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니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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焼肉, 焼き肉
1. 개요
2. 기원 및 특징
2.1. 역사
2.2. 국적 논란
2.3. 번역
2.4. 고깃집과 야키니쿠야
3.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야키니쿠
4. 야키니쿠를 좋아하는 캐릭터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식 고기 구이가 재일 한인 커뮤니티 및 그들과의 교류가 많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에 정착하며 변형된 일본식 한국 요리이자, 넓은 의미에서 일본 요리의 하나로 여겨진다. 단어의 의미는 말 그대로 굽다라는 의미의 야키(焼)와 고기라는 의미의 니쿠(肉)가 합해져 직역하면 '구운 고기'이다.
야키니쿠라는 단어 자체는 메이지 시대 당시 서양 요리를 일본에 소개하는 책인 '서양요리통(1872년)'[1]에서 당시 한자로 燒肉 표기하기 시작했고 당시 야키니쿠를 다룬 항목에서는 綿羊燒肉(면양소육)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면양은 우리가 잘 아는 털 많은 그 양을 말하며 소육은 야키니쿠를 말한다. 즉 한국어로 번역하면 "양고기 구이"가 어원으로 바비큐[2]를 번역하는 단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자세한 것은 링크 참고.
그러나 이후 한일 양국 간의 얽히고설킨 근현대사로 인해 요리 분야에서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졌고, 결과적으로 일본화된 한국식 고기구이 문화를 가리키는 단어로 변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제국의 식민 통치기와 해방 이후 기간 동안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 한국-조선인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불고기에서 기원해, 일본식으로 현지화되어 정착한 음식. 어감상 타타키 작업을 오래 한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므로 직화가 닿지 않는 팬 위에 굽는 것은 야키니쿠가 아니라 로스(ロース, Roast의 축약형)라고 한다.

