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 코크바

 


'''이름'''
시몬 바르 코크바
'''출생'''
출생지 불명, 출생년도 불명
'''사망'''
135년 베타르 (Betar), 유대
시몬 바르 코크바 (Simon Bar Kokhbar) 또는 "별의 아들 시몬"은 132년부터 135년까지 제2차 항로마 전쟁을 지휘한 유대 장군이다.

1. 생애


기원후 70년, 1차 유대-로마 전쟁의 참담한 패배로 유대인들은 패배하였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었다. 60년 뒤인 115년, 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가 파르티아 제국 (전 페르시아)원정을 나간 틈을 타 파르티아 제국령에 상주하던 유대인들 중 일부가 로마제국에 대항해 키토스 전쟁(115년-117년)을 일으킨다. 로마 장군 루시우스 키에투스는 이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키투스 전쟁의 "키투스"는 이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에 반발해 바르 코크바는 유대에 자치적인 유대인들의 국가를 선포하고, 동전을 주조할 것과 신전들을 건축할 것을 기획한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하고, 바르 코크바는 이곳에서 유대인들의 군주로 2년반 동안 군림한다. 이를 예상치 못하던 로마는 초기에 큰 피해를 입었으나, 하드리아누스 황제 휘하에 반란을 진압한다. 하드리아누스 예루살렘을 로마 식민지로 규정, 자신의 이름을 따 "아엘리아 카피톨리나" 개명하고, 유대인들이 진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 전쟁으로 18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985구의 유대 마을이 파괴되었다. 바르 코크바는 삼백명의 유대 지도자들과 함께 처형되었다.[1]
예루살렘의 재정복 시, 많은 유대인들은 내심 메시아의 시대를 바라고 있었고,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반란이 실패하자, 유대인들이 쓴 경전인 탈무드에서는 바르 코크바를 가리켜 '거짓의 아들'이라는 뜻인 "벤 쿠시바(Ben-Kusiba)"라고 불렀는데, '거짓된 구세주'라는 경멸적인 호칭이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옆의 링크를 참조 바람.#
[1]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분명한데, 자살했다거나 뱀에게 물려 죽었다고도 하며, 그의 머리는 잘려져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한테 바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