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1884)
권흥규가 일제 헌병에게 피살당하자, 김세환은 군중과 함께 다음날 권흥규의 시신을 헌병들로부터 인수한 뒤 목면 안심리에 있는 고인의 자택으로 운구했다. 이때 군중 1,000명은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그의 명정에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깃발과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내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헌병대는 이들을 공격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해 권흥규의 조카딸과 상여꾼 등 5명을 사살했다.
이후 체포된 김세환은 1919년 4월 22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청양헌병분견소에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그 후 청양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7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김세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김세환은 1884년 6월 6일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5일 오후 3시경 충남 청양군 정산시장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이때 향교 직원 이후 체포된 김세환은 1919년 4월 22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청양헌병분견소에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그 후 청양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7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김세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