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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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 Grande Goleador'''[3] (위대한 골잡이)
닐루는 1916년 플루미넨시 유스팀, 그리고 1918년 아메리카 클럽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이듬해에는 보타포구 FR에 입단하였는데, 보타포구는 닐루가 12살 무렵일 때부터 그의 삼촌 오우지마르의 추천으로 관심을 가지고 4년간을 지켜보았었다. 하지만 보타포구에서의 초기 생활은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1군과 리저브팀을 사이에 두고 오락가락하였고 이런 생활에 불만을 품은 닐루는 2부 리그의 S.C 브라지우로 옮겼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생활은 녹록치 않아서 브라지우와 보타포구를 옮겨 다녔다. 8월까지는 보타포구에서 뛰고 12월까지는 S.C 브라지우에서 뛴 식이었다.
이 시기에 닐루는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기량을 키웠고 이런 그에 관심을 보인 팀이 바로 유스시절을 보냈던 플루미넨시 FC였다. 닐루는 3년간 플루미넨시에서 뛰었고 그 이후에는 다시 보타포구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보타포구에서 11년간 5회 우승을 이끌면서 2회의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201경기에 출전하여 190골을 기록하였다. 현재까지 팀 내 통산 득점 랭킹 5위에 올라있지만 경기당 0.94골로 역대 최다득점 20명의 선수들 중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신장은 작았지만 스피드와 기술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Um Grande Goleador'''[3] (위대한 골잡이)
1. 생애
닐루는 1916년 플루미넨시 유스팀, 그리고 1918년 아메리카 클럽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이듬해에는 보타포구 FR에 입단하였는데, 보타포구는 닐루가 12살 무렵일 때부터 그의 삼촌 오우지마르의 추천으로 관심을 가지고 4년간을 지켜보았었다. 하지만 보타포구에서의 초기 생활은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1군과 리저브팀을 사이에 두고 오락가락하였고 이런 생활에 불만을 품은 닐루는 2부 리그의 S.C 브라지우로 옮겼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생활은 녹록치 않아서 브라지우와 보타포구를 옮겨 다녔다. 8월까지는 보타포구에서 뛰고 12월까지는 S.C 브라지우에서 뛴 식이었다.
이 시기에 닐루는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기량을 키웠고 이런 그에 관심을 보인 팀이 바로 유스시절을 보냈던 플루미넨시 FC였다. 닐루는 3년간 플루미넨시에서 뛰었고 그 이후에는 다시 보타포구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보타포구에서 11년간 5회 우승을 이끌면서 2회의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201경기에 출전하여 190골을 기록하였다. 현재까지 팀 내 통산 득점 랭킹 5위에 올라있지만 경기당 0.94골로 역대 최다득점 20명의 선수들 중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신장은 작았지만 스피드와 기술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3. 수상
3.1. 클럽
- 캄페오나투 포티구아르 우승 1회: 1919(아메리카-RN)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6회: 1924(플루미넨시 FC), 1930, 1932, 1933, 1934, 1935(이상 보타포구 FR)
3.2. 개인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3회: 1924, 1927, 1933(보타포구 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