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마법이라면 어떤 것이든 위험하고 예측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숙련된 상급 마법사조차도 꺼리는 마법적 존재나 마법의 종류가 있는 법이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룬테라에서는 수 세기 동안 '그림자 마법'이 금지되었다. 과거에 그림자 마법으로 인해 발생했던 끔찍한 일이 다시 재현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림자 마법을 부리는 존재 중에도 가장 두려운 존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녹턴이었다. 룬 전쟁이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 승리가 간절했던 마법 전사들은 적을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취했다. 그중 누가 가장 먼저 육체를 벗어던지고 영혼 세계에 들어갔는지 기록된 바는 없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들은 전장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무의식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지어진 풍경 안에서도 누군가를 따라다닐 수 있었다. 그들은 물리 법칙에 지배받지 않는 상태에서 평범한 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투를 벌였으며, 비물질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진 암살자를 소환하여 대신 싸우도록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특히 그림자 마법사들이 그런 마법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영혼 세계는 그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 어둠은 모든 필멸자들의 마음을 물들였다. 사람들은 밤낮으로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의욕을 잃고 악몽을 꾸었으며, 어떤 이들은 시달리다 못해 동족에게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녹턴이 이 모든 고통으로 인해 무에서 탄생했는지, 아니면 일개 암살자가 타락하여 더 의도적이고 치명적인 존재로 재탄생한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그림자의 존재는 실체가 없었으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녹턴은 인정과 명예, 또는 숭고함과 같은 가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공포 그 자체였으며, 자신을 통제하기 위한 그 어떤 규칙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 악마 같은 존재는 영혼 세계에서 울부짖으며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마법사들을 습격했고, 자신의 고통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에 몸부림쳤다. 녹턴은 고통을 느꼈고 고통은 녹턴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필멸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맛을 알기 시작했다. 영혼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은 별 의미가 없지만, 녹턴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먹잇감을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고통을 음미한 후 순식간에 숨통을 끊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도 감히 녹턴의 영역을 침범하려 들지 않았다. 만일 녹턴이 영혼 세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룬 전쟁의 결과가 달라졌을까? 이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 후 그림자 마법에 얽힌 어렴풋한 소문조차 자취를 감췄으며, 사용하다 발각되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 영혼 세계는 침입자들의 발길이 거의 끊겼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녹턴은 굶주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가 맛보았던 것 중 유일하게 구미가 당겼던 것은 필멸자들이 꿈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영혼 세계를 떠돌 때 맛본 두려움이었다. 두 세계가 나뉘는 곳, 평화로운 꿈이 악몽으로 바뀔 수 있는 곳. 녹턴은 의식의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많은 룬테라인들이 차가운 빛으로 불타는 눈을 한 악령 녹턴을 원초적 두려움이 사악한 모습으로 현현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북적거리는 도시부터 적막한 평원까지, 무소불위의 왕부터 보잘것없는 백성까지, 녹턴은 영혼의 약점을 파고들어 극심한 공포와 영원한 어둠으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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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림자 문
[image] "다른 이야기 해 줘." "아벨..." 셀윈이 책상 위에 이야기책을 내려놓은 후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벌써 두 번째 이야기야. 이제 자야지." "근데, 아빠." 소년이 이불을 눈 밑까지 끌어올리며 속삭였다. "괴물이 나 잡으러 오면 어쩌지?" 셀윈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자신을 반쯤 책망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사악한 마법사와 무시무시한 괴물들에 맞서 싸워 승리를 일궈낸 용감무쌍한 영웅들에 관한 발로란의 옛 우화였다. 이는 셀윈이 어렸을 적, 지금의 아벨보다는 나이가 좀 더 들었을 무렵에 셀윈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셀윈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읽어 준 '그림자 문'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이는 젊은 수습 기사가 세상을 그림자 안에 가두려는 잔혹한 왕에 맞서 승리하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참 무서운 이야기였지, 하고 셀윈은 추억에 잠겼다. 아마 아들에게는 좀 더 나중에 읽어주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냥 이야기일 뿐이란다." 셀윈이 아벨의 침대 끝에 살며시 앉으며 말했다. "나쁜 꿈을 꾼다 해도 이야기 속 괴물들은 널 해칠 수 없어. 알겠니? 다 지어낸 얘기야. 진짜가 아니고." 그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기 위해 몸을 굽혔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피해 움츠러들었다. "뭐야?" 셀윈이 껄껄 웃었다. "이제 다 커서 뽀뽀도 안 하겠다는 거야?" 아벨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자 셀윈의 웃음소리도 잦아들었다. 마치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구덩이라도 뚫린 것처럼 아들이 점점 빨려들어 가자 셀윈은 등골이 오싹했다. 아벨은 이불이 자기 몸을 단단히 감싸자 비명을 질렀다. 이불은 축축하고 미끈한 붉은 점박이 무늬의 혀로 변했다. 이 광경에 충격을 받은 셀윈은 정신을 차리고 아들에게 손을 뻗어 붙잡아 당기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혀는 아벨을 더 강하게 감싸 아래쪽으로 끌고 갔다. 그러자 침대 모서리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들쭉날쭉한 나무 기둥이 올라와 누렇고 뾰족하게 되더니 송곳니 모양으로 변했다. 침대의 뼈대가 거대하고 흉측한 구덩이로 변해 셀윈의 아들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아벨!" 셀윈이 소리쳤다. 동시에 그는 구역질이 나서 휘청거렸다. 고리 모양의 검은 안개가 그의 코와 입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구덩이로 변해버린 침대 위로 마치 폭풍이 이는 것처럼 떠올랐다. 구덩이는 쩍 벌어지며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는 포식자의 포효도 아니었고 사냥을 위해 동족을 불러 모으는 짐승의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셀윈에게는 마치 출산의 고통으로 지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빠!" 울부짖던 아벨은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벌어져 있던 입은 이내 닫혀버렸다.
