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존칭
事物尊稱
1. 개요
한국어에서 1990년대부터 등장한 특수한 현상으로, 주체 높임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물을 존대하여 쓰는 잘못된 용법 중 하나. 높임법이 발달한 한국에서 왜곡된 방향으로 높임법이 극대화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2. 용례
피자와 같은 사물은 본디 한국어 문법상 높임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고객님 주문하신 피자 '''나왔습니다.'''"로 표현해야 하지만 이 경우 술어를 두고 무례한 낮춤말으로 착각하는 무식한 '''손놈'''들이 항의를 하는 일[1] 이 빈번해 아예 다 높여버리는 어법이 정착되어 버린 것.고객님 주문하신 '''피자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손놈들의 행태는 무식하다는 말이 딱 걸맞은 케이스인데, 한국어 어법에서 '~습니다'는 '''높임말'''이다. 이해가 어렵다면 '''"피자 나왔다."'''라는 말과 비교해보면 된다. 어느 피자집에서 누가 피자가 '나왔다'라는 말을 하던가? '~습니다'를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애시당초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거기다, 이런 류로 시비거는 손님들의 대다수는 서비스맨보다 나이많은 중년 이상인 경우가 많고, 이들은 권위주의에 찌들어 평소에도 사장님, 사모님, 여사님 등 온갖 과잉 존대 호칭에 익숙하며 말투 하나에도 시비를 걸고 꼭 분풀이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주요 고객인 업종의 감정노동 스트레스는 그 어떤 서비스직종보다 높고 서비스맨의 멘탈 요구치도 높다. 이 때문에 이들 업계(ex:편의점 캐셔)에서 방어책으로 고연령 종업원을 뽑는 것.
청유형을 잘못쓰는 "~하실게요"만큼 존댓말 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사물 존대는 불쾌한 일이 된다. 피자를 주문한 사람을 존대해야지, "주문하'''신''' 피자 나오'''셨'''습니다."라고 하면서 사람과 사물을 동시에 높여 버리면 사람이 피자와 같은 격, 즉 그만큼 낮춰지는 꼴이 되니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 제대로 하려면 사물에는 존대를 붙이지 않고, 이쪽 것은 상대보다 낮춰야(압존법) 정확하다.
다만 현대 한국어에서 압존법은 점점 쓰이지 않는 추세이고, 정작 압존법까지 아는 고객은 유식하고 예의를 배운 사람이므로 앞서의 '뭐든 다 높여줄 것'을 요구하는 무식하고 무례한 고객들과는 달리 교양이 많아 목소리를 키워 진상 부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업체들은 보통 목소리가 작은 고객들보다는 목소리가 더 큰 고객들의 항의에 신경을 더욱 쓰게 되어 이 사달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들리시다', '많으시다', '보이시다' 같은 표현들도 널리 쓰이는데, '들리다'의 주어는 소리이고, '많다'와 '보이다'의 주어/보어는 대개 지칭 대상 또는 그 소유물이다.
사물존칭은 아니지만 비슷한 용례로, '~(대개 사람)는/은 ~('완성', '읽기' 따위의 행동 명사)이/가 가능하십니다.'(행동 존칭, 비문)와 '~는/은 ~를/을 할 수 있으십니다.'(가능 표현 존칭), '~는/은 ~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존칭 중복)가 있다(예: 팀킬이 가능한 FPS 게임 목록 ← 팀킬께서 가능하신 FPS 게임 목록). 이는 '~는/은 ~를/을 하실 수 있습니다.'로 바꾸면 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높임법이 발달한 일본에서도 유사 사례가 있다. 「~になります。」(~가 되겠습니다)가 그것인데, 사물존칭과 마찬가지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2][3]# #
아나운서나 언론인들도 자주 저지르는 편인데 인터뷰시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의도가 무엇이신지요?'의 식으로 묻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다.
3. 간접존대 VS 사물존칭?
사물존칭과 '''간접존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학계의 견해가 있다. "피자 배달하는 손이 참 예쁘시네요. 매니큐어도 세련되세요. 선택이 탁월하십니다."처럼 주어는 사람이 아니지만 대유법을 사용하면서 높게 불러,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높게 부르는 화법이 된다. 그런다고 조사까지 높이지는 않는다는 것.#
국립국어원은 "높여야 할 대상의 신체 부분,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되는 사물, 개인적 소유물 등 주체와 관련된 사물"#1, 혹은 "상대의 신체, 성품, 심리, 행위, 소지품과 같이, 상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상들"#2을 높일 수 있다고 규정해 놨다.
