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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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래퍼, 사업가. 노 리미트 레코드 설립자. 본명은 퍼시 로버트 밀러, 별명은 'Mr. Ice Cream Man'이다.
1967년 4월 29일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칼리오페 프로젝트에서 태어났으며 휴스턴 대학교 재학시절 농구실력으로 날리고 다녔다. 하지만 무릎 부상때문에 접었고, 의료사고로 사망한 조부에 대한 보상금을 들고 1991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로 가서 노 리밋 레코드(No Limit Records)를 설립해 데뷔했다. 데뷔 초기엔 평가가 안 좋았으나 1992년 2집, 1994년 3집이 각각 인기를 얻어 조금씩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5년 뉴올리언스로 사업영역을 옮기고 4집부터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에서 '서던 힙합' 스타일로 바꿔 1996년 5집, 1997년 6집을 각각 내 번성했다. 2001년 프리오리티에서 유니버셜로 음반사를 옮겨 뉴 노 리미트 레이블을 이끌었으나, 쥬브나일과 릴 웨인 등을 앞세운 지역 라이벌 캐시 머니 레코드의 약진, 식상한 음악 스타일, "Soulja Slim"의 사망 및 동생 C-머더의 살인 등으로 기세가 약해져 2004년 노 리밋이 문을 닫았다. 이후 2005년 거터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재기를 노리다가 2010년 노 리밋 포에버를 세운 뒤 아들 로메오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형제들이랑 사촌, 부인, 아들도 데뷔하여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으며 자기 음반 회사에서 양성한 래퍼들도 날림 퀄리티(...)의 앨범으로 성공하였다.[1] 그래도 C-머더 같은 동생들이나[2] 미스티컬[3] , 소울자 슬림(1977~2003) 같이 제대로 된 래퍼들도 있었으며, 특히 1992년부터 가끔 실크 등 두 동생과 'TRU'를 결성해 활동했다. 스눕 독도 1998~2001년까지 소속했으며 이 시기 낸 앨범들이 상업적으로 상당히 성공했었고[4] , 둘 사이의 관계도 돈독했다. 아들 로메오도 2001년 래퍼로 데뷔시켰는데, 타 뮤지션과 달리 아들만큼은 커버아트까지 'A급'으로 해줬다. 그 외에 사촌으로는 모 B. 딕이 있다.
상당히 대인배로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비용과 기회를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아웃로우즈의 인간성을 내다버렸던 슈그 나잇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이부분은 꽤 높게 평가받을 만 하다.
1. 개요
미국의 래퍼, 사업가. 노 리미트 레코드 설립자. 본명은 퍼시 로버트 밀러, 별명은 'Mr. Ice Cream Man'이다.
2. 생애
1967년 4월 29일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칼리오페 프로젝트에서 태어났으며 휴스턴 대학교 재학시절 농구실력으로 날리고 다녔다. 하지만 무릎 부상때문에 접었고, 의료사고로 사망한 조부에 대한 보상금을 들고 1991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로 가서 노 리밋 레코드(No Limit Records)를 설립해 데뷔했다. 데뷔 초기엔 평가가 안 좋았으나 1992년 2집, 1994년 3집이 각각 인기를 얻어 조금씩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5년 뉴올리언스로 사업영역을 옮기고 4집부터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에서 '서던 힙합' 스타일로 바꿔 1996년 5집, 1997년 6집을 각각 내 번성했다. 2001년 프리오리티에서 유니버셜로 음반사를 옮겨 뉴 노 리미트 레이블을 이끌었으나, 쥬브나일과 릴 웨인 등을 앞세운 지역 라이벌 캐시 머니 레코드의 약진, 식상한 음악 스타일, "Soulja Slim"의 사망 및 동생 C-머더의 살인 등으로 기세가 약해져 2004년 노 리밋이 문을 닫았다. 이후 2005년 거터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재기를 노리다가 2010년 노 리밋 포에버를 세운 뒤 아들 로메오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3. 특징
형제들이랑 사촌, 부인, 아들도 데뷔하여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으며 자기 음반 회사에서 양성한 래퍼들도 날림 퀄리티(...)의 앨범으로 성공하였다.[1] 그래도 C-머더 같은 동생들이나[2] 미스티컬[3] , 소울자 슬림(1977~2003) 같이 제대로 된 래퍼들도 있었으며, 특히 1992년부터 가끔 실크 등 두 동생과 'TRU'를 결성해 활동했다. 스눕 독도 1998~2001년까지 소속했으며 이 시기 낸 앨범들이 상업적으로 상당히 성공했었고[4] , 둘 사이의 관계도 돈독했다. 아들 로메오도 2001년 래퍼로 데뷔시켰는데, 타 뮤지션과 달리 아들만큼은 커버아트까지 'A급'으로 해줬다. 그 외에 사촌으로는 모 B. 딕이 있다.
상당히 대인배로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비용과 기회를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아웃로우즈의 인간성을 내다버렸던 슈그 나잇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이부분은 꽤 높게 평가받을 만 하다.
4. 관련 자료
[1] 주로 Pen & Pixel Graphics 사에 수주시켰는데, 해당 업체는 캐시머니 레코드 소속 뮤지션 앨범아트까지 수주했다.[2] 실크 더 셔커는 나쁜 평가를 받는다.[3] 주로 악을 쓰는 듯한 야생랩을 선보이며, 노 리밋 시절에는 자이브 레코드와 같이 내다가 2000년에 노 리밋을 떠난 후 <Shake Ya Ass>로 더욱 히트쳤으나, 2003년에 자신의 헤어스타일리스트를 성폭행하려다 검거돼 2004년 법원에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았다.[4] 흥행과는 별개로 음악적 퀄리티는 아쉬운 편이었다. No Limit Top Dogg은 상당히 좋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