셀윈은 벌떡 일어나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식은땀에 젖은 얼굴을 만지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주변을 살폈지만 어두운 방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필트오버는 한밤중이었고, 커튼 사이로는 거리의 불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마구 요동치던 그의 심장은 안정을 되찾았고 마음도 고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악몽을 꾼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았고, 방금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고 실제 같은 꿈은 꿔 본 적도 없었다. 순간 아들이 생각났다. 일어나서 아벨이 괜찮은지 조용히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아빠?" 셀윈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천천히 어둠에 익숙해지자 침대 끝쪽에 서 있는 아들의 작은 형체가 보였다. "아벨?" 셀윈이 눈을 끔뻑거렸다. "아벨, 지금 뭐 하는—" "뭐가?" 셀윈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니? 무슨 일이야?" "아빠, 그 꿈은 왜 꾼 거야?" "뭐라고?" 잠에서 확 깬 셀윈이 물었다. "왜 그런 거야?" 아벨이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곤 아들의 얼굴 윤곽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커튼을 친 기억이 없었다. "그게 '그놈'의 먹이라는 거 몰라?" 셀윈은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벨의 머리 너머로 벽에 드리워진 큰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림자는 아들의 것이 아니었다. 아벨이 몸을 떨더니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빨려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셀윈이 아벨에게 손을 뻗자 꿈에서 본 것처럼 가느다란 덩굴 모양의 검은 안개가 아벨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림자는 재잘대는 소리를 쉭쉭 내며 벽에서 빠져나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셀윈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림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고 사람과 닮은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상반신 아래로 칼끝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괴물은 마치 어두운 물밑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하늘하늘 흔들리며 움직였고 마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한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셀윈의 심장이 쿵쾅거렸고 동시에 도망쳐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이 일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려 해도 마음이 따라주질 않았다. 그는 사지가 마비된 채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존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괴물. 실재하는 괴물. 괴물의 입이 벌어지더니 길게 구부러진 이빨이 드러났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셀윈의 목소리로 공포에 질린 그의 생각을 똑같이 반복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 ''"넌 누구냐?"'' ''' 괴물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 ''"넌 어디서 왔지?"'' ''' 괴물이 갑자기 떠오르더니 셀윈의 머리 위로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한밤중의 어둠이 방울져 피가 흐르는 것처럼 뚝뚝 떨어졌다. 괴물의 팔은 길쭉했고, 그 끝에는 납작하게 구부러진, 무시무시하게 생긴 큰 칼날이 달려 있었다. 셀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악몽의 괴물이 몸을 굽혀 무시무시한 얼굴을 셀윈 앞에 들이대자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괴물은 셀윈에게 한마디 말을 속삭이고는 그의 숨을 끊었다. 셀윈의 질문에 대한 답.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의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인 그 말. ''' ''"바로 너."'' '''
번창하는 상업 도시의 북적거림과 소음을 알리는 아침이 밝아왔다. 햇살이 내리쬐며 창문에 부딪혀 반짝였다. 셀윈의 침실에 있는 창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문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갔고, 문틈 사이로 아벨의 얼굴이 살짝 보였다. "아침이에요!" 소년은 방에 들어갔다. 문을 활짝 열자 방 안에 있던 그림자들이 사라졌다. 아침 햇살 때문에 사라진 것이었지만, 보통 때보다도 더 천천히, 마치 주저하는 듯이 사라졌다. "아빠? 어딨어?" 방안을 살피던 소년의 목소리에 점점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음산함 속에서 아버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그 누구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은 방안 가장 어두운 구석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벨은 기침을 하고는 돌아서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나 아벨은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을 따라 나온 희미한 안개 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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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 설정
2.1. 구 단문 배경
