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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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배우. 한국계 미국인. 미국 AMC 인기 케이블 드라마 《워킹 데드》의 글렌 리 역으로 유명하다.
2. 생애
서울에서 태어나 5세 때 이민갔다. 처음에는 1988년 캐나다 서스캐처원에서 1년간 지냈으며 그후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건축업에 종사했으며 미국 디트로이트와 마이애미에서 뷰티서플라이[1]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스티븐 연은 캘러머주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대학 시절에 연기를 처음으로 접했으며, 그곳에서 연기에 대한 꿈을 품었다. 코미디언 조던 클래퍼를 따라 시카고의 세컨 시티 극단 멤버로 합류하며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워킹 데드를 통해 배우로 성공하기 전에 긴 무명기를 겪었다.
2016년 12월 3일 사진작가이자 피앙세였던 조아나 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아빠가 될 예정이라는 기사가 떴다.
2017년 3월 17일, 아들 주드 말콤 연(Jude Malcolm Yeun)[2] 이 태어났다.
2019년 4월 30일, 아내인 조아나 박의 SNS에 딸을 출산하였다는 소식과 사진이 올라왔다.#미국 신문기사
3. 꿈
- 아시아인치고는 잘 한다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
- 자기 이름을 내건 프로덕션 회사를 세우는 것.
사실 과거에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였던 한국인 캐릭터는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흔했다. 어딘가 약간 모자란 점이 있다든가, 돈이라면 물 불 가리지 않는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서 《택시》(1997)에선 두명의 한국인 택시 기사가 묘사되는데 한명이 낮에 택시를 운전하는 동안 다른 한명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자고 밤이 되면 서로 역할을 바꾸어서 낮에 자고 일어난 한명이 택시를 운전하고 낮에 운전했던 다른 한명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자는 식으로 교대로 운전하는 한국인 택시 기사가 나왔었다.[4]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폴링 다운》(1993)에는 돈에 집착하는 한국인 편의점 주인이 등장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이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이며 유일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5] 이기도 한 안필립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덕에 현지인과 다를바 없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런 점이 마이너스가 되어서 캐스팅이 잘 안되자 캐스팅을 위해 고의로 어눌한 영어를 연기해서 배역을 얻었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작인 크래쉬(영화)에서는 아예 자신들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동남아 이민자들을 인신매매로 팔아넘기는 파렴치한으로 그려진다. 그런 시절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에 와서는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는 편이다. 《워킹 데드》는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스티븐 연이 맡은 배역 글렌 리는 그 캐릭터의 인기도가 꽤나 높다. 게다가 이 캐릭터는 그가 하차하기 전까지 극중에서의 비중이 상당히 컸다. 이는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동양인 혹은 한국인의 이미지와 다르게 글렌이 용감하고, 영리하며, 팀을 위해 자주 희생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미국 대중 사이에서의 이미지를 보면 절반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에 충실한 켄 정같은 케이스와는 달리 연은 착하고 순진하면서도 머리도 좋은, 기존의 영화계에선 체격이 작고 동안인 백인 배우들 (토비 맥과이어나 일라이저 우드같은)이 많이 맡던 역할을 많이 맡으며 대중들 사이에서 이미지도 쿨하단 평이 많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조차도 "아시안이 이렇게 멋지다니 신선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으므로 이런 인식 자체가 바뀌려면 사실 연같은 배우가 계속, 많이 나와야한다. [6]
4. 한국어 실력
인터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옥자》에서 구사했던 정도의 실력인 듯. 그러나 어려운 어휘, 특히 한자어에는 약한지 영어를 섞어 쓴다. 한국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약간 박재범이 말하는 것처럼 연상된다. 버닝 칸 출품 관련해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는 평범한 답변은 한국어로, 복잡한 답변은 영어로 했다.
한국어 실력 자체와는 별개로, 발음 하나는 아주 자연스럽다.[7] .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가 모국어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나 한국어 연기를 보면 한국어 발음이 꽤나 자연스러운 것을 볼 수 있다. 양친과 있을 때는 한국어를 주로 사용해서 대화했기 때문이라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다녔다고 한다. 발음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구사도 적당히 할 수 있는 덕분에, 한국어로 연기 정도는 무리 없이 한다.
옥자 개봉 전 기자간담회에서의 인터뷰 영상. 영어를 섞어 쓰는 걸 볼 수 있다.
5. 출연
이름이 없는 단역은 제외.
