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차용

 

1. 개요
2. 종류
3. 영향을 주는 요소
3.1. 의미론적 투명성
3.2. 형태론적 투명성
3.4. 의미 변별의 필요성
4. 양상
4.1. 기존 단어 / 새 단어
4.2. 한자어 번역의 경우
5. 언어별 경향성
6. 비교
6.1. 번역과 번역차용
6.3. 의차
6.4. 같은 조어법의 단어
7. 예
7.1. 일반
7.2. 불교 용어
7.3. 원소명
8. 외부 링크

飜譯借用 / Calque

1. 개요


외국어 단어를 차용해올 때 그 단어의 의미를 번역하여 받아들이는 것. '어의(語意)차용어'라고도 한다. 음을 빌려 그대로 읽은 음차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2. 종류


차용의 층위에 따라서 네 가지로 나뉜다.
  • 어구 번역차용어(phraseological calque)
관용어를 단어 대 단어로 옮기는 것.
  • 통사론적 번역차용어(syntactic calque)
출발 언어의 구문을 모방해 특정 통사론적 규칙을 어기는 것. 이 경우 번역차용 초기 단계에서는 번역체 문장처럼 느껴지게 된다.
  • 형태소 번역차용어(loan-translation)
복합어[1]를 형태소별로, 단일어라 해도 요소별로 분리해서 번역하는 것. 영어 'teenager'를 스웨덴어에서 차용해갈 때, 'femton'이 [15]라는 의미이고 (영어로 'fifteen') 'åring'가 [year-old]라는 의미인 것을 조합해 'tonåring'이라고 번역차용했다.
  • 의미론적 번역차용어(semantic calque)
기존에 있는 단어로 번역하되, 출발 언어의 뜻을 추가하는 것. 영어 'mouse'에 대하여, [쥐]라는 기본 의미가 유사한 '다람쥐'로 번역하면서 [컴퓨터 마우스]의 의미를 추가하는 것.
  • 형태론적 번역차용어(morphological calque)
단어의 굴절까지 차용한 것.
  • 음운론적 번역차용어(phonological calque)
번역차용과 동시에 음까지 고려한 것. 같은 의미를 지닌 한자가 많은 중국어에서 이러한 식의 번역차용어가 종종 생긴다.
  • 부분 번역차용어(loan blends / partial calque): 합성어의 일부만 번역한 것. 한국어일본어 사이에서 한자는 한국 한자음으로 읽고 순수 일본어 부분은 음차하는 것도 예가 될 수 있다.
  • 단어 범주 차용어(?)
두 가지 이상의 범주가 있는 언어의 단어를 차용해올 때 단어 범주까지도 반영하는 것 역시 번역차용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한국어, 일본어에서는 고유어/한자어의 범주가 있으며 영어에서도 게르만어 계열/라틴어 계열 등으로 나누어져있는데 번역차용 과정에서 그러한 것까지 그대로 맞춰주는 것이다. 이는 좀 더 특별한 방식의 번역차용이다. 일례로 일본어 단어 중 훈독하는 부분은 한국어에서도 순우리말 계열로 번역하는 것을 들 수 있다.

