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K 나이츠/2010-11 시즌
1. 신산의 구상
레더와 김효범이 주득점원으로 내외곽을 지배하면서 주희정과 챈들러가 투맨게임으로 레더의 편중을 조절하며 방성윤의 복귀에 따라 전포지션 매치업 우위를 통해 팀 전력이 시즌을 가면서 탄력을 더한다는 계산이었다. 이 때 김민수가 4번에서 탄력과 파워를 더하고 손준영, 백인선 등이 3,4번을 백업했으며 변기훈 신상호 등이 외곽 슈터 라인을 받쳤다. 이 때 시즌 준비, 연습경기, 시범 경기 등을 참관한 기자들의 평은 매우 좋았다고 한다.
2. 1라운드, 무난한 첫출발
당시 아시안게임 대표팀 차출로 리그 판도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의외로 대표팀 차출이 없는 팀이 탄력을 못 받았다는 평이었다. 이미 동부 KT 삼성 전자랜드 등이 상위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에이스인 김효범이 독감으로 부진했던 LG전이나 전자랜드, 동부와의 대결에서는 대패를 당했지만 전반적으로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하위권인 오리온스, 인삼공사, 모비스를 상대로는 확연한 우위를 보였으며, 상위권인 삼성을 상대로도 절대적인 우위를 보여주면서 5승 4패로 4~5위를 오가는 성적을 유지하였다. 김효범은 평균 16득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스텝업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을 잘 돌려가면서 결정적인 기회에 슛을 아끼면서도 나온 기록이라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3. 2라운드, 슈퍼에이스 김효범
아시안게임 공백기간은 SK에게는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경쟁팀들이 국가대표 차출로 전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전력 누수가 없는 SK로서는 승수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SK는 이 반사이익을 누리긴 커녕 팀 플랜 붕괴의 단초를 자초하게 된다. 당시 감독인 신선우는 오히려 아시안게임 기간동안 이런저런 전술 실험을 하느라고 비시즌급 무리한 훈련을 강행했고 이 여파로 챈들러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아웃, 김민수는 2라운드 KT전에서 발목이 돌아가서 장기간 결장을 해버린다(..) 이에 따라 다 잡은 KT를 놓치고 한 수 아래의 오리온스전에서 충격적인 대패를 하여 2패를 추가 적립한다.
챈들러의 아웃으로 주희정과의 투맨게임이 옵션에서 사라지면서 팀의 득점원은 레더와 김효범으로 단조화되었고, 김민수까지 아웃되면서 4번 라인의 높이가 붕괴된 것이다. 이에 따라 상대팀의 놀이터가 된 퍼리미터, 페인트존에서 레더는 시즌 전반부 27경기에서 12경기를 5반칙 퇴장당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때 SK는 빅맨진의 열세를 김효범의 폭발력으로 만회한다. 김효범은 2라운드에서 평균 21.6득점 3.7리바운드, 1.8어시스트, 190클럽에 육박하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팀 성적 5위를 유지한다. 특히 전자랜드나 동부, KCC와 같은 강팀과의 대결에서도 접전을 벌이는 저력을 보여준 것이 고무적이었다. 특히 동부와의 경기에서 비록 패배하였지만 레더가 5반칙 퇴장당한 상황에서도 로드벤슨, 김주성, 윤호영의 트리플타워와 더블팀을 개인기로 해체하는 김효범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기자는 래리버드의 보스턴에 맞서는 조던 같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4. 3라운드, 아슬아슬한 5할 승률
하지만 그 대가로 김효범은 전력 분석이 심해지고 체력 저하가 우려되었다. 레더는 3라운드에도 5반칙 퇴장 행진을 이어갔고 SK는 그 12경기 가운데 9경기를 내리 패배한다. KT에서는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온 조성민이 KT 전력의 화룡점정을 찍어버리면서 SK와의 대결이 기울었고, LG와 KCC가 탄력을 받아 전력이 상승하는 가운데 SK에 위기가 찾아온다. 7위 LG의 상승이 무서워지는 가운데 팀 성적 5,6등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김효범은 당시 연말까지 평균 18.6득점, 3.2리바운드, 1.5어시스트 190클럽의 활약을 보이면서 실질적인 팀의 1옵션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손준영, 백인선 등이 3,4번 포지션에서 어느 정도는 버텨주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5. 4라운드, 혼선과 위기
3라운드 말까지는 그래도 손발을 맞추고 팀이 만들어지는 분위기였다. 방성윤, 김민수가 순조롭게 복귀한다면 레더와 김효범의 부담을 덜고 상위권을 노릴 수 있다는 다소 긍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다.