2. 기원 및 특징



2.1.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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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쇠 위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을 묘사한 조선시대 민속화
이 요리와 그 문화의 기원은 조선 후기와 개화기 당시 양반들을 비롯한 부유층이 향유하던 조선의 고기 문화였던, 고전적인 조선식, 특히 그 중에서도 한반도 북부(북한) 지역 방식의 불고기이다. 일본 제국의 조선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여러 사유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해방 후 대한민국 혹은 북한으로 귀향하지 않은/못한 재일 한국-조선인들이 고향에서 먹던 것처럼 숯불을 피우고 원형/사각형의 석쇠 위에 적당히 얇게 편 고기를 구워 한 입 크기로 썰어 먹는 평양식 고기구이를 재일 한인들과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팔기 시작한 것이 야키니쿠 가게의 효시이다.
실제로 초기 야키니쿠는 한반도 북부, 지금의 북한 지역의 육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3] 전후 최초의 야키니쿠 가게가 북한에서 건너간 재일 조선인인 임광식이 세운 '식도원'인 것과 당시 야키니쿠 가게의 개업 상당수를 북한계 재일 한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봐도 추측할 수 있다.#[4] 다만 현재에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과 파탄난 민생으로 인해 소위 "백두혈통"이라고 불리는 김씨 일가를 비롯해 소수의 상류층이 즐기는 것을 제외한 많은 수의 육류 문화가 소실 위기에 빠진 상황이라, 북한 지역의 불고기 문화도 북한 내 특권층이 즐기는 불고기나 서민층에서 일부 전해오는 문화를 제외하면 실향민이나 탈북자, 해외 한인들을 통해 일부만이 근근이 전해져 이어지고 있다. 북한식 불고기에 대한 설명, 탈북자의 수기, 북한 내 육류 소비 현황 다만 북한 내에서도 고전적 고기 구이 문화는 여전히 계승되고 있고, 이런 북한식 불고기 문화의 영향을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받았는데, 6.25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남한 지역으로 이주한 실향민들이나 이후 남한으로 귀순한 탈북자 등 남한에 정착한 북한 출신 이주자들에 의해 북방식 고기 구이 문화가 남한으로 전파되어 변형 정착했다. 북한식 냉면이나 만두가 한국 내 고깃집에서 널리 팔리는 게 북한식 고기 구이 문화의 영향이다. 즉,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시작된 고기 구이(불고기) 문화가 한반도 남북부는 물론 일본에까지 계승된 것이다.
다만 이렇게 남북한을 분리하여 전근대 고기구이문화를 북한의 문화로 배타적으로 배정하는 해석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이는 마치 한국의 고기구이문화가 야키니쿠와 마찬가지로 외래문화인듯한 오해를 가능케 하는데, 한국전쟁 이전까지 한국은 하나의 문화권이었을 뿐더러, 전근대 한국의 고기구이문화는 평양지역에만 배타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는 이미 다양한 요리서에 레시피가 정리되던 시기이며, 이런 레시피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유되었고 특히 왕과 다수의 고위층이 거주하는 서울은 당연하게도 다양한 조리법의 종착지였다. 예를 들어 유득공[5]이나 서유구[6]의 기록에는 '전립투'라는 고기구이 음식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전립투'가 바로 상단 민속화에 그려진 음식이다. 유투브 링크 두 인물이 각각 서울와 대구 출신임을 고려하면 고기구이 문화는 이미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외에도 설하멱이나 너비아니 등 훨씬 손이 많이 가는 형태의 고기구이 문화 역시 존재하였고 레시피가 남아있다. 고기구이 문화가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특정한 스타일의 고기구이 문화의 영향을 의미할 뿐이며, 이는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던 고기구이 문화의 한 갈래로 보아야 한다. 일본의 경우 초기에 북한 지역의 문화가 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도 되지만, 한국의 경우 이미 널리 퍼진 고기구이 문화가 지역간 교류로 변화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기술이다. 북한 지역에서 유래한 문화로만 한정하더라도, 국가가 분할된 경우 분할 이전의 문화는 분할 이후 국가들에게 지역과 무관히 공통된 문화적 기원으로 여겨진다. 로마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 더욱이 '''남북한의 경우 두 국가가 한 민족집단임'''을 꾸준히 강조해오고 있다.
가끔씩 "고기를 구워 타래(양념장)에 찍어먹는 방식은 일본에서 등장한 발상"이라는 주장을 볼 수 있다. 남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국에서 고기구이를 찍어 먹는 양념이 참기름과 쌈장으로 크게 제한됐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이 등장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소스를 찍어먹는다는 발상 자체는 현재는 한국이나 일본 양국 모두에서 옛날 방식으로 취급받는 북한식 고기 구이(불고기) 문화, 특히 평양식 불고기 문화에서 등장했기 때문에 완전히 일본에서 등장한 독창적 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고전 평양식 소스를 선호하는 집안에서는 옛 방식으로 소스를 만들어 먹고 있고,# 북한 내에서도 옛 방식을 고수하는 집들은 비슷한 소스들을 내고 있다. 물론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의 타레 소스는 현지화 과정에서 재료와 레시피에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평양식 불고기 양념의 개념이 연장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등장 이후로도 얼마간은 재일 한인 커뮤니티 외부로는 크게 뻗어나가지 못했는데, 환기 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1940~50년대의 사정에 좁은 실내에서 뜨거운 숯불로 고기를 구우면 연기가 나고 옷에 냄새가 배며, 실내가 매우 더워진다는 점이 크게 걸렸고, 또한 대다수의 건축물이 목조 건물이어서 화재의 위험이 컸던 점도 있어 즉석 고기구이 집을 차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 재일 한인들의 이주 역사도 아직 길어봐야 반 세기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어서, 그 동안에 일본 고유의 고기 요리와 접합을 해서 일본인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힘들었다.
더불어 일본에 메이지 유신 이후로 육식 문화가 어느 정도 소개됐지만, 기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이쇼 시기의 짧은 기간 동안을 제외하면 일반인 개개인과 일반 가정의 경제력이 고기 요리를 마음껏 즐길 정도로 뒷받침 된 적이 없었다. 때문에 1960년대 이전 일본인들에게 육식 문화는 매우 낯선 것이었고, 그나마 적은 고기 사용으로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어 일본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육식 문화인 카레나 돈까스, 고로케, 가공육도 1960년대 말~70년대 초 이전의 일본인들에게는 매일 같이 먹거나 하기는 힘든 요리였다. 그래서 이런 육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일본인들에게 더러운 동물로 인식되던 돼지의 생고기를 연기와 열기, 냄새로 가득찬 방에서 즉석에서 잘라 구워먹고, 심지어 그 중에서도 특히 "더러운 것"이나 "쓸모 없는 것" 취급을 받던 막창, , 염통 등의 여러 내장도 먹는 재일 한인들의 요리 문화는 게테모노쿠이[7]라거나 호루몬[8]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실제로 강제로 오사카에 정착하게 된 재일한국인들도 당시 조선시대상 고기를 그리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 부산물인 내장을 깨끗하게 가공하여 먹을 수 있는 방식은 알고 있었으며 이들은 일본 정육점에서 그냥 버리는 것을 공짜로 받아서 먹거나 일부는 이를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기를 구우면 나는 연기 문제를 해결하는 환풍기나, 실내 공기의 열기를 밖으로 빼주어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에어컨 등이 개발되어 일본 곳곳에 보급되었으며, 일본 경제가 급속도로 크게 성장하며 화재에 강한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들이 곳곳에 지어졌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장으로 일반인들과 가계의 소득 증가가 육류 소비의 확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시기 미국, 호주 등에서의 농축산물 수입이 증가하며 미국 등 해외산 소고기의 수입이 시작되자,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소고기를 취급하는 야키니쿠 가게도 속속 등장하였다.[9] 또한 재일 한인 사회의 이주 역사가 길어지며 일본의 요리 문화와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크게 늘어났고, 이로 인해 일본인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게 변형된 요리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즉, 일본 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전후한 시기에 이뤄진 이런 변화들이 재일 한인들이 만들어 파는 고기구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질감이나 기피감을 누그려뜨렸고, 이 시기를 전후해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야키니쿠 가게가 일본 곳곳에 대중화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유인이 되어 소고기와 그 내장으로 만든 야키니쿠 또한 일본인들 사이에 서서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한국 음식이 일본 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1960년대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한일 수교가 이뤄지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도 떠올랐는데, 이 시기를 전후해 조선적/한국 국적 가리지 않고 재일 한인들이 운영하는 야키니쿠 집이 인기를 끌었다.# 1961년 일본 도쿄 긴자, 신바시 등 번화가에서는 이미 몇몇 한국 음식점이 영업하고 있었다.# 1964년 일본의 유명 주부 전문잡지는 한국 요리 특집으로 불고기 등의 여러 요리를 소개했다고 언급이 돼 있는데, 야키니쿠가 당대 일본에 일종의 한식의 대표로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일본 측 자료나 재일 한인들의 증언 등을 미뤄 보면, 야키니쿠가 1960년대부터 일본 사회에 소개되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70~80년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10] 1995년 일본 규동 프랜차이즈 요시노야가 한국에 진출하며 언급한 내용 등을 미뤄봤을 때, 일본인들은 한국을 야키니쿠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기본조약과 88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의 한국붐, 그리고 9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의 한류열풍으로 이어지는 한일 양국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 기간 동안 야키니쿠는 그 뿌리인 한국의 고기 문화와 교류하며 발전의 장을 맞이했다.[11]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시기 있었던 일본 내 한국붐은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을 재고해,[12]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들이나 한국인 왕례가 비교적 잦은 편이었던 후쿠오카 시내 번화가에서 군데 군데 볼 수 있는 수준이었던 야키니쿠를 전국적으로 웬만한 도시에서는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2000년대와 2010년대 한류열풍이 불면서 '정통 한국식'을 표방하는 집이 많아지고, 한국의 상추쌈[13] 등이 일본의 야키니쿠에 영향을 주기도 했으며, 80년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새로운 세대의 재일 한인들을 중심으로 생겨난[14] 정통 한국식을 표방한 집들 또한 이 시기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또한 90년대 후반부터 김대중 정부에 의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면서 일본 요리들이 한국에 소개됐는데, 야키니쿠가 한국으로 소개돼 한국에 야키니쿠 전문점들이 개점하였고, 일본식으로 변형된 소스들이나 일본식 고기구이 섭취법 등이 한국에도 일부 수용됐다.