3. 영향을 주는 요소



3.1. 의미론적 투명성


원어에서도 단순한 계기를 통해서 만들어진 단어들은 번역차용이 쉽다. 앞서 마우스(입력장치)의 경우 한국어의 '다람쥐'는 결국 확산되지 못했지만, '쥐를 닮아서 영어로 mouse라고 부른다'라는 계기가 매우 직관적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언어에서 ''를 뜻하는 단어로 번역차용하였다. 영어 위키백과 번역차용 문서에서도 마우스를 예로 들었을 정도다.
한편 원어에서 단어가 만들어진 이후 단어의 용법이 많이 변해서 어원과 용법이 많이 달라진, '불투명한' 단어의 경우 번역차용하기 어렵다. 예컨대 '컴퓨터'는 'compute'(계산하다)에서 온 말이지만 오늘날의 컴퓨터는 (물론 지금도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고, 계산 이외의 기능이란 것도 사실은 다 계산으로 바꿔서 처리하고 있지만) 계산 이외의 기능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계산' 관련 단어로 번역차용해봤자 컴퓨터 발명 직후의 '계산기'로서의 컴퓨터를 떠올릴 수 있을 뿐 오늘날의 컴퓨터를 떠올리기는 어렵다.[2] 그러나 이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서 '벼룩시장'[3]처럼 대다수 사람들이 이제는 그것이 왜 '벼룩'과 관련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널리 쓰이는 예가 있다.
가장 기초적인 의미 개념인(=의미론적으로 매우 투명한) 숫자는 어지간해서 음차되지 않고 거의 늘 번역된다. 음차를 지향하는 사람들조차도 루이 14세를 '루이 카토즈'라고 적지는 않을 것이다.
고유명사가 주로 번역(혹은 번역차용)되지 않고 음차가 되는 것도 불투명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루이 14세에서 모티프를 딴 브랜드 '루이 까또즈'는 이 브랜드 내에서 14가 어떤 의미를 가리키지 않기 때문에 불투명하고, 이 때문에 루이 14세와는 달리 뒷부분도 음차되었다.
이와 같은 개념을 의미론적 투명성(semantic transparency)[4]이라고 한다.

3.2. 형태론적 투명성


번역차용어에서는 복합어의 형태소 분석이 일어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복합어의 형식을 보고 형태소를 분석하는 것이 쉬워야 한다. 특히나 번역차용을 하는 사람들은 출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떠한 것들은 합성/파생을 거쳐도 그 이전의 음운을 간직하고 있어 외국인으로서도 잘 쪼갤 수 있는 반면, 어떠한 것은 음운이 너무 변화해 어원을 파고들지 않으면 분석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이러한 것은 의미론적 투명성과는 별개로 형태론적 투명성(morphological transparency)라고 한다.
아예 출발 언어 사용자가 이미 해당 단어를 형태소별로 분석한 결과로 어근-접사, 어근-어근 사이에 띄어쓰기하이픈 등의 표기를 해놓은 경우 도착 언어 사용자로서는 더더욱 분석하기 쉬워진다.
출발 언어가 포합어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의미 요소를 분석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단어의 일부만이 번역차용되기도 한다. '타탕카 이요탕카'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집스러운 황소]에 가까운 의미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너무 문장이 길어져 짧게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에 'sitting bull'(앉아있는 황소)로 주로 번역한다.
문자 자체가 형태소 단위로 나누어지는 한자의 경우 형태소 분석 자체는 이미 완료되어있으므로 번역차용의 가능성이 높다.

3.3. 직역의역


문장번역하는 때에 직역의역이 있는 것처럼 번역차용 역시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한 가지는 어원을 좇아 축자적으로 번역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어원과는 다소 멀어지더라도 오늘날 쓰이는 의미를 토대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가져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의미를 빌린다'라는 것을 너무 넓게 해석하면 번역 과정에서 생긴 음차가 아닌 모든 조어들을 번역차용이라고 보게 되어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대개는 '형태소'~'단어'를 기준으로 형태소의 기본 의미가 서로 맞대응되는지, 형태소의 결합 방식이 비슷한지를 기준으로 범위를 좁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축자적인 것만 지칭하기도 어렵다. 문장에서라면 비교적 직역을 실천할 수 있겠지만 어휘의 영역에서는 언어마다 어휘나 접사의 폭이 다르기에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computer'를 축자적으로 번역하자면 '-er'는 [사람]이면서 [도구]도 되는 접미사여야 하는데 한국에 그런 한자 접미사는 없으므로 축자적으로도 '계산기(機)', '계산자(者)'로 번역하는 것이 최선이다.[5] 한편 아예 '셈틀'과 같이 합성어로 번역차용한 것은 파생어가 아닌 합성어라는 면에서 원어에서는 약간 더 멀어진 번역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셈틀'의 경우처럼, 원어에 비해 번역어에서는 좀 더 의미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형태소/단어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원어에서는 (주로) 자연발생했지만, 번역어에서는 인위적으로 단어를 만드는 입장이기에 구체적이지 않으면 언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예컨대 'bridgehead'는 바로 번역하자면 '橋頭'(교두, 다리 앞)겠지만, 다리 앞에 뭘 설치하는 문화권이 아니고서는 '다리 앞'이라는 말만 가지고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기에 '橋頭堡'(교두보, 다리 앞 보루)로 '堡'를 더 추가했다. 특히 한자어로 번역차용하는 경우 대체로 음절이 짧아지기 때문에 말도 짧아졌겠다 한 두 글자 정도 더 넣는 것은 음성적 부담이 덜하다.

