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어미)
1. 개요
한국어 연결어미 '-(으)러'는 목적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하러 가자' 라고 하면 가긴 가는데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된다.
2. 특징
한국어의 많은 어미들이 그러듯이 '''\'ㄹ' 받침을 제외한 받침''' 뒤에는 매개모음 '으'가 붙으면 '-으러'가 된다. 'ㄹ' 받침은 그냥 '-러'(살다→살러).
모음 앞에서 어간이 바뀌는 불규칙 활용 ㄷ 불규칙(걷다), ㅂ 불규칙(돕다), ㅅ 불규칙(낫다)은 모두 바뀌어서 붙는다. '걸으러/도우러/나으러' 등. 늘 그러듯 ㄷ 불규칙에서 달라진 'ㄹ' 받침 뒤와 ㅅ 불규칙의 모음 뒤에는 '으'를 붙이고(걸다→걸러, 걷다→걸으러, 지다→지러, 짓다→지으러), ㅂ 불규칙애서 달라진 '우' 뒤에는 '으'를 붙이지 않는다(돕다→도우러, 배우다→배우러). ㅡ 탈락 규칙과 우 불규칙 '푸다', 르 불규칙은 '-아/-어' 앞에서만 바뀌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같은 목적 연결어미로는 '-(으)려고', '-도록', '-게' 등이 있다. '-(으)려고'는 간혹 '고'가 생략되기 때문에 형태가 조금 유사해진다. 실제로 비슷하게 쓰일 때도 있고... 참고
-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 갔다.
- 밥을 먹게 식당에 갔다.
- 밥을 먹으러 갔다.
- 밥을 먹으려(고) 했다.
'-(으)러'나 '-(으)려고'는 두 문장의 주어가 같아야 하는 조건이 있다. '-게'와 '-도록'은 달라도 된다.
- 내가 밥을 먹으러 친구가 시장에 갔다. (X)
- 내가 밥을 먹으려고 친구가 시장에 갔다. (X)
-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친구가 시장에 갔다. (O)
-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친구가 시장에 갔다. (O)
의도나 목적은 동사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인 만큼 동사에만 쓸 수 있고 형용사에는 쓸 수 없다. '-게'는 형용사에서는 부사형 어미로 기능해서 다른 의미로는 쓸 수 있다('예쁘게').
2.1. 이동 동사 호응
'-(으)러'는 '-(으)려고'와 구분되는 주요한 특징으로 '-러'는 ''''이동 동사(locomotive verb)에만 쓸 수 있다''''는 제약이 있다. '하러 가다', '하러 오다', '하러 다니다' 등으로만 쓸 수 있고 '하러 했다'와 같은 것은 못 한다. 이동 동사로는 '가다', '오다', '다니다', '출발하다', '이동하다', '움직이다' 등이 있다.
단, 이동 동사라고 무조건 '-(으)러'가 문법적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 영화를 보러 떠났다. (O)
- 영화를 보러 집에서 떠났다. (X)
-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떠났다. (O)
3. 역사
조선 전기의 형태는 '-라'였다.네 ᄒᆞ마 ᄆᆞᆯ ᄑᆞᆯ'''라''' 가거니 우리 벋 지ᅀᅥ 가미 마치 됴토다
너 이렇게 말 팔'''러''' 가니 우리 무리 지어 가는 게 딱 좋다.
