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1. 개요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2. 상세
6백 권이나 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을 한문으로 260자도 안 되게 짧게 요약하였지만 대승불교의 깊은 진리를 함축했다는 경전이다. 동아시아에 한문으로 번역하여 전래한 사람은 당나라 '''현장 법사'''.[3][4]
원래 반야심경도 다른 경전과 마찬가지로 석가모니가 반야심경의 내용을 설한 계기, 장소, 설해진 후의 결과 등이 다 쓰인 광본(廣本)[5] 이 있으나 보통 핵심부분만 독송한다. 사실 이쯤 되면 광본으로도 3쪽밖에 안 되는 내용을 600권으로 늘린 분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티베트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광본을 독송한다.[6][7]
짧으면서 의미가 깊기 때문에 대승불교 의식에서 매우 자주 독송하고, 우리나라 불교계도 역시 거의 모든 법회의식에서 독송한다. 그리스도교와 비교한다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이슬람에서는 알 파티하(개경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공 사상'을 설명하는데, 이를 터득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평생 반야심경만 독송하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불교의 주요한 키워드이므로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이 널리 알려진 경구이다. 재미있는 점은, '공 사상의 측면에서 보면'이라는 전제 하에 초기불교의 교리가 깡그리 부정되는 듯하다는 것이다. 순서대로, 초기불교에서 무아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오온과 육입처, 육경, 육식은 물론, 순관과 역관을 포함한 십이연기의 제1항부터 제12항, 사성제가 깡그리 모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없다'고 하는 것은 진짜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자성(自性)[8] 이 없다는 이야기임을 유의해야 한다. 공 사상 문서로.[9]
스리랑카 출신 승려가 일본에서 반야심경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책을 내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대충 요지는 '색즉시공은 불교의 교리에 부합하고 철학적으로 보아도 논리가 맞지만, 공즉시색은 말이 안 된다. 공즉시색은 틀렸다.'는 것. 이는 상좌부 불교의 관점 때문인데, 상좌부에서는 공(空), 즉 무아(無我)인 것은 물질, 마음, 마음부수, 닙바나로 실제로 있는 것 네 가지 전부이며, 그러므로 공은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본다.[10] 반면 대승 불교에서는 공(空)뿐 아니라 유식(唯識)을 함께 고려해서 논리를 전개한다. '색즉시공'은 공으로 해석가능하고, '공즉시색'은 유식으로 해석가능하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 '색즉시공'이고, 그러한 하나를 모든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이 '공즉시색'. 따라서 '하나의 빛이 온 세상을 장엄하게 비춘다'는 화엄(華嚴)의 사상은 '공즉시색'의 유식론에 기반을 둔 논리인 것이다.
2011년 9월 20일 대한불교 조계종 187회 중앙총회에서 종단표준의례 한글반야심경[11] 동의안을 가결하였으며, 10월 5일 공포되었다. 이하 본문의 한국어 부분은 조계종 표준 한글반야심경을 인용한 것이다.
3. 반야심경 본문
3.1. 오역?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는 2019년 《인도철학》(인도철학회 간행) 제54집에 발표한 <대·소본 《반야심경》의 비교를 통한 반야바라밀다주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현존하는 대 · 소본 반야심경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반야심경의 한역 과정에서 오역이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교수가 오역으로 지목하는 부분이 바로 본경의 말미에 붙은 반야바라밀다에 대한 부분이다.
현재 통용되는 반야심경 번역본은
라고 하였다. 이 교수는 이 부분에서 한역 반야심경에서 '반야바라밀다 주문' 즉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번역한 부분 자체가 범본(산스크리트어본)을 한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이라는 것이다. 해당 부분은 범본에는 'prajñāpāramitāyām ukto mantraḥ'로 나오는데, 이는 '반야바라밀다의 상태에서(prajñāpāramitāyām)' 설해진(ukto[=uktaḥ])' '만트라(mantraḥ)'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되는 '반야바라밀다'가 그 자체로 주문이라는 것이 아니라 '''반야바라밀다라는 경지와 상태 속에서 설해진 주문'''으로서 그 주문의 구체적인 내용이 뒤에 언급되는 '아제아제…사바하'라는 것이다. 대다수 한역자가 잘못 이해했거나 구마라집이나 현장 번역을 그대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다.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세 번 반복)
이 교수의 주장을 따라 해당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또한 이 교수는 반야바라밀다주에 해당하는 유명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주문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부분의 산스크리트어 본문은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ṁgate bodhi svāhā'이며, 이 부분도 현행 번역본처럼 '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 깨달음을 이루자.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보다 '가신 분이여, 가신 분이여, 피안에 가신 분이여, 피안에 온전히 가신 분이여, 깨달음이여, 행운이 있으라.'로 번역할 수 있다.[27] 이는 반야바라밀다 즉 제법공상(諸法空相)을 통찰하는 지혜의 경지를 얻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 내지는 찬양을 위한 캐치프레이즈 성격이 짙은 구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할지니 반야바라밀다의 대주(大呪), 대명주(大明呪), 무등등주(無等等呪)는 일체의 고통을 없애는 주이며, 진실이며 허망하지 않은 까닭에 반야바라밀다에서 그 주가 설해졌으니, 바로 이것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세 번 반복)
4. 다른 동영상
송광사의 반야심경. 불교에서도 절이나 지방마다 음이나 속도가 조금씩 다른데 가장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 송광사와 해인사. 근데 이 영상은 아무래도 녹음을 위해 천천히 독송한 듯. 실제로 송광사 예불에서는 엄청 빠르다. 서울은 좀 느린 편이고 음도 조금 다르다. 그래서 지방의 불자가 서울에 와서 반야심경을 봉독할 때 가끔 삑사리 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4.1. 힙합 반야심경
스펀지에서 트로트 복음성가가 있다는 명제에서 본 곡이 같이 소개된 바가 있었다.
