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에이지/클로즈 베타 테스트
본 항목은 아키에이지의 변천 중, 1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부터 5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대한 사항에 대한 것이다.
1. 개요
아키에이지는 2010년부터 2013년 오픈 베타 테스트 때까지 총 5차례에 걸친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통상 게임 업계에서 MMORPG 게임의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통상 3회정도 실시 하는 것이 오랜 관례인데, 이처럼 5차례의 테스트를 거친 것 자체가 상당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부 콘텐츠에 대해서 3일에서 1주일 정도 클로즈 테스트하던 2010년대 초반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80일간 아키에이지의 거의 모든 콘텐츠를 공개하여 테스트 한 것 또한 업계 내에서는 파격 행보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서 등장한 콘텐츠가 곧 아키에이지의 모든 것일 정도로, 방대한 양의 콘텐츠가 등장했으며 상용 서비스의 상당한 기간동안 크로즈 베타 테스트에서 보여주었던 콘텐츠의 연장선에서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다만, 클로즈 베타 테스트 기간 도중에 그래픽 엔진이 교체되고 최적화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그래픽 사양이 점점 하향된 것은 많은 유저들의 아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문제는 상용화 이후 해외판 클라이언트에서는 어느 정도 수정되어, 그래픽 엔진의 기술적 최적화를 통해 한국판 클라이언트보다 더 좋은 그래픽 사양을 보이고 있다.
2. 변천
2.1. 1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
1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2010년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동안 진행되었으며, 온라인에서 200명, 오프라인 및 언론에서 200명의 테스터를 선발하였다.
이 테스트의 가장 큰 목적은 게임의 구동이었기 때문에 많은 콘텐츠가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으며, 전투 모션이나 사운드도 불완전하였다. 다만, 베타 테스터 모집 시 내세웠던 '자유의지'에 대한 모토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폭넓은 콘텐츠를 선 보이려고 하는 노력은 볼 수 있는 테스트였다.
1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서는 누이아 대륙(서대륙)과 누이아 대륙의 종족인 누이안, 엘프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상용 서비스 기점에서 볼 때 당시의 UI는 충공깽에 가까운 수준이었다[1] .
2.2. 2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
2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2010년 11월 4일부터 7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온라인에서 1,000명의 테스터를 선발하였다.
2차 테스트에서는 크라이 엔진의 그래픽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컴퓨터 점유 자원이 상당했고, 이 시기 최고의 그래픽 카드였던 지포스 GTX 480으로도 매우 높은 옵션에서 60프레임을 안정적으로 뽑기 어려울 정도였다. 실제로 2차 테스트 마지막 날 10시 클로징 파티 때 많은 유저들이 한 장소에 모여 테스트 종료를 기념했는데, 이 때 사양이 극단적으로 높은 유저들을 제외한 많은 유저들은 렉으로 튕기고 말았다.
이와 같이 2차 테스트에서는 그래픽 엔진과 게임 엔진 커널부에 대한 본격적인 테스트가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최적화보다는 엔진의 성능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버그가 발생했고, 이에 대해서 엑스엘 게임즈에서도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편.
한편, 이 테스트에서 선박 건조를 통한 해상전이 등장하게 되었다. 엑스엘 게임즈 입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본격적인 테스트를 원했으나 많은 유저들은 단순히 레벨업에 매진함으로, 이 부분에 대한 테스트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해상전 콘텐츠와 함께 이 테스트를 기점으로 아키에이지의 진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택과 텃밭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특성에 따른 직업군이 완성되었다. 또한 위의 스샷에서 볼 수 있듯이 퀘스트에 대해 유저가 직접 코멘트를 남겨 볼 수 있는 콘텐츠의 도입이 검토되던 시기였다. 해당 기능은 향후 추가되지는 않았지만, 웹 페이지와 게임 내의 커뮤니티 기능을 통합하여 게임 공간 내에서 실시간으로 일지를 남길 수 있는 기능으로 변형 도입되었다.
