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아(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1. 장문 배경
아이오니아 땅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숲에는 생기가 넘쳤으며, 영혼 세계의 영향을 받은 나무는 각양각색의 잎을 뽐냈다. 그중에는 색다른 종류의 마력에 의지하는 숲이 있었다. 숲 가운데에 자리 잡은 나무 한 그루는 인간들의 꿈을 모아 꽃으로 피웠다. 꿈꾸는 나무의 어머니 나무는 고대의 숲 오미카얄란 위로 우뚝 솟아 있던 신의 버드나무였다. 신의 버드나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 오늘날 망각의 동산으로 알려진 땅에 씨앗이 떨어지면서 자라났다. 오미카얄란의 다른 나무들처럼 자연의 아버지 아이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꿈꾸는 나무는 꿈을 잔뜩 담은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마법을 세계에 퍼트렸다. 릴리아는 나무의 꿈이 맺힌 꽃봉오리가 피어나기도 전에 땅에 떨어지면서 태어났다. 그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기이한 현상으로 세상에 나온 릴리아는 꽃망울이 머리에 달린 사슴의 형태로 자라났다. 하지만 친구라고는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나무와 매일 밤 동산으로 흘러드는 꿈들뿐이었다. 릴리아는 어머니 나무를 도와 싹들을 돌보며 인간애에 관해 배웠다. 인간과 인간 세계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필멸자들이 잠들었을 때만 볼 수 있는 감정과 욕망의 소용돌이를 느끼며 매 순간을 보냈다. 릴리아는 꿈뿐만 아니라 꿈꾸는 인간들도 아끼고 사랑했고, 그들을 새로운 친구로 여기며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그 인간들을 직접 만날 수 있기를 고대했다. 그 소망은 너무도 강해, 결국 나무의 꽃봉오리로 맺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릴리아는 인간과 만났지만, 그 경험은 꿈과 전혀 달랐다. 오히려 꿈에서 깨는 계기가 되었다. 릴리아의 숲 바깥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쟁이 들불처럼 번졌고, 그로 인해 동산으로 흘러드는 꿈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무도 병에 걸렸고, 몸통에 솟아난 혹에서는 어두운 기운이 새어 나왔다. 릴리아는 어머니 나무와 꽃봉오리에 맺힌 꿈들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곧 동산은 힘을 잃고 외부 세계의 폭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어느 밤, 어떤 형체를 추격하던 전사들은 숲속의 꿈꾸는 나무가 있는 곳까지 침투했다. 그들이 검을 휘둘러 나뭇가지를 베자, 릴리아의 이뤄지지 않은 꿈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당황한 릴리아는 전사들을 모두 잠재웠다. 꿈을 통해서 만났던 인간들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빛이 아니라, 덩굴이나 오히려 '옹이'에 가까웠다. 전사들이 잠들고 릴리아가 흐느껴 우는 동안, 전사들이 쫓던 형체에서 꿈 하나가 솟아났다. 그리고 부러져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로 힘없이 흘러가더니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갔다. 릴리아가 나뭇가지를 집어 들자, 꽃봉오리 속에 스며든 꿈이 느껴졌다. 꿈을 달래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수록 꽃봉오리와 릴리아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머리에 맺혔던 꽃봉오리도 피어오르며 반짝이는 꽃가루와 같은 마법이 주위로 소용돌이쳤다. 그 순간, 희망과 기적의 힘을 통해 릴리아 역시 피어났다. 완전한 모습이 된 릴리아는 재채기 한 번으로 주변 숲에 마력의 파도를 보냈다. 인간들은 왜 숲에 들어왔는지,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하나둘씩 깨어났다. 누구도 나무 뒤에 숨은 사슴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릴리아는 안도하며 숲을 떠나는 인간들을 바라봤다. 릴리아의 눈에 그들은 여전히 덩굴이었지만, 그 안에 빛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인간들의 꿈이 나무로 흘러들지 않으면, 나무를 인간들에게 가지고 가겠다고 릴리아는 다짐했다. 릴리아는 나뭇가지를 들고 동산을 떠나 인간 세계로 갔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공포의 대상이 된 인간 세계는 릴리아의 상상 속 모습과 전혀 달랐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릴리아는 인간들의 꿈이 피어나도록 돕는다. 그리고 꿈의 주인이 누군지, 덩굴 아래에 무엇이 붙잡혀 있는지 궁금해한다. 인간들의 가장 원초적인 소망을 이룸으로써 릴리아는 환희를 느끼고, 머리에 맺힌 꽃봉오리와 그녀의 꿈 역시 피어오른다. 어두운 기운이 아이오니아를 잠식하고 있지만, 그 어둠의 장막 아래에는 익숙한 희망의 빛이 웅크리고 있다. 세상과 용감히 맞서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릴리아는 닥쳐올 난관을 이겨 낼 수 있으리라. |