'''번역노걸대(1517) 상:8'''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향찰에서는 良으로 적힌 사례가 나타난다. 이 때의 良은 연결어미 '-어/아'를 표기하는 데에도 쓰였다. 반대로, 음이 같았던 종결어미 '-라('-다'의 계사 뒤 이형태)'는 위에서도 보듯이 羅, 구결로는 罒로 적는 일이 많았다.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셜ᄫᅥᆷ해라
셜ᄫᅥᆷ 하ᄂᆡ 물아
공덕 닷ᄀᆞ'''라''' 오다
'''풍요(風謠, 600?), 김완진 역'''
역사적 예문에서도 주로 '가다'와 함께 사용된 사례가 많다. 사실 한글 이전 차자 표기에서는 '-러'의 이동 동사 제약을 통해서 '去' 앞의 '良'가 15세기의 '-라'와 같은 맥락의 연결 어미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4. 형식이 유사한 형태
4.1. 조사 '-(으)로'와의 혼동
명사에 붙어 방향을 나타내는 조사 '-(으)로'와 발음이나 형태가 닮아서 간혹 틀리게 쓰는 사람이 있다. '먹[墨]이다'와 '먹이다(食)'은 '명사 + 이다'와 '-이다' 꼴 동사를 비교할 때 자주 쓸 수 있는데,[1] 여기서도 이걸 이용할 수 있다. '먹으로'면 '먹'이 명사가 되고, '먹으러'면 동사가 된다. 뭐, 한국어에서 명사와 동사는 형태가 극명히 차이가 나서 명사랑 동사를 헷갈리는 사람은 그다지 없으니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기는 하다. 형용사랑 동사는 좀 헷갈릴 수 있을지 몰라도.
혼동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으)러'와 '~(으)로' 둘 다 이동 동사와 함께 쓰이는 것을 들 수 있다. '~(으)로'는 방향격 조사이므로 이동 동사와 주로 같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먹으러 가다', '학교로 가다' 등등 '가다', '오다'와 같이 쓰이는 양상이 비슷한 것. 단, '~(으)로'는 '다니다'와는 잘 쓰이지 않는 차이가 있다.
4.2. 어간 말음 '르' 용언과 어미 '-(으)러'
러 불규칙은 여기서 말하는 어미 '-(으)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는 연결 어미 '-아/-어' 꼴이 어쩌다 보니 '-(으)러'처럼 되는 현상. 어미 '-(으)러' 앞에는 연결 어미 '-아/-어'가 붙지 않으므로 '우러러' 아니면 '-러러'가 될 일은 없다. '-아/-어' 꼴하고 '-(으)러' 꼴하고 모양이 같아질 수는 있을 듯 한데... 여기 러 불규칙 말들 가운데 동사인 건 '이르다' 정도로서 목적의 의미로 쓰기엔 좀 안 맞는 동사. '수준급 경지에 이르러(이르려고) 산에 올라갔다' 식으로 쓰면 보통은 '-아/-어' 꼴로 여길 것이다. '수준급 경지에 이르러(이르러서) 산에 올라갔다' 식으로. 또한, '남들에게 이르러 찾는다' 식의 '이르러'는 르 불규칙 타동사이다. '우러러'는 러 불규칙 활용형이 아니고 기본형은 '우러르다'이므로 '우러르러'와 '우러러'로 구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러 불규칙은 아니지만 '치다'와 '치르다', '이르다'의 형태와 뜻이 비슷한 동사 '다다르다'도 들 수 있겠다. '다다르다'와 '치르다'는 '우러르다'와 마찬가지로 러 불규칙이 아니므로 '-(으)러'와 '-어/-아'가 구별된다. '다다르러', '다다라', '치르러', '치러'. 이 둘과 '우러르다'는 어간 끝의 'ㅡ'가 '-아/-어' 앞에서 탈락하는 용언이다. ㅡ 불규칙이거나 르 불규칙이고 '르' 앞 모음이 양성모음이면 '-라'로 실현되고, 음성모음이면 '-러'로 실현된다. 러 불규칙이면 양성, 음성 상관없이 '-러'로 실현된다. 다만, '치러'는 '치- + -러'일 수도 있고 '치르- + -어'일 수도 있다.
'누르다'는 품사와 뜻으로써 구별된다. '눌러'는 동사 '누르- + -어'인 르 불규칙 활용형이고, '누르러'는 동사 '누르- + -러'일 수도 있고 형용사 '누르- + -어'인 러 불규칙 활용형일 수도 있다. 형용사에는 어미 '-(으)러'를 못 쓴다. 또한, 르 불규칙은 아니지만 '들르다'는 '들르러'와 '들러'로 구분되어 있다.
5. 변이형 '-ㄹ러'
'-려고'와 같이 표기적으로 'ㄹ'이 첨가된 '-ㄹ러'가 나타나기도 한다(가지러→가질러).