이 시기까지의 클라이언트는 패키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압축만 풀면 텍스쳐 등 소스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패키징이 되어 있다.
2.3. 3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
[image]
3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2011년 5월 24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온라인에서 5,000명의 테스터를 선발하였다.
[image]
3차 테스트에서 하리하라 대륙(동대륙)과 새로운 종족인 페레가 정식으로 공개되었다. 사실 페레는 2차 테스트의 클로징 파티에서 공개 되었던 것인데, 3차 테스트에서는 직접 종족으로 선택하여 플레이 할 수 있게 된 것. 이 테스트에서는 전장 시스템과 UI, 퀘스트 등을 중점에 두었고, 그래픽도 개선했다고 밝혔다.
[image]
[image]
전장 시스템은 상용 서비스의 전장과는 달리 한 팀이 6인으로 구성되는 것이었다. 전장의 진행 방식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이 시기까지 아직 전투 스킬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서 전장 콘텐츠를 전체적으로 체험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UI와 퀘스트도 크게 개선했다고 밝히긴 했지만 체감하기 어려웠으며, 특히 UI의 경우 1차 테스트의 불편한 UI가 개선되는 수준에 그쳐 좋은 평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픽 개선의 경우에도 기존의 그래픽을 단순히 블러 효과를 준 것과 같은 경향이 커서 호불호가 갈렸다.
2.4. 4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
[image]
4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2011년 12월 8일부터 95일간 진행되었다. 당초 테스트 기간은 80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후반부에 15일을 추가하였다. 온라인에서 5,000명의 테스터를 모집하였으며, 3차 테스트에 참여했던 승계 테스터들에게는 아키에이지의 세계지도를 증정하였다.
[image]
이 테스트를 통해서 아키에이지는 기본적인 골격을 갖추게 되었으며, 콘텐츠 측면도 대폭적으로 보강되어 조금만 더 손을 보면 정식 출시를 해도 될 정도의 수준에 올라서게 된다. 새로운 종족인 하리하란이 추가되고 원대륙과 원대륙의 영지, 해상 콘텐츠 등이 전격적으로 추가되었고, 아키에이지의 대표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 하우징과 텃밭 콘텐츠, UCC 콘텐츠도 이 업데이트를 통해 선 보였다.
[image]
[image]
또한 그래픽 엔진이 크라이 엔진2에서 크라이 엔진3으로 변경되면서 아키에이지의 그래픽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전의 그래픽도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었으나, 엔진의 특성 때문에 컴퓨터 그래픽스러운 부조화가 다소 느껴지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크라이 엔진3가 도입되면서 그러한 부조화는 많이 해소되었으며, 특히 빛, 물, 배경 표현의 품질히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다만, 그래픽 엔진이 급작스럽게 교체되다보니 최적화 작업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더욱이 아키에이지의 경우에는 FPS엔진인 크라이 엔진을 MMORPG용으로 변용하는 과정[2] 을 거쳤기 때문에 많은 버그를 수반하였다. 엔드 유저 입장에서는 멀정한 엔진을 괜히 교체해서 왜 문제를 키우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당시 엑스엘 게임즈의 결단은 매우 유효했다고 보인다. 4차 테스트 당시 아키에이지의 정식 출시를 2012년 중후반으로 예정해두고 있었는데 이 시기가 되면 크라이 엔진2는 이미 구식 엔진이 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마케팅 영업 상으로도 기존의 엔진을 안고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테스트 기간이 3개월 정도 였기 때문에 이 테스트에 참가 했던 유저들은 게임 내의 콘텐츠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이전 테스트와는 달리 레벨업에 집착하지 않고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는 유저들도 나타났고 제작과 생산 콘텐츠를 즐기는 유저들도 있었다. 또한, 퀘스트나 콘텐츠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레벨업을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의 레벨이 상향 평준화되었으며 테스트 후반기로 갈수록 필드 전투나 해상 전투도 활발하게 전개 되었다.
