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스/배경
1. 단문 배경
자칼의 머리를 한 위풍당당한 반인반수 형상의 초월체 나서스는 고대 슈리마의 영웅적인 인물이었다. 날카로운 지력을 소유한 그는 지식의 수호자이자 최고의 전략가로서 수세기 동안 슈리마 제국을 번영으로 인도했다. 제국의 몰락 이후엔 칩거에 들어가 전설 속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슈리마의 고대 도시가 되살아나면서, 제국의 몰락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
2. 장문 배경 #
초월 의식의 대상자로 결정되기 오래전부터 나서스는 누구나 알아주는 수재였다. 남다른 학구열로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슈리마의 역사와 철학의 고전을 외우고 비평했다. 한편 동생 레넥톤에게서는 형과 같은 열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분한 일이라면 질색을 하는 레넥톤은 동네 아이들과 싸움을 벌이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래도 형제는 우애가 돈독했다. 나서스는 행여나 동생이 말썽을 일으킬까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성년이 된 나서스는 명문 '태양의 신학교' 입학생으로 발탁되었다. 제국 최고의 교수진 밑에서 공부한 그는 군사 전략과 병참에 대한 남다른 이해로 사상 최연소 장군이 되었다. 뛰어난 군인이기도 했지만 실제 교전보다는 전략 수립에 특히 천재성을 발휘했다. 자신의 책무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깊은 배려심으로 병사들이 제때 충분한 보상을 받고 공정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였다. 슈리마 제국의 필멸자 군대에 수많은 승리를 안겨다 준 나서스에게 병사들은 하나같이 존경을 표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 레넥톤 역시 군에 입대하여 나서스의 지휘 아래 유능하고 믿음직한 전사로 활약하며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나서스는 승리를 거두며 무수한 찬사를 받으면서도 전쟁을 즐기지는 못했다. 슈리마 제국의 빠른 확장에 있어 전쟁이 갖는 중요성이라면 적어도 이제는 다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조국을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정복한 지역의 지식을 모아 보존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서스 부대와 싸워 패배한 여러 문명의 모든 서책과 문서, 사상은 그의 지시에 따라 슈리마 전역의 도서관과 보관소에 소장되었다. 후세에 지혜를 전하고 제국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수십 년을 나라에 몸 바쳐 일하던 나서스는 원인 모를 중병에 걸린 후 생사를 헤매기 시작했다. 주치의는 살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고 침통한 얼굴로 진단을 내렸다. 백성들은 모두가 사랑한 제국의 가장 밝은 별 나서스를 기리며 실의에 빠졌다. 황제는 초월체 군단의 세타카에게 나서스의 업적을 태양 원판 앞에서 저울질해 달라고 손수 부탁했다. 하루 밤낮이 지나자 세타카의 사절들은 나서스가 초월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전해 왔다. 나서스는 허약한 상태였지만 당장 초월 의식을 치러야 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전쟁 지도자로 성장한 레넥톤은 형의 곁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고향으로 향했다. 레넥톤은 유리 같은 뼈에 살가죽만 남아 있는 나서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너무 약해진 나머지 계단을 제대로 오르지 못했고, 태양 원판의 황금색 빛이 쏟아지는 제단 정상을 눈앞에 둔 채 주저앉았다. 레넥톤에게 나서스는 자신의 안전보다 중요했다. 힘없이 만류하는 나서스를 들어 안고 제단 위로 오른 그는 죽을 각오도 불사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파괴되지 않았다. 빛이 가시자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신성전사가 나타났다. 두 형제 모두 살아남아 초월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나서스는 자칼의 머리와 거대한 몸을 가진 지혜와 힘의 화신이 된 채 서 있었다. 레넥톤은 악어의 형상을 한 근육질의 거인이 되어 있었다. 나서스는 필멸자로서는 상상도 못 할 비범한 힘을 갖게 되었다. 오래도록 공부하고 사색할 수 있게 된 것은 초월의 가장 큰 이점이었다. 결국엔 엄청난 저주가 되었지만... 이내 나서스는 레넥톤의 야만성이 두드러진 것을 걱정했다. 