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원
1. 소개
조선 왕실의 의료기관.
2. 상세
태종 대에 설치한 내약방이 그 모체이다. 1443년 세종이 내의원으로 개칭하고 관원 16명을 배치해 독립기관으로 변모했다. 세조 때 관제 개혁을 하면서 정과 첨정을 1명씩 두고, 판관과 주부 각 2명, 직장 3명, 봉사, 부봉사, 참봉을 각 2명씩 배치했다. 이후 인원수에 변화는 있었지만 관제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 관원 외에 산관이 많았는데, 당상관과 당하관을 합쳐 12명, 침의 12명, 어의 3명, 의약 동참 12명이 있었다. 내의원 소속 산원[1] 과 의관은 정원이 없었고 필요에 따라 추가로 인원을 둘 수 있었다. 이는 왕실 사람들의 숫자가 일정하지 않은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의원 산관은 서원 23명, 종약서원 2명, 대청직 2명, 본청사령 7명, 임시사령 5명, 의약청사령 1명, 청의청사령 2명, 급수사령 1명, 군사 2명, 수여공 2명, 동병군사 3명, 삼청군사 18명을 배치했으며 의녀 18명이 내의원에 근무했다.
내의원의 일을 맡은 장관은 정3품 내의원 정1명이며, 그 위로 의견을 내놓는 도제조, 제조, 부제조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겸직이다. 도제조는 보통 삼정승 중 1명이 맡았고, 제조는 종2품이, 부제조는 승지가 겸임해 내의원을 승정원의 영향 아래 두었다.
평소에는 내의원과 전의감에서 왕실의 의약을 관장했고. 왕과 왕비의 병환이 위중할때는 시약청과 의약청을 임시로 설치해 담당자를 궁중에 상주시키고 치료와 투약에 신중을 기하게 했다.
3. 청사
3.1. 창덕궁
[1] 맡은 직무가 없는 벼슬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