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마르세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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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국가(國歌). 본래 프랑스 혁명 시기의 혁명가(革命歌)였기 때문에 오늘날 그 유지를 계승하는 프랑스 제5공화국의 국가로 채택된 동시에 혁명군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군의 군가(軍歌)이기도 하다.
'라 마르세예즈'의 마르세예즈는 프랑스의 도시 마르세유의 여성형 데모님(demonym)이다. 마르세유 사람, 마르세유의 것 등을 뜻할 수 있는 데 일반적으로 '마르세유(Marseille)의 노래', '마르세유 행진곡'이라 칭해지던 것이 줄임말로 라 마르세예즈로 정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2. 역사
1792년 4월 20일, 프랑스 혁명정부가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결의한 소식이 4월 25일 프랑스 동쪽 끝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고 이 소식을 들은 육군 공병 대위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 (Claude Joseph Rouget de Lisle, 1760~1836)이 출정 부대의 격려를 위하여 하룻밤 만에 작사, 작곡한 '''군가였다.''' 이때 붙은 제목은 '라인 방면군을 위한 군가(Chant de guerre pour l' armée du Rhin)'였다. 드 릴은 이 곡을 육군 라인 방면군 사령관 니콜라 뤼크네르(Nicolas Luckner)에게 바쳤다. 정작 이 대위의 입장과 인생은 좀 버라이어티했다. 링크 참조. 한국의 상황에 빗대자면, '''임을 위한 행진곡''', '''독립군가''' 또는 '''멸공의 횃불'''같은 노래를 정식 국가로 채택해 부르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세유 출신 육군 의용병들이 1792년 8월 10일 봉기로 파리에 입성할 때 부르던 것이 널리 알려져서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국가로 지정되었다가 종신 통령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혁명을 종결지으면서 과도한 혁명 정신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국가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이후 나폴레옹 집권 시절과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 있던 프랑스 제1제국 시절에는 출발의 노래가 대신 국가로 사용되었다. 근데 이쪽도 '라 마르세예즈의 동생'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라 마르세예즈 못지않게 과격하다.
부르봉 왕정복고 시대 때에는 당연히 국가가 지정되지 못하고 오히려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대신 프랑스 공들의 파리로의 귀환이 국가였으며 7월 왕정 시절에는 파리인들이 국가였다. 왕정이 무너진 프랑스 제2공화국 시절에는 지롱댕의 노래, 프랑스 제2제국 시절에는 시리아로 출발하라가 국가였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국가로 사용할 만 했으나 제3공화국과 대적한 사회주의 정부 파리 코뮌이 이 곡을 개사한 코뮌의 라 마르세예즈를 국가로 사용하는 바람에 한동안 버려졌다가 8년이 지난 1879년에 이르러서야 우여곡절 끝에 국가의 자리에 귀환하였다.
3. 음원
4. 가사
한 나라의 국가로 부르기에는 '''가사가 굉장히 살벌하다.''' 가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저 뭐같은 적들의 피로 모내기를 하자'''가 된다(...)
원래 군가이니 만큼 그냥 들어봐도 힘이 넘친다. 미군도 부를 때가 있으며, 가사 바꿔서 다른 나라 국가로 채용되었던 경우도 있는 듯하다.
어린아이들이 부를 경우 살벌한 가사와 잘 매치되지 않아 꽤 난감한 노래이다.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열린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의 모습을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나 축구 경기 전에 제창할 경우 상대를 압도하는 느낌을 주는데, 실제로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프랑스의 경기를 중계하던 중계진은 선수들과 관중들 모두가 프랑스 국가를 제창하고, 제창이 끝나자마자 "대단한 프랑스네요."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가사는 원래 6절까지 있었는데, 1792년 10월에 장 밥티스트 뒤부아라는 한 민족주의자가 7절을 추가했다. 참고로 현재 '''15절까지 있는데, 너무 길어서 7절까지만 부른다'''고(…) 공식 행사에서는 그 중 1절과 6절만 부른다고 한다.
5. 비판과 논란
프랑스와 역사적으로 큰 관련 및 갈등이 없는 나라들 사이에서 라 마르세예즈는 소위 '간지나는 국가'로 매우 유명하지만, 식민지 착취와 독립 문제로 프랑스와 갈등을 겪었던 몇몇 프랑코포니 국가들 사이에서는 굉장한 거부감을 보이고, 정작 프랑스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아 개사 요구가 종종 나오는 국가이다.