2.2. 국적 논란


이 요리가 구체적으로 일식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혹은 한식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일각에서 논란이 있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야키니쿠는 한국식 고기 문화와 똑 닮은데다가, 정작 일본에서 야키니쿠 집에 가면 사이드 메뉴로 육회가 나온다거나 김치, 백반, 국밥, 비빔밥, 냉면 등이 팔리는 등 '야키니쿠야(屋)' 에서 한국 요리의 흔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야키니쿠를 먹게 된다면 소스에 사용된 재료나 구체적 조리법, 먹는 방법 등에서 "한국 요리"와는 다른 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NHK에서 제작한 야키니쿠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야키니쿠는 한국 문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패전 후 일본이 낳은 음식 문화이다"라는 코멘트가 등장했다. 즉 기본적으로 일본 내에서의 인식은 이것을 한국에서 기원한 요리라고 보는 것이다. 다만 야키니쿠를 접해본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야키니쿠에서 한국식 고기구이와는 다소간의 차리를 발견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야키니쿠 문제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요리 등의 문화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 그것이 변형되어 퍼지는 것에 대한 반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미국 요리가 된 피자나 스파게티가 미국 요리가 되어 미국 요리로서나 이탈리아 요리로서 미국 전역과 다른 나라에 퍼지는 것에 대한 반감과 같은, 외국에서 변형된 요리들에 대한 반감은 만화 식객이나 여러 여행기 등 1990~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등장한 많은 한국 내 미디어 매체들에서 보인 바가 있다. 즉, 기본적으로 한국 내에서는 요리의 현지화와 변형, 수출을 "오리지널리티" 즉, 원조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15]
기본적으로 한국식으로 변형되지 않은 정통 북한식 고기구이나 일본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야키니쿠에 대해 다소 이질감을 느끼는 편이다. 2010년대 이후 한국 문화의 대외 수출이 크게 늘어나며 "정통 한국식"에 가까운 한식당들이 해외에 제법 생겨나고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국식 고기 요리가 판매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 일각을 중심으로 일본식 고기구이가 된 혹은 일본식 고기구이로 홍보되는 야키니쿠에 대한 경계심과 반감 또한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일본에서 '야키니쿠=한국에서 기원한 요리'라는 인식이 강하며, 한국식 소주나 한국식 반찬을 내놓는 등 한국 요리 음식점을 흉내내는 집들도 흔하게 존재한다.
맛의 달인에서도 한국요리를 다루는 에피소드에서 한국식 갈비구이와 일본식 갈비구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일본에서 흔히 갈비구이로 파는 부위와 달리 한국 전통식으로 뼈에 붙은 갈비살을 길게 펼치는 방식을 소개한다. 지로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한국 요리사와 갈비구이로 대결을 하기로 하는데, 고기를 골라 놓고 자신만만하게 다른 재료를 사러 나온 지로 왈 "어차피 본고장 갈비구이를 이길 수는 없고 시간때우기로 놀러나왔다" 같은 멘트가 등장한친다. 물론 막판엔 깨달음을 얻고 한국식과 다른 일본식으로 고기를 조리 해 스타일의 차이로 무승부를 얻는다.
즉, 야키니쿠는 상당히 한국 내에서 짜장면이나 짬뽕 혹은 탕수육과 같은 한국식 중화 요리가 차지하는 위치와 유사성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그것이 해외로 이주한 이들이 가져온 요리라는 점이나, 그 요리가 세월을 거치면서 상당히 현지화가 진행되어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현지의 요리와 차이점들을 보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요리가 정착하여 발전한 국가에서는 그 요리를 자국 요리가 아니라 해외 요리로 인식한다는 점이 있다.
일본의 유명 야키니쿠 체인점인 조조엔의 창업자 박건식 회장은 재일 동포들의 음식문화이고, 그 뿌리는 한국의 불고기와 공유하지만 한국의 불고기와는 다른 음식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재일 한인들의 입장에서는 야키니쿠는, 기존의 한반도와 일본 열도라는 지리적 구분에 판단의 근거를 둔 한국 요리일본 요리의 틀에서 보는 것이 아닌, 옛 한국 요리에 뿌리를 둔 요리이지만, 현지 한국 요리와 달라진, 일본화된 재일 한국-조선인 요리, 즉 일본식 한인 요리라는 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16]
하지만 이런 재일 한인들의 입장과는 별개로 구체적인 국적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한국에서 짜장면이나 카레라이스 같이 극도로 토착화된 중국 요리나 일본 요리의 경우, 본토 중국 요리나 일본 요리와는 다른 한국식 중화 요리나 한국식 일본 요리라고 언급은 하나, 전통적으로 그것을 한국 요리의 일부라고 여기지 않아왔다. 때문에 짜장면이나 짬뽕을 포함한 상당 수의 한국 내 한국식 중화 요리점의 요리들이나 카레라이스나 가락국수가 상당히 현지화가 이뤄졌으나, 대체로 한국인들은 이들 요리를 한국식 중화 요리나 한국식 일본 요리로 취급을 하지 한국 요리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한국에서 앞서 언급한 짜장면이나 카레라이스를 선뜻 한국 요리라 부르기 어렵듯, 야키니쿠도 일본식 요리로 분류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내에서도 짜장면짬뽕, 탕수육, 카레라이스 등을 한국 요리라고 여기며 그렇게 분류하는 경향도 일부 존재하며 논란이 되고 있고,[17] 일본 내 야키니쿠도 한국의 경향성을 수용하는 에스닉 푸드로서의 경향과 일본인 입맛에 맞춰나가는 현지화의 경향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야키니쿠의 국적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같은 옛날 북한식 고기 요리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남북일 삼국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치며 각기 분화되어 달라진 요리가 현대의 북한식 불고기와 한국식 고기구이 그리고 일본식 야키니쿠이다. 이로 인해 야키니쿠와 한국식 고기 구이 사이에 부분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둘 사이에 단절적 분리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것은 아니다. 야키니쿠 음식점들은 대체로 원류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냉면이나 육개장, 국밥과 같은 한국적 요소들 또한 꾸준히 도입해왔다.
