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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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04.17 ~ 1988.06.06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 - 1988년 6월 4일, 분신하며 외친 말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
가족으로는 형 박래군[1],조카 박성아가 있다.[2]
1. 일생
1.1. 한 때는 시인을 꿈꿨던 청년
1.2. 민주를 외치며 타오르다


1. 일생



1.1. 한 때는 시인을 꿈꿨던 청년


박래전은 1963년 경기도 화성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2년 숭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 거기서 그는 문학회 활동을 하며 시를 쓰곤 했다. 그는 자신의 시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를 원했다. '동화', '반도의 노래', '바람일 수는 없다' 등의 시를 썼다.

동화(冬花) - 박래전

당신들이 제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지르는

가을꽃일 수 없습니다.

제가 돌아오지 못한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건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건

내 발의 사슬 때문이지요.

겨울꽃이 되어 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향기를 위해

내 이름은 동화(冬花)라 합니다.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두운 현실 아래에서 시만 쓰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 학우들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며 연일 거리시위와 연좌시위에 참여했다.[3]

1.2. 민주를 외치며 타오르다


시위를 계속 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도 수배 대상에 올라갔다. 그리하여 그는 수배 상태로 숭실대 학생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러던 1988년 6월 4일, 그는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4시 온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부파쇼 타도하자!'고 외쳤다. 그가 쓴 유서에는 ''''학살원흉 즉각 처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분신으로 인해 몸 대부분에 심한 화상을 입고 이틀만인 6월 6일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숨졌다. 그의 나이 25살이었다.장지는 여러 민주화 운동가들이 묻혀 있는 마석 모란공원으로 결정되었다.
이 일로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한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고 한다.

[1] 유명한 인권운동가로 동생처럼 문학도였다.[2] 출처-창비아동문고 출판작 ''문제아''의 겨울꽃 삼촌 부분에서 발췌[3] 저 시는 묘비에도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