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봉(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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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수봉(朴壽奉)
이명
박한기(朴漢己), 박한동(朴漢東)
본관
함양 박씨
생몰
1909년 8월 6일 ~ 1948년 2월 17일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선암동
(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1]
사망지
전라남도 영암군
추서
대통령표창
박수봉은 1909년 8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선암동(현 덕진면 운암리)에서 태어났다. 1932년 3월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이 주도한 소작쟁의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전남 영암군 덕진면에서 동지들과 함께 덕진면 운암리 지방 지주들의 소작권 이전 횡포에 항거해 그 동리 청년회관에서 청년회원 수십 명을 모아 소작권 이전의 방지 방법에 관한 협의를 하였다. 이어 6월에는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에서 박수봉을 비롯한 청년회원 수십 명이 모여 소작권 이전 방지를 협의한 후 덕진면 운암리와 백계리 방면에서 구(舊) 소작인의 집에 돌입하여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꾸짖고 동인들을 구타 응징한 후 소작쟁의 만세를 고창하고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미결기간 동안 1년 3개월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후 영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8년 2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박수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함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유성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