실제 일본에서 야키니쿠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타국에 진출하여 진출국의 입맛에 적응하면서도 모국의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수혈해오는 전형적인 에스닉 푸드의 적응과정을 겪어왔다. 2010년대 들어 한국에 대폭 증가한 베트남 음식점을 보아도 고수를 빼고, 라임을 사용하지 않고, 육수가 옅어지는 등 토착화가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베트남 음식으로 여겨지며 현지식 조리법을 꾸준히 참조하고 있다. 이때 베트남의 를 한국에서 쌀국수라 부른다고 이 둘이 별개의 음식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이탈리아 요리의 적응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까르보나라라고 불리우는 파스타는 미국식 이탈리아요리에 가깝게 시작했을 뿐 아니라, 변화 과정에서 심지어 굴소스를 사용하게 되는 등 레시피가 이탈리아 원형에서 크게 달라졌으나 여전히 이탈리아 요리로 취급되며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판매된다. 심지어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국물 있는 짬뽕 파스타가 판매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파스타 문화는 이탈리아 것으로 여겨지며, 이탈리아 요리사들에게서 지속적으로 파스타 문화를 수혈해오고 있다.[18] 또한 이탈리아인들이나 이탈리아 요리사들도 파스타 문화를 자국의 문화로 여기고 이런저런 훈수를 두며, 한국인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여긴다.[19] 이는 영국에 인도 요리가 정착하는 과정이나 최근 한국에 들어온 마라탕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피자가 있다. 미국식으로 바뀐 피자를 미국 요리라고 인식할 수도 있지만, 그 근원이 이탈리아에 있는 것이 널리 인지 되고 있고, 실제로 이탈리아계 이민자들 후손들이 뉴욕 등지에서 피자 가게를 경영하고 있으며,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20] 지속적 영향이나 새롭게 미국에 들어오는 이탈리아 이민자들과 인터넷 매체 등에 의해 이탈리아 피자가 미국 피자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도 미국 피자를 이탈리아 피자의 후손으로 인식하며, 미국 내에서도 미국 피자를 이탈리아 요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크게 만들고 푸짐하게 토핑과 치즈를 올리며, 베이컨이나 파인애플[21]과 같은 다양한 미국식 재료들을 토핑으로 올리곤 하는 미국식 피자를 이탈리아 요리로 부르는 것에 대해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존재하며, 미국 내에서도 이렇게 바뀐 미국식 피자는 이민자 요리로서 미국 요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때문에 현대에 와서 미국인들이나 이탈리아인들에게 미국식 피자의 국적이 어디인가를 물어본다면 모두가 이탈리아에 기원을 둔 요리임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이탈리아 요리이다.", "미국화된 이탈리아 요리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요리이다.", "미국 요리이다."와 같은 다양한 반응이 튀어나온다.[22]
따라서 한국이나 북한에서 야키니쿠를 자국요리로 여기는 흐름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동시에 야키니쿠가 정착한 일본 내 일각에서 야키니쿠를 해외에 기원을 둔 자국 요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흐름도 생겨날 수 있는 일이다.[23] 그러나 현재 일본의 야키니쿠 문화는 한국의 고기구이 문화에서 다소간 변화가 발생했으나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으며, 지속적으로 한국 측 식문화가 수혈됐다는 점에서 배타적으로 일본요리로 규정하기 어려운 단계에 있다. 특히 한국에서의 고기구이 문화가 가게마다 집집마다 온갖 종류의 고기구이법이나 소스가 가능한 열려있는 요리문화라는 점에서 다소간의 변화에도 원류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점이 작용한다.[24] 그럼에도 일본에서 특유의 고기구이 문화가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므로[25] 엄밀하게 논하자면 트랜스내셔널리즘transnationalism의 관점을 빌어서, 'transnational food'로서 분석하는게 옳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전 시대들에 비해 요리에 대한 국가/민족 개념과 자부심이 강화됐지만, 다른 한 편으로 지역적/세계적 교류 체제가 완성되고 문화권 간 교류가 활발해지며 한 국가/민족의 요리가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가는 현상이 잦아졌는데, 이렇게 넘어간 요리가 세대가 바뀌면서 그것을 전파한 이민자들과 함께 해당 사회에 정착하고 동화하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하고 정보 유통량이 적었던 이전 시대에는 이런식으로 전파되는 요리의 수도 적었고, 많은 경우 그렇게 점차 다른 문화권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거쳐 그 문화권의 요리로 자연스럽게 융화됐다. 하지만 언급한 바 있듯이 지역적/세계적 교류 체제가 완성되고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여 정보 유통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이런 요리의 종류가 기원이 되는 문화권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권과의 교류가 상시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때문에 한 요리에 다양한 문화의 요소들이 섞이게 되었으며, 기원에 대한 인식 또한 지속적으로 환기되며 유지되고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한 문화권의 사회 내부에서도 해당 요리에 대한 다양한 인식이 등장하게 되고, 그 요리의 기원이 되는 문화권 내부에서도 해당 요리에 대해 다양한 인식이 등장하면서 해당 요리의 국적에 대한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즉, 근대 이후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개념이 이전 시대보다 훨씬 강화되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국가 간 문화 교류가 크게 증가하면서 한 국가 혹은 민족에 기원을 둔 요리가 다른 국가 혹은 민족으로 전파되면서 그 정체성이 애매해지는 경향이 세계적 현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야키니쿠 또한 그런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2.3. 번역