우선 가사에서부터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지적이 있다. 혁명 당시의 프랑스 상황은 잘 담은 노래라지만, 다양한 곳에서 온 이민자 국민들이 있는 현재의 프랑스에선 적합하지 않는 노래라는 것이다. 아울러 프랑스 혁명 당시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문제점은 개선하지 않고 여성과 비백인을 이용만 하고 오히려 그 전과 다를 바 없이 차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
특히 1절에선 암시 정도만 되지만, 3절에서는 외국놈들이 우리 안방을 노린다는 등, 대놓고 외국인에 대한 적의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가사상의 '외국놈'들이란 혁명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군주제였던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스웨덴 등이긴 하지만, 현재 이들 나라랑은 러시아 정도를 제외하면[2] 전혀 험악한 사이가 아니다. 따라서 간혹 가사 상의 외국인이 난민 등의 비 유럽권 이민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이민자들과의 갈등을 야기한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이 노래에서 말하는 매국노에는, 혁명 정부가 아닌 교황청에 순명하고자 했던 서약 거부 성직자들도 포함되는 등, 오늘날 프랑스인의 기준에서도 굉장히 꺼림찍한 요소가 많다. 당시 혁명 정부에서 가톨릭 사제들이 교황청이 아닌 세속정부에 순명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충성 서약을 교회에 강요했던 역사의 흔적.
국가 연주와 제창이 중요한 사기진작 의식이기도 한 축구 대표팀 A매치에서, 누벨칼레도니 출신인 크리스티앙 카랑뵈가 라 마르세예즈를 제창하지 않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프랑스에는 외국 혈통 프랑스 국적자도 많은데, 카랑뵈의 증조부모는 자신들이 외교 사절로서 프랑스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납치되어서 인종 전시를 당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당시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당수였던 장 마리 르펜은 프랑스 대표팀에 흑인이 너무 많다는 인종차별 발언을 노골적으로 해댔고 이에 대한 정치적 항의 및 프랑스의 과거 식민주의 정책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제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 프랑스 식민지 내지 해외영토 이주민 출신 선수들의 경우 시합 전 제창시 웅얼거리며 부르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가 있다. 유명인이건 일반인이건 다인종 국가의 소수인종 출신 국적자들이 갖는 애환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와 코르시카 사람들은 특히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 주둔군이 식민지 주민들에게 이 노래를 부를 것을 강요하거나 학살 등 탄압하면서 이 노래를 불러서 그렇다. 알제리 독립을 요구하던 알제리인들을 학살한 알제리 전쟁 때는 불과 1950년대에서 1960년대 라 마르세예즈를 국가로 쓰는 공화국 때 생긴 일이다.
어느정도로 심하냐 하면, 생드니 경기장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경기 때는 알제리 팬들이 야유를 퍼부을 정도였다. 2분 45초부터 보자 참고로 이 경기에서 프랑스가 4-1로 이기고 있자 화가 난 알제리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하고 쓰레기들을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려 경기가 중단되었는데, 알제리계 부모를 둔 지네딘 지단에게만큼은 위해를 가하지 않고 사인을 받기도 했고 알제리 선수들은 알제리 선수대로 지단과 어울렸다. 물론 프랑스 국가 연주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팬과 알제리 팬이 어깨동무를 하는 등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이 '알제리 팬'이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이들이 전부 알제리로부터 원정 온 알제리 국민들일리는 없을 터, 그들은 알제리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즉 프랑스 국적을 지녔지만, 프랑스의 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의 울분과 분노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각자 다른 뿌리를 지녔지만, 공화국의 가치와 프랑스의 문화 아래에서 하나된 강력한 국가의 힘'이라는 공화국의 이상에 부합하는 레블뢰 군단의 경기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 사건은 수 세기 가까이 일관적으로 진행된 통합만을 고집한 동화정책의 그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수 세기간의 소외감, 박탈감은 소요 사태 등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 축구 스타였던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혈통인 탓인지 '라 마르세예즈를 들을 때마다 섬뜩한 마음이 든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후로 전 국가대표인 카림 벤제마는 “나는 프랑스 국가대표인 것이 자랑스럽지만 내셔널리즘으로 가득 찬 국가는 좋아하지 않아 부르지 않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말했었다고. #
2006 FIFA 월드컵 독일 결승에서의 국가 제창 모습. 이민자 출신 선수들이 국가를 안 부르는 건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대표팀들에도 일어나는 현상이라지만, 주장 지네딘 지단을 비롯해 이민자, 유색인종 선수로 구성된 선발 라인업의 많은 선수들이 직접 부르지 않고 듣고만 있다. 프랑스 국가가 워낙 과격하기로 유명해서..