방성윤, 김민수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구멍을 매우던 손준영까지 도핑으로[1] 출장금지를 당하면서 가뜩이나 예비전력으로 돌아가던 팀의 포워드 라인이 아예 증발한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2번인 김효범이 3, 4번 수비를 맡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다. 이미 공격에서 과도한 롤로 체력 문제를 보이던 김효범이 수비 땜빵으로 빠짐에 따라 극심한 체력 소모 및 슈팅 난조를 보이기 시작하고 팀의 마지막 주포가 무너져버린다. 방성윤이 잠깐 복귀해서 쌍포를 구축하는가 했지만 오히려 혼선만 가중된 채로 컨디션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렇게 4라운드에서는 시즌 내내 절대 우위를 보여주던 모비스나 삼성에게까지 승수를 건지지 못하고 8연패의 늪에 빠지고 LG에게 추월당한 채 7위로 내려앉는다. 인삼공사, 오리온스, 그리고 1위팀 동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시즌 최초로 3연승을 거둔 채로 잠깐 6위를 탈환하고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은 점은 희망적인 부분이었다.
6. 5라운드, 팀 대전략의 붕괴
하지만 SK의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무엇보다 이미 시즌 대전략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방성윤, 김민수는 부상 및 컨디션 저하에서 회복되지 않았고 1옵션으로서 포워드진의 증발을 온몸으로 받은 레더는 멘붕을 겪고 팀 스태프들이 달래야했고 팀의 주포인 김효범 역시 혹사로 피로골절 및 부상 재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즌 전에 구상한 주희정-김효범-방성윤-김민수, 챈들러-레더로 이어지는 주전 라인업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탁월한 개인기량을 가진 주전들의 매치업 우위를 통해 경기를 풀어가자는 구상과는 달리 오히려 김효범을 제외하고는 모든 포지션에서 매치업 열위 상황에 놓인다.
이 상황에서 신선우가 들고 나온 것은 시합 중간중간마다 상대방을 교란하는 모션오펜스 패턴이었다. 물론 이는 2~3쿼터 정도까지는 어느정도 팀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미 누수된 전력 때문에 체력 소모가 극심한 상황에서 급조된 패턴은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4라운드까지 SK 팀은 ‘손발을 맞춰가는 강팀’ 내지는 ‘중위권 팀’ 정도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5라운드부터 SK는 그냥 전형적인 약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모비스 전에서만 선전하였을 뿐 하위권의 인삼공사, 오리온스에게 내리 패하면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7. 6라운드, 팀 전력의 완전한 붕괴
이 시기에는 7~10위의 팀과 경기력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든 팀에게 무력하게 승리를 내주었다. 순위도 모비스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한 때 8위까지 떨어졌다가 모비스와 삼성에게만 시즌 내내 보여주었던 절대 우위를 지키면서 7위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8. 총평
이 시즌은 호화 멤버들의 모레알 조직력으로 무너진 팀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물론 당시 주전 5명 전원은 모두 MVP 컨텐더급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또한 당시 관계자들조차 시즌 초반까지 SK를 3강으로 주저하거나 시즌 중반 들어서도 플옵 직행을 언급할 정도로 준비가 착실하고 전망이 좋았다고 한다.
사실 신선우의 구상 자체는 틀린 것은 아니다. 보통 스타 군단이라는게 ‘너 한번 나 한번’ 이런 비효율로만 생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으로 큰 경기에 들어가면 이러한 개인기량 있는 선수들의 한방이 많은 것을 결정하고 오히려 특유의 전술로 정규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팀들이 플레이오프에서 침묵하는 경우는 적지 않게 볼 수 있다.[2]
지난해 동부에서 정규시즌 내내 김주성의 발목을 잡는다고 욕을 먹다가 플레이오프에서 팀을 멱살 잡고 이끌던 챈들러, 대체 투입되었지만 큰 경기에서 팀을 이끌던 레더, 주포는 아니었지만 고비고비마다 락다운 수비와 클러치샷으로 모비스를 우승시킨 김효범 등의 영입은 명백하게 큰 경기를 노린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가동될 수 없는 구성이라는데 있었다.
주희정은 KT&G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성 강한 선수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동선과 부딪쳤다. 방성윤은 시전 전의 일련의 문제로 심신이 바스러진 상태였고 김민수 역시 부상으로 스러져 정상적인 팀 가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전 포지션 매치업 우위를 노리는 신선우의 대전략과는 달리 오히려 3개 포지션에서 매치업 열세를 먹고 들어가는 상황인 것이다.