옛날 인조이재팬에서는 번역기가 야키니쿠를 불고기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그 떡밥으로 일본인과 한국인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불고기'가 지칭하는 단어가 '국물 있는 간장에 졸인 고기 요리'를 가리키는 것(서울식 불고기)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와서 야키니쿠를 불고기로 번역하면 에러가 생기게 되었다.
본래 불고기는 '불에 구운 고기'라는 의미로 사용되였고 처음 재일 한인들이 일본에서 한국식 고기구이를 전파할 때 불에 구운 고기라는 의미인 불고기라는 명칭을 사용해서 장사하였으나 시대상의 문제로 한국 가게 같다고 손님들이 기피하였기에 이를 번역한 야키니쿠로 장사를 하였다.
반대로 한국에선 불고기 하면 서울식 불고기를 주로 떠올린다. 경상도나 전라도 동부 식의 양념에 재워놨다 굽는 바싹 불고기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기구이에 대해서 불고기라는 단어보다 고기 구이, 연탄구이, 화로구이, 숯불구이 같은 식의 단어를 주로 사용함으로써 명칭의 사용이 조금씩 변화하였다.
이런 상황에 야키니쿠는 북한식(평양식) 고기 구이(불고기)를 재일 한인들이 구운 고기라는 아주 단순한 단어의 조합의 일본어로 말 그대로 접붙여 만들어 놓은 단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로 다시 재번역할 때 혼란스러운 상황이 자주 나온다. 현대 한국어로는 일본어 음차 그대로 야키니쿠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야키니쿠의 기원을 따라 쓰던 대로 불고기로 번역하거나, 혹은 갈비나 갈비구이 정도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최근에는 말 그대로 숯불 그릴에 올려 구워먹는 야키니쿠의 형태적 특징에 착안하여 숯불구이 혹은 숯불고기구이 정도로 번역하고 있다.[26] 영어나 프랑스어 등에선 Yakiniku로 그대로 옮겨 적는 경우가 많으며, 아니면 Korean BBQ나 Korean Japanese BBQ나 Japanese BBQ 등으로 번역하여 쓰고 있다.

