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사대주의
言語事大主義
1. 개요
'''언어 사대주의'''는 자국의 언어에 대하는 열등 의식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다른 어느 언어에 대하는 우월 의식을 지녀, 자국의 언어를 폄하하고 질이 낮은 언어로 생각하며, 타국의 언어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관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해당 국가의 사상과 문물, 학술을 받아들였을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2. 영어로는?
'''영어로는 '사대주의' 개념을 명확히 표현할 수 없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사대주의를 'flunkeyism' 또는 'toadyism'이라고 해 놓았는데, 엄밀히는 아니다. 저 두 표현들은 '아부, 아첨'에 포커스가 있지, 우리식 사대주의처럼 다른 것을 높이고 자기네 것을 깎아내리는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 그 때문에 아예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사대주의를 \''''sadaejuui'''' 또는 \''''serving-the-great-ism''''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뿐더러 구글링을 해 보면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자문화 중심주의와 문화 상대주의는 각각 \''''ethnocentrism'''', \''''cultural relativism''''으로 표현하지만 타문화 중심주의에는 대해서 검색 결과 자체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언어 사대주의 또한 \''''language flunkeyism''''이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고, 아예 영어로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렵다. 굳이 옮기면 위키피디아식 표현을 이용해서 \''''language sadaejuui'''' 정도로 옮기는 편이 낫다.
3. 언어 사대주의 예
'''1.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간판.'''
거리를 보면 굳이 영어권 국가도 아닌데 오로지 영어로만 된 간판을 쓴 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론 해외 기업의 간판이면 그럴 수 있지만,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나온 업체의 이름조차 그럴 때가 종종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배려하기 위하는 차원으로 볼 수도 있으나, 엄연히 그 간판이 걸린 곳은 한국이고, 가장 많은 이용자는 한국인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병행해서 표기하면 또 모를까, 일방적으로 영어로만 표기해 놓는 것은 그저 '''시각적인 효과("멋져 보이잖아!")'''나 '''심리적 효과("뭔가 믿을 만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여!")'''를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2. 서브컬처에서 사용되는 기술 이름.'''
진화하거나 강해지면 외래어 및 외국어로 바뀌는 성향이 있다. 대개 현대 마법물이거나 영어로 된 기술을 고급 기술의 명칭으로 사용한다. 마법물보다는 무술풍 계열이면 한자어가 쓰이곤 한다. 이때 고유어이거나 한자어여도 한국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명칭은 하급 기술이 된다. 영어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관의 한 가지 예로 볼 수도 있다.
'''3. 색안경을 낀 언어관.'''
객관적으로 놓고 볼 때에는 분명히 각자 특성이 있는 법인데 어느 한 쪽은 열등하다고 보고 다른 한쪽은 우월하다고 보는 언어관이다. 대표적 예로 한국어와 영어에 대하는 관점의 차이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밥'이라는 다의어를 제시했다고 하자. 한국어에서 이 단어는 '밥벌이'에서 보듯 돈을 의미할 수도 있고, 굳이 쌀로 지은 게 아니어도 '식사'의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심지어 '톱밥' 등의 용례까지 더하면 그 뜻은 훨씬 넓어진다. 그런데 이에는 대해서 뜻도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언어라는 관점을 갖는다. 그러는가 하면 영어에서 그와 같은 다의어를 제시했다고 하자. 이에는 대해서 정반대로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는 유연하고 풍부한 언어라는 관점을 갖는다. 이게 문법관을 만나면 더욱 심각한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데, 어느 의미를 한국어로 간결하게 전달하면 구조도 단순하고 그런 만큼 뜻이 불분명해지는 언어라는 관점을 갖으면서 동시에 영어로는 그렇게 전달하면 간단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경제적 언어라는 관점을 갖는다. 게다가 이게 국가 우월의식과 결합하면 그야말로 노답 그 자체가 된다.
'''4. 각종 가요의 영어 가사.'''