5.1. 영화
5.2. 드라마
5.3. 예능
5.3.1. 미국
5.3.2. 한국
5.4. 비디오 게임
5.5. 애니메이션
5.6. 뮤직 비디오
6. 여담
- 코난 오브라이언과 찜질방을 함께 간 영상도 유명세를 탔다. 또한 "한국에 가끔씩 와서 트렌드를 따라가려 노력한다"고 코멘트 했으며 먹방을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나가서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내한일정에도 파트너로 동행했다. 이 인연 덕분인지 박진영의 2016년 신곡인
의 PV에서도 코난과 함께 우정출연했다.
- 성인 연을 yeun으로 쓰는데, 그가 출연한 방송 등을 보면 스티븐 '연'보다는 스티븐 '윤'으로 불리는 경우도 잦다. 본인도 주위에서 워낙 자주 틀리기 때문인지 잘 고쳐주지 않는 듯. 코난의 내한 영상 클립의 한국어 자막에서는 '스티븐 윤'과 '스티븐 연'이 섞여서 나왔다. 그러나 코난 쇼에서 직접 코난에게 년 동안 잘못된 발음으로 부르고 있다고 말해 준다.# 심지어 그의 사촌 또한 '윤'으로 불렀는데, 그 이유가 코난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15]
- 영어 이름인 스티븐은 본인의 의사완 상관없이 부모님이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캐나다에 왔을 당시 부모님과 함께 만난 의사 이름이 스티븐이었는데, 부모님이 그 의사의 이름을 물어보고 "오, 그 이름 괜찮네요. 오늘부터 얘 이름은 스티븐으로 할게요"라는 식으로 얼렁뚱땅 스티븐이 되어버렸다고(...).
- 2017년 8월 20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는데 샘 해밍턴의 아들인 윌리엄을 돌봤다. 이 방송을 보면 본래 외국인인 샘이 스티븐에게 닭발(...)을 권하고, 본래 한국인이었던 스티븐은 이를 걱정스럽게 시식해 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아마 스티븐은 닭발을 생애 처음 먹어본 듯하다. 그리고 찜질방에 간 것은 덤. 찜질방에 스티븐이 온 것을 알아차린 몇 명의 고등학생들이 그에게 사진 촬영과 사인을 부탁했고 스티븐은 "Why not?"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 슈퍼맨이 돌아왔다 2017년 9월3일 방송분에 한 번 더 출연했다
- 기타를 잘치는데 노래 실력도 준수한편이다
-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감독상 시상자로 참여하였다. 한국 영화의 수준이 놀랍고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잔뜩 긴장했는지 엄청 떨고 있다.
7. 수상
- 버닝 - 벤
- 제44회 LA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상(2018)
- 제22회 토론토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상(2018)
- 제53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상(2018)
- 제24회 춘사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2019)
- 미나리 - 제이콥
- 미들버그 영화제 앙상블 어워드(배우 조합상) 수상(2020)
- 덴버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2020)
- 제1회 북미 아시아 태평양 영화인 어워즈 남우주연상 수상(2021)
- 노스텍사스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수상(2021)
8. 사건/사고
8.1. 욱일기 논란
한국 기준 2018년 5월 12일 새벽 두시정도에 joe lynch감독이 인스타그램에 한 아이가 욱일기가 새겨진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사진을 올린 포스터에 스티븐 연이 좋아요를 눌렀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에다가 많은 한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사람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 팬들은 스티븐 연에게 많은 실망감을 표하였고, 해명을 바라는 중이다. 또한 과거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도 욱일기가 새겨진 벨트를 찬 사진이 발견되어 논란을 가속화 시켰다.
기사가 뜨는 등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영어와 한국어로 사과문을 작성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걸 보고 성신여대의 서경덕이 변명일 뿐이라며 반성을 덜 했다고 트위터로 공격하여 이 사과문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한 문단으로 이뤄진 한국어 사과문에선 유감을 표했으나 두 문단으로 더 길게 작성된 영어 사과문과는 미묘한 내용상 차이가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한 내용이 있었기에 오히려 논란을 심화시켰다. 일단 영어로 된 사과문의 경우 첫 문단은 대단히 정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더 캐쥬얼한 문체로 된 두 번째 문단이 문제였다. 한글 사과문의 마지막 문장을 조금 더 길게 풀어 쓴 것인데 사과문의 내용과 관계없이 영어 사과문과 한글 사과문의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한국어 사과문에도 SNS의 취약성에 대해서 같은 요지의 내용이 한 문장이지만 분명히 기재되어 있으므로 스티븐 연이 진정으로 한국 대중을 기만하려고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평소 인터뷰 습관에 비추어볼 때, 간단한 대답은 한국어로 하는 반면 복잡해지면 영어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사과문 작성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댓글에선 실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있다고 하는 파와 이게 어딜봐서 실수냐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사과문이 영어가 더 익숙해서 영어로 된 글이 더 길게 쓰여져 있을 뿐이며 한글 네티즌을 악플러로 몰아가고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는 사람들도 꽤 있다. 반면 원래 문단의 "이 세계의 인터넷이 'fragile'해서 조그마한 클릭으로 본래 의도가 재단될 수 있다"는 말은 자칫하면 한국팬들이 그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더러 이 사건을 그저 '작은 일'이라고 얘기한다는 뉘앙스도 있기에 논란이 있었다.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워킹 데드의 전범기 논란과 비슷한 사건이 또 터졌으므로[16] 실수든 아니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으며 여론이 악화되었다.