나시라미를 정복할 때 나서스는 레넥톤이 대도서관을 완전히 파괴하고 자신에게 맞서는 모든 이를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형제는 폐허에서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고 대치했다.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분노와 실망에 가득 찬 나서스의 눈빛을 보고 나서야 레넥톤은 야만적인 충동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수치심에 발길을 돌렸다. 제국에 저항하는 이케시아와의 전쟁은 수많은 초월체를 바꾸어 놓았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며 공허해진 그들은 인내심을 잃어 갔다. 나서스는 불멸의 군단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것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알아내기 위해 수백 년 동안 홀로 연구에 파묻혔다. 아지르 황제의 초월이 참혹하게 끝났을 때, 나서스와 레넥톤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둘러 돌아왔을 땐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형제는 수없이 많은 슈리마인의 시체 위에서 아지르를 배신하고 사악한 에너지의 소용돌이가 된 제라스에게 맞섰지만 그를 죽일 수 없었다. 나시라미 학살에 대한 참회였을까? 분노에 휩싸인 레넥톤은 제라스를 붙잡아 도시 밑에 있는 황제의 능 안으로 끌고 들어간 뒤 나서스에게 입구를 봉하라고 외쳤다. 나서스는 절실한 심정으로 다른 방법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비통한 마음으로 동생과 제라스를 한없는 어둠 속에 영원히 가두고 말았다. 태양 원판은 제라스의 마법으로 힘을 잃은 채 땅으로 추락했다. 남은 신성전사들은 태양 원판의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도시의 오아시스에서 흘러나오던 신성의 물줄기가 메마르며 기아와 죽음이 계속되었다. 한동안 분열된 제국을 결속하려던 다른 초월체들은 끊임없이 대립하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물러난 나서스는 가슴을 조이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했다. 텅 빈 채 서서히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폐허 위를 걸으며 모든 것이 사라진 현실을 한탄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스는 예전의 삶과 목표를 하나둘씩 잊어 갔다. 그러던 중 황제의 능이 필멸자에 의해 다시 발견되어 봉인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서스는 본능적으로 제라스가 풀려난 것을 알았다. 아주 오랜만에 활기가 차올랐다. 나서스는 아지르의 부활과 다시 모래 위로 솟아오른 태양 원판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라스는 여전히 큰 위협이었으나 새로운 신성 황제에게는 앞으로 많은 도움과 조언이 필요했다. 나서스는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설렘을 느꼈다. 어쩌면 사랑하는 동생 레넥톤과도 재회할 수 있을지 몰랐다. |
3. 우로보로스 #
나서스는 방랑자이자 은둔자였다. 태양을 피해 밤중에만 움직였다. 한 소년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 아이가 언제부터 따라왔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나서스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본 필멸자들은 모조리 줄행랑을 놓았다. 오로지 그 소년만이 예외였다. 그들은 함께 옛 슈리마의 영광이 잠든 땅을 누비고 다니며, 영양 결핍으로 부실해진 몸으로 사막의 모래바람을 견뎌냈다. 나서스는 고립감에 의식이 갉아먹히는 것을 느꼈다. “나서스, 봐요. 저기 모래 바다 위에요.” 소년이 말했다. 나서스는 기름에 떡진 털을 북북 긁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제 초월체의 갑옷을 입지 않았고, 털로 뒤덮인 자칼의 몸에 닳아 해진 천만 걸치고 있었다. 황금 건축물들은 과거와 함께 묻힌 것이다. “피리연주자자리가 떴군.” 나서스는 메마른 광야의 하늘에 펼쳐진 별자리를 둘러보며 낮고 굵은 음성으로 말했다. “곧 계절이 바뀌겠어.” 나서스는 소년의 조그마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소년의 얼굴에는 슈리마 혈통 특유의 부드러운 윤곽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햇볕에 그을리고 고된 여행에 거칠어졌다. ‘왜 네가 내 일을 걱정하느냐? 너는 곧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것이다. 너처럼 어린 아이가 멸망한 제국의 폐허를 헤매며 살아서야 되겠느냐.’ 