3.4. 의미 변별의 필요성


간혹 2개 이상의 외래어를 번역차용하는 경우 번역차용어가 동일해질 수 있다. 예컨대 앞서 'computer'를 '계산기'로 번역차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동시에 'calculator' 역시 '계산기'로 번역차용할 수 있다.[6] 이러한 경우 원어에서도 기초적인 의미는 유사하나 어원/용례 등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 이를 도착언어에서 세세하게 반영하기가 어렵다.[7] 중의성의 회피는 언중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므로[8], 이런 경우에는 한 단어는 번역차용하되 다른 단어는 음차하기도 한다. 'calculator'와 'computer'가 그런 예로, 'calculator'는 '캘큘레이터'라고 적는 일이 거의 없으나 'computer'는 '컴퓨터'로 음차한다. 아마 'calculator'가 '계산'의 의미에서 덜 멀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수 있다.

4. 양상


대개 고유어가 도착 언어에서 직관적인 의미를 구성하고 있기에 고유어가 자주 쓰이지만 각 언어 사정에 따라 외래 계열의 언어가 더 풍부한 어휘를 갖고 있기에 그쪽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자표의문자라는 특성상 조어력이 뛰어나 특히 근대에 서구 단어들이 한자어로 번역차용되었다.
소리 나는 대로 읽는 음차에 비해서 번역하는 과정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며, 음소 배열적 측면에서 외래적 요소가 줄어들기 때문에 언어 순화 운동과도 결부되곤 한다.

4.1. 기존 단어 / 새 단어


도착 언어의 단어는 기존에 있는 단어일 수도 있고 새로 만들어진 단어일 수도 있으나, 대개 외래어라는 것이 도착 언어에 아직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새로 단어를 만드는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마우스(입력장치)를 '다람쥐'로 번역차용하는 것은 기존 단어를 쓰는 예이지만, '컴퓨터'를 '셈틀'로 번역차용하는 것은 새로 단어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 기존의 의미와 새로 추가된 의미가 충돌을 빚기도 한다. '宗敎'(종교)의 경우가 그러한데, 본래 불교유교 등을 가리키던 단어였으나 서구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면서 서구의 'religion'으로서 '宗敎'의 용례가 더 많아졌다.[9] 그래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어원상으로는 기묘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는 "유교는 religion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自然' 역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됨]이라는 부사적 속성의 한자어였으나 서구 'na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이후 명사적 용법이 늘어났다. 이러한 의미 혼용이 생긴 단어의 경우 단어가 쓰인 시기를 잘 감안해서 이해해야 한다.

4.2. 한자어 번역의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서구 어휘들이 한자어화된 예가 많다. 이것들은 '한자라는 틀로 번역되었다'라는 면에서 보면 모두 번역차용이지만, '형태소 번역차용어'의 조건에 따라서 조어법까지 같은 예를 추리자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예를 들어 한자어 '社會'(사회)는 영어 'society'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유명하지만 조어법은 다르다. '社會'는 당시 일본에 있던 모임들인 '社'와 '會'가 합쳐진 단어인 반면 'society'는 단일어이기 때문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의 한자어 '哲學'(철학)은 본래 '希哲學'[10]으로, '학문을 깨우치기를 희망함'이라는 구조가 'philosophy'('지혜를 사랑함')과 유사하여 조금 더 전형적인 번역차용어라고 볼 수 있다.
'nature'에 대응되는 '自然' 역시 조어법상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면에서 형태론적인 번역차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自然'와 'nature'이 [저절로]라는 기본 의미를 공유하고, '自然'에 'nature'의 다른 의미를 추가했다면 의미론적 번역차용어라고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한자어 중에서는 오로지 해당 서구어만을 위해 창조된 것들, 그리고 조어법상으로는 큰 연관이 없는 것들이 상당히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비록 그 개념이 서구에서 발상하기는 했으나, 조어 과정에서는 서구어가 개입하지 않았으므로 조어법상으로는 한자어 세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5. 언어별 경향성