그렇다면 커피를 하루에 최소 한잔을 못 마시면 생활 리듬이 깨져버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는 어느 회사원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하기 위해 하루에 한번 주문을 넣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고객에겐 이 커피야 말로 인생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생필품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되는 사물", "상대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는가? 게다가 이 커피는 조만간 "나의 소유물"이 될 대상이므로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표현을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만약 될 수 없다 치면, 사물존칭이란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공급 받는다는 발화 상황에서 발생하게 되는 오류란 말인가? 즉 미래 소유물은 용인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커피 매니아인 내가 직접 구입한 50개들이 믹스커피 한 박스에서 꺼내 만든 커피 한잔은 존칭 받을 대상으로 승격할 수 있는가?("과장님 옆에 계시는 커피, 저도 한 모금 마셔봐도 될까요?")
게다가 국립국어원 스스로 서로 충돌가능한 예시#마저 내놓고 있다. "그 분은 살림이 넉넉하시다"의 살림은 상대와 밀접하므로 높일 수 있는 대상이지만 "선생님, 집이 크시네요"의 집은 사물존칭의 대상에 해당되므로 높일 수가 없다고 정리하고 있다. 둘다 "개인적 소유물"이고 주체에게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되는 사물"인데 왜 전자만 간접존대의 대상이 된단 말인가? 한국인들에게 '내집'의 상징성이 상당히 크고, 오히려 '살림' 같이 추상적인 단어보다 주체와 맺는 밀접한 관계를 현격히 드러내는 구체적인 대상이 '집' 아닌가? 더군다나 위 신문 기사#에 출연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과장은 "모자가 멋있으십니다"는 간접존대이기에 맞는 표현이고 오히려 "모자가 멋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틀렸다고까지 주장하지만, 국립국어원의 다른 담당자는 비슷한 표현인 "과장님, 넥타이가 예쁘십니다"는 사물존칭이기에 틀린 표현이라서 "과장님, 넥타이가 예쁘네요"로 바꾸라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국립국어원도 "어디까지를 간접 높임으로 볼 수 있을지는 명백하지가 않습니다"#라면서 간접존대 개념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화자의 주관에 따라 실현 여부에 차이가 있다"#는 점까지 양보하고 있다. 이렇듯 국립국어원 스스로 "간접 높임이나 사물 존칭이라는 용어가 명확히 규정된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답변이 어렵다"#고 한발 물러서 있을 정도로 불충분한 개념이 바로 간접존대이다.
3.1. 서술절을 안은 문장(이중주어문)으로 판별하는 견해
부자연스러운 주체 높임법이면 사물존칭, 어딘지 자연스럽다 싶으면 간접 존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그 어딘지 모를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결국 문법적 특징에서 기인하는 바, 이 점을 판단하면 둘의 경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어에는 서술절이라는 독특한 내포문 형식이 있다.
위 문장이 서술절을 안은 문장의 예인데, '코가 길다'라는 작은 문장이 절로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서술절을 안은 문장은 따라서 필연적으로 주어가 둘 이상이 나오므로 이중주어문이라고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삼중, 사중으로도 만들 수 있다. '코끼리는 코가 길다'는 그 형식을 밝히면 '코끼리는(S1)', '코가 길다(P1)'로 주어와 서술어(서술절)로 나눠지며, 그 서술어는 다시 '코가(S2)', '길다(P2)'로 쪼개진다. 즉, [S1-P1(S2-P2)]의 형식이다. 이때 S1이 높여야 할 대상이라면 주체 높임 선어말어미 '-(으)시-'가 갈 곳은 사실상 문장 내의 유일한 용언인 P2로 갈 수밖에 없어진다.코끼리는 '''코가 길다'''.
위 문장을 다르게 써 보자.
여기서 '선생님'에 주체 높임법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될 수밖에 없어진다.선생님은 집이 예쁘다.
이것은 사물존칭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이 '예쁘시다'의 '-(으)시-'는 '''S2인 '집'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S1인 '선생님'을 높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유일한 용언인 P2에 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위 문장의 '예쁘시다'의 선어말어미 '-(으)시-'는 '''정작 자기가 붙어 있는 용언인 '예쁘-'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선생님'''께서'''는 집이 예쁘'''시'''다.