프랑스령 기아나 출신으로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크리스티안 토비라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 때 그를 옹호한 배우 랑베르 윌송은 인종차별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인 노래라는 소신을 밝혔다. 1 2 실제로 3절의 내용은 외국인 혐오적인 가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위에 나온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어린이가 부른 가사 내용이 잔혹한 탓에 개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심지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영부인인 다니엘 미테랑까지 가세할 정도였다. 물론 국민적인 여론은 반대 움직임이 더 많았기에 통과되지는 못했다. #
일반적으로 우파가 내셔널리즘에 우호적이지만, 미테랑 직전에 집권했던 중도우파 성향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은 "프랑스 땅을 프로이센인들의 피로 물들이자고 노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이것은 데스탱이 재임 중 유럽경제공동체(현 EU의 전신)를 출범시키는 등 유럽 통합에 적극적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에 비해서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정권 때에는 코르시카인들과 튀니지인들이 축구 경기장에서 라 마르세예즈에 야유를 보내자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경기 중단을 요구했다. 1, 2 단지 관중들이 국가에 야유하는 것이 대통령의 마음에 안든다고 축구 경기를 중단시키려고 하는 행위는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위의 알제리와의 A매치는 관중들이 난입하고 쓰레기를 집어던지는 물리적인 행위로 중단이 불가피했지만, 국가 연주에 야유를 한다고 경기 자체를 못할 수준은 아닌데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기 중단을 요구하는 행위는 정당하게 가격을 지불해서 표를 끊고 경기를 관람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기사에 따르면 이 노래에 야유를 하는 것은 벌금형과 징역형을 구형할 수 있는 범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 2005년 프랑스 의회는 국기와 국가를 모욕할 경우 6개월의 구금과 1500만 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1 그리고 국기의 깃대를 부러뜨린 알제리인에게 이 법을 적용해서 벌금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2 하지만, 이런 모습은 자유를 강조하는 프랑스의 풍토가 무색하게 할 수도 있다.
묘하게도 프랑스 혁명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프랑스 좌파는 이민자 포용의 자세를 취해서인지 혁명을 상징하는 노래인 라 마르세예즈에 대해 개사를 요구하며 비판적이고, 정작 프랑스 혁명에 대해 방데 전쟁 때의 학살을 들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는 프랑스 극우파인 국민연합은 긍정하거나 아예 강요한다. 민중가요가 혁명으로 집권한 국가 및 체제에서는 도리어 건전가요로 변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2016년 들어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 초등학생 모두가 부르게 하라고 지시를 했다. # 올랑드는 좌파 성향의 대통령인데 이 기사만 보면 오히려 국가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3] 프랑스가 테러를 당하고 있는 영향도 있고, 재선을 염두에 두고 한 계산이라는 평. 하지만 안 그래도 가사 내용과 오용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국가를 부르는 것을 의무화한다면, 특히나 이민자와 해외영토 주민의 자녀들에게는 세뇌식 강요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다른 나라 국가에서도 종종 나오는 현상이지만, 국가라면 으레 담고 있을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인 색채 때문에 반민족주의자들이나 탈민족주의, 국가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6. 이모저모
1830년에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작곡가인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소프라노와 테너 독창, 어린이 합창과 성인 합창, 관현악이라는 대규모 편성을 사용해 화려하고 박력있는 1절부터 6절까지의 편곡을 남겼고, 표트르 차이콥스키도 〈1812년 서곡〉을 작곡할 때 이 노래의 첫 부분을 프랑스를 상징하는 주제로 해서 차용한 바 있다.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작사하고 역시 독일의 음악가인 로베르트 슈만이 작곡한 〈두 사람의 척탄병〉(Die Beiden Grenadiere) 후반부에도 프랑스 군인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노래로 나온다. 링크 슈만은 이를 통해 여전히 구체제 하에 있었던 독일인으로서 혁명 프랑스군의 열정을 동경하고 찬탄했다. 헝가리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도 이 작품에 대한 피아노 편곡을 남겼다.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의 테마곡인 장 미셸 자르의 〈랑데부 98〉(Rendez-Vous 98, Apollo 440의 리믹스판)에도 편곡된 바 있다. 링크.