노래의 성격상은 굳이 영어로 된 가사를 쓸 필요가 없음에도 영어 가사를 썼으면 무작정 영어 가사를 불필요하게 썼다고 까내리지는 말고, 영어 사대주의 사고관에서 쓴 것인지 아닌지를 검토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할 필요가 있다. 노래는 서정문학으로 분류되어 있고, 오늘날 시와 같은 서정문학이 태초에는 제정일치 사회에서의 집단 제의식에서 쓰인 노래에서 출발했음을 생각해 보면 노랫말의 영어 표현을 무작정 까는 것은 옳지 않다. 낯설게 하기와 같은 표현법의 일환으로 쓴 것이며 적절하면 신선함을 부여해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낳기도 하니 사대주의로 낙인을 찍는 것은 피하자. 정말로 언어 사대주의에 입각한 영어 가사의 쓰임인지를 검토하여 비판하는 것이 옳고, 그런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
'''5. 각종 번역체 문장.'''
한국어 등 타국 언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은 의역을 동원해서라도 자연스럽게 하는 반면에[1] 영어,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에서 티가 나는 것이 잦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설령 영어권 사람이나 일본어를 낮은 민족으로 여기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감히 높으신 영어/일본어를 문법 그대로 안 해석하고 낮은 우리 한국어 문법대로 의역하다니!' 하는 거부감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알고 일부러 쓰는 사람도 있지만, 이 때문에 인식상은 낮은 계급의 언어를 높은 계급의 언어로 번역할 때에는 부자연스러운 어법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데 반해서 높은 계급의 언어를 낮은 계급의 언어로 번역할 때에는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 언어를 번역하는 아마추어 번역가들에게서 번역투가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그런 번역체 사이에는 불완전 동사가 많다.
'''6. 영어 강의'''
고유어는 외래어보다 빨리 변화하고 외래어는 모국어보다 느리게 변화하는 것도 비슷한 예로 볼 수 있다('가짜동족어', '동원어'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대한민국은 군사독재 때 법적 제재도 심하여 간판과 TV 프로그램 제목 등을 한글과 한자만 쓰게 한 규제가 있었으나(예: 뉴스데스크→뉴스의 現場) 사실상은 실패했고, 현대 대한민국에서 언어 사대주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이랑 더불어 서양권에 대한 언어 사대주의가 심한 나라로는 일본을 꼽을 수 있다.[2]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화하고 경제발전을 시작한 나라답게 언어 사대주의적 행태 역시 한국보다 2~30년 먼저 일어났는데, 1980년대 이전부터 영어 가사를 방송에서 남발한 건 기본이었고, 거품경제 시절 광고들 중 "I feel Coke"(...) 같은 사례는 꽤 유명하며, 심지어 공영방송인 NHK의 심야뉴스 프로그램조차 제목을 외국인 목소리까지 곁들여가며 'Midnight Journal'로 쓰던 역사까지 있다.