하나의 외래어를 음차 / 번역차용 두 가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11] 대개 음차 비율과 반비례한다. 음차를 많이 하는 곳에서는 번역차용이 적고, 번역차용이 많은 곳에서는 음차가 적다.
중국어한자표의문자라는 특성상 번역차용이 잦다. 어떤 경우 특정 의미를 위한 글자를 아예 새로 만들기도 한다. '钠'(나트륨) 등. 그런 경우는 중국어에서 '차형'(借形)이라고 따로 분류한다. 음과 뜻이 함께 있는 한자답게 음차/번역차용이 딱 나눠지는 것은 아니어서 번역차용을 하면서도 원어의 음을 약간 반영한다거나, 음차를 하면서도 한자의 의미를 좋게 구성한다든가 하는 경향성이 있다(중국어 문서 참조).
앞서 언급했듯이 근대 일본에서는 서구어에 대응하는 일본식 한자어를 많이 만들어냈다. 이들은 넓은 의미의 번역차용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오늘날 일본어에서는 음차가 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해방 직후에 언어 순화 운동의 영향으로 순우리말로 된 번역차용어가 많이 생겨났다. '나자식물'(裸子食物)→'겉씨식물', '심상성좌창'(尋常性挫創)→'보통여드름'은 비교적 잘 정착된 예들이다. 그런 것들이 일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어서 어렸을 때에는 '으뜸꼴'로 배우다가 커서는 '기본형'으로 용어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1990년대 이후로 한글전용이 보편화되자 어려운 한자를 피하고자 순우리말 번역차용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지만(물리학의 'decoherence'→'결엇갈림' 등) 영어를 직접 쓸 일이 많은 학계의 사정상 한글 음차도 없이 그냥 영어의 로마자 표기 그대로 적는 경우(한영혼용체)도 많아졌다.
러시아어의 경우 동사의 활용이 꽤 특징적이어서 형태소별로 번역해서 번역차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러시아어/문법 문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어는 번역차용의 최고봉으로 'electricity'(전기) 같은 근대 어휘조차도 'Rafmagn'으로 번역하고 음차를 거의 하지 않는다.

6. 비교



6.1. 번역과 번역차용


번역차용어는 도착 언어에 원래 있는 단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착 언어에 원래 있는 단어를 쓰더라도 의미가 새로 추가되어야지만 번역차용으로 볼 수 있겠다. 'apple'을 '사과'로 옮긴다면 '사과'라는 단어에 이미 'apple'의 의미가 들어있기에 번역'차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republic'을 '共和'(공화)로 옮긴 경우, '共和'라는 단어는 있었으되 서구의 'republic'으로서의 의미는 근대에 추가된 것이므로 번역차용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한 식으로 문장 역시 번역과 번역차용을 구별할 수 있다. 'good bread'와 같은 것을 '좋은 빵'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번역이지만, 'good morning'을 '좋은 아침'으로 번역해서 인삿말로 활용하는 것은 [인사]라는 새로운 용법이 추가된 것이기에 번역차용으로 볼 수 있다.