그리고 이 노래의 전주에 해당되는 부분이 바로 그 유명한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의 시작 부분에 그대로 사용됐다. 웜즈 시리즈에서도 인도 핵 실험과 양 폭격 호출시에 비행기가 날아오면서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 부분의 멜로디가 연주된다.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인용되는 음악은 드물 듯. 서양판 김치 전사라고 불리는 푸드파이트!에서 중간에 개사되어 나온다.
프랑스의 식민지에서도 이 국가를 불렀다. 방데 전쟁 때 프랑스 공화국 진압군에 맞선 방데 저항군, 프랑스에게 자유와 독립을 얻기 위해 맞선 아이티의 흑인 저항군들은 오히려 이 노래를 불러서 일종의 부메랑을 날렸다. 심지어는 비스마르크도 처음 개발된 축음기에다 대고 이걸 불렀다...지금도 이 음성기록이 남아있다.
2015년, 제 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 때 마지막으로 불렀던 이후 97년 만에 프랑스 의회에서 다시 불리게 됐다.## 2015년 샤를리 엡도 사태와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두 번의 테러 덕에 두 번이나 불렀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는 자기네들 군가인 라인강의 수비를 부르는 독일 육군과 공군 장교들을 발라 버리기도 한다.
박력 있기로 명망 높은 붉은 군대 합창단도 이것을 불렀다.
어쌔신크리드 유니티에서 시민들이 허구한날 부르고있다. 년도상 작곡되기 전인데도(...)
인도에서도 진보주의자나 좌익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노래이다. 링크
힐링캠프에서도 사용된적이 있다. 0:22초
2008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라따뚜이에서도 영화 도입부에 라 마르세예즈가 연주되었다.
2019년 5월 17일에 전남대학교에서 있었던 5.18 관련한 보수단체 시위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시위대를 향해 이 노래를 한국어로 번안해 부른 적이 있다. 정작 시위대 사회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착각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7. 파생 민중가요
19세기 전반을 뒤흔들었던 프랑스 대혁명부터 1848 혁명 당시를 상징하는 노래이니만큼,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도 유럽의 자유주의 계열, 좌익 계열을 막론하고 자주 불린 노래였다. 적당한 민중 가요가 없던 당시에는 독일, 러시아 등을 가릴 것 없이 유럽에서 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불릴 정도였다.
본래는 프랑스어 원 가사를 그대로 불렀으나 나중에는 자국어에 맞춰 번안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편곡도 하게 된다. 러시아에서는 1905년 피의 일요일 이후로 크게 유행했고, 러시아 혁명기인 1917~1918년의 국가는 인터내셔널가가 아니라 사실상 이 노동자 라 마르세예즈였다.
7.1. 러시아어
이 노래의 정확한 명칭은 'Workers' Marseillaise'이다. 이 곡은 라 마르세예즈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라 마르세예즈의 곡조에 맞춰 기존 곡을 개사하고 그 가사에 맞게 음을 고쳐 제작한 것이다.
7.2. 독일어
7.3. 스페인어 (칠레)
제목은 Marsellesa Socialista(사회주의자 마르세예즈).
7.4. 핀란드어
7.5. 중국어
8. 같이보기
[1] '드 릴'로 오인하기 쉽지만 영어를 제외한 로망스어와 게르만어권의 전치사 및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으므로 '드릴'이 맞다.[2] 러시아는 냉전이 끝난 후 사이가 좋아졌...으나 푸틴 시대의 2차 냉전 이후 다시 사이가 안 좋아졌다. 해당 문서 참조.[3] 사실 올랑드 대통령은 알제리를 방문하면서 프랑스가 과거에 알제리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인정은 하면서도 사과는 거부하고 오히려 귀국 후에는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망언을 한 바 있고, 2016년 들어서는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친기업적 노동법 수정으로 노동자들을 포함한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등 우파 성향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