두번째 사과문이 새로 올라왔지만 첫 문장에 친한 지인의 어릴 적 사진이라는 말에 욱일기에 대한 내용이 없고 또 영어로 쓰여진 사과문에서도 친한 지인의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라고 되어 있어 댓글창은 외국인과 한국인의 논쟁으로 그야말로 혼파망이었다. 두 번째 사과문에는 욱일기를 뜻하는 '''“역사의 상징”'''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기재되어 있지만 정확한 '욱일기'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사과문을 게재하였지만 정확히 욱일기가 어떤 의미인지, 욱일기로 인해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 불만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이 사과문만 놓고 보자면 큰 문제는 아니지만, 1차적으로 영어-한국어 사과문의 차이로 영미권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이 도가 지나친 악플러처럼 다뤄질수있다는 점, 추후 욱일기 사용시 한국계도 인정했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갈수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으로 보인다.최근에 제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지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어린 시절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저의 무지함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실수, 특히 어떤 방식으로든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상징에 대한 부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깊게 영향을 미치는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팬 분들의 걱정스러운 메시지로 인해 이 문제에 대한 저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고, 제가 처음에 급하게 올린 사과문이 더 많은 아픔과 실망을 드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처 입은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이 제게는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것을 약속드립니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8.1.1. 문화적 차이 논쟁
만약 이 사건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놓고 인터넷은 불완전한 플랫폼이니 너희들도 좀 예민하다는 말을 했다면 서방세계에서 가만히 있을수 있었겠느냐는 의견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짜로 나치 하켄크로이츠에 좋아요를 눌렀다면 스티븐 연은 절대 영어로 그런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문제는 너희 한국에서만 민감하다 라는 늬앙스를 풍길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국민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린 사태라 볼 수 있다.(한마디로 나치문양의 사건이었다면 푸념도 용납이 안됐을텐데 한국국민만 민감한 욱일기이기 때문에 푸념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인의 인식에서 욱일기는 하켄크로이츠정도의 극혐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디자인이나 패션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양에 속한다. 한국 이외에는 욱일기에 대해 무지한 나라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미국인의 상식으로 이를 캐치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이런 식의 문화 차이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예를들면 독립유공자인 이범석과 안호상[17] 사상은 서방세계에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나치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 인물이 금기시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범석은 공식적인 독립유공자이자 광복군 핵심인물이다. 이 인물의 문서로 들어가면 지인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것은 비교사례도 되지 못한다.
1947년 5월말, 미국 신문기자단은, 서울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져있는 옛 성곽도시 수원에 있는 대한청년단의 훈련학교를 우연히 찾아갔다.
이 운동의 지휘자는 이범석이었는데 그는 일제시대 김구[18]
의 광복군 참모장이었다. 1947년 7월까지 약 7만 명이 수원 훈련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공식 발표에 의하면, 1947년 말까지 10만 명의 훈련생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수원 훈련학교 교장은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독일에서 살았던 사람으로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히틀러 청년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것을 신문기자단은 알게되었다. 그 학교를 방문했을 때 신문기자단은 "Sprechen Sie Deutsch?"(독일어를 아십니까?)라는 인사를 받았다. 그와의 계속된 대화를 통해서 그 조직이 히틀러 유겐트(Jugend)를 본따서 만들었으며''', 조직의 목적은 남조선 국군을 양성하여 '광복군의 영광스런 전통'을 계승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훈련학교는 완전히 '비정치적'인 기관이지만, 김구가 상임교관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다양한 정치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에 들어오지만, 나갈 때는 똑같은 사상을 가지고 나간다는 정보도 그는 스스로 제공했다.