4.2. 반야심경 리믹스
5. 대중 매체에서 등장하는 반야심경
-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등장하는 주인공 살인자 김병수는 평소 니체와 소포클레스 그리고 반야심경을 자주 읽는다고 언급된다.[30]
-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 분)이 자신의 장검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자리 뒤편의 병풍에 반야심경이 적혀 있다. # 이순신 본인이 불교 신자였던 것도 아니므로[31] 뜬금없기도 할 뿐더러 감독의 종교(불교)가 반영된[32]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명량이 어느 정도 참조했음직한 김훈의 칼의 노래[33] 의 경우 허무주의라고까지 해석되지만 동시에 "삶의 조건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현실을 적극 비판하고 부정한다는 점에서 체념적 허무주의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이 모두 공(空)"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그저 세상의 만사가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 속에서도 긍정과 희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써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의 캐치플레이즈[34] 와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지점도 존재한다.
6. 관련 문서
[1] 로마자 표기는 Bhagavatī prajñāpāramitā hṛdaya Sūtra[2] 와일리식 로마자 전사로는 bcom ldan 'das ma shes rab kyi pha rol tu phyin pa'i snying po이다. '모든 박가범(붓다)의 어머니가 되는 반야바라밀의 정수'라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붓다는 석가모니 부처 한 사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붓다가 아니라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진리'를 인식하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은 모든 이들''' 즉 넓은 의미의 붓다를 가리킨다. 티베트어 한글표기안을 따름.[3] 그런데 서유기에서 삼장법사(=현장)가 고향을 그리워한다거나 앞길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심란해하면 손오공이 '''"스승님, 또 반야심경의 깊은 뜻을 잊으셨군요."'''라고 태클거는 장면이 제법 많이 나온다. 참고로 서유기에서는 저팔계가 삼장법사의 제자로 들어온 뒤 오소선사라는 인물이 대단하다며 추천하였고, 심경은 이 오소선사가 삼장법사를 만나서 전수한 것으로 나온다.[4] 다만 현장 이전에도 반야심경이라는 불경 자체는 '마하반야바라밀다명주경'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알려졌다. 번역자는 현장과 함께 불경 번역의 거두로 꼽히는 쿠마라지바.(출처: 대한불교청년회 게시판 및 동국역경원 불교사전) 다만 요새는 현장의 번역이 더 많이 유명하다. 후술하겠지만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정한 반야심경 한국어 표준번역도 현장이 한역한 반야심경을 기준으로 한다.[5] 쉽게 말해서 풀버전.[6] 이 산스크리트어 광본을 두고, 소품반야경과 대품반야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창작된''' 광본을 현장이 산스크리트로 역번역(back-translation)했거나, 그 외의 번역자에 의해 산스크리트로 역번역된 것이라고 보는 불교학자(대표적으로 Jan Nattier)들도 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쓰는 관용구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중국식 언어습관이 섞인 산스크리트어 조어가 광본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현재로서 반야심경 위경 논란은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나, 산스크리트 원본이 있었다 하더라도 각 번역자의 선택에 따라 번역본 혹은 음역본이 일부 축약/편집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의견이 많다.[7] 소본의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법륭사(法隆寺)에 패엽본이 존재하고, 광본의 산스크리트 사본은 일본 장곡사(長谷寺)가 소장하고 있다.[8] 실체, 혹은 본성[9] 성경의 전도서에서 지혜자와 우매자의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면 쉽다. 언제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0] 이는 '모든 가로수는 나무이다'와 '모든 나무는 가로수이다' 두 가지 명제의 참/거짓 여부와도 비슷하다.[11] 조계종 측에서 이렇게 발표했는데, 개념적으로는 한국어(국어, 국문) 반야심경이라고 해야 옳다.[12] '5가지 쌓임'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즉 물질ㆍ감수작용ㆍ지각작용ㆍ의지작용ㆍ인식작용을 말한다. 쉽게는 존재하는 모든 실체, 감각과 생각과 행함과 의식이라 하기도 한다.[13] 불교의 근본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오온은 물질ㆍ감각ㆍ지각ㆍ행동ㆍ의지를 뜻하는데, 부처의 모든 가르침은 이것을 전제하고 근거해서 모든 개념을 설명한다. 즉 초자연적 존재와 초능력, 기적 등을 근거하지 않는다.[14] 이전 한글 반야심경에는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라고 했는데 오역이다. ‘度’는 ‘건너다(渡)’는 뜻으로,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온갖 고통을 초월하다.’는 뜻으로 풀어야 한다. # 이는 度라는 한자가 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이) 지옥도나 아귀도 등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건진다'거나, 기도 혹은 천도재를 통해 이런 중생들을 천도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오역이다. 