4. 원인
언어 사대주의의 원인은 국가에 대한 사대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대국의 문물이 선진 문물이라는 생각에 그 나라에서 쓰는 언어마저 선진 언어이고 우수한 언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색안경을 끼고 언어를 바라보고 자국어를 폄하하며, 자국어는 불분명하고 비논리적이지만, 외국어(특히 한국인에게는 영어)는 분명하고 명확하며, 논리적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이미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 후 일본의 빠른 광복으로 인해 자주적 독립에 실패했고,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과거 청산 없는 민주주의국가 건설로 인해, 거대한 미국의 군사력을 등에 업은 친미로 갈아탄 친일파들이 득세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건국서부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언어 컴플렉스'''를 들 수 있다. 이는 최근 20대의 미국이나 호주 등의 영어권 국가에 대한 갈망과 맞물리는데, 영어 공부의 부담감으로 발생한다. '''한국어와 영어는 언어 유형과 어족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가 극과 극으로 어렵다.'''[3] 그런데 세계적으로 미국이 강대국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국인 입장에서는 배우기가 매우 어려운 영어를 그들이 쓰니 영어는 한국어와 달리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라는 사고가 싹트게 되고, 이게 곧 영어에 대하는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영어를 쓰는 사람이면 굳이 영어 학습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영어에 대하는 부러움을 갖게 되고, 이게 곧 언어 사대주의로 이어진다.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일단은 능력자이자 부러움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질투와 시기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영어를 잘하는 것을 두고 그러는 건 아니고 '''영어권에서 태어나 자라서 영어를 하는 게 익숙한 청소년기에 주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무엇이 다르고 우월하고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편견 + 미국 국적이 있으면 그 이득까지 가질 수 있어서 멸시의 대상이''' 되는 해외 귀국 자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괜히 있어 보이려는 사람들이 영어를 섞어 쓰는 일도 잦다. 이와 같은 오해를 하는 이들에게는 영어는 곧 지식의 수준을 가늠하고 사람의 품격을 가르는 기준이다. 조선시대 한자와 똑같은 대우.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미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은 그 옛날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고풍스럽게 생각한 까닭에 자기들끼리는 프랑스어 위주의 생활을 한 적이 있고, 이는 오늘날 영어 어휘의 상당수가 중세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 원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급 어휘의 어원이 대부분 자국어로 이뤄진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 다르게 영어의 고급 어휘는 프랑스어 + 그리스어가 추가로 끼얹어져 있다.
그리고 모국어의 문법은 굳이 세밀하게 배우지 않지만, 외국어의 문법은 세밀하게 배우는 점도 원인일 수 있다. 한국인은 한국어의 문법은 지엽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배워 봐야 비교적은 굵직한 영역과 일부 어문 규범 정도만 배울 뿐이다(자주 틀리는 한국어의 원인이기도 하다). 영어를 배울 때와 같이 세세한 문장 구조나 각종 예외적 구문, 단어의 어감적 차이(뉘앙스) 등은 학습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는 영어와는 달리 복잡한 문법도 없고 간단한 언어라는 편견을 지니게 되고, 영어는 그와 반대로 문법도 복잡하다는 편견이 생겨 그만큼 접근하기 어렵고 높은 위치에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언어 사대주의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언어 사대주의, 특히 한국에서는 영어 사대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회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동사의 활용등과 관련해 겪는 어려움을 접할 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그제서야 '아, 우리도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를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적지 않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에서'와 '에#s-3', '(으)로'의 차이가 뭐예요?"'''라고 여러분에게 질문했다고 생각해 보라. 언어 사대주의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기회를 통해 자신이 그 동안에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는 '비효율의 숙달화'와 비슷하기도 하다. '경로의존성' 문서 참고.
그런데 한편으로 외국어는 자국어보다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당연하다. 당장에 우리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한국의 전통 문화나 물품이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신비롭고 색다르다고 느끼는 각종 서브컬처의 외국어로 도배된 명칭들도 정작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촌스럽고 별 것도 아니거나,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코카콜라에서 한글 패턴이 들어간 티셔츠를 출시했지만 외국인들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했고, 서구권에서는 비록 그 의미는 모르지만 한자가 새겨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복고와 세대 차와 비슷한 일이다. 위의 "4. 각종 가요의 영어 가사." 내용처럼 낮설게 하기 같은 일도 있다.
5. 언어 사대주의를 가진 인물 및 단체
6. 같이 보기
[1] 단, 이마저도 일부 와패니즈들이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있다.[2] 다만 20세기 초까지는 중국 고전 등을 참고해서 외국어를 한자어로 대부분 번역해서 사용하는 등으로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3] 그래서 영미권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매우 배우기 어려운 언어의 범주인 카테고리 5에 들어간다. 그 난이도의 대부분을 한국어의 문법이 차지한다. 심지어 "단위 앞의 숫자를 한국식으로 읽는가 한자식으로 읽는가"에 대한 내용 하나가 한국어 교재의 한 장을 통째로 차지한다(1~10까지는 대체로 한국식 고유 독법으로 수를 읽으나, 11부터는 한자어이며, '리터'나 '미터' 같은 외래어 단위 앞에서는 무조건 한자어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