나...' 같은 여러 대사를 날리며 제자리로 돌아가며 이 중에 '기분 탓이려니...'하는 대사도 있다. 그런데 가끔씩 '''머리에 화살이 박히거나 옆에 동료가 죽어있는데'''도 이 말을 하기도 한다.
메탈기어 시리즈에서 적병이 수상한 대상을 얼핏 발견하고 ? 상태에서 다가왔다가 특별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할 때에도 이 대사를 시전한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을 기분 탓으로 돌려버리는 안일한 근무태도를 보여준다. 일본 원문 자체가 시리즈 대대로 '''気のせいか''' 이니... 게다가 친절하게 큰소리로 외쳐주고 돌아가는 고마운(?) 적병들이다. 수십번을 반복해도 늘 기분 탓으로 돌리며 침투를 용이하게 해주는 존재들이며 덕분에 '''무능한 병사들'''이란 소리를 듣는다.
세인츠 로우 4의 아샤 오데카 전용 미션은 전형적인 잠입 액션 게임의 클리셰들을 패러디한 미션인데 여기서 적들은 아예 대놓고 플레이어더러 들으라는 듯이 기분 탓이라며 넘긴다. 심지어 이 미션은 '반드시 조명부터 끄고 적을 죽여야 클리어'이며 적부터 죽이면 상황이 어쨌든 게임 오버인데다가 작중 경비원 캐릭터가 대놓고 자기 직업에 대해 '정해진 루트맨 뺑이 치다 뭔가 수상한게 감지되어도 딱히 보이는게 없으면 기분탓이라며 넘기는게 내 직업'이라고 읊기도 한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 전투조류의 와무우도 이 대사를 시전했는데 상황이 좀 거시기하다. 요약하자면 와무우가 필살기 신사폭풍을 날려 주인공 죠셉 죠스타를 공격했는데, 공격받은 직후 죠셉은 땅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안해서 와무우는 죠셉이 죽은 줄로 알고 지나친다. 그러나 실은 안죽었고, 죠셉은 와무우 뒤에서 와무우가 안 볼때 몰래 슬금슬금 기어서 이동하다가, 뭔가 낌새를 챈 와무우가 뒤를 돌아보면 다시 죽은 척을 시전하고, 그런 죠셉을 본 와무우가 '기분 탓인가'라며 다시 시선을 돌리는 식. 이게 뭐가 거시기하냐고 묻는다면, 앞서 서술했듯 죠셉은 몰래 이동하고 있어 '''처음 쓰러진 위치와 나중 위치가 명백히 바뀌어 있음에도''' 와무우가 기분 탓이라며 넘겨버린 것이다. 심지어 한번 더 그랬다.[3]
한편 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 DIO가 주인공 쿠죠 죠타로를 무수한 나이프 투척으로 쓰러뜨려놓고 죠타로가 미동도 하지 않자 죽은 척을 하는지를 의심해 호흡과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탐구하고는 아무 반응도 없자 '죠타로가 살아있다고 생각한건 기분 탓이였나...'하고 접근했다가 제대로 한 방 맞게 된다.
사운드 호라이즌의 7번째 앨범 Märchen의 1번 트랙 '초저녁의 노래'와 5번 트랙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의 낡은 우물'에 사용되었다. 초저녁의 노래에서는 메르헨이 "누군가에게 사랑 받았었다는 기분이 들었어."라고 하자 다른 공주들이 바로 "하지만 그건 기분 탓이야"라고(...) 대꾸한다.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의 낡은 우물에서는 우물에 빠져 익사한 소녀가 "나는 죽은 거야? 천국이야? 기분 탓(気のCeui[4] )이야? 모르겠어." 라고 노래한다.
전자전대 메가레인저의 ED곡 제목이 '기분 탓일까(氣のせいかな)'이다.[5]
마법진 구루구루에서는 아라하비카 에피소드 때 니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가야의 부하들이 기분 탓이겠거니 했었는데, 가야는 '''"기분 탓이라는 생각이 들 때 사실은 반드시 거기에 뭔가 있다는 게 만화의 상식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뭐가 떨어졌는지 수색한다. 원래 이 만화에 이런 클리셰 비틀기가 많은 편.
[1] 일본어의 ~せい란 표현도 한국어 만큼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다.[2] 하지만 기분과 감정은 그 쓰임새가 다르다 기분이 좋다를 감정이 좋다고 해도 이질감은 느껴진다.[3] 개그의 정점은 정작 와무우의 성우는 '기분탓인가'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아온 남자들의 성우도 겸한단것.[4] 소녀 역을 맡은 가수 Ceui(세이)의 이름을 넣은 말장난.[5] 이 곡은 21~30화에는 나오지 않았으며 여기서는 하계 한정 ED곡으로 엔카풍인 'Bomb Dancing Megaranger'가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