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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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프로바둑기사. 1950년생이다. 은퇴 당시 기준으로 九단.
입단 후 1970년대 초에는 대회 우승도 몇 차례 차지했을 정도의 강자로, 특히 초창기 기왕전에서 몇 차례 우승하여 '기왕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만 이후 조훈현의 등장으로 정상권에서는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특이점이라면 한국 최고의 대국속도를 자랑한 속기파로, '속기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였다. 역시 속기파였던 서능욱 九단과의 대국에서 시작 후 계가를 할 때까지 총 '''8분'''을 쓴 경우도 있었다고(...).[1] 그만큼 너무 빠르게 둬서 대국이 너무 빨리 끝나버린 탓에, 입회인이 당황하기까지 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다만 그시대의 속기파들이 그렇듯이 속기가 잘 되는 날은 수가 번쩍번쩍 빛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어이없는 수로 자멸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 빗대 동료기사들이 "어떤날은 백발백중, 어떤날은 백발구십중, 어떤날은 백발 십중 이걸 다 합치면 백발희중 아닌가~"하고 놀리기도 하였다고..
또한 대국을 어이없는 수로 망친 뒤에는 "오늘도 사진을 찍고왔다"고 자책했는데, 이는 사진기의 효과음인 찰칵이 착각과 비슷해서.
주당으로도 유명해서 기왕전 우승상금[2] 을 술값으로 다 날린다든지, 술집에서 지인을 기다리며 하이네켄 맥주를 '''52캔'''을 마셨다든지(...) 하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다.
1999년 만 49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사유는 '일신상의 이유'였다고 하는데... 은퇴 이후에는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거나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며, 인터넷 바둑도 즐겨 둔다고. 2013년에는 아마추어 팀리그인 내셔널리그에 '''선수'''로 출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3]
2020년도 최근 프로기사와의 대국이라 함은 당연히 유창혁 사범과의 아마5강 쏘팔코사놀 끝장승부 대국이다.
대한민국의 '''前''' 프로바둑기사. 1950년생이다. 은퇴 당시 기준으로 九단.
입단 후 1970년대 초에는 대회 우승도 몇 차례 차지했을 정도의 강자로, 특히 초창기 기왕전에서 몇 차례 우승하여 '기왕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만 이후 조훈현의 등장으로 정상권에서는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특이점이라면 한국 최고의 대국속도를 자랑한 속기파로, '속기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였다. 역시 속기파였던 서능욱 九단과의 대국에서 시작 후 계가를 할 때까지 총 '''8분'''을 쓴 경우도 있었다고(...).[1] 그만큼 너무 빠르게 둬서 대국이 너무 빨리 끝나버린 탓에, 입회인이 당황하기까지 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다만 그시대의 속기파들이 그렇듯이 속기가 잘 되는 날은 수가 번쩍번쩍 빛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어이없는 수로 자멸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 빗대 동료기사들이 "어떤날은 백발백중, 어떤날은 백발구십중, 어떤날은 백발 십중 이걸 다 합치면 백발희중 아닌가~"하고 놀리기도 하였다고..
또한 대국을 어이없는 수로 망친 뒤에는 "오늘도 사진을 찍고왔다"고 자책했는데, 이는 사진기의 효과음인 찰칵이 착각과 비슷해서.
주당으로도 유명해서 기왕전 우승상금[2] 을 술값으로 다 날린다든지, 술집에서 지인을 기다리며 하이네켄 맥주를 '''52캔'''을 마셨다든지(...) 하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다.
1999년 만 49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사유는 '일신상의 이유'였다고 하는데... 은퇴 이후에는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거나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며, 인터넷 바둑도 즐겨 둔다고. 2013년에는 아마추어 팀리그인 내셔널리그에 '''선수'''로 출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3]
2020년도 최근 프로기사와의 대국이라 함은 당연히 유창혁 사범과의 아마5강 쏘팔코사놀 끝장승부 대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