2.4. 고깃집과 야키니쿠야


우선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 불고기: 조선 후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해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한국식 고기 요리로, 지방마다 그 제조법과 개념이 다소간 차이가 있었다. 이후 국물 요리의 역사가 깊은 남한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이 들어섰고, 특히 그중에서도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한 수도권과 영남 임해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방이 경제 발전의 핵심이 되면서 현재 한국의 불고기는, 서울-경기도와 경상도 지방에서 먹던 양념에 재워놓은 각기 다른 불고기를 기반으로 하여, 급격한 경제 발전 시기 강남 등 서울 시내에 등장한 중산층들이나 울산, 포항, 부산 지역의 노동자들이 만들어먹던 국물 불고기와 양념 불고기가 주류를 잡았다.
  • 야키니쿠: 옛 불고기의 형태 중 하나였던 북한식 불고기, 특히 그 중에서도 평양 불고기를 기원으로 하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 한인들에 의해 시작된 불판 위에서 고기를 익혀 양념에 찍어 먹는 요리이다.
  • 고깃집: 1970년대 이후 강남 등 서울 시내 번화가 및 중상류층 밀집 지역들을 중심으로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고안된 음식점이자[27], 강원도의 탄광과 영남의 공업단지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에게 고된 하루를 달래는 특식을 제공하기 위해 등장한 음식점으로,[28] 야키니쿠와 같이 불판 위에서 즉석에서 고기를 익히도록 고안된 한국의 음식점.
한국에서 고깃집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돼지고기, 특히 삼겹살, 목살 등을 중심으로) 비교적 싼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중산층들과 도시 노동자, 대학생들의 친구라는 인식이 강하게 존재하고, 다른 일각에서는 (소고기, 특히 갈비, 꽃등심 등을 중심으로) 인건비와 원재료 상승에 따른 물가의 상승 그리고 소득 증가에 따른 식도락의 탐닉으로 고급화의 길을 걸어 고급 요리가 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 야키니쿠야는 (소고기를 중심으로) 비교적 고급 요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도시 노동자들과 중산층, 대학생들이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 일본 요리가 퍼지면서 이 야키니쿠도 일본 요리집을 중심으로 한국에 역수입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한국 대중들이나 일본 요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한국의 불고기와는 좀 다른 일본식 고기구이 정도의 인식이 퍼진 편.
또한 별개로 양념하여 재운 현대 한국식 불고기도 일본으로 수출되어 상당히 인기를 끌어 대중화됐으며, 현대 일본에서 날이 갈수록 인기가 올라가는[29] 고기의 반대급부로 일본인들이 겪는 고민인 고기 요리 종류의 부족을[30] 잘 파고들어 인기몰이 중이다. 이쪽은 야키니쿠가 아니라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살려 'プルコギ(푸루코기)'라고 표기한다. 물론 여전히 야키니쿠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혼용되고 있지만 요즘은 プルコギ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알아듣는다.