나서스는 소년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짧은 순간들이 모여 거대한 존재의 순환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법칙이다. 소년이 나서스를 따라나선 순간부터 이미 그 아이의 인생은 바뀐 것이다. 무거운 회한이 몰려왔다. 이건 단순히 그가 스스로 짊어졌던 끝없는 죄책감의 연속이 아니었다. 소년과의 동행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나서스의 영혼을 깊이 채우고 있었다. 소년이 담담하게 말했다. “날이 밝기 전까지 점성술사의 탑에 닿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려면 절벽을 올라야겠지만요.” **** 조금만 더 올라가면 탑에 도착할 것이다. 나서스는 암벽 표면을 손으로 붙잡으면서 거침없이 기어올랐다. 이곳을 등반하는 건 너무나 익숙해서 그는 심지어 일부러 위태롭게 매달리며 스릴을 즐기기까지 했다. 한편 소년은 암벽에 난 구멍이나 틈을 최대한 움켜쥐면서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문득 심란해졌다. ‘만약 내가 죽으면 저 천진한 아이는 어떻게 될까?’ 절벽 꼭대기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좁은 바위들 틈새를 타고 흘러내렸다. 소년이 먼저 맨 꼭대기의 바위를 짚고 기어올라갔다. 나서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안개 속 어딘가에서 금속이 돌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억양으로 이야기하는 말소리도... 나서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가끔 유목민들이 점성술사의 탑에 있는 우물을 찾아오기도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이 시점에는 아무도 없는 게 정상이었다. 소년은 두려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가만히 멈춰섰다. “불은 어딨죠?” 소년이 물었을 때, 컴컴한 밤 공기에 말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거기 누구냐!” 소년의 외침이 어둠을 갈랐다. 그 순간 저편에서 등불이 반짝 밝혀지고, 말을 탄 사람 여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병들. 침입자들이었다. 나서스는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들은 총 일곱 명이었고, 휘어진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싸울 의사는 없는 듯이 검을 검집에 꽂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 봐도 전투력과 교활한 속내를 짐작할 만했다. “탑지기는 어디에 있는가?” 나서스가 묻자, 용병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탑지기 부부는 자고 있습니다. 저녁 공기가 쌀쌀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요.” 또 다른 용병이 나서서 말했다. “현명한 자칼이시여, 제 이름은 말루프라고 합니다. 저희는 황제께서 보내신 전령들입니다.” 나서스는 분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앞으로 성큼 나섰다. “그가 내 답을 받아오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답을 해주지. 이 몰락한 시대에 황제 따위는 없다.” 소년도 반항적인 태도로 앞으로 걸어나왔다. 반면 전령들은 등불 뒤편으로 물러났다. 방어 자세를 취한 그들의 몸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른 전갈이나 전하고 떠나시지.” 소년이 말했다. 말루프가 말에서 내려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셔츠 안자락에서 두꺼운 검은 사슬에 매달린 거무스름한 펜던트를 내밀었다. 그 금속 펜던트의 형태를 보니 나서스는 마법과 파괴가 뒤얽힌 과거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제라스 황제께서 선물들을 보내셨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모실 하인들이고요. 폐하께선 이 나라의 새로운 수도, 네리마제스에 당신을 모셔 환대를 베풀고 싶다 전하셨습니다.” 그 말에 나서스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소년이 즉시 무릎을 꿇어 앉더니 무거운 돌을 집어들며 외쳤다. “죽어라!” “잡아!” 말루프가 명령했다. 소년이 집어던진 돌이 완벽한 호를 그리며 용병을 향해 날아갔다. 용병의 뼈를 그대로 박살낼 기세로. “레넥톤, 안 돼!” 나서스는 고함을 질렀다. 용병들은 건성으로 하던 연기마저 그만두고 본색을 드러냈다. 용병들은 탑지기와 그 아내가 잠들었다고 했지만, 실은 죽은 것이 분명했다. 제라스의 환대는 싸늘한 강철 같을 테니까. 