사실, 이와 같은 현상은 범용적으로 보면 한국어 전반에서 꽤 흔하게 나타난다. 한국어는 통사론적인 논리가 문장 전체를 마치 꼬챙이 꿰뚫듯 관통해서 형식만 보고도 무엇이 어떤 기능이고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딱 맞아떨어지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한국어는 통사적인 논리보다는 형태소가 나타내는 자질이 형태론적으로 결합해야 할 위치에만 맞게 결합하면 나머지는 개별 형태소가 형태론(단어)의 범주를 넘어서서 통사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언어이다. 위 문장의 '예쁘시다'로 예를 들면, 종전의 문법적 관념대로라면 '-(으)시-'는 형용사 '예쁘다'에 붙어서 이 형용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결과적으로 이 형용사의 직접적인 주어인 '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이 '-(으)시-'는 형태론적으로 마땅히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인 '예쁘-'에 결합했을 뿐, 주체 높임이라는 고유의 기능은 해당 형용사의 직접적인 주어와는 전혀 관계 없이 '선생님'을 향한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이처럼 한 단어 내의 형태소가 멀찍이 떨어진, 얼핏 관계 없어 보이는 논항으로 뜬금없이 영향을 미치고, 정작 자신이 붙어 있는 단어는 따로 다른 것과 연계되어 기능하는 예가 상당히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 존칭과 관련해 논쟁이 나오는 이유는 그간 우리의 학계가 20세기 서구의 언어학 이론에 함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인 의태어만 보더라도, 의태어들을 형태론적으로 분석한 역사가 극히 짧으며, 그마저도 그나마 조금 깊이 짚어 본 논문이 '''2016년'''에 나왔을 정도이고, 해당 논문에서도 저자가 그간 국어학계의 한계점으로 인해 의태어에 대한 심도 있는 조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으니 말 다 했다. 의태어와 서술절 내포문(이중주어문)은 한국어의 특수한 현상들의 일부로서, 인도유럽어족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언어학계는 서구의 언어학 이론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고,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비(非)인도유럽어족의 고유한 문법 현상들이 제대로 조명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서 밝힌, 통사적인 논리가 문장 전체를 꿰뚫으면서 형식적으로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인도유럽어족의 특징[4] 이지, 한국어 등 비인도유럽어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 사물 존칭 및 간접 존대를 비롯한 한국어 문법의 특수성을 제대로 명쾌하게 살피려면 서구 언어 중심으로 통용되는 언어학 이론 자체를 기초부터 갈아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4. 원인
사물존칭은 흔히 백화점 높임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 한국의 기업들은 고객만족을 중시하여 관련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사물존칭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객 들의 항의를 줄이기 위해 존댓말을 극대화한 것이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기준으로 고객에게 극도로 친절할 것이 요구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 이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 콜센터 등의 직원들에게도 많이 전파되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콜센터 직원들이 사물존칭이 잘못된 표현인 걸 알아도 사물존칭이 잘못되었다고 들어오는 항의보다 안 쓸 때 들어오는 항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영업상 사용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호칭 인플레이션'''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클레임 비율은 아는 사람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왜 그러는지 뻔히 알만한데도 항의까지 거는 이는 얼마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안쓰러워할 뿐...
국어학자 가운데 이를 주체 높임과는 다른 '상황 높임법'이란 맥락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도 있으나 아직은 소수파이다. 장기적으로 표준어가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관련 기사
한편, 중세 한국어에도 유사한 어법이 있었다. 주어가 높임의 대상이 아님에도 '-시-'를 쓰는 것인데, 현대의 사물높임법과 거의 똑같다. 중세 한국어 참조.
ARS에서도 장소나 사물 등 사람이 아닌 것에게 '님'이라는 높임의 뜻을 가진 접미사를 붙이곤 하는데, 물론 이는 의도된 사물존칭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기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5. 해결법
사실 이건 아주 간단한 변형으로 해결 가능하다. 하소서체의 사용이 그것. 위의 '피자 나왔습니다'의 용례를 다시 본다면, '피자 나왔사옵나이다'라고 한다면 결국 겸양 어미를 통한 피자 존대가 아닌 고객 존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하소서체를 사용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 한국어에서 일상 회화를 할 때 하소서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것.[5] 현대 한국어에서는 오히려 '''이 양반아''' 혹은 키사마같이 상대방을 비꼬는 느낌이 든다. 현재 하소서체는 사극이나 역사소설 등에서 사용되고 실생활에서는 사용 용도는 거의 0.001% 미만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피자 나오셨사옵니다' 로 변형이 가능하다. 사물존칭의 문제는 "피자 (나왔/나오셨)+(습니다./사옵니다.)" 에서, (나왔/나오셨) 의 문제이지만, 뒤의 (습니다./사옵니다.)를 변형함으로써 문장이 존칭 → 극존칭이 돼서 (나왔/나오셨) 에서의 불필요한 사물존칭을 씹어먹게 된다.