리처드 D 로빈슨(한국 미군정의 대민 정보수집 분야에서 일했고, 이후 제24군단 사령부의 정보과에서 점령기를 다룬 전사 편찬 업무를 맡음. ), 미군의 배반, 과학과 사상, 1988, 215-216
이에 비하면 인스타그램에 겨우 좋아요 누른사건은 사소한 사건에 속할 것이다. 욱일기를 몸에 두르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부른 것도 아니다. 스티븐 연에게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가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반역자라고 말하고 싶다면 이범석을 독립운동가로 칭송한 인물들은 나치즘을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비난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애초에 제국주의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욱일기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음'''으로 잘못을 구분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19]오후에 연락원은 우리를 또다른 "신사"인 한국민족청년단(족청)의 단장이며 극우진영의 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이범석 장군에게 데려다주었다. 나는 줄창 그의 이름을 들어왔었고, 몇몇 미국인들은 우리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그를 만나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우리는 미군이 한국민족청년아 베당해준 2층 건물에 자리잡은 본부에서 그를 만났다.(...)이는 좋은 체격의 건장한 사람이었다. 그의 얄팍하고 굽은 코와 빈약한 콧수염이 기묘하게도 호전적인 인상을 풍겼다.(...)
그는 말했다. "오늘날의 한국은 1919년의 독일과 같소. 이데올로기적인 대립과 민족적 불화, 경제적 곤궁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요. 청년들의 단결이 민족해방의 관건이 되오. 지도자양성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요. 우리는 그들에게 명령에 복종하는 것, 실천적인 능력의 함양과 도덕심의 회복 등을 고육하려 하고 있오. (...) "
그의 이야기는 게속되었다. 나는 점차로 내가 한국의 한 민주주의조직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히틀러의 저 악명높은 "지도자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민족, 사명, 규율, 인내 등의 단어들이 우선동일했다.(...)
이범석은 예정된 커리큘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역사학, 윤리(이범석 자신이 강의할 예정이었다.), 정치학 등이었다. "파업분쇄방법도 가르칠 거요. '''히틀러의 유겐트의 역사도 물론." 그의 핵심 참모 중에는 3년 동안 히틀러 유겐트의 열렬한 멤버가 되었던 사람이 있다.'''
마크 게인(동북아시아통의 저널리스트. 마크 게인은 1946년 10월 15일에서 1946년 11월 7일까지 한달 남짓 한국에 머물면서 서울, 개성. 옹진, 부산, 동래, 대구 등을 취재함.), 해방과 미군정, 까치출판, 1986, 118-120 (본 부분은 1946년 11월 7일 서울에 갔을 때 일기임. -115쪽)
물론 이게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지는 않으며,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다. 무조건적으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은 옳지 않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례인 이범석의 네오 나치 사상이 잘 알려지지 않고 대충 넘어가졌을지언정 대한민국에서 옳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도 아닌 것처럼, 동아시아 외에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가 아니였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도 卐에 대한 마녀사냥이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 #, # 한국에서 욱일기가 전범기 이전에 민속무늬라며 배척에 비판이 있듯이 서구권에서도 만자가 전범기 이전에 오래된 무늬였다고 배척에 대한 비판이 있다.
마지막으로 스티븐 연은 미국 배우이긴 하지만 한국 내 활동도 조금씩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으로서만 그를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어폐가 있다. 그가 한국인 태생으로서 다른 미국 배우들보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던 것과 한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한국의 여론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여론의 이러한 공격이 과도하다고 느낀다면 한국인 입장에서도 그의 욱일기 논란이 크게 실망스러운 논란이라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한국사에서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가슴아픈 시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욱일기에 좋아요를 누른다면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차적으로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문화적 차이도 고려하지 않는 비판이라 하는 것은 과도한 양비론적 시선이다. 즉 스티븐 연이 미국인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으로서 분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욱일기와 외국인이 얽히는 경우 지속적으로 양비론과 함께 문화적 차이이기 때문에 이해해야한다는 의견은 무지에 대한 일방적인 면죄일 뿐 아니라, 잘몰랐었을 수도 있으니 피해자가 이해해야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욱일기 논란이 일어난 후 문제가 되는 것은 잘몰라서 욱일기를 사용, 개제, 좋아요를 표현하는 행위보다 후에 사과 및 정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대표적인 예로 리버풀의 축구선수 나비 케이타의 경우 욱일기 문신이 문제가 되자, 사과와 함께 아예 문신을 다른 문신으로 덮어버렸고,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스티븐 연의 경우 사과문 말미에 사족을 붙여서 문제가 되었다.
8.1.2. 칸 시상식 종료 이후
칸에서 한국기자를 만나 인터뷰하여 부끄러운 실수를 하여 후회된다고 재차 사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