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일
1. 소개
前 야구선수. 빙그레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했다. 포지션은 포수.
2. 선수 경력
1989년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다
타격이 떨어지는 수비형 포수로, 당시 유승안이 주전 포수였고 김상국이 백업으로 있던 터라 잠깐 대수비 등으로 1군에 모습을 보이곤 했다.
게다가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은 1990년부터 천안북일고 출신의 김상국을 주전 포수로 등용했고 다음 해에는 또 다른 북일고 출신 양용모를 백업으로 기용하여 박선일은 설 자리를 잃었고, 1993 시즌 중 투수 이상목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으로 트레이드됐다.
1993년 당시 삼성의 포수진은 암울했다. 이만수는 포수로서는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고, 김성현이 주전 포수가 되었는데 문제는 김성현이 공격에 비해 도루저지에 약했던 것. 게다가 1992 시즌을 끝으로 노장 박정환과 OB에서 데려온 조범현이 이렇다 할 활약 없이 은퇴하며 백업 포수마저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삼성은 박선일을 트레이드로 데려온 것. 참고로 트레이드 상대는 고졸 4년차 투수 이상목이었는데, 이상목은 1999년 14승을 올리고 한화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는 등 빙그레/한화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삼성은 팀의 미래를 팔아버린 셈.
여하튼 박선일은 김성현을 대신해 주전 포수를 맡았으나 타격이 좋지 못해 하위권 팀들과의 경기나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선 상대적으로 타격이 강한 김성현이 주전으로 기용되었는데, 1993년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주전으로 낙점됐지만 3차전에서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손가락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당했으며 삼성은 천신만고 끝에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2승 1무 1패로 앞서 나갔으나 박선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채 5~7차전에서 해태에게 도루 12개를 허용하면서 결국 2승 1무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아무튼 두 포수는 서로 다른 스타일로 투수를 이끌어 팀의 1993년 정규 시즌 2위와 박충식-김상엽-김태한-성준 등 선발 4명이 10승 이상을 기록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1994년 이후로 삼성이 팀 리빌딩에 소홀히 했던 문제가 터지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도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 과정에서 우용득 감독이 1995년 시즌 후 해임되었고 백인천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결국 팀 쇄신에 들어가면서 늙은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 백인천 감독은 2년생 포수 김영진을 주전으로 기용했으며, 타격에서 별볼일 없었던 박선일은 1996년에 방출되고 그대로 은퇴했다. 하지만 김영진도 타격이 약한 건 마찬가지였다.
박선일이 은퇴하고 김성현이 쌍방울로 이적하며 삼성은 1995년 2차 1순위로 지명한 전도유망한 포수를 주전으로 기용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그 포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삼성의 포수난은 1999년 7월 마감일에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진갑용이 조범현 배터리코치의 손을 거쳐 성장하기 전까지 지독하게 이어졌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에는 경희대학교와 경동고 코치를 거쳐 원주고에서 감독을 맡았고, 현재는 사당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이다.
원주고 재임 때 그를 거친 선수가 SK 외야수 김재현이다.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