2. 꿈의 동산
[image] 여자아이가 천천히 숲 안쪽으로 들어왔다. 어떨 때는 구름 아래에 초록색 담요처럼 짜인 잎을 지나며 숲 '밑으로' 들어왔다. 아! 뿌리가 있을 때는 숲 '위를' 지나오기도 했다! '넘어지지 말렴, 꼬마야.' 아이는 어느새 숲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익!' 나는 수많은 인간이 모인 아이의 마을에서 나오는 길 너머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내 머리 위의 작은 꽃봉오리가 덤불 속에서 밖을 엿봤다. 초조해진 난 발굽으로 땅을 파며 어머니 나무에서 가져온 나뭇가지를 꽉 끌어안았다. 이리저리 꼬인 익숙한 나무껍질 감촉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무 사이에 있으면 안전했다. 몇 걸음만 뒤로 가면 더 안전할지도 몰랐다. '조, 조금만 더…' 마을에 있는 수많은 인간이 언덕 비탈을 활기로 가득 채웠지만 아이는 혼자였다. 나는 나뭇가지를 더 단단히 쥐고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앞으로 나갈 시간이야, 릴리아. 한 발자국만 가면 돼. 넌 할 수 있어. 어머니 나무가 아프잖아. 저 아이의 꿈이 필요해.' 난 발을 내디뎠다. 아니, 발굽을 조금 움직였다고 해야 하나. '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네. 좋아, 릴리아. 다시 해 보자.' 이번에는 덜덜 떨리는 발굽을 들어 겁을 집어먹기 전에 다시 힘차게 내디뎠다. '아이고. 뒤로 가 버렸네.' 아이는 멈춰 서더니 내가 지켜보는 곳과 멀지 않은 나무 밑에 앉았다. 다 해진 인형을 껴안고 조용히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 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다. 내 나뭇가지 안에 잠든 힘으로 떨리는 모든 것 아래에서 아이의 꿈이 느껴졌다. 가지 끝에 매달린 꽃봉오리가 아이와 아이의 꿈을 감지하고는 눈부신 생기에 몸을 떨었다. 내 머리 위의 작은 꽃처럼 어머니 나무에서 가져온 빛나는 꽃봉오리와 나뭇가지는 수면 마법을 이끄는 만큼 꿈에 이끌렸다. 반짝이는 꿈가루가 꽃잎 사이를 떠다니자 주위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며 나보다 먼저 빛을 피해 도망쳤다. '내, 내 발굽이 보일까? 이익!' 점점 작아지는 그림자에 네 다리를 전부 욱여넣으려고 애쓰던 난 균형을 잡지 못해 위태로이 흔들렸다. 나와 함께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빛나는 꽃봉오리도 격하게 움직이자 먼지 같은 꿈가루가 자욱하게 퍼지며 잎 너머 아이 쪽으로 흘러갔다. 그때 그림자가 또다시 움직여 난 아이가 기다리는 공터에 들어서고 말았다. 눈을 깜빡이기도 무서워 나뭇가지 뒤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날 보지 않았다. 인형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숨길 뿐이었다. 흐느끼는 소리는 훌쩍이는 소리로, 또 한숨으로 바뀌었다. 꽃봉오리에서 나온 꿈가루가 서서히 아이 주변에 가라앉으며 반짝이자 아이 눈이 천천히 떨리며 감겼다. 아이가 나무에 몸을 털썩 기대자 아이가 안고 있던 인형이 스르르 떨어졌다. 나는 여전히 움직이기 무서웠다. 그때 나뭇가지의 꽃봉오리에서 무엇인가 빙글빙글 돌아 나오더니 머리 위에서 춤을 췄다. 어머니 나무의 신비한 정원을 처음 떠났을 때부터 나와 함께한 내 오랜 친구, 작은 꿈이었다. 반짝이는 꿈은 아직 아이 안에 꼭 붙어 있는 다른 꿈이 느껴지는지 공중에서 춤을 추듯 아이에게 날아갔다. "아슬아슬했어." 난 꿈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이 위를 스치듯 지난 꿈이 반짝이는 흔적을 남겨 아이의 피부를 간질이자 아이가 입맛을 다시며 코를 찡그렸다. 또 콧방귀를 어찌나 크게 뀌던지 난 다시 펄쩍 뛰었다가 얼굴을 붉히며 착지했다. 그리고 머리에 달린 작은 꽃봉오리의 꽃잎을 만졌다. 꽃잎도 내 뺨처럼 붉게 물들었을지 궁금했다. 아이는 여전히 곤히 잠든 채였다. '왜 꿈이 안 나오지?' 작은 꿈은 계속해서 아이 주변을 맴돌며 꿈을 불러내려고 했다. 그러나 내 시선은 땅에 떨어진 인형으로 이끌렸다. 