이 현상의 원인은 추측건대 '-려고'와 같이 용언 어간 종성이 'ㄹ'일 때 초성 'ㄹ'로 시작한 어미가 후행할 때 설측음이 되는 현상이 다른 동사 어근까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역형성으로도 볼 수 있다.
6. 일본어 문법과 비교하기
일본어에서는 '-(으)러'의 용법으로 연용형 + 'に'를 주로 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会いに'''ゆきます) 등. 일본어에서는 명사가 아니어도 조사를 붙일 수 있는데 동사 기본형 + に를 쓰면 다른 뜻이 된다. するに는 '하건대', するに足る '할 만하다' 등으로 쓰이는 용법이 있다. 연체형(동사/형용사 기본형, 형용동사 な) + 'の' + 'に'는 '-(으)ㄴ/는데'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으)려고'는 '청유형 + とする'나 '연용형 + かける' 등이 쓰일 수 있다. '-도록'의 뜻으로는 '종결형 + ように'가 제일 유명하다.
7. 나무위키에 이 의미의 '-(으)러'가 제목인 문서
-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会いにゆきます)
-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俺は、君のためにこそ死ににいく)
8. 다른 어미
8.1. 한국어 과거 선어말어미 '-더-'의 이형태 '-러-' (고문)
계사 이다 뒤에서 '-더-'는 마치 종결어미 '-다'가 '-이라'로 변하는 것과 유사하게, '-더-'로 변했다. 그래서 '-이러라'('-이-+-더-+-다)와 같은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다→라, 더→러'와 같은 ㄷ-ㄹ 이형태 교체는 20세기 초반을 전후하여 문어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더이상 생산적으로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해당 형태소가 '이다' 뒤에 후행하더라도 '이라', '이러-'가 아니라 '이다', '이더-'를 쓴다.
[image]
다 문서에서 발췌했듯 김동인은 이광수의 "윤광호"(1918)에 등장한 "P는남자'''러'''라"라는 문장을 대놓고 거론하면서 아직 구어화가 덜 된 표현이라고 저격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광수의 해당 문장은 소설 내의 마지막 문장으로 꽤 인상 깊은 대목이었는지 대부분의 20세기 초 표기가 교정된 위키문헌에서도 그 문장만큼은 "P는 남자러라"라고 그대로 남아있다.#[4]우리가 創造를 發刊하메 臨하여、무론 文藝에 主力을하엿지만 朝鮮語彙에도 적지안흔 노력을 하엿다。(중략) 小說에 잇서서도 그때의 先輩 春園의 文章에도 아직舊態가 만히 남어 잇섯다。가령말하자면 『P』라하는 小說의 맨마지막 한구절에 『P는남자러라』[2]
한것이잇는데 그것은 비단 그소설뿐 아니라『이러라』『이더라』『이라』等 아직 채口語化하지못한 말이 만히 잇섯다。創造를發刊함에 잇서서 우리는同人會를열고 그런 文章은 죄 拒否하여버리고 '''純口語體 로만쓰기'''(본문 큰 글자)로 작정하엿다. 地方사투리ㅅ가운데서도 쓸만한 말은 모도 추어서 使用하여 朝鮮語를 豊富하게 하도록 하자고 결의하엿다.
'''김동인, 문단 십오 년 이면사(裏面史), 창조잉태 (5), 조선일보 1934년 4월 5일자 2면#(유료), 이희정(2009: 236-237)[3]
참조.'''
[1] 전달형 어미 '대에서 이 차이가 극명하다. '먹이래', '먹인대'로 자음이 달라진다. 단, '먹이라고 하다' 식으로 명령형 + 전달이 되면 동사 '먹이다'여도 '먹이래'가 될 수 있다. 또한, '먹[墨\]이다'의 과거형은 '먹이었다'로만 쓸 수 있지만, '먹이다(食)'는 '먹였다'로도 줄일 수 있다.[2] 이광수의 ≪윤광호≫라는 소설의 문장이다.[3] 이희정(2009), <창조> 소재 김동인 소설의 근대적 글쓰기 연구. 국제어문, 47(0), 231-264.[4] 굳이 현대 표기로 고친다면 "남자더라", 시제까지 담당했던 '-더-'의 역사적 용법을 반영하면 "남자였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