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네베
아르투어 네베 (Arthur Nebe)
1894년 11월 13일 생 - 1945년 3월 21일 사망
베를린에서 교사였던 부친아래 태어난 네베는 제 1차 세계대전시 제 17 공병대대에서 의용군으로 종군하다가 가스공격으로 인해 2번 부상당하여 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920년에 바이에른 주 경찰에 들어가 1924년에는 형사경찰(크리포)부장이 되었다. 1931년 6월 1일에 나치당에 들어가 경찰정보를 나치스에 알리기도 했다. 1933년 4월 1일에 쿠르트 달루게가 초빙하여 베를린 경찰로 이동한 네베는 1933년 10월에 게슈타포 장관이던 루돌프 딜즈로부터 개슈타포로 초빙되어 <긴 장검의 밤>사건당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소개로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6년에 형사경찰 크리포가 하이드리히가 지휘하는 보안경찰본부 산하에 들어가자 네베는 크리포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1939년부터 보안경찰은 나치당 조직의 산하에 들어가 라이히 보안본부가 되었는데, 크리포는 라이히 보안본부 제 5국이 되어 네베는 그 국장이 되었다. 1941년 6월에 아인자츠그루펜 B부대 사령관이 되어 중앙집단군에 참가해 백러시아와 모스크바 전선에서 종군한 그는 도중에 유대인과 게릴라 병사들을 대거 처형했다. 네베는 45,467명의 처형을 했다고 상부에 보고했었다. 1942년에 독일의 라이히 보안본부로 돌아온 네베는 6월에 하이드리히가 사망하자 후임으로 국제형사경찰 위원회(인터폴)의 총재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네베는 반 히틀러파로 돌아서, 루트비히 베크육군대장 및 한스 오스터 육군대령 등 군내 반 히틀러 세력과 모반하기로 연락을 취했다. 또 반 나치 지하조직과도 접촉해 경찰정보를 넘겼다. 1944년 7월 20일에 히틀러 암살계획이 실패한 후 네베의 모반도 발각되었다. 네베는 도망쳤지만 1945년 1월 16일에 게슈타포에 의해 잡혀 3월 2일에 민족재판소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는 3월 21일에 히틀러의 명령으로 피아노선에 목이 졸려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