진실이 되살아나고, 환각은 허물어졌다. 나서스는 소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소년의 환상은 기억 저편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곳에는 별빛이 비치는 땅만 있을 뿐이었다. “잘 가렴, 동생아.” 나서스는 중얼거렸다. 제라스의 전령들이 말을 몰고 나서스의 주위를 둘러쌌다. 말루프가 지체없이 검을 뽑아 나서스를 공격했다. 나서스는 고통을 삼키고, 말루프가 다시 검을 휘두르기 전에 재빨리 칼날을 움켜쥐었다. 검이 나서스의 손아귀에 붙들려 꿈쩍도 하지 않자 말루프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내가 과거의 기억 속에 파묻혀 있게 내버려두지 그랬나?” 나서스는 말루프의 검을 낚아채 날려버리고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말루프를 거대한 몸으로 깔아뭉갠 뒤, 곧바로 그 옆에 있는 용병을 말에서 끌어내려 공격했다. 치명상을 입은 용병은 모래밭에 나동그라졌고, 겁 먹은 말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저자는 미쳤다!” 남은 용병 하나가 외쳤다. “지금은 제정신이다.” 나서스는 그 용병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기이한 꽃 향기가 물씬 풍겼다. 뒤를 돌아보니, 나서스가 걸어온 길을 따라 연보라빛의 죽은 꽃들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한편 말루프는 처참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나머지 용병들은 공포에 휩싸여 말고삐를 당겼다. 그들은 말루프의 주검을 내버려두고 도망쳤다. 나서스는 동쪽에 있는 네리마제스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네놈들의 ‘황제’에게 전해라. 너의 순환은 곧 끝난다고.” |
4. 구 배경
4.1. 슈리마 개편 이전
슈리마 출신으로 변경되기 전의 설정이다.
나서스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챔피언이지만, 그의 존재는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다. 사실 그는 룬테라에서 아득히 먼 다른 세계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사막의 대제국에서 왔다. 짐승의 형상을 한 그의 동족들은 인간의 보호자로서 제국을 다스렸으며, 나서스도 대서고의 관리자로 일하며 제국의 안녕을 위해 헌신해왔다. 자신들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오만한 착각에 빠진 동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까지. 반역자들은 수호자로서의 본분을 잊고 인간을 노예로 삼아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야욕을 품고 무기를 들었다. 불행히도 그 중엔 나서스의 동생 레넥톤도 있었다. 제국은 기나긴 내전의 불길에 휩싸였고 나서스 또한 적들에 맞서 격렬히 싸웠다. 그리고 사막의 모래 폭풍 속에서 나서스가 레넥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 올리던 운명의 순간, 느닷없이 차원의 문이 열리더니 나서스를 빨아들여 우주 건너편 룬테라의 소환진 안으로 옮겨놓고 말았다. 배신자를 처단할 절호의 기회를 방해하다니! 나서스는 분노에 치밀었다. 그러나 소환사라는 자들이 다가와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이내 나서스의 명철한 이성이 분노를 잠재웠다. 룬테라 또한 나서스의 고향과 마찬가지로 불의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으며, 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챔피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나서스는 이해했다. 그는 자신이 없어도 형제자매들이 반란군과 맞서 싸울 것을 굳게 믿었기에, 소환사들이 청하는 대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이 되기로 결심했다. 얼마 후에 사막의 관리자가 된 나서스는 이제 슈리마 사막의 폐허 속에서 다시금 고향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레넥톤이 그와 마찬가지로 발로란으로 소환된 것 같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레넥톤의 달콤한 거짓말과 끝없는 야심은 이 세계마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말 것이다. 이제 나서스의 최우선 목표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반역자 동생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막의 관리자는 사색적인 타입처럼 보이지만 얕보아선 안 된다. ''' |
4.2. 11.3 패치 이전
세부적인 설정이 일부 바뀌었다.
