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풍흑호
- 관련문서 : 청구야담
1. 개요
사풍흑호는 『청구야담』에 등장하는 사악한 호랑이이다. 강원도 양양 지방에서 10년 동안 악명을 떨치던 호랑이로 많은 마을 주민들을 잡아먹었다.
2. 전승
인조 때 무관이었던 이수기(李修己)는 풍채와 골격이 준수하고 힘도 좋았다. 한번은 일이 있어 양양 방면으로 가던 중에 날이 저물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한참을 헤메다 수풀 사이에 나무로 만든 이층집 하나를 발견하였다. 말을 달려 집에 도착한 이수기는 늙은 안주인의 안내를 받고 스무살 가량의 여식과도 인사를 나눴다. 극진한 대접을 받던 도중, 갑자기 8척의 키에 크고 건장한 집주인이 등장하였다. 그의 모습에 놀란 이수기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주인은 사냥해 온 사슴과 멧돼지를 손질하여 함께 술을 마셨다.
주인과 이수기가 한밤 중까지 술을 마시던 중, 갑자기 집주인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10년전 어느날, 주인집에서 10여리 떨어진 곳에서 사악한 흑호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호랑이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 주인의 조부모, 부모, 형제 삼대를 모두 물어죽였다. 여러 해 동안 흑호를 몰아내고자 했으나 매번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니, 오늘 만난 이수기에게 함께 죽일 것을 부탁하였다. 흑호는 나이가 많은 노물(老物)이라 검이나 총을 가지고 가면 반드시 숨고 나타나지 않았다가 맨손일 때만 습격하니 죽이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이수기는 주인의 부탁에 응하였고 기력회복을 위해 10여일간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었다.
날씨가 맑고 쾌청한 어느 날, 주인이 이수기에게 날카로운 검을 주며 함께 길을 떠났다. 동쪽으로 10여리 떨어진 계곡들을 지나 마을 근처의 시냇가에 도착했다. 시냇가 머리에 높은 바위가 있었는데 검푸른 빛을 띠고 깎아지른 듯 하여 매우 음산한 기운을 뿜었다. 주인은 이수기에게 풀숲에 숨을 것을 청하더니 맨몸으로 시냇가로 나아갔다. 주인이 긴 휘파람을 한참동안 불자, 갑자기 바위 위에서 흙먼지가 여러차례 일어나 온 골짜기를 가득 채워 사방이 어두워졌다. 잠시 뒤, 바위 꼭대기에서 횃불같은 광채를 뿜으며 거대한 흑호가 나타났다.
주인이 흑호를 보자 팔을 걷어 부치며 큰 소리를 내니, 흑호는 한번 솟구쳐 주인에게 달려 들었다. 생김새가 여느 호랑이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 흉측하고 사나워서 보통 사람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흑호는 사람처럼 서서 주인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흑호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주인의 등을 할켰으나, 두꺼운 돼지 생가죽 갑옷을 입어서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엎치락뒤치락으로 진행되던 싸움 중에 이수기는 수풀에서 나와 난입하였다. 이를 본 흑호는 이수기를 보고 한번 포효하니 주변의 암석이 깨질 지경이었다. 이수기는 동요하지 않고 나아가 호랑이를 검으로 찔러 쓰러트리는데 성공하였다.
주인은 검으로 흑호의 배를 갈라 골니(骨泥)를 베어 육젓을 만들고 심장과 간을 꺼내 씹어먹었다. 원수를 갚은 주인은 이수기에게 자신의 재산 일부를 내주었고, 주인의 여식을 첩으로 삼게 하였다.
[1] '모래 바람을 일으키는 검은 호랑이'란 뜻으로 해당 게시글의 원본 작성자가 전승의 묘사를 위해 창작하여 지은 이름이다. 원전에는 '흑호'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