자아를 가진 모든 존재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온갖 사악한 꿈의 집합체 속에서 녹턴이 태어났다. 순수한 악의 힘 그 자체인 녹턴은 흐르는 듯한 혼돈의 형상을 한 그림자다. 얼굴은 없지만 차갑게 빛나는 눈을 지녔으며, 팔에는 흉악한 칼날이 자리 잡고 있다. 영혼계로부터 탈출한 녹턴은 진정한 어둠 속에서나 어울릴법한 공포를 먹이 삼아 깨어 있는 세계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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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밀려온다... 이젠 칠흑 같이 어둡다... 그래도 놈이 보여..."''' 꿈은 꿈일 뿐이었다. 적어도 녹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람들은 꿈이 그저 상상의 산물이라고 믿어왔지만, 룬테라 전역에서 취침 중에 이상한 일을 겪는 사람이 늘면서 이런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처음엔 다른 악몽들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잠을 자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잠들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수면 부족으로 광기에 사로잡히는 이들도 속출했다. 심지어 자다가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었다. 의사들까지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악몽에 시달리던 한 남자가 무의식중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숨졌다. 남자에게서 기묘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고 그때 녹턴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턴은 이 세계에 우아한 소개말 따위는 건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고, 마법사들이 개입해 겨우 그를 속박할 수 있었다. 얼마간 주의 깊게 관찰한 끝에 마법사들은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녹턴이 사람들의 꿈속에서 그들을 사냥했다는 사실이었다. 사냥감이 가장 무력할 때를 노린 것이다. 오로지 사냥만이 그의 목적인 것 같았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처벌을 요구했지만, 집행관들은 행여나 그를 죽였다가는 그가 탄생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 오히려 더 강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던 중 녹턴을 감시하던 마법사가 밀려드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곯아떨어지자 녹턴은 모습을 감췄다. 학자들로서는 녹턴이 정말 꿈의 세계에서 온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와 같은 존재가 더 있는지조차 알아낼 길이 없었다. 가장 충격적인 이론은 녹턴이 어쩌면 한 사람의 악몽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생명력을 얻게 된 존재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누구의 악몽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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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후보: 녹턴'''
날짜: CLE 21년 3월 11일
'''관찰'''
전장 건축가의 긴 하루가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전장 지면에 붕괴의 조짐이 있는지 점검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잡한 에너지 장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어긋난 부분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대략 1.5미터 간격으로 측정을 해야 하는데, 조그만 흠 하나라도 간과하고 지나쳤다간 정의의 전장에서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마법 탓에 파괴적인 연쇄 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구역의 측정을 끝낼 때마다 건축가는 자신이 룬테라를 구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윽고 점검 작업을 마무리 지은 건축가는 넥서스를 지나쳐 소환사의 제단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분명히 휴면 상태에 접어들었어야 할 넥서스 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발길을 돌린 그는 넥서스에서 돌연 뻗어 나온 거센 에너지에 가격 당해 무정하리만큼 차가운 자갈밭에 나가떨어진다.
벌어진 입에서 독기를 품은 짙은 연기가 쏟아져 나오더니, 건축가의 몸이 점점 쪼그라들어 간다. 생명을 얻은 그 연기는 공포스럽게 고동치고 있다.
그건, 악몽에게서 탄생한 것이다.
'''회고'''
녹턴은 영겁의 시간 동안 여러 인간의 마음을 떠돌아다녔다. 인간들이 꿈에서도 갈망하는 수많은 얼굴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의 혈관을 따라 도는 욕망을 흡수했으며, 그들의 심장을 뜨겁게 불태우는 환상들 속에서 살았다. 그렇게 녹턴은 인간의 보잘것없는 뇌 속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천한 환상들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그리고, 자신이 머물렀던 모든 이들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먹어 치웠다.
새로이 얻게 된 손에 잡히는 몸이란 것을 채 보기도 전에, 로브를 걸친 소환사들이 나타나 녹턴의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쌌다. 녹턴은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이미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 소환사들은 악몽에 사로잡힌 모든 소환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얼굴이었고, 부하에게 막대한 권력을 약속하는 말들을 쏟아 붓는 목소리이자, 온 세상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손이었다. 녹턴은 이 인간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도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었다.