익숙하지 않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으로는 "고객님, 피자 가져가세요."처럼 사람주어를 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고객님, 피자 가져 가실게요!". 손님에게 명령이나 제안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래서 자신은 상황을 묘사하고, 의지는 손님에게 넘겨주는 어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 또한, "고객님, 피자 모셔가세요."처럼 변형이 가능하다. 모든 경우에 사물존칭은 발생할 수 있으니,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말을 하는 사람이 더 좋은 표현을 발굴해 내는 것이 아니라, 교양 없는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일이 없도록, 모든 사람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강제로라도 최소한의 교육은 받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충분한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입을 여는 행위를 경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 좋겠으나, 아직 한국에서는 무리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사물존칭이 문제가 되면서도 사라지기 힘든 것.
이러한 사물존칭에 대한 지적이 많아짐에 따라 규모가 큰 콜센터에서는 교육을 통해 사물존칭을 금지하고 사물존칭을 빈번하게 하는 상담원의 점수를 깎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쉽게 고쳐지지는 않고 있다.
최종적 대안으로 "주문하신 피자가 준비되었습니다." 혹은 "주문하신 피자 '''드리겠습니다'''"가 나왔으나 '''알바 주제에 내가 내 돈 주고 산 물건을 어디서 건방지게 준다 만다 하냐'''는 꼬투리성 항의가 접수되기도 한다. 고로 이 문제는 단순한 문법 문제가 아니라 악성 고객의 꼬투리 잡기 문제 근절부터 선행되는 것이 핵심이다.
6. 풍자
낮은 최저임금과 열정페이를 비꼬기 위하여 일부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비스 직종에서 특히 알바의 시간급보다 자신이 파는 물품값이 더 비싸니까 자신보다 그 물품이 더 높다는 식의 자조섞인 해석이 나온 것이다.
7. 관련문서
[1] 네이버 웹툰 우리들은 푸르다 295화 <Work Work!>에도 그러한 묘사가 나온다.[2] '~になります'는 '이것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그렇게 된 것이므로 만약 당신이 원하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절대 본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책임회피 논리이다. 예컨대 'コーヒーになります(커피 되겠습니다)'라고 종업원이 말하며 커피를 내오는 경우, '이것이 당신이 생각한 커피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스스로 커피가 된 것이지, 내가 커피로 만든 것이 아니므로 본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즉, 과도한 높임법의 남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물존칭과는 그 궤가 조금 다르다.[3] '~になります'와 비슷한 변형으로는 '~させて頂きます(~시키시는 걸 받겠습니다)'가 있겠다. 지금이야 어쨌든 '発表させて頂きました○○です(발표시키는 것을 받은 ○○입니다)' 같은 표현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는 이상한 표현이었으며, 평범하게 '発表します○○です(발표하는 ○○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이는 '내가 나서서 한 것이 아니라 윗사람이 시킨 것을 내가 받았을 뿐이므로 내가 이것을 한다고 해서 당신이 언짢더라도 그것은 내 잘못은 아니다'라는 책임회피 문법이다. 사물존칭처럼 존댓말 과포화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 대개 거품이 붕괴되고 일본 경제가 시궁창에 빠지면서 이러한 책임회피 표현이 유행했다고 본다.[4] 이것도 인도유럽어족이 본질적으로 그렇다기보다는 애초에 인도유럽어족을 중심으로 언어학이 발달하였기에 해당 언어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쪽으로 이론이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5] 이 면에서 사물존칭은 결국 하나의 언어와 밀착된 사회 시스템에서 언어의 한 형태가 사라짐으로써 나타나는 병리 현상이라 볼 수 있다.[6] 2016년 기준.[7] 근데 사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3분, 2.5분이라고 가정하고 시급으로 환산하면 아메리카노의 시급은 98,4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