팀에서 내세울 수 있는 김효범과 레더 쪽도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플레이오프 진출 팀에는 김주성+로드벤슨+윤호영의 트리플타워를 보유한 동부, 하승진+다니엘스를 보유한 KCC를 비롯해서 KT, 전자랜드, LG, 삼성 등에도 찰스로드, 허버트힐, 크리스 알렉산더, 딕슨 등 레더가 제압하기 힘든 빅맨 진용이 벌써 플레이오프 6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슈터 포지션에서도 문태영, 문태종, 조성민 등 만만치 않은 매치업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력 누수가 거의 없이 안정적으로 만들어진 팀에서 날아다니는 상대 앞에서 둘의 분투는 빛이 바래기 일쑤였다.
여기에 신선우의 용병술 실패도 결정적인 지분을 차지했다. 비시즌부터 고강도의 훈련으로 손발을 맞추고 기자들의 호평을 들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 구성이 시즌 중에 가동되지 않았고, 남은 구성마저도 시즌 중에 조급하게 담금질을 하다가 컨디셔닝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이러한 혹사로 인해서 레더, 김효범 쌍두마차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김민수, 챈들러가 전력에 서 이탈함에 따라 팀의 옵션은 반감했으며 시즌 중반에 들어서도 근시안적인 혹사로 팀의 주포를 비롯하여 선수들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했다.
가동될 수 없는 팀 구성에서 비롯된 매치업 열세, 무리한 기용과 공격 옵션 부족에 이은 1,2옵션의 과부하야말로 이 팀의 침몰 원인인 것이다. 실상은 중하위권 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호화팀의 침몰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꽤나 얄궂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아시안게임 기간 타 팀의 공백을 감안하면 충분히 전력을 온존하고 플레이오프 진출 시 단기전에서의 선전을 노려볼 수 있는 전력이었으나, 그마저도 조급하게 굴리다가 시즌 초반에 모든 패를 다 내보이고 SK의 암흑기를 연장시켰다.
이러한 암흑기는 김선형이라는 걸출한 신성이 등장한 11/12시즌까지 이어졌으며 헤인즈가 합류하고 포워드진이 완성된 12/13시즌에 이르러서야 종식을 맞게 된다.
9. 후일담
이 시즌은 당시 기자들이 취재조차 조심스러워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또한 실망이 컸던 시즌이라 그런지 주전으로 지명된 선수들 모두 후폭풍이 컸던듯 하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MVP 컨텐더급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선 팀의 감독인 신선우는 남자 프로농구로서는 마지막 시즌이었다. 한 때 최고의 감독으로 명성을 날린 그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도중에 사실상 경질되어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는 모양새가 되었다.
팀의 에이스였던 김효범은 이 시즌에서 얻은 부상 재발 및 번아웃 증세, 이 상황에서 리빌딩을 시도하는 구단의 냉혹한 조치에 희생되면서 커리어의 내리막을 걷는다. 또한 팀의 고과 2탑이었던 레더와 주희정은 매치업 우위를 보이지 못한다는 점이 증명되고 각기 최우수 외국인, MVP 시절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보조자 역할을 받아들이게 된다. 김민수 역시 데뷔 초창기의 기대치에 걸맞은 에이스급 위력을 다시는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방성윤은 시즌 전부터의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한 멘붕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 시즌을 끝으로 너무나도 이른 은퇴를 선택한다.
SK는 그동안 온볼러 스타일의 강력한 국내선수 에이스들을 모아서 전포지션 매치업 우위를 노리던 기조를 보였지만 매년 불운이 겹치면서 이런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듬해 알렉산더 존슨+김선형이라는 센터+가드 조합까지 실패하면서 SK는 이러한 기조를 버리고 3-2드랍존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하는 유기적인 농구를 실현하였다. 포워드 라인의 붕괴의 위험성을 절감하고 박상오, 헤인즈, 최부경과 같이 전술 수행능력이 뛰어나고 블루워커 플레이에도 능한 선수들로 안정적인 전술적인 기반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유기적인 농구 위에 개인기 좋고 달릴 줄 아는 에이스급 선수 하나를 확립하여 마침내 SK는 균형잡힌 팀을 이루어 암흑기를 종식시킬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변종이나 이단 취급을 받던 서구식 슬래셔 스타일의 일대일 공격이 주요 옵션으로 떠오른 시즌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란한 원온원 퍼포먼스는 김선형이 바통을 이어받아 명맥을 이었고 선수들의 화려한 개인기를 장려한다는 SK의 이미지를 대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