녹턴의 그림자 같은 몸이 그 중 한 인간에게로 소리 없이 다가가, 그의 의식에서 가장 나약한 부분에 파고들었다. 로브로 몸을 감추고 있던 그 소환사는 경련을 일으키며,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온 몸의 피가 얼어붙을 정도로 끔찍한 비명이 허공을 찢었다. 이윽고 정신이 산산이 붕괴되면서 소환사의 비명도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소환사들은 녹턴이 공격해 오기 전까지 변변찮은 대응조차 펼칠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한 쌍의 그림자 칼날을 든 팔이 앞으로 뻗을 때마다 누군가의 살이 찢겨져 뼈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림자는 멈추지 않고, 자세를 낮춰 한 인간에게 달려들더니 아래에서부터 위로 칼을 휘둘렀다. 목표가 된 불운한 소환사의 몸은 불쌍하게도 베어지고 말았다.
녹턴은 등 뒤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있음을 알아챘다. 그의 몸이 잠깐 고동치는가 싶더니, 전장 전체에 어둠이 깔리고 한숨을 내뱉는 듯한 암흑이 무겁게 주위에 가라앉았다. 영원히 환영에 갇혀 버린 희생자들이 소환사의 귓가에 영원한 고통을 약속하거나, 제발 해방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말들을 속삭였고, 어디선지 몸 없는 손들이 나타나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겉모습을 떼어내어 가지려는 듯 살아 있는 자들을 마구 할퀴어 댔다.
남아 있는 소환사들은 팔다리를 마구 흔들어 기분 나쁜 손가락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잠깐 사라졌다가도 곧 더 많은 손이 다시 나타났다. 주문을 외워보려 해도, 마법 에너지가 부름에 응하지 않아 입안에서만 떠돌 뿐이었다. 어둠이 점점 죄어 오자, 앞을 보지 못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인간들은 거칠게 눈을 비비며 필사적으로 앞을 보려 애썼다. 공포에 사로잡힌 그들은 녹턴이 다가오는 것도 감지하지 못했고, 녹턴의 검이 자신들의 부드러운 몸을 갈라 영혼마저 어둠으로 보내 버렸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한 소환사가 금색 끈으로 장식한 보라색 로브를 걸치고 서 있었다. 그는 실명과 공포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눈앞에서 일어나는 대학살을 냉담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피가 웅덩이를 이루어 로브 아래 자락에 얼룩이 남아도, 잘린 동료의 머리가 날아와 무릎에 부딪혀도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윽고 그 소환사는 입을 열었다.
"인상적이군. 인간 영혼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보낸 시간이 아무 소용도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지?"
"나는 네가 누군지 안다." 녹턴이 대답했다.
"그것 참 영광스러운데." 소환사는 코웃음 쳤다. "그럼 이제 우리 인간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 죗값을 치를 시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겠군."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인간이여." 그림자 안에서 인간이었다면 웃음소리라고 부를 만한, 소름 끼치는 울부짖음이 메아리 쳤다.
"넌 지금 우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있어. 그러니 우리의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지금 이 가련한 모습을 ‘보상’이라고 말하는 건가?"
녹턴이 무시무시한 칼날을 한 번 휘두르자, 칼에 묻어 있던 아직 온기가 남은 피가 땅 위로 떨어졌다. 녹턴은 마지막으로 남은 이 어리석은 인간에게 들쭉날쭉하게 생긴 칼날을 겨눴다.
"나를 어쩌다가 이 세상으로 불러냈는지는 몰라도, 그 대가로 네가 받을 건 파괴뿐이다."
녹턴은 노성을 지르며 소환사에게 달려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칼날이 짜증 날 정도로 이죽거리고 있는 그 인간의 얼굴 바로 앞에까지 왔을 때, 녹턴의 손목을 감싸는 수갑이 나타나 철컥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리곤 한 무더기의 금속 사슬이 녹턴을 뒤로 끌어당겼다.
"아니, 이게 바로 진정한 보상이지."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소환사는 입을 열었다. "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
녹턴 주위에 한 무더기로 엎어져 있던 소환사들의 시체가 일제히 고개를 들더니, 팔을 뻗어 녹턴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너무도 강력했기에 녹턴은 자신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그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앞에 우뚝 선 소환사의 수장에게 억지로 고개 숙여 절을 하면서 족쇄를 벗어나려 힘껏 절규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녹턴은 이제 리그의 명을 따라야 했고, 그것은 그의 영원한 악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