인형을 찾는 듯 늘어진 아이의 손은 무언가를 쥐려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집과 다름없었던 정원을 떠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눈을 감을 때마다 꿈꾸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갈구하는 것, 놓지 않는 것이 사람들을 슬프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가장 바라던, 꿈꾸는 인간을 만나는 일이 어머니 나무를 해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게 꿈이 아니라면 어쩌지?' 난 나뭇가지를 내려놨다. '이번에는 할 수 있어, 릴리아. 잠자는 것처럼 눈을 감으면 돼.' 휘청이며 앞으로 간 나는 아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인형을 주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게 꿈이라면?' 아이에게 인형을 돌려주려고 손을 뻗었다. 아무리 작은 인간이라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조바심이 났다. 아이는 가슴팍에 인형이 느껴지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자세를 바로 하고는 인형을 끌어안았다. 아이의 작은 팔은 나까지 감쌀 수 있을 정도로 길었다. 아이는 인형을 안으면서 나를 점점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바로 그 순간 우리 둘 다 활짝 피어나려면 필요한 것을 찾았다. 마침내 빛나는 소용돌이가 되어 나타난 아이의 꿈이 내 오랜 친구와 함께 빙빙 돌며 춤을 췄다. 숲이 엄청난 경이로 가득 차는 게 머리부터 발굽까지 생생히 느껴졌다. '껑충껑충 뛰고 싶어!' 각각의 꿈은 이름 없는 색깔처럼 묘사하기 정말 어려웠다. 이 꿈은 이미 작별 인사를 했는데도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아이의 언니일까? 아이가 갑옷을 입은 후 모든 것을 두고 떠나기 전의 언니로 여기는 인형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아이가 인형을 끌어안으며 너무 꽉 쥐고 있는 것일 뿐 더 깊숙한 곳에 진정한 꿈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언니가 그립구나?" 난 아이의 귀에 속삭였다. "네겐 언니의 사랑이 필요해." 아이에게 그 사랑을 주고, 보고,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난 포옹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머리의 작은 꽃봉오리가 빙그르르 돌며 열리자 소용돌이치는 꿈가루를 보냈다. 두 꿈은 나뭇가지의 커다란 꽃봉오리 속에 감겨 들어왔다. "네 꿈을 나무에게 속삭일게. 꼭 기억할게." 난 아이에게 말한 후 한마디 더 덧붙였다. "널 만나게 돼서 기뻐." '아이의 꿈도 내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 나는 아이를 떼어 낸 후 살며시 내려놓았다. 아이는 한숨과 함께 꿈을 가두고 있던 것을 전부 내보냈다. 수많은 필멸자처럼 아이의 언니도 돌아와서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는 꿈을 꿔야만 했다. 꿈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아이는 눈을 감는 것을 기억하는 한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꿈… 그리고 이 아이가 마법 같은 이유였다. 재채기를 하자 머리 위 꽃봉오리 안에 있던 꿈가루가 빙빙 돌며 날아가 어머니 나무 쪽으로 부는 바람에 아이의 꿈이 든 마법을 실었다. "아이고." 난 훤히 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경이감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껑충껑충 숲속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푹 잔 듯 하품하며 눈을 떴다. 위쪽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쳤다. 아이는 자신이 아직 숲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 인형을 떨어뜨렸다. 이내 천천히 인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가 준 것인지 떠올린 아이가 다시 인형을 주웠다. 아이는 인형을 꼭 쥐고 공터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마, 오-마! 언니 왔어요?" 아이가 자신의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방금 언니를 봤어요. 언니를 봤다고요!" 아이의 작은 모습은 사라졌지만 아이가 뛰어간 길을 따라 반짝이는 꿈가루에서 꿈의 꽃이 싹을 틔웠다. 아이가 돌아오면 이 꽃 중 하나를 딸지도 몰랐다. 그러면 언니의 사랑이 잡을 수는 없어도 언제나 꽃이 되어 피어난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게 될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