[image]
[image]
더욱이, 4차 테스트에서 전면적으로 도입된 하우징 기능과 텃밭 기능[3] 은 전통적인 MMORPG의 전투적인 요소 이외의 콘텐츠로 작용하면서 유저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함게 UCC 콘텐츠도 함께 선보이면서 유저 자신만의 안료로 각종 탈것, 주택 등을 꾸미는 모습도 보였다.
이처럼 유저들의 게임 경험의 폭이 깊어지면서 거대 원정대도 출현하였으며, 이러한 원정대를 주축으로 공성전 모의 평가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원정대 간의 갈등도 나타나기도 했다.
4차 테스트는 아키에이지의 향방이 결정된 중요한 계기로, 아키에이지의 총감독인 송재경, 프로듀셔셨던 김경태에 의하면 본래 아키에이지는 전통적인 MMORPG를 나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테스트를 하면서 '아키에이지다움'을 추구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에 따라 샌드박스를 지향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방향 선회는 엔진 교체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형적인 MMORPG 게임에 몇몇 생활 콘텐츠를 덧붙인 모양이 나왔다. 이에 대해 많은 유저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송재경은 샌드박스 구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한 4차 테스트에는 인물의 다양한 감정 표현이 추가되었는데, 이 중 노골적인 성적 묘사도 포함되어 일부 유저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는 김경태 프로듀서께서 현실에 있음직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구현하겠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2.4.1. 그놈의 공성전
80일 CBT의 후반에 다다르자 어느 정도 분위기가 농익었다고 생각한 엑스엘게임즈는 공성전 패치를 단행했다. 제작자가 제작자인 만큼 공성전에 엄청난 투자를 한것으로 보이며, 원정대에서 3명씩 불러다가 강남의 한식당에서 공성전 간담회까지 열면서 당당하게 추가한 컨텐츠였다
허나 그 열성이 무색하게도 '직접 성을 지을 수 있다'면서 수성측에게 1주간의 성을 건설할 시간까지 주며 시작된 공성전 컨텐츠는 완전히 망해버렸다. 무엇보다 영지에서 아무것도 할 컨텐츠가 없었고, 그러자 어느새 수비 진영은 성 내부를 성벽으로 채우는 일이 발생하여 사실상 무적의 성을 구축하고 말았다.
든든한 준비끝에 시작된 첫번째 공성전은 공성측이 버그로 단 2명(…)만이 공성지역에 진입할 수 있었고, 신나는 약탈사태도 겹쳐서 서버를 정지하고 백섭을 단행하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송재경 CEO가 직접 글까지 써 가며 공성전 데이터를 얻기 위해 2주간 CBT를 연장, 80일에서 94일 CBT가 되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처음 두번의 공성전은 둘 다 수성측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수비 측에서는 공성무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나무를 영지 내부에 가득 채우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공성 측은 이를 뚫기 위해 날틀을 이용하는 등의 전략 등이 등장하였으나 전력이 분산되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또한 평화의 노래를 비롯한 수비계열 스킬로 전투 자체를 무위로 돌리는 등의 전략이 등장하여 공격 측을 수월하게 막아내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세번째 공성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아예 스킬 중 하나인 평화의 노래[4] 가 삭제되거나 공성전 중 나무를 추가적으로 심는 일을 막는 등 게임의 무한한 자유도를 주장하던 제작진의 기존 주장에 대치되는 황당한 밸런스 패치가 거듭되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준비하며 실력을 갈고 닦은 공성측을 '공성전 한번 해볼사람!' 해서 외국인 포함 어중이 떠중이를 긁어모은 수성측이 무난하게 막아내는 형국이 펼쳐졌다.
그리고 수성측의 압도적인 우세로 흘러가던 도중 치명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수성측 인원 40여명이 수성에서 튕겨져 나간 것.'''