6.2. 의역


'음차'를 '음역'(音譯)이라고도 하기 때문에[12] 혼동할 수 있지만 '의역'(意譯)은 문장을 (축자적이 아닌) 의미에 따라 번역한다는 뜻으로 번역의 층위가 다르다. 의역직역과 맞서는 개념이다. 상술했듯이 번역차용이라는 개념 안에서도 의역/직역이 있을 수 있다.
번역차용은 해당 단어를 '곧이곧대로'(형태소대로) 번역한다는 면에서 '직역'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의미를 번역한다는 점에서 '의역'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문장 차원에서는 대립하는 '직역/의역'이 어휘 차원에서는 동일한 개념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쓰이는 것이다.

6.3. 의차


번역차용은 (주로 중국어에서) 간혹 '의차'(義借)라고도 불리는데,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서는 "훈차(訓借)의 다른 말"이라고 전혀 다른 의미로 실려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훈차'는 한자에 기본적으로 달려있는 '음으로서의 뜻'을 빌렸다는 것이지, 진짜로 '단어의 의미'를 빌려온 것은 아닌 경우도 있다.[13]

6.4. 같은 조어법의 단어


서로 다른 언어에서 같은 방식으로 합성/파생되면 외래어로 보이기 쉽지만 우연의 일치로 같아진 것일 수도 있다. 특히나 조어 방식이 간단한 경우 더더욱 그렇다. 예컨대 '시곗바늘'과 '時計の針'은 조어 방식이 비슷하지만 시곗바늘이라는 물건은 (본래 길고 뾰쪽한 형태를 하고 있기에) '바늘'로 표현되는 것은 직관적인 단어 사용이어서 '시곗바늘'이 '時計の針'의 번역차용이라고 확신하기 어렵고 문헌적 증거가 필수적이다. 반면 'ne m'oubliez pas'('나를 잊지 마세요')와 'forget-me-not'의 경우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문장 단위로 꽃을 지칭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차용의 방향을 알기 어려울 뿐[14] 둘 중 하나가 다른 것의 번역차용이라는 사실은 쉽게 확신할 수 있다.
같은 계통의 언어에서의 동계어(cognate)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합성/파생될 가능성이 높다.[15]

6.5. 자국어화


대개 같은 문자체계를 공유하는 언어 사이에서, 그대로 음차하지는 않되 해당 언어의 방식대로 발음법을 바꾸거나 철자를 변형하는 경우가 있다. 한자의 경우 자국식으로 한자를 읽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경우 음을 그대로 읽은 것은 아니어서 완전한 음차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번역차용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7. 예


아래 목록에는 다음과 같은 것만을 싣는다.
기존 단어: 외래어와 기존 단어의 기본 의미는 동일하며, 외래어가 추가적으로 갖고 있는 의미가 추가된 것
복합어: 조어 방식상 동일한 것

7.1. 일반


  • 문화적 요소(의식주 등)를 도착 언어의 비슷한 물건에 빗대는 것도 의미론적 번역차용어라고 볼 수 있다. '' → 'Korean pancake' 등. '부대찌개' → 'Korean army base stew'와 같은 형태론적 번역차용어도 나타난다. 흔히 국가명이 앞에 붙지만('Korean') 후자의 경우 'army base stew'와 같은 단어는 신조어이기에 없이 쓸 가능성도 높다.
  • 한국어 식물명: '며느리밑씻개', '개불알꽃' 등과 같이 특이한 이름을 비롯해서 많은 이름들이 일본어 명칭의 번역차용이다.# 예로 든 두 식물은 일본어로도 'イヌノフグリ', 'ママコノシリヌグイ'("의붓자식 밑씻개")로, 두 나라에서 우연히 동일한 방식으로 작명하기는 쉽지 않다.
19세기에 흔치 않은 한국제 한자어이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본래 일본 제국이 1941년 'Volksschule'로부터 번역차용한 '國民學敎'(국민학교)라는 단어를 썼으나 1994년에 바꾸었다. 단, '초등/중등/고등'으로 유추된 단어일 수도 있다. 다른 한자문화권에서는 '小學校'(소학교)라고 한다.[16] 그 단어는 아마 '소-중-대'의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듯하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역시 번역차용의 예로 들고 있으나 마천루 문서에서는 중국 고전에서부터 등장하는 단어라고 하여 확인이 필요하다.
프랑스어 'tête de pont'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영어에서도 프랑스어로부터 번역차용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7.2. 불교 용어


