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용재 오닐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태생의 한국계 미국인 음악가. 비올라 연주가.
2000년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협연으로 데뷔했다. 클래식계의 아이돌로 비올라 세계에 한 획을 그어낸 연주가이다.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된 한국인 어머니를 입양한 아일랜드계 조부모 사이에서 자랐다. 형편이 안 좋다 보니 조부모님이 어떻게 하면 대학을 보내고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현악기를 연주하면 가능성이 커질 것 같아 5살 때 악기를 추천받았고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악기를 살 돈도 여의치 않은 가정 형편에도 조부모의 헌신으로 줄리아드 스쿨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진학했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10년 동안 내 통학을 위해 왕복 200km를 운전해가며 뒷바라지를 해줬다. 할머니에겐 포기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자기연민 같은 건 없고 오로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할머니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며, 할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했다.“죽음을 비극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서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나는 긍정의 힘을 할머니에게 배웠고, 나의 타고난 재능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줄리아드 스쿨에서 비올리스트로서는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Artist Diploma 최고 연주자과정)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뉴욕에 거주하면서 예술에 대한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뉴욕시 의회로부터 명예로운 시민상을 받았다. 2007년부터 2016년 까지 UCLA에서, 2014년부터 Music Academy of the West in Santa Barbara 에서, 그리고 현재는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과 2010년에 이어 2021년 그래미상 후보에 세 번째로 지명되었다.
앙상블 디토와 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실내악 분야에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젊은 관객층에 어필하며 공연장으로 이끌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디토 페스티벌의 기획은 10대, 20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대중문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팬덤 문화를 클래식 음악계로 가져왔다. 2008/2009년 예술의 전당 유료 관객 1위, 누적 100회를 넘는 국내 투어, 도쿄·오사카·상하이 등으로 해외 진출을 했다.
제자들로부터 ‘미친 교수님’으로 불린다. 학생들을 볼 때마다 “배고프니?” “뭐 먹고 싶니?” “페스티벌 참가비가 필요해?”라고 캐묻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자들의 사랑이 특별한데 “어려서부터 많은 분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교회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고 그건 내 개인적인 성취보다 더 행복한 일”이라고 밝혔다. 최종 꿈으로 “내가 세상을 떠날 때는 좀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2. 앨범
- 2005.04.19 Richard Yongjae O'Neill. Warren Jones
- 2006.12.12 눈물 리패키지
- 2008.01.01 Mysterioso
- 2009.05.15 Ditto Carnival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0.01.01 Nore
- 2010.04.06 Ensemble Ditto 2009 Highlights
- 2011.01.01 Preghiera
- 2011.05.13 Ditto Hits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2.01.01 SOLO
- 2012.05.24 2010 DITTO HIGHLIGHTS
- 2012.05.24 2011 DITTO HIGHLIGHTS
- 2013.06.14 백야 (White Night)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4.03.11 The Romantist | Yuhki Kuramoto
- 2014.06.10 '코드 네임 : 바흐 (Code Name : Bach)'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5.06.15 Winter Journey
- 2016.06.08 디어 아마데우스 (Dear AMADEUS)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6.06.08 슈베르티올로지 (Schubertiology)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6.12.20 The Very Best of DITTO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6.12.23 브리티쉬 비올라(British Viola) | BBC Symphony Orchestra|Andrew Davis | 스티븐 린
- 2018.03.19 DUO
- 2018.05.30 디토 in Live ‘The Revolutionary/Divertimento’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19.05.08 로맨티스트 리패키지 | Yuhki Kuramoto
- 2019.05.31 Dynamic Round 앙상블 디토(Ensemble Ditto)
- 2020.01.17 My Way
3. 공연
- 160 여회 이상.
- 2020.05.22 <당신을 위한 기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2020.05.26 <당신을 위한 기도>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4. 방송
- 2004년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 2013년 3.28. MBC 무릎팍도사
- 2013년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여보세요?[3]
- 2016년 MBC LOVE 챌린지 시즌2
- 2017.05.24.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
- 2017년 JTBC ‘말하는대로’ 22회 섬집 아기
- 2020년 KBS1 D선상의 아리아. 정전협정 67주년 특집 뮤직다큐멘터리
5. 영화
- 2013년 안녕?! 오케스트라. 주연
- 2014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음악지원
- 2015년 히말라야. 음악지원
6. 도서
- 2008.03.15. 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감. 중앙북스
- 2016.06.15. 나와 당신의 베토벤. 오픈하우스
7. 기사, 인터뷰
- 2013.03.29. 리처드 용재 오닐, UCLA에서 ‘미친 교수님’으로 불리는 이유
- 2013.07.10. ‘몽키 티처’ 리처드 용재 오닐을 반하게 만든 아이들
- 2014.03.01. 리처드 용재 오닐 데뷔 10주년의 산업적 측면
- 2019.06.03.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 2019.06.19.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디토 마침표 찍는 리처드 용재 오닐
8. 경력
- 뉴욕 링컨센터 쳄버뮤직 소사이어티 단원
- 세종 솔로이스츠 단원
- 에네스 콰르텟 단원
- 2007년 ~ 2019년 앙상블 디토
- 2019년 ~ 현재 타카치 콰르텟 (Takács Quartet)
9. 홍보대사
- 2010.12 예술분야 기부 활성화 캠페인 홍보대사
- 2011.12 한국적십자사 홍보대사
- 2013.08 UN 세계평화의 날 홍보대사
- 2013.12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홍보대사
- 2014 제2회 공감영화제 홍보대사
- 2018 동물권단체 케어 홍보대사
10. 수상
- 뉴욕시 의회 명예로운 시민상
- 에미상 수상
- 2006년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수상
11. 악기
- 1727년 베니스의 마테오 고프릴러가 제작한 ex-Trampler.
- 16세기에 가스파로 다 살로가 제작한 ex-Iglitzin.[4]
12. 기타
- 리처드 용재 오닐의 말: "모든 삶은 특별하다. 때론 가장 쉽게 비난하게 되는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죠. 스스로를 존중해 주세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 리처드 용재 오닐의 '용재'는 강효 교수가 지어줬다고 한다.
[1] http://takacsquartet.com/index.php?lang=en[2] 디토[3] 다문화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내용.[4] 용재 오닐은 비올라를 ‘앨런’이라고 부른다. 스승 앨런 이글리친의 이름을 딴 애칭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챔버 오케스트라 등에서 활약한 스승이 뇌졸중으로 연주생활이 어려워지게 된 후 부르더니 “16세기 가스파로 다 살로가 제작한 이 악기를 이어받아 쓰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한때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가 이 비올라를 소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