50:50이 기본인 공성전에서 일순간 10:50이 되어버린것이다. 게다가 튕겨나간 40명은 다시 공격대를 구성해야 하므로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었고 사실상 무방비에 노출된 아키움은 박살나서 공성측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안그래도 아키에이지 편파 운영 논란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아무리봐도 BJ연합(당시 공성측)에 유리한 버그가 발생했으니 결국 유저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수성측 원정대는 사실상 전원이 게임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성측은 자신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주장했지만, 공성측이 한시간 40분동안 50여 퍼센트를 겨우 깎았고 수성측은 앞으로 18분만 버티면 되는 상황이였으니 아무도 공성측이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 마당에 무슨 헛소리냐는 의견이 대세. 이런 상황에서 운영진은 이를 '''정당한 공성전'''이라고 인증했으며, 그 발언에 어이를 상실하고 게임을 접는 유저들이 속출하였다.
그 다음날 벌어진 네번째 공성전에서는 아예 '엑스엘 측에게 공성전 데이터를 주지 않겠다'며 수성측이 아예 수성을 포기, 공성지역에 공성진영만 가득 있는 막장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아키움 깨는데 1시간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화력을 선보였다.
2.5. 5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
[5]
[image]
5차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2012년 8월 16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었다. 테스터의 모집은 복선적으로 이루어졌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7월 19일부터 8월 20일까지 공개 접수를 받아 12만 명을 선발하고, 3차와 4차 테스트에 참여했던 승계 유저 1만 여 명, 언론, 유관 기관[6] , 해외[7] 에서 5천 여명을 선발하여 총 13만 여명을 선발하였다. 이와는 별개로 테스터의 상당수에게 초대권과 주요 BJ들에게도 수십장의 초대권을 남발했고, 지정 PC방에서는 제한 없이 접속할 수 있었으므로 실제 접속 인원은 최소한 15만 명 이상이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전국의 PC방 500곳에서 사전 접속 이벤트를 시행하여 15일부터 PC방에서 접속할 수 있었다. 13만 명에 이르는 테스터 자격은 2차에 걸쳐 부여되었는데 8월 10일에 8만 명의 테스터 권한을 부여하여 16일부터 접속을 허용하고, 나머지 7만 명은 20일에 테스터 권한을 부여하고 20일부터 접속을 허용하였다. 워낙 테스트 인원이 많기 때문에 1차 시기부터 3개의 서버를 개설하여 운영하였으며, 나중에 하나의 서버를 더 추가하였다[8] .
워낙 테스트 인원이 많기 때문에 테스트 시작과 동시에 서버가 다운되었으며 정오에 시작하기로 한 테스트는 결국 오후 6시 30분이 되어서야 개시 할 수 있었다. 한 서버에 최소 1만 명의 인원이 물려 있다보니 유저 캐릭터나 NPC가 조금 많다 싶으면 프레임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사실 엑스엘 게임즈에서는 아키에이지 게임 서버 자체를 새로 프로그래밍했기 때문에 서버 과부하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서 이 테스트를 통해서 부하 테스트를 해 본 측면이 없지 않다. 실제로, 이 테스트를 통해서 오픈 베타 이후에는 한 서버에 동시 접속할 수 있는 인원을 5천 명으로 제한하였다.
이 테스트를 계기로 아키에이지의 콘텐츠가 사실상 성숙기에 들어갔다. 1차 테스트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UI문제가 대격변 수준으로 변혁하였고, 불편한 퀘스트 동선과 진행 방식, 제작과 생산 콘텐츠의 게임 내 조화 등이 대폭적으로 개선되었다.
[image]
특히, UI의 경우에는 현재 상용 서비스에서 보여주는 UI의 수준에 근접하게 올라섰다. 짙은 청록색 기반의 UI가 밝은 살색으로 바뀌면서 가독성이 높아지고, 아이콘과 창의 버튼들도 더욱 직관적으로 변화하였다. 퀘스트 동선의 경우에도 기존의 테스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퀘스트 창의 UI를 대폭 개선해 훨씬 편리하게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제작법 사전의 경우도 제작 재료와 제작 방법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여 유저들의 편의성을 더욱 신경 쓴 모습을 보였다.