3.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야키니쿠


[image]
일본에서 야키니쿠 전문점의 경우 가게 이름이 대부분 ~~원(苑)으로 끝난다. 한국식 정통 야키니쿠를 표방할 수록 그 비율이 높다.
'지화자(チファジャ )'같은 야키니쿠 부페집에서는 금액대 별로 일정시간 동안 가능한 만큼의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고기 외에도 사이드메뉴, 디저트까지 목록에 있다. 준비되어 있는 메뉴를 덜어서 가져가 먹는 한국과 달리 종업원에게 주문하면 가져다 준다.

4. 야키니쿠를 좋아하는 캐릭터


  • 가면라이더 빌드 - 사토 타로[스포일러]
  • 기사룡전대 류소우저 - 아스나[31]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 에비나 나나
  • 길티기어 시리즈 - 신 키스크
  • 드래곤볼 - 손오공, 야지로베
  • 러브 라이브! - 토죠 노조미
  • 백수전대 가오레인저 - 우시고메 소우타로
  •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 - 하기와라 유키호, 후쿠다 노리코
  • 어쨌든 귀여워 - 유자키 츠카사
  • 오소마츠 상 -
  • 용과 같이 시리즈 - 사에지마 타이가
  • 좀비 랜드 사가 - 미즈노 아이[32]
  • 테니스의 왕자 - 오오이시 슈이치로[33]
  • 하이큐!! - 보쿠토 코타로
  • 나루토 - 아키미치 쵸지[34]
  • 전자전대 메가레인저 - 다테 켄타[35], 곰탕
  • 아랑전설 시리즈, KOF 시리즈 - 김갑환[36]
  • KOF 시리즈 - 야가미 이오리[37]

5. 여담


한국 이주민이 많지 않은 외국에서 불고기용 고기를 구할 경우, 정육점에서 야키니쿠 용으로 달라고 하면 정확히 불고기용 고기를 준다.