자칼의 머리를 한 위풍당당한 반인반수 형상의 초월체 나서스는 고대 슈리마의 영웅적인 인물이었다. 날카로운 지력을 소유한 그는 지식의 수호자이자 최고의 전략가로서 수세기 동안 슈리마 제국을 번영으로 인도했다. 제국의 몰락 이후엔 칩거에 들어가 전설 속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슈리마의 고대 도시가 되살아나면서, 제국의 몰락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초월 의식의 대상자로 결정되기 오래 전 어린 시절부터 나서스는 누구나 알아주는 수재였다. 남다른 학구열로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태양의 도서관에 비치된 역사학, 철학, 수사학의 고전을 읽고, 외우고, 비평했다. 한편 동생 레넥톤에게서는 독서와 비평에 대한 나서스의 열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분한 공부라면 질색을 하는 레넥톤은 동네 아이들과 싸움을 벌이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형제는 우애가 돈독했다. 나서스는 행여나 동생이 말썽을 일으킬까 눈길을 떼지 못했지만, 오래지 않아 명문 ‘태양의 신학교’ 입학생으로 발탁되어 고향을 떠났다. 지식과 공부는 평생 동안 나서스의 열정이었지만, 그는 군사전략과 군수에 대한 남다른 이해로 슈리마 사상 최연소 장군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기도 했지만 실제 교전보다는 전략 수립에 특히 천재성을 발휘했다. 나서스의 선견지명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적군의 움직임을 열 발 앞서 읽어 내어 적의 이동 경로와 대응 방법을 예측했고, 치고 빠질 때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자신의 책무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깊은 배려심으로 병사들이 제 때 충분한 보상을 받고 공정하게 대우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였다. 인명 피해가 있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며 애도했고, 부대의 이동 경로와 군사 배치가 완벽해질 때까지 작전을 보완하느라 한시도 쉬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슈리마군에 수많은 승리를 안겨다 준 나서스에게 병사들은 하나같이 존경과 애정을 표했다. 동생 레넥톤은 주로 나서스가 이끄는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웠고, 두 형제는 불사신처럼 활약을 거듭했다. 나서스는 무수한 찬사를 받으면서도 전쟁을 즐기지는 못했다. 슈리마 제국의 지속적인 번영에 있어 전쟁이 갖는 중요성이라면 적어도 이제는 다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조국을 위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후세를 위한 지식 축적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나서스 부대와 싸워 패배한 여러 문명의 모든 서책과 문서, 사상과 역사는 그의 지시에 따라 슈리마 전역의 주요 도서관과 보관소에 소장되었다. 그 중 가장 큰 도서관의 명칭은 나서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식을 향한 나서스의 갈증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슈리마인과 지혜를 나누고, 세계에 대해 널리 알리고, 제국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나라에 몸바쳐 일하던 나서스는 원인 모를 중병에 걸린 후 생사를 헤매기 시작했다. 먼 옛날 죽은 어린 왕의 혼령 아무무의 무시무시한 저주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이케시아 추종집단의 우두머리가 건 마법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소문이 어떻든 의사의 진단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황제의 주치의는 나서스가 불치의 병에 걸렸고, 살 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고 침통한 얼굴로 진단을 내렸다. 백성들은 모두가 사랑한 제국의 가장 밝은 별 나서스를 기리며 슬픔에 잠겼다. 황제는 사제단에게 나서스의 운명을 점쳐 달라고 손수 부탁했다. 사제단은 하루 밤낮 동안 태양의 신과 소통했고, 나서스를 위해 초월 의식을 치르라는 신의 뜻을 전해 받았다. 위대한 전쟁 지도자로 성장한 레넥톤은 형의 곁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수도로 귀환했다. 다시 만난 형은 병세가 급격히 진행되어 유리 같은 뼈에 살가죽만 남아 해골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너무 약해진 나머지 계단을 제대로 오르지 못했고, 태양 원판의 황금색 빛이 쏟아지는 초월의 제단 정상을 눈 앞에 둔 채 주저앉았다. 자기 자신보다 형을 더 사랑한 레넥톤은 나서스를 들어 안고 제단 위로 올랐다. 형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형을 구할 수만 있다면야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각오했던 것과 달리 레넥톤은 파괴되지 않았다. 빛이 가셨을 때 슈리마 제국 앞에는 두 명의 초월체가 서 있었다. 두 형제 모두 초월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된 것이었다. 