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서
김형서는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에는 평안남도청 토목과의 공무원으로 일했다. 1950년 4월에 월남하였고 , 전라남도 장흥군에 정착하여 가내수공업 업체를 운영하며 피난민연락소 업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한국 정부는 UN을 힘입어 이북출신 실향민들의 남한 정착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는데 55년에 ‘안양 당암, 사촌’ 정착사업장을 맡고 있던 그는 해안선을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다. 그는 1958년 사람들의 이주를 지도해 장흥 덕산리를 만들었으며 1963년 한국정착사업개발 흥업회’를 출범시켰다. 황해도 피난민을 주력으로 ‘해창사촌1차방조제, 덕산저수지, 해창저수지 , 해창2차방조제를 만들었고 1966년에 ‘3,1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66녓 5월30일, ‘대덕’ 자조정착사업장 벌판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후 ‘관산 고마, 관산 장관, 용산 풍길’ 사업장을 66년 말에, ‘대덕 덕촌’ 사업장을 68년 말에 완공했다.(6개사업장 면적1,646ha.) 드디어 68년 3월경에는 <김형서 공적비>가 <보사부장관(정희섭) 공적비>와 나란히 장흥군청 앞에 세워지고, 69년 8월경의 ‘막사이사이상’ 수상을 계기로 ‘안양 덕산’ 노변에 <김公형서 공적불망(不忘)비>가 세워졌다.
또 ‘김형서’의 첫 사업(사촌1차방조제)을 최초 후원했던 보성성당과 천주교단에 감사하는 <시혜비>가 안양 사촌방조제 갑문 앞에 만들어졌고 1969년 막사이사이상 공익사업부문 수상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