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팔교위
西園八校尉
후한 말, 영제 시기에 황제의 직속군인 서원군이 창시되었는데, 이를 이끈 여덟 교위를 의미한다. 188년 음력 8월에 창시되었다.
정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두머리는 상군 교위 건석이었는데, 건석은 환관으로 소황문 직책에 있었으며, 정사에서는 십상시에 포함되지 않지만, 두무와 진번과 환관이 대립하던 시기에 환관들을 이끌고 두무를 진압하는 등 환관의 주축이 된 인물이었으며, 그가 서원군의 대장이 되었다는 것은 서원 팔교위가 사실상 환관들의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소황문(小黃門) 건석을 상군교위(上軍校尉)로,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 원소를 중군교위(中軍校尉)로, 둔기교위 포홍을 하군교위(下軍校尉)로, 의랑(議郎) 조조를 전군교위(典軍校尉)로, 조융을 조군좌교위(助軍左校尉)로, 풍방을 조군우교위(助軍右校尉)로, 간의대부(諫議大夫) 하모를 좌교위(左校尉)로, 순우경을 우교위(右校尉)로 삼았다. 그리고 팔교위 모두를 건석에게 지휘하게 하였다. - 후한서 효령제기 주석 산양공재기
이 부대의 가장 큰 특징은 영제의 직속 부대라는 사실인데, 후한서 하진전 기록에 따르면 영제는 스스로를 '무상 장군'이라 칭하기도 했다. 황제가 장군을 자칭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일본의 학자 카마타 시게오는 이 호칭에 대해 과거 황건적의 난의 주모자였던 장각, 장보, 장량이 각각 천공·지공·인공 장군을 칭한 것에 대한 대응의 조치로 해석하였다.
이들 중에서 원소와 조조는 삼국지의 대표적인 군웅으로 성장하였으며, 이후 우군 교위 순우경은 원소의 부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