6. 관련 문서


[1] 저자는 당시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가나가키 로분(仮名垣 魯文)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였던 노자키 분조(野崎 文蔵)이다.[2]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미국식 영어를 기준으로 바비큐는 "숯불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네이버 영어사전 바비큐 즉 양고기 구이도 일종의 바비큐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3] 더불어 해방 후 남한 지역의 육류 문화도 북한 지역에서 이주한 실향민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바가 있다. 기본적으로 쌀농사가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던 한반도 남부 지역과 달리, 북부 지역은 목축이 크게 발달하여 육류 문화가 크게 발달한 바 있기 때문이다.[4] 그 이전에도 재일 한인들의 음식점이 다수 존재했으나, 대부분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이 아니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이었고, 서울식 불고기에서 기원한 양념에 재워놓은 고기를 구워냈다는 것이 특징이다.(#)[5] 경도잡지京都雜志에 기록되어 있다.[6]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정조지鼎俎志에 기록되어 있다.[7] 징그러운 걸 먹는다는 의미.[8] 쓸모 없는 것이라는 의미의 오사카 사투리라고 한다.[9] 규동 체인점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10] 출처 - <야키니쿠 산업>, 세계한민족문화대전, <[문화칼럼] 대중문화 한류의 발판은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이었다?>, 이문원, 자유기업원, 2020.08.18[11] 마찬가지로 이 기간 동안 스시나 소바, 우동 같은 한국 내 일본 요리나, 돈가스나 카레라이스 같이 한국화된 일본 요리들 또한 발전의 장을 맞이했으며, 한일 양국의 요리 또한 상호 교류 속에 영향을 주고 받았다.[12] 일본 만화 맛의 달인에 묘사에 따르면 서점에 한국 요리 책이 그야말로 쏟아지듯 출판되었다고 한다.[13] 참고로 한국에서 쓰던 명칭인 상추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인지 일본어로 상추를 가리키는 말인 치시야를 밀어내고 아예 '상추'라고 정착되었다. 그 외의 명칭으로는 야키니쿠에 쓴다고 해서 야키니쿠 레터스라고 부르기도 한다.[14] 재일 한인 커뮤니티는 크게, 재일 조선인으로도 불리는, 45년 이전에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와, 한일 수교 이후 취업이나 사업, 학업, 정치적 망명 등의 사유로 일본으로 이주한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 한국인 커뮤니티로 나눌 수 있다.[15]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짜장면과 일본의 타코야키가 있다.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자장면을 자국음식이 아닌 한국음식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요리라고 취급하기 보다는 중화식당에서 팔고 모티브가 작장면이니까 중국요리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타코야키의 경우 일부 유튜버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이 타코야키가 샤실 덴마크의 간식 에이블스키버를 따라한 거면서 일본에서 자신들이 원조라고 우긴다는 주장을 하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16] 즉 한일 퓨전 요리[17] 나무위키의 서술도 한국식 중화 요리, 카레라이스, 특히 짜장면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체적으로는 그 기원이 다른 나라 요리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그것이 한국 요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놓고는 애매하게 서술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탕수육이나 카레의 경우 해외음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며, 한국식이란 인식이 강해진 짜장면의 경우도 2010년대까지는 한국 내에서 명백한 중국요리로 여겨져왔다. 짜장면의 경우 한중교류 증가로 중국 본토인들이 짜장면이 정작 중국 본토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증언이 누적되며 인식의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한중간 이념차이로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짜장면이 급진적으로 변화해온데 기인한다. 그마저도 여전히 전형적인 한국요리가 아니라 한국화된 중국요리로 취급된다.[18] 파브리 같은 인물의 유명세가 그 예.[19]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20] 이탈리아계가 대체적으로 대가족이 중심이 되는 끈끈한 혈연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계 이민 2~3세대 중에서도 본토 이탈리아에 친밀한 친척들이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들이 친척들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에 여행/유학하며 이탈리아 피자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21] 파인애플을 올린 피자는 하와이안 피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처음 등장한 요리이다.[22] 반면 파스타 문화의 경우 미국요리로 여기는 경향이 약하다. 이는 파스타 문화가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에스닉 푸드의 전파과정에서 요리의 국적을 따질 때 원형이 얼마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는지, 원형에서 달라진 정도가 얼마나 급진적인지 등이 고려된다.[23] 에스닉 푸드 음식점들과 그 음식점들을 경영하는 이민자들의 세대 교체가 누적되면 이런 일이 쉬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해당 음식이 대중적 인기를 끌수록 이러한 경향이 심화된다. 음식을 만든 주체가 꼭 이민자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에서의 '반미'나 한국에서의 '치킨'을 그 예로 들어볼 수 있다. 베트남 반미는 프랑스에서도 반미bahn mi라는 이름으로 팔며, 한국 치킨은 Korean Fried Chicken 이란 이름으로 본토인 미국에 진출도 했다.[24] 이런 점을 포함하여 한국 고기구이와 야키니쿠의 관계는 에스닉 푸드의 전파사례 중 인도의 커리 문화와 영국의 커리 문화와의 관계와 많이 유사하다.[25] 우설같은 경우 한국보다는 일본 야키니쿠 점의 시그니처 메뉴다. 한국에선 온갖 부속고기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26] 도라마코리아가 숯불구이/숯불고기구이 번역을 따르고 있다.[27] 그 이전에도 현재와 같은 고기구이 집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적어도 본격적으로 즉석 양념갈비집 등이 등장한 것은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을 시작한 1970년대 무렵으로 추정된다.[28]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백반, 삼겹살구이, 목살구이 등이 도시 및 탄광 노동자들을 위해 등장해 보급된 특식이었다.[29] 통계적으로 봤을 때 일본의 육류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전후한 경제 위기 시기에도 육류 소비량은 증가 추세를 보였고, 황금기인 버블경제 시대보다 지금의 일본인들이 더 많은 고기를 먹고 있다. 즉, 육식 자체에 대한 인기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30] 기본적으로 일본의 육류문화의 역사가 짧아 고기 요리의 종류가 적기 때문이다. 때문에 도쿄와 오사카 등 일본의 대도시들에서는 한국,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 베트남, 대만, 멕시코, 중국 등 세계 각국의 고기 요리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스포일러] "오늘 저녁은 야키니쿠다~!"란 네타 대사를 외쳤다. 본편에선 저 대사 외치고 얼마 안가서 에볼토에게 살해당했지만 최종화의 신세계에선 야키니쿠 드립이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으로 보인다.[31] 눈앞에 갑자기 야키니쿠가 나타났음에도 함정인지 의심하기보다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32] 아직까지 작중에서 안 나왔지만, 프로필에는 좋아하는 음식으로 나온다.[33] 공식 프로필에서 좋아하는 음식으로 나와있으며 작중에서도 OVA 3기 00화인 불고기의 왕자님 편에서 불고기 도사라고 불릴 정도이다.[34] 캐릭터 특성 상 먹보 캐릭터로 부각되어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등장할 때 항상 먹고 있는 게 포테이토칩, 야키니쿠, 라멘 정도다.[35] 한국식 불고기나 갈비도 좋아한다. 메가레인저에서 스카웃 조건으로 고기를 잔뜩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연기한 배우 본인도 은퇴 후 불고기 전문점을 열었다.[36] 불고기만 아니라 김치와 오징어회도 좋아한다.[37] 정확하게는 고기 요리 전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