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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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장합동보수가 갈라져나가고 1년 후인 1980년 총회신학교의 내부 문제로 인해 합동 교단 내에 또 분열이 생겼다. 박윤선 목사와 그가 설립한 합동신학교, 오늘 날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박윤선 목사는 한국의 1세대 신학자로 일찍이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석사를 한 후 국내에서 고신, 총신 강단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또한 국내 최초의 신구약 주석을 완간한 한국 기독교계가 낳은 비범한 인물이다. 사당동에서 터를 잡은 현재의 합동 측과 훗날 탈퇴하게 되는 백석 측의 분규를 보며 독자 세력을 형성한 것. 여담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목회자들이 박윤선목사의 주석집을 애용한다.
합동신학교 세력은 1981년 예장개혁이라는 이름의 새 총회로 독립하였고, 교단명 중복을 피하기 위해 1998년 오늘날의 합신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합동을 비판하며 나간 점, 개혁을 강조하며 이단 척결에 매우 적극적인 점 등의 연장선으로 90년대부터 성향이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서로의 교세 기반지역이 다른 고신 측과의 통합 움직임이 있어왔고, 지금도 꾸준하게 추진 중이다. 한편 이들 고신, 합신과의 통합을 물색하던 또다른 교단이었던 대신은 이들 교단과의 통합 논의가 90년대부터 꾸준히 추진해왔으나 협상이 잘 안 된 것으로 보이며 신학 성향이 판이한 백석과 통합을 진행했으나 결국 결렬되었다.
예장합신의 경우 예장합동보다 신학적 보수적인 정도가 좀 더 보수적이다. 더욱이 특히 합신 교단의 경우에는 목회자의 품위를 많이 중시하는 편이다. 다만, 예장고신보다는 신학적 정도는 약간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즉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의 중간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2. 총회 분립의 발단
합신이 총신대학교로부터 분립된 것은 1979년 9월 합동교단이 대구총회 이후 개혁교단과 분열되면서 1980년 10월에 당시 총신대 학장서리 박윤선 교수 등이 학생들과 의기투합하여 총신대 사당동캠퍼스에서 분립하여 시작되었다. 당시 예장합동 교단의 교권을 장악하던 이영수 목사가 총신대 재단이사회를 장악하여 간섭하는 상황에서 박윤선 학장을 비롯한 신복윤 교수 등이 도저히 정상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사임하고 나온 것이다.기사
3. 명칭
1980년에 총신대학교 신학연구원 교수와 학생이 집단으로 분립되어 '합동신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그후 1984년에 ‘합동신학교’ 인가를 받았고, 1996년에 신학대학원으로 인가를 받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로 개칭되었다. 신학교 이름을 교단이름으로 사용하였다.
4. 교세
노회 21
교회 972
교역자 (총)2,750명 (목사)2,127명 (강도사)95명 (전도사)528명
교인수 (총)138,968명 (장로)1,372명 (세례교인)88,117명
총회파송선교사 422명, 217가정, 42개국
5. 교육기관
6. 가입단체
한국교회총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