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러시아어
1. 개요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외래어 표기법 중 러시아어를 표기하는 방법으로, 외래어 표기법/포르투갈어, 외래어 표기법/네덜란드어와 함께 2005년 12월 28일 문화관광부 고시 제2005-32호로 공표되었다.
러시아어가 UN 공용어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중요한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늦게서야 표준 표기법이 공표되었다. 러시아어보다 국제적인 위상이 훨씬 낮은 폴란드어,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등 동유럽, 남유럽 지역 언어들의 표준 표기법이 1992년에 나온 것과 비교해 볼 때 굉장히 늦게서야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이전에는 1980년대 후반 제정된 표기 용례만이 있었을 뿐, 표기법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늦게서야 표기법이 제정된 데다가 기존의 용례와 달라진 점이 많다 보니 러시아어 표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연음의 존재, 자음 연쇄 등이 많은 관계로 세칙이 조금 긴 편이다.[2]
러시아어/발음 문서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다.
2. 규정
2.1. 러시아어의 키릴 문자와 한글 대조표
※ sh(ш), shch(щ)의 ‘시'가 뒤따르는 모음과 결합할 때에는 합쳐서 한 음절로 적는다.
2.2. 표기 세칙
- 제1항 p(п), t(т), k(к), b(б), d(д), g(г), f(ф), v(в)
- 제2항 z(з), zh(ж)
- 제3항
- 제4항
- 제5항
- 제6항
- 제7항
- 제8항
- 제9항
- 제10항
3. 기존 표기 방식과 비교
3.1. 상세
보면 알겠지만 기존의 표기 방식이 얼마나 중구난방이었는지 그리고 현재의 표기법이 얼마나 정돈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크게 변화한 점들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3.1.1. 잘못된 표기의 수정
원어인 чернозём에서 ё의 점 두 개를 자주 생략하는 러시아어의 특성을 너무 반영한 나머지 기존의 표기에서는 이를 '체르노젬'이라고 표기하는 오류를 범했다.[6] 그러나 새로운 표기법에서는 이를 바로잡아 '체르노좀'으로 고쳤다. '체르노죰'이 될 수 없는 이유는 ㅈ, ㅉ, ㅊ 다음의 이중 모음 문서 참고. кампания도 я를 '아'로 표기했던 오류를 '야'로 바로잡았다. 이는 -ия로 끝나는 단어들이 대부분이었다.
3.1.2. 무성 자음 앞의 파열음(p, t, k/b, d, g)과 마찰음(f, v) 표기 방식의 변화
'''새로운 표기법에서 제일 두드러지는 변화'''로, 무성 자음 앞에서는 앞 음절의 받침으로 적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기존의 '무소르그스키', '차이코프스키', '카프카스', '뱌트카' 따위로 쓰던 것을 앞 음절의 받침으로 적어서 '무소륵스키', '차이콥스키', '캅카스', '뱟카' 등의 표기가 표준 표기로 자리잡았다.
다만 러시아의 대표적인 술인 보드카는 관용적 표기로 인정받아 '봇카'로 바뀌지는 않았다.
3.1.3. ш(sh)/ж(zh)와 щ(shch)의 표기 변경
기존의 '푸슈킨', '아슈케나지'와 같이 어중의 ш를 '슈'로 적던 것에서 '푸시킨', '아시케나지'와 같이 '시'로 적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ш의 발음이 영어의 sh와 같은 /ʃ/와는 다른 /ʂ/이기 때문에 이를 '시'로 변경한 것이다.
ш와 유/무성음 대립 관계인 ж(/ʐ/) 역시 기존에 '주'로 적어오던 방식에서 '즈'로 표기 방식을 변경하였다. 그래서 '브레주네프', '나데주다'가 '브레즈네프', '나데즈다'로 표기 방식이 변경되었다.
또한 щ의 경우 실제 발음은 한국어의 '시'와 비슷한 /ɕ/ 발음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는 '시ㅊ'로 적어왔다. 이는 로마자 전사 방식인 shch의 표기에 이끌린 방식으로 실제 발음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리하여 ш와 똑같이 щ도 '시'로 적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따라서 '흐루시초프', '라디시체프' 따위로 적어오던 것을 '흐루쇼프', '라디셰프'로 변경하였다.
3.1.4. ь 표기 변경
ь 표기가 바뀌었다. 예를 들어 인명 Игорь의 경우, 기존 표기법은 '이고르'였으나 현행 표기법에 따르면 '이고리'가 맞다.
다만 l', m', n'(ль, мь, нь)이 자음 앞이나 어말에 오는 경우에는 적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작가 고골(Го́голь) 및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Раскóльников). 옛날 서적을 보면 고골'''리''',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표기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 문제점
이렇게 러시아어 표기법이 비교적 규칙성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남았다. 심지어는 문제가 더 생기기도 한 측면이 있다.