범어에서도 'a'(없음) + 'vici'(틈)의 의미였던 것을 그대로 번역차용했다. 음역어 '阿鼻'(아비) 역시 많이 쓰인다.[17]

7.3. 원소명


원소명 중에서 19세기 일본에서 번역차용된 단어가 꽤 있다. 단, 요오드 → 沃素/沃度(옥소/옥도), 플루오르 → 弗素(불소)는 번역차용이 아니라 한자를 이용한 음차(음역)이다.
위의 '산소'의 예와는 달리 '질소'를 뜻하는 영어 'nitrogen'은 [질식]과는 무관하고 [초석](硝石)에서 비롯되었기에 영어 단어에서 번역차용해온 것은 아니다.
이 역시 영어는 'carbon'이어서 '素'에 해당하는 'stoff'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스어로 '악취'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 번역차용인 것은 확실하나 연원이 불분명하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8. 외부 링크



[1] 여기서의 복합어(complex word)는 단일어(simple word)와 맞서는 개념으로, 합성어(compound)와 파생어(derivative)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문헌에 따라 '합성어'와 '복합어'라는 번역어를 반대로 쓰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2] 후술하겠지만 우리말의 '계산'이라는 단어는 'calculate'과 'compute'를 동시에 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계산의 의미를 영어와 동일하게 나누어 쓰는 다른 인구어파 언어의 경우는 각각 일대응 하여 번역차용한다. 가령 불어는 calculateur(계산기)와 ordinateur(컴퓨터)를 구분하고, 서어는 calculadora(계산기)와 ordenador(컴퓨터)로 나누어 쓴다.[3] 영어 'flea market'은 프랑스어 'marché aux puces(마셰 오 쀠스)'에서 번역차용해온 것이다.[4] 의미론적 불투명성(sematic opacity)이라고도 한다. 아래 형태론적 투명성도 동일.[5] 우리말 접미사 '-이'는 사람과 도구를 모두 칭할 수 있으므로 '셈이'라는 형태를 취할 경우 원어의 파생구조에 가깝게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세미'라는 소릿값의 표의성이 떨어진다.[6] 실제로 중국어에서는 전자를 电子计算机, 후자를 计算器로 거의 비슷하게 번역한다.[7] 'calculate'는 비교적 단순한 계산, 'compute'는 보다 복잡한 계산을 나타내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다른 인구어파 언어의 경우 각각의 단어를 달리 번역해 사용한다. 'calculator'와 'computer'에 대해 각각 불어는 'calculateur'와 'ordinateur'로 구분하고, 서어는 'calculadora'와 'ordenador'로 나누어 쓴다.[8] 의사소통을 할 때 단어의 의미를 혼동하면 곤란하므로 당연한 현상이다.[9] 서구 'religion'의 용법으로 전근대 시기에 자주 쓰이던 말은 '()'이다.[10] 니시 아마네(西周)가 이렇게 번역했다고 한다.[11] 라틴어 'res publica'은 영어에서 'republic'으로 음차되었으나, 'commonwealth'로 번역차용되기도 했다.[12]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자로 음차하는 경우만을 음역으로 정의하며 나무위키에서도 해당 정의를 따른다.[13] 정말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 '훈독자'(訓讀字), 그냥 음으로서의 뜻을 읽는 데에만 쓰는 경우 '훈가자'(訓假字)라고 한다. 두 경우 모두 읽기는 '음으로서의 뜻'(=훈)으로 읽는다는 점은 동일하다.[14] 단어 유형상 근대 어휘가 아닌 것은 대체로 프랑스어→영어가 우세하다.[15] 이 때문에 비교언어학에서 동계어를 통한 계통 분석을 할 때에도 복합어가 동계어인지 번역차용인지 판단이 필요하며,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단일어인 동계어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16] 일본은 태평양 전쟁 패전 후 1947년에 명칭을 바꾸었다.[17] 아비규환의 '아비'가 이 '아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