한편, 4차 테스트에서 전면적으로 도입된 각종 생활 콘텐츠는 더욱 게임 속으로 녹아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투와 생활 모두를 추구해야 게임을 유의미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엑스엘 게임즈의 기획 의도가 잘 드러난 테스트였다는 평이다.
[image]
5차 테스트를 거치면서 게임이 많이 최적화된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되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느낌에 불과한 것이었다. 많은 유저들을 정규 서버와 비슷한 수준으로 수용하려다보니 그래픽 사양이 다소 하향되었으며, 이는 이전 테스트에 참여한 유저들 일부는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식의 최적화를 빙자한 그래픽 사양 하향은 오픈 베타 테스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3. 의미
아키에이지의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갖는다.
이 테스트에 참여했던 유저 중 사용 서비스 이후에도 아키에이지를 즐겼던 유저들 대부분은 오히려 클로즈 베타 기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엑스엘 게임즈 측에서 게임 운영에 신경을 썼고 실제로 많은 기획ㆍ개발팀 관계자들이 GM형식으로 게임 내에서 유저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기도 했다.
또한, 아키에이지가 갖고 있는 폭넓은 콘텐츠들이 계속적으로 보강되었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게임 경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와 함께 거대한 심리스 월드는 많은 유저들의 모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으며 모험 자체를 주 콘텐츠로 즐기는 유저들도 있을 정도였다.
아키에이지를 개발한 엑스엘 게임즈 입장에서는 이 테스트들을 통해서 유의미한 게임 기획 및 개발에 대한 경험을 쌓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일단 아키에이지를 총괄한 송재경은 전통적인 MMORPG의 계통 속에서 아키에이지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한 것의 일환으로 샌드박스를 제시했는데, 애초에 그가 제시한 개념은 매우 조악한 것이었다. 이러한 것에 대해 유저들의 비평이 더해지며 완성도 높은 샌드박스 개념이 도출되었다.
한편으로는 게임 UI에 대한 높은 수준의 개발 역량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테스트 초반기에는 프로듀서가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수준 낮은 UI였으나 유저들의 피드백과 전문적인 UI팀의 신설로 UI 편리성을 계속해서 늘려갔다. 이러한 UI 설계에 대한 노력을 엑스엘 게임즈는 UI분야에 대해 높은 수준의 기획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4. 사건 사고
4.1. 은사시 테러 사건
CBT4차때 2012년 1월 6일, 2월 10일 동대륙 길드 중 하나인 드라이어드 길드를 주축으로 일어난 나무심기 운동
- 2012년 1월 6일
- 2012년 2월 10일
[1] 이후 1차 CBT 때의 UI가 개선되는 수준에서 4차 CBT 때까지 그 골격을 유지한다. 당연히 유저들은 UI에 대해 성토를 했고 아키에이지 개발 부서 내에 아예 UI팀을 신설해 UI 개발에 공을 들인다. 그 결과 5차 CBT 때는 대격변 수준의 향상을 가져왔고, 상용 서비스 이후에도 꾸준이 UI가 개선되고 있다.[2] http://www.youtube.com/user/archeage/search?query=kgc 관련 영상 참고[3] 이 시기의 주택은 조그만한 뙈기밭을 갖고 있었으며, 텃밭은 원형이었다.[4] 반경 25M에서 전투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25미터 밖에서 쏘거나 시전자가 이동하면 해제.[5] 4차 테스트 때의 영상의 더빙은 전문 성우가 했으나, 이 영상은 엑스엘 게임즈 직원이 했다. 이 영상 이후에 나오는 영상 대부분이 엑스엘 게임즈 직원들이 더빙한 것이다.[6]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첨단게임산업협회, 게임물관리위원회,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 등[7] 중국과 러시아 언론 등에 총 1,500여 계정을 부여하였다.[8] 이 때 생성된 서버가 키프로사, 오키드나, 타양,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