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용
1. 개요
시조 시문용(施文用, 1572년 ~ 1623년)은 명나라 병부시랑을 지낸 시윤제의 아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행영중군으로 참전했던 무장이다.
1.1. 참전 이후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부상으로 인해 명나라로 귀국하지 않고 경상도 상주에 정착하였다. 정인홍의 사촌 누이인 합천군의 장함의 딸과 혼인하여 자식들을 두었다. 시문용은 땅을 잘 보는 것으로 천거되어 벼슬을 얻었다. 이후 광해군의 총애를 받으며 개혁정책에 참여하였으며, 조선의 군사전술에 많은 조언을 하였다.
2. 사후
선조가 첨지중추부사를 제수하였고, 그가 죽은뒤 영조 때는 참판을 추증받았다.
2.1. 여담
그는 전쟁에서 수많은 활약을 하여 명나라 장수들 중 가장 큰 전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실록에는 거의 기록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시문용이 북인이었으며 광해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이었기에 반정으로 인조가 왕에 등극한 후, 그의 정적들이 기록을 삭제하였다는 설이 정설에 가깝다.
인조반정 이후 그는 광해군의 개혁 파트너였다는 점 때문에 처형당했다고 전해지지만, 후손들의 증언으로는 상주에 돌아와 저술활동을 하여 병학기정· 감여지남· 의복묘결 등을 저술하였고 천수를 누리다 생을 마감하였다는 주장이다. 후손들의 주장은 그가 저술한 책들이 후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1]
그러나 그는 죽을 위기를 겪었기 때문인지, 그는 훗날 유언에서 자손들에게 벼슬길에 나아가더라도 당파싸움에 엮이지 않는 직책만 맡으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나,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