황제는 직접 두 무릎을 꿇고 신에게 감사를 올렸다. 나서스는 자칼의 머리와 거대한 몸,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두 눈은 날카로운 지력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레넥톤은 악어의 형상을 한 근육질의 거인이 되어 있었다. 두 형제는 몇 안 되는 슈리마의 다른 초월체와 함께 제국의 수호자가 되었다. 레넥톤은 원래도 훌륭한 전사였지만 초월체가 된 후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서스 또한 필멸자로서는 상상도 못할 비범한 힘을 갖게 되었다. 수명이 몇 배로 늘어난 덕에 오래도록 공부하고 사색할 수 있게 된 것은 초월의 가장 큰 이점이었다. 물론 슈리마의 몰락 후엔 저주가 되었지만… 나서스는 초월 의식 이후 레넥톤의 야만성이 두드러진 것을 걱정했다. 고대 도시 나시라미를 정복할 때, 나서스는 승리감에 취한 슈리마의 군사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하고 도시 이곳 저곳에 불을 지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러한 만행을 이끈 장본인이 바로 레넥톤이었다. 그리고 나시라미의 대도서관에 큰불을 질러 나서스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방대한 서고를 남김 없이 태워 버린 것도 레넥톤이었다. 두 형제는 나시라미 한복판에서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고 대치했다.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분노와 실망에 가득 찬 형의 눈빛을 보고 레넥톤은 야만적인 충동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수치심에 발길을 돌렸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나서스는 고대의 유물과 지혜를 찾아 끊임없이 사막을 돌아다니며 지식을 축적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고, 슈리마의 수도 아래에 숨겨진 전설 속의 ‘황제의 능’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아지르 황제의 절친한 조언자 제라스의 배반으로 황제의 초월 의식이 참혹하게 끝났을 때, 나서스와 레넥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의식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라스가 미리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두 형제가 서둘러 돌아왔을 땐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아지르는 죽고, 도시의 백성들도 살아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분노와 슬픔 속에서 두 형제는 사악한 에너지의 소용돌이가 된 제라스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제라스를 제거하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법 석관에 제라스를 가두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제라스를 붙잡아 두지는 못했다. 수년 전 나시라미 학살에 대한 참회였을까? 레넥톤은 제라스를 붙잡아 ‘황제의 능’ 안으로 끌고 들어간 뒤 나서스에게 입구를 봉하라고 외쳤다. 나서스는 절실한 심정으로 다른 방법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비통한 마음으로 동생과 제라스를 한없는 어둠 속에 영원히 가두고 말았다. 슈리마 제국은 무너졌다. 거대 수도는 폐허가 되어 모래 속으로 사라졌고, 태양 원판은 제라스의 마법으로 힘을 잃은 채 땅으로 추락했다. 태양 원판이 사라지자 도시 위를 흐르던 신성의 물줄기가 메말랐다. 기아와 죽음이 계속되었다. 동생을 어둠 속에 가둔 후 나서스는 가슴을 조이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며 사막 위를 떠돌았다. 그의 곁에 남은 건 과거의 환영과 슬픔뿐이었다. 생명을 잃은 슈리마의 도시들이 서서히 모래 속으로 가라 앉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그는 조국의 몰락과 백성의 죽음을 한탄했다. 비탄의 수렁에 빠져 수척해진 몰골로 고독을 포용하며 홀로 떠돌았다. 나서스가 모래 폭풍이나 새벽녘의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가 이따금씩 돌았지만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전설이 되어 갔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스는 예전의 삶과 목표를 하나 둘씩 잊어 갔다. 그러던 중 사막 모래 아래 ‘황제의 능’이 다시 발견되어 봉인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제라스가 풀려났다!’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슈리마 제국이 다시 모래 위로 솟아 올랐고, 나서스는 사막을 가로질러 수도로 향했다. 제라스를 다시 대적해야 했지만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설렘을 느꼈다. 슈리마 제국의 새로운 시작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랑하는 동생과의 재회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고 감히 그는 믿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