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요슈

 

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 만엽집 / Man'yōsh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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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籠毛與 美籠母乳 布久思毛與 美夫君志持'''
(こもよ みこもち ふくしもよ みぶくしもち)
'''此岳尓 菜採須兒 家吉閑 名告紗根'''
(このをかに なつますこ いへきかな なのらさね)
'''虛見津 山跡乃國者 押奈戶手 吾許曾居'''
(そらみつ やまとのくには おしなべて われこそをれ)
'''師吉名倍手 吾己曾座  我許背齒告目 家呼毛名雄母'''
(しきなべて われこそませ われこそはのらめ いへをもなをも)
바구니 / 바굼 들고 / 호멩이를요 / 호멩이를 들고
이 언덕에서 / 나물 캐는 애 / 집안 말해요 / 이름 말해요
(소라미츠)[1] / 야마토란 나라는 / 모두 통틀어 / 내가 다스리네
모두 통틀어 / 내가 지배하네 / 짐이야말로 밝힐까[2] / 집안도 내 이름도
'''만요슈, 1권 잡가(雜歌) 제1수
泊瀨朝倉宮御宇天皇 (太泊瀨稚武天王) 天皇御製歌
위키문헌 (pdf, 왼쪽), 이연숙 역.'''[3]
1. 내용
2. 관련 항목


1. 내용


일본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 최고(最古)의 시(와카) 모음집이다. 한국으로 치면 삼대목쯤 되는 위치에 있는 책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 만엽집이라고들 부른다. 만엽집의 엽을 두고 '코토노하(言の葉)', 즉 말이라고 풀이한 설도 있고 이야기나 시의 비유라고도 하는 설도 있다. 어쨌든 만엽집은 '많은 시를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기존에 있던 가집들을 참고하여 다양한 노래를 모으고 정리한 책이다.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책 20권에 시가 약 4516수 정도 있다. 시와 노래들의 제작시기는 5세기부터 8세기까지 350여 년에 걸치지만, 대부분은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졌다. 아직 가나가 없는 시기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향찰과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를 빌려 표기하는 '만요가나'로 쓰여, 고대 일본어를 연구할때 있어서 매우 가치가 높은 자료이기도 하다. 고대 일본어 시들을 그 발음이 어떠했는지도 불분명한 만요가나로 기록한 탓에 현대 일본어로도 여러 가지로 번역하며, 개중에는 현대까지도 그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도 있다.
시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유교, 도교의 내용을 차용한 것도 있으며, 후기의 작품에서는 불교의 내용을 반영한 것도 보인다. 또한 그와 더불어서 신토와 일본의 천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만요슈 20권을 한 번에 편찬하지 않은 듯하다. 시들을 모으다 보니 분량이 늘어나 권수도 그에 맞춰 늘렸다고 추측한다. 그리하여 수집자와 편찬자가 누구인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당시 천황가가 편찬에 크게 관여한 듯하며 마지막 편집자가 오토모노 야카모치라는 것이 현대의 통설이다. 시의 창작연대는 347년부터 759년까지 수백 년에 걸치지만, 그중 다수는 600년 이후에 창작된 듯하다. 책마다 문체, 만요가나의 사용법 등이 차이가 나는 부분이 일부 존재하는데, 이 역시도 만엽집이 오랫동안 여러 사람의 손으로 집필되었다는 설에 힘을 실어준다.
그 방대한 양[4] 때문에 현재 영어중국어, 프랑스어, 체코어(!), 한국어로만 완역본이 있다. 한국어로는 이연숙 교수가 2018년을 끝으로 6여 년에 걸쳐 완역하였으며, 원본 20권을 한국어역 14권에 담아 출간하였다. 14권이 출간된 시점에서 중간 부분은 시내에 물량이 없으나 E-Book으로는 전부 구입가능하니 참고하자.[5]
이 만요슈가 사실은 한국어 시집이며 한국어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영희라는 사람도 있다. 1990년대 조선일보에 '노래하는 역사[6] '라는 이름으로 그 내용을 연재한 적도 있다. 하지만 고대 한국어가 어땠는지 통일된 학설도 없는 마당에 이영희는 무척이나 자의적으로 한국기원설인 마냥 해석하였고, 미즈노 슌페이가 고문헌 연구 방법론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반박하자 논파당하여, 현재는 이런 설을 믿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자세한 반박 내용은 미즈노 슌페이 문서를 참조.
하지만 일본 국내외의 권위자들 중에서도 만요슈의 많은 노래가 중국만이 아니라 한반도, 특히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며, 알렉산더 보빈 또한 만요슈의 일부 텍스트가 한국어계 어휘를 차용했다는 분석을 했다. 대충 한국 가요에 영어 단어가 섞이는 수준의 차용이라는 것.#
한국의 국문학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러운 책이다.# 고대의 시인 향가가 겨우 26수[7]만 남아 고대 한국어 자료가 너무나도 부족하고, 한글 창제 이전의 옛 시가 4천 수씩이나 남았더라면, 과거의 어휘는 물론 문법이나 활용 등등 연구할 분야가 끝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이런 고전문헌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이 발달했다. 신라향찰을 해석할 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언어학자 오구라 신페이만요가나와의 유사점에 착안하여 처음으로 향가 해석을 시도했다.[8] 일본인 학자가 처음으로 향가를 해석하려 시도했다는 사실에 자극받아 양주동 박사가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향가 해석을 시도했음도 나름대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현 일본의 연호인 레이와(令和, 영화)가 만요슈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그동안 일본의 연호가 중국 고전들에서 따온 것과 달리, 처음으로 일본의 고전에서 따온 연호라 많이 회자되었다. 다만 해당 구절은 장형이 쓴 시를 번안한 시에서 나온 문구이다.

2. 관련 항목



[1] '마쿠라고토바'로, 수식할 때 별 이유 없이 들어가는 상투적인 말이다. 의미는 미상이라고 한다.[2] 임금이 집안이나 이름을 말하는 일은 많이 없으므로 '짐에게만 말해주련'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3] 이연숙(2012), '한국어역 만엽집 1'. 원문의 글자수를 반영하여 번역하였다.[4] 총 20권에 수록된 시가만 4500수가 넘는다. 현대의 책 기준으로 해도, 만요가나 원문+현대어 해석+역주가 달려있는 일본 현지 서적들의 분량도 가볍게 10권이 넘어간다.[5] 2020년 6월 현재 E-Book은 모두 절판된 상태이며, 전권 종이책으로만 구입 가능하다.[6] 이 책 자체는 조금만 일본 고문학에 관심이 있어도 불쏘시개 서적임을 알 수 있다. 마쿠라코토바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내용을 음탕하게 바꾸는 등 악의적으로 폄하하였다.[7] 위서인 화랑세기에 수록된 2수는 당연히 제외.[8] 오구라(1929), 「鄕歌及吏讀의 硏究」(향가 및 이두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