혹은 관세음보살이 지닌 '구원자'의 이미지로부터 비롯된 오역일 수도 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배가 뒤집혀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읊는다면 죽음을 피할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의 영향으로 관세음보살이 해상무역을 하던 상인들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역사도 있으니만큼. 이런 이유로 바닷가에 세워둔 관세음보살상을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 부른다.[15] 여기서의 색(rupa)이 말하는 건 물질을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비어있다는 뜻의 공과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립하는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16] 산스크리트 원본에서는 '색과 구별되는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공과 구별되는 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17] 산스크리트 원문에서는 '외부 자극을 받아들임', '대상에 대한 분석적 앎', '습관과 지어가는 행위에 의해 길들여지거나 훈습되는 것', '판단력 혹은 식별력'에 각각 해당한다.[18] 산스크리트 원문에서는 이 부분이 '접촉'에 해당한다.[19] 산스크리트 원문에 따르면 '인식 대상'에 해당한다.[20] '오근의 인식을 종합하는' 기관이나 기능에 해당한다.[21] 6근과 6식(이를 합쳐서 12처라고 한다.), 그리고 6계, 즉 안식계, 이식계, 비식계, 설식계, 신식계, 의식계가 모두 없다는 뜻. 이를 모두 합치면 18계가 된다.[22] 12연기, 즉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모두 없다는 뜻.[23] 과거, 현재, 미래[24] 이 부분은 범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으로, 우리말로 원어에 가깝게 새기자면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쓰와하 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산스크리트어를 해석하자면 '가자 가자, 피안(彼岸)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넘어가자, 영원한 깨달음이여.' 여기서 넘어간다는 비유는, 앞서 서술된 '일체고액'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건넌다는 뜻이다.[25] 조계종 표준 한글반야심경은 관례에 따라 진언은 번역하지 않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하는 한문 음사로 되어 있다.[26] 저 '가떼' 부분은 동사 gam(가다)의 피동분사이기 때문에, 원문 기준으로 보면 청유형으로 직역되지는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설명 참조.[27] gate는 '갔을 때', '간 사람', '넘어간'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28] 꽤 으스스한 분위기때문인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 메인빌런인 킹기도라의 테마곡으로 변주되었다.[29] 지금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유명했다. 최헌의 오동잎,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인순이의 실버들,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30] 이는 김병수의 살인에 대한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주는 동시에, 소설과 영화 결말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복선이기도 하다.[31] 다만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 휘하에서 활약한 자운, 옥형 등의 의승수군 소속 승병들이 이순신 사후 그를 위해 재를 올렸으며, 영화에서도 혜희 등 승병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어느 정도 비중있는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다.[32] 김한민 감독은 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려면 불가에서 이야기하듯 아상(我相)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견(正見)을 가져야 하고, 정견은 세상이 끝없이 변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 즉 삼법인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시작된다. 삼법인에 대해 바르게 인식한다면 정견을 통한 자기극복도 가능하다. 정견을 통해서만 자기 아상을 극복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이순신은 불교적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특히 그가 공직에 나선 이후 보여준 삶의 모습과 생사관에 대한 인식은 그가 분명 자신의 아상을 극복한 인물임을 보여준다."라고 평하였다. # [33] 영화에서 이순신이 명량 해전이 끝난 뒤에 "배를 돌리거라. 마침 물살도 돌아섰으니."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미 칼의 노래에서도 똑같이 나온 대사로 명량 해전 이후 이순신이 "돌아가자. 마침 물길이 돌아섰으니."라고 군관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칼의 노래라는 작품이 이순신 관련 작품들 가운데서 갖는 영향력이나 위치를 생각하면 감독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34] 모두가 포기한 전쟁, 두려움에 맞서는 자, 역사를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