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요시노리
1. 1954년생의 전 야구선수, 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코치(佐藤 義則)
2. 1989년생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佐藤 由規)
두 사람은 동명이인 이지만, 한자가 다르다.
1. 1954년생의 전 야구선수, 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코치(佐藤 義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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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즈의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뛰었던 투수.
76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으로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여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팔로즈) 98년에 은퇴를 하였다. 23년간 현역으로 뛰면서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였다. 1985년 21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했는데 2008년 이와쿠마 히사시가 21승을 거두기 전까지 23년동안 20승 투수는 몇 번 나왔지만 20승을 넘어 21승을 기록한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1995년 킨테츠 버팔로즈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데 이때 나이가 40세다...
자신의 상징이라 불리는 오리지날 변화구인 요시볼은 유명한 변화구 중 하나. 실제로 커브에 가까운 포크볼이였다고 한다.
닛폰햄 코치로 있을때 다르빗슈 유에게 요시볼을 전수하였고, 다르빗슈를 현재 일본 리그 정상급의 투수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2012년~2014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에서 1군 투수코치로 활동하면서 다나카 마사히로, 미마 마나부 등을 최고의 투수로 성장시키며 우승을 일궈냈고, 2015년부터 소프트뱅크 호크스 투수종합코치로 옮겼다.
2017년 시즌을 마치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컴백하였다.
호시노 센이치로부터 일본 제일의 투수 코치라 칭찬받았으며, 닛폰햄 시절 제자인 다르빗슈 유는 라쿠텐의 다나카 마사히로와 전화통화 시, 사토 코치의 말씀은 틀린게 없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투수코치로 한신, 닛폰햄, 라쿠텐, 소프트뱅크의 4 개 구단에서 우승을 경험했다.[1] 현역 시절 자신을 지도한 가지모토 타카오를 코치 생활의 사표로 삼고 있다.
2. 1989년생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佐藤 由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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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의 투수
센다이 육영(이쿠에이)고교 3학년이던 2007년 드래프트 당시 오사카 토인고교의 나카타 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치바 나리타고교의 카라카와 유키(치바 롯데 마린즈)와 함께 빅3로 불리며 그중에서도 최대어로 주목을 받았다. 최고구속 157km/h에 이르는 빠른 볼이 주무기. 고등학생이던 2007년 155km/h를 찍은 전력이 있다.[2] 연고지 구단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고 싶어했으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지명되었다.
사토라는 성이 대단히 흔하고 같은 팀 투수 중에 사토가 있기 때문에 등록명은 요시노리(由規)이다.
특이한 사항은 일반적인 우투 좌타인 선수와는 달리 원래 왼손잡이인데 형들이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손 글러브로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오른손 투수가 되었다는것. 일반적으로 야구는 왼손이 유리하기에 이것은 극단적으로 희귀한 케이스. 류현진과는 완전히 반대의 케이스이다.
젊은 유망주인만큼 팀에서 밀어주고 있지만 프로 2년차인 2009년 현재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카라카와보다는 떨어지는 편. 시즌 후반 부진하여 결국 22경기(21선발) 5승 10패 120이닝 91삼진/57볼넷 ERA 3.50으로 팀내 다패왕이 되었다(...) 제구력이 좋지 않아 통산 K/BB 비율이 2.00도 안 넘어간다...
2010년 8월 26일 요코하마 전에서 일본인 최고 구속인 161km/h를 찍었다. 2012년 기준 전체 2위. 3위는 같은 팀의 임창용이다. 스피드 건의 오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제법 되는 것 같지만, 157~159km/h 사이를 올해 아홉 번이나 찍은 터라 믿어줘도 될 것 같다.
2010 시즌 25경기 등판(25 선발) 12승 9패 167.2이닝 149삼진/74볼넷('''시즌 최다 볼넷''') ERA 3.60(리그 9위)로 팀내 4선발 정도의 성적을 보여주었다. 초반 삽질하다가 후반기에 에이스 모드가 되어 만회.
2011 시즌 옆구리를 다쳐서 전반기를 마감한 뒤 후반기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어깨 부상으로 결국 시즌을 마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팀 투수진에 타격을 주었다. 최종 성적은 15경기(15 선발) 7승 6패 100.2이닝 83삼진/41볼넷 ERA 2.86. 풀시즌을 뛰었다면 야쿠르트 투수진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라 더욱 안타까운 상황.[3]
2012 시즌 2군에 내려가 있다가 5월말 왼쪽 무릎 연골 골절로 인해 전치 8주의 부상을 얻었다. 2012년 9월까지도 1군 등판은 한 번도 없는 상황. 결국 1경기도 출장하지 않은채 2012 시즌을 마쳤다. 부상으로 인해 2015년까지 1군 출장 기록이 없으며, 2016년 육성선수로 신분이 전환되면서 배번호도 11번에서 121번으로 변경되었다.
2016년 7월 9일 5년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뤘다. 직구 구속이 140대 후반을 기록하였고 전체적으로 무난한 모습을 보였으나 6실점을 하며 부진하였고 팀도 졌다.
2016년 7월 24일 주니치 드래곤스 원정경기(나고야 돔)에서 1786일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2016년 8월 4일 홈경기(메이지진구 구장)에서 1797일만에 홈경기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 홈경기 승리는 2011년 9월 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이었다. 인터뷰에서 부상으로 신음했으나 오랫동안 재활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 예전의 배번호인 11번을 달고 뛰고 있다.
2018 시즌 현재에도 뛰고 있으나, 2017년 10경기 3승 5패, 2018년 7경기 1승 2패로 간간히 땜빵 선발로나 1군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18년 6월 10일 1군에서 말소된 이후 2군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2018년 10월 1일, 2018시즌을 끝으로 야쿠르트 구단과 결별하는 것이 알려졌다. 입단 11년차인 2018년 시즌 7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방어율 4·46을 기록했다. 2018년 6월 2일 라쿠텐과의 원정경기를 끝으로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등판하지 않았다. 야쿠르트 구단에서는 은퇴(은퇴식 개최 및 구단 역사에 공로자로 게시 등)를 권유했으나 본인의 현역 속행 의지가 강해 다른 구단으로 이적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나이로 2018년에 30세라 아직 젊고 팬들의 인기도 있어, 고향팀인 라쿠텐에서 관심을 표할수도 있다.
2018년 11월 15일 고향팀 라쿠텐과 육성선수 계약을 합의했다. 등번호는 123번. 이시이 가즈히사 본부장(GM)과 히라이시 요스케 감독은 초조해하지 말고 단단히 재활 단계를 밟아 어깨의 완치를 우선해주었우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2019년에는 시즌 중 지배등록되었고, 막판에 1군에 복귀해서 1경기에 등판했으나 2020년에는 1군 콜업 없이 시즌 후에 방출당했다.
형인 사토 후미노리는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의 역내 라이벌 고교인 센다이 도호쿠 고교 재학시절 에이스 다르빗슈 유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으며, 동생 사토 다카노리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소속이었으나 방출되어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