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급 방호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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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3. 상세


1. 제원


전장
101m
전폭
13m
흘수
5.7m
기준배수량
3,770t
최대출력
10,100hp
최대속력
21.6kt
항속력
10kt로 3,500해리
무장
15.2cm 단장포 6문, 7.5cm 단장포 4문,
4.7cm 단장포 8문, 3.7cm 단장포 2문,
38.1cm 수중어뢰발사관 단장 2문
탑재기 수
없음
승원
402명
동형함
없음

2. 개요


스베틀라나는 러시아 제국해군의 방호순양함으로, 동형함은 없다. 함명은 기독교성녀인 성 스베틀리나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베틀라나는 1895년 6월 28일에 프랑스의 루앙블에 있는 조르쥬 에 샹티에 조선소에서 기공해 1896년 12월에 진수 후 1898년 3월 21일에 취역하여 러시아 해군에 인도되었다.

3. 상세


원래 스베틀라나는 해군원수용 무장요트로 사용되었는데 이 때문에 평상시에는 외교협상과 외국사절의 접대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스베틀라나는 (발트함대=)제2 태평양함대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다. 극동으로 파견되기 전에 무장 교체가 이루어져 47mm 포 4문과 75mm 포를 장비했다. 또 무선기와 광학조준경도 탑재하였는데 스베틀라나는 세르게이 셰인 대령이 승함하여 러시아 함대의 정찰부대를 지휘했다.
1905년 5월 27일에 시작된 쓰시마 해전에서 스베틀라나는 적탄에 의해 함수에 구멍이 뚫리며 대파되었다. 수뢰정 <븨스트릐>(Быстрый)를 동반한 채 전장을 이탈했는데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중 일본 해군의 추격을 받았다. 해전으로 인한 손상으로 속력이 15노트에서 올라가지 않아 18노트의 일본 순양함에게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28일 오전 9시 경에 셰인 대령은 한국 부근 해역에서 자침하기로 결심하고 함의 진로를 서쪽으로 변경했다.
일본 해군의 순양함인 니다카(新高)와 오토와(音羽)는 거리 9,000m까지 접근하여 포격을 개시했다. 스베틀라나도 분전하여 오토와에게 2발의 명중탄을 안겨주었다. 오전 10시 40분에 <븨스트릐>가 스베틀라나를 벗어나 도주를 개시했고 니다카는 이를 추격했다.
전투개시 1시간 후 탄환이 고갈된 스베틀라나의 침몰은 시간문제였다. 사상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함내는 바닷물이 차올랐다. 셰인 대령은 자침을 명령했지만 탄약고가 침수되어 자폭도 불가능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스베틀라나였지만 항복의 깃발은 내걸지 않고 적탄에 의해 침몰하기를 기다렸다. 오전 10시 50분에 오토와는 사격을 중지했는데 이 때 셰인 대령은 전사했고 부관인 알렉산드르 즐로프 중령도 중상을 입고 빈사상태에 빠졌다.

함장이 전사하면서 수병들은 차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오전 11시 6분에 스베틀라나는 옆으로 기운 채 침몰하고 말았다. 침몰위치는 독도 인근의 북위 37도 6분, 동경 129도 55분이었다. 생존자 291명은 일본 순양함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한편 달아났던 <븨스트릐>는 어렵사리 한국에 도착한 후 수병들의 손으로 함을 자침시켰다.
출처:해인사 <러시아/소련해군 순양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