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 연쇄살인 사건

 


1. 개요
2. 사건의 전개
2.1. 뉴올리언스 도끼살인마의 등장
2.2. 살인마에게서 온 편지
2.3. 용의자 추적


1. 개요


뉴올리언스 연쇄살인 사건은 1918년 5월부터 1919년 10월까지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이다.
총 6명이 살해당했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범인은 현재까지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았으며, 언론은 범인에게 '뉴올리언스의 도끼맨'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2. 사건의 전개



2.1. 뉴올리언스 도끼살인마의 등장


범인의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희생자들은 주로 도끼에 의해 살해당했다[1]. 대부분의 사건들에서 희생자의 집 뒷문에 있는 금속판은 끌에 의해 제거되었는데, 이 판과 끌 모두 뒷문 가까이에 있는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범인은 이렇게 침입하여 면도칼이나 도끼로 1명 이상의 거주자를 살해했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이탈리아 출신이었다(이탈리아계 미국인은 물론 이탈리아 본토에서 이주한 이주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범행들은 강도를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범인은 항상 살해 도구들을 희생자의 집에 남겨두었다.
많은 매체에서 이 사건을 열심히 보도했고, 증거부족의 원인이 마피아와 관련되어 있다고 암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범죄분석가들은 살인이 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추측했고, 살인마는 특히 여자들만 찾아다니는 새디스트라고 생각했다. 범죄학자 콜린과 다먼 윌슨 (Damon Wilson)은 '살인마는 여성 피해자들을 살해하는 것이 방해될 때만 남성들을 살해했다'란 가설을 세웠다[2]. 또 다른 가설은 '범인은 재즈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라는 것이었다. 이 가설이 세워진 이유는 살인마가 보낸 편지에서 '집에서 재즈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뉴올리언스 시민들 모두가 이 살인마를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무장된 시민들은 신문을 통해 살인마에게 그들의 집에 와보라는 성명을 제출하기까지 했다. 어떤 사람은 공손하게 "만약 앞문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살인마를 위해) 창문을 열어둘게."라고 약속하기까지 했다!

2.2. 살인마에게서 온 편지


1919년 3월 15일, 지역 신문들에 살인마가 쓴 편지가 실렸다. 편지에서 살인마는 '3월 19일 밤 자정 15분 후에 살인을 하겠다. 다만 재즈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살려두겠다.'라고 말했다. 그 날 밤 뉴올리언스 시내의 댄스홀들은 만석이었으며, 그리고 수백개의 마을에서 열린 파티에서 전문적인 재즈 밴드들과 아마추어 재즈 밴드들은 음악을 연주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날 밤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인마가 보낸 편지 해석)

지옥, 3월 13일, 1919년

뉴올리언스의 존경받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날 절대 붙잡지 못했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사람들은 날 보지 못했지, 왜냐면 난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마치 너희들의 땅을 둘러싸는 에테르처럼 말이야. 난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가장 뜨거운 지옥으로부터 온 영혼과 악마지. 내가 바로 너희 시민들과 멍청한 너희들의 경찰들이 '도끼 살인마'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내가 봐서 적합하다면, 난 와서 다른 희생자를 요구하겠지.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나밖에 모르고. 난 증거를 남겨놓지 않아, 내 회사를 지키기 위해 보냈던 사람의 피와 뇌로 범벅이 된 그 도끼 말고는.

만약 너가 원한다면 넌 경찰한테 날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어. 물론, 난 합리적인 영혼이야. 난 그들이 과거에 조사했던 방법에 대해 불쾌하지 않아. 사실, 경찰들은 너무 멍청해서 나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탄같은 우두머리 프란시스 조세프(Francis Josef)도 웃게하지. 하지만 그들에게 알고 있으라고 전해. 그들한테 내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하지 말라고. 왜냐면 이 도끼 살인마의 진노를 만들어 내는 것 보다는 그들이 태어나지 않는게 더 좋으니까.

의심할 여지도 없이, 너희 시민들은 날 가장 끔직한 살인마라고 여기겠지, 내가 누구건, 난 내가 원한다면 더 심해질 수 있어.

만약 내가 바란다면, 난 매일 밤 너희들의 도시에 올 수 있지. 내가 죽음의 천사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난 수천 명의 가장 특권층의 시민(그리고 가장 비참한 시민)을 죽일 수 있어.

이제, 정확하게, 다음주 화요일 밤 12시 15분에, 난 이 뉴올리언스를 지나갈 예정이야. 내 무한한 자비로 난 너희들에게 매우 작은 제안을 하나 할게.

난 재즈 음악을 매우 좋아해, 그리고 내가 이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모든 악마들에게 맹세하는데, 내가 방금 언급한 시간에는 재즈 밴드들이 한창 공연을 진행하고 있어.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재즈 밴드가 있다면,그게 너희들에게 더 좋을거야.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만약에 그 화요일 밤에 재즈를 즐기지 않는 사람은 도끼로 살해당할 거라는 거지.

음, 내가 추워서 내 지옥의 따뜻함을 갈망하고 있는데, 내가 너희들의 세속적인 집을 떠날 쯤에는, 난 내 담론을 중단할거야.

네가 이걸 출판하길 바래, 그러면 잘 될테니까. 나도 그랬거든, 그리고 사실과 공상의 영역에 존재했던 최악의 정신이 되겠지.


2.3. 용의자 추적


범죄학자 콜린 윌슨(Collin Wilson)은 그 살인마가 조세프 몸프리 (Joseph Momfre)라고 추측했다. 이 사람은 1920년 12월 LA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는데, 총을 쏜 사람은 뉴올리언스 연쇄살인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로 알려진 마이크 페피톤(Mike Pepitone)의 아내였다. 윌슨의 이 생각은 다른 범죄학 서적이나 웹사타이트에서 많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범죄소설 작가 마이클 뉴턴(Michael Newton)은 신문기사는 물론 뉴올리언스와 로스 앤젤레스의 공공, 경찰 그리고 재판 기록을 뒤져본 결과 '조세프 몸프리'라는 이름의 남자가 LA에서 살해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뉴턴은 또한 페피톤 부인이 그러한 범죄로 체포되거나, 재판을 받거나, 심지어 캘리포니아에 거주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몸프리(Momfre)"라는 성은 사건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특이한 성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뉴올리언스의 범죄기록에 있고 조직 범죄와 관련된 사람이 'Momfre'나 'Mumfre'같은 성을 가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이 벌어졌던 기간에 해당하는 기록은 사실을 확인하거나 식별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하지 않다. 윌슨의 이론은 아마도 도시 전설일 것이며, 살인마의 신원에 대한 증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도끼 살인마의 희생자 중 하나였던 'Schiambra'의 성을 가진 이탈리아 부부 한 쌍이, 1912년 5월 16일 이른 아침에 'Lower Ninth Ward'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침입자의 총을 맞았다. 아내는 죽었지만 남편은 생존하였는데, 이 사건의 용의자는 'Momfre'라는 이름으로 지역 언론에 한 번 언급이 된다. 도끼 살인마의 평소 범행 수법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만약 조세프 몸프리가 실제로 도끼 살인마였다면 이들은 그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학자 리처드 워너(Richard Warner)에 따르면, 주요 용의자는 '프랭크 조세프 몸프리(Frank Joseph Momfre)'라는 예명을 사용한 프랭크 독 멈프리(Frank "Doc"Mumphrey)라고 한다.
[1] 특이한 점은 도끼의 소유자가 희생자들이란 사실이다[2] 남성의 집이 아닌 여성의 집에서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