4.1. 무성 자음 앞의 마찰음 표기 문제
기존의 표기 방식에서는 없던 문제였으나 새로운 표기법 제정 이후 생겨난 문제다. 더욱이 러시아어에서 자주 나타나는 부분이다 보니 혼란이 크다. 'Чайковский 차이콥스키, Хабаровск 하바롭스크'처럼 무성 자음 앞의 마찰음을 -ㅂ처럼 앞 글자의 받침으로 적는 것으로 변경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외국어 표기법에서는 드물고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외래어 표기법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영어 등 다른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마찰음 /f/, /v/는 무성 자음이나 유성 자음을 구분하지 않고 언제나 '프', '브'와 같이 적으며 절대로 ㅂ 받침으로는 적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2005년 러시아어 표기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вск, -вский를 '-프스크', '-프스키'로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표기법이 만들어지면서 죄다 '-ㅂ스크', '-ㅂ스키'로 바뀌게 되면서 큰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같은 슬라브어파 언어이자 음운도 비슷한 폴란드어 표기법에서는 같은 발음인 w를 무성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프'라고 적게 되어 있다. (예: zabawka 자바프카) 때문에 러시아인 성씨 Левандовский와 폴란드인 성씨 Lewandowski는 발음도 거의 유사한 같은 성씨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은 '레반돕스키', 폴란드인은 '레반도프스키'가 맞는 표기가 되어 버리는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기존 러시아어 학계에서 -ㅂ 받침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에서 '하바롭스크', '챠이꼽스끼'처럼 무성 자음 앞의 마찰음을 -ㅂ 받침으로 적는다는 점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러시아어 학계는 전통적으로 일본이나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말까지 연구 대상이 적성국이라는 커다란 한계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를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나마 한국과 그나마 거리가 가깝고 언어도 비슷하며, 러시아 관련 연구도 비교적 잘 진행되어 온 일본, 혹은 아예 같은 언어를 쓰고, 공산권 국가이기 때문에 한때 제1외국어가 러시아어였을 정도로 러시아어 교육이 발달한 북한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87년에서야 고려대학교에서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러한사전이 발간되었지만, 이 역시 일본의 야스기 러일사전을 편집·보완한 것에 불과했다.[7] 때문에 2010년대 현재도 러시아어 학계의 주류 세대인 50대 이상 교수들은 일본 사전이나 북한 사전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북한의 러시아어 표기법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학계에서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일반적인 규칙을 깨어가면서까지 이를 바꿨어야 하는 비판이 존재한다. 더구나 러시아어 학계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된소리(예: 뚜르게네프), 구개음화(예: 블라지미르)까지 사용해왔는데 왜 이것들은 반영이 안 되고 마찰음의 받침 사용만은 인정되었냐는 문제가 있다. 물론 전자의 경우 된소리 사용을 최소화한다는 외래어 표기법의 대원칙에 의해 배제되었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만 후자는 이미 다른 언어들에도 적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원칙이다. 따라서 다른 언어와의 비교에 따른 외부적 일관성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학계 내부적인 일관성도 떨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군다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나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경우 오히려 '도스또예프스끼'나 '도스토예프스키'/'차이코프스키'처럼 -ㅂ 받침이 아닌 '프'로 적는 논문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 관련 학계에서도 무성 자음 앞의 마찰음 표기는 완전히 통일이 된 것도 아니었다.
사실 무성 순치 '''마찰음''' [f]를 무성 자음 앞에서 (무성 양순 '''불파음''') 'ㅂ' 받침으로 쓰려면 무성 연구개 '''마찰음''' [x] 역시 무성 자음 앞에서는 (무성 연구개 '''불파음''') 'ㄱ' 받침으로 써야 할 텐데 또 그렇지는 않다.[8] 현행 개정 러시아어 표기법에서도 [x]는 무성 자음 앞에서든 유성 자음 앞에서든 그냥 '흐'로 쓸 뿐이다.[9] 이런 것을 보면 해당 규정은 여타 언어 표기법과 맞지 않음은 물론 표기법 자체의 내적 정합성까지도 다소 떨어뜨리고 있는 듯.
4.2. 지명의 -град, -город 표기 문제
파열음인 д(d)가 어말에 오면 '트'로 적는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도시를 뜻하는 지명의 -град(grad), -город(gorod)는 따로 항목까지 만들어 관용을 살려 '-그라드', '-고로드'라 표기하라고 규정한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이들을 '-그라드, -고로드'로 적는 관용이 퍼져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그라트, -고로트'처럼 원칙을 따르게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4.3. 불규칙 발음에 대한 규정의 부재
что, -ого, лёгкий 등과 같이 불규칙한 발음이 나는 글자에 대한 규정이 없다. 현재의 표기법으로는 '치토', '-오고', '룍키'가 맞는 표기이나, 실제로는 (최대한 현행 표기법을 존중한다 해도) '시토', '-오보', '료흐키'가 더 정확한 표기다. 다만 что의 경우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에서는 고연령층의 한정하여 '치토'라고 읽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외래어 표기법/일본어에도 있는데, 조사로 쓰일 때 발음이 변하는 は(ha→wa)나 へ(he→e)에 대한 규정이 없다.
4.4. и-и·й와 ы-й의 표기 문제
и에 и·й가 뒤따르거나 ы에 й가 뒤따르는 경우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Будённый [bʊˈdʲɵnɨɪ̯], Даниил [dənʲɪˈiɫ], Юрий [ˈjʉrʲɪɪ̯]와 같은 인명들이 그 예이다. 이 경우 조음되는 모음이 분명히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장모음과 같이 취급해 '부됸니', '다닐', '유리'로 표기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굳어져 있을 뿐 명문화된 표기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장모음은 별도로 겹쳐 표기하지 않고 단모음과 같이 취급해 표기하는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어 상에서는 장모음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й는 통상적으로 자음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러한 표기 방식은 기존 러시아어 표기 관용을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에서도 동일하게 단모음으로 간주한 표기 방식이 쓰이고 있지만 ы-й에 한해서는 '으이' 또는 선행 자음에 따라 'ㅡ이'와 같이 구분해 적는다.
이러한 표기 방식은 аа와 같은 타 모음에도 유사하게 적용되는데 Исаак [ɪsɐˈak], Чаадаев [t͡ɕɪɐˈda(ɪ̯)ɪf]의 경우는 러시아어 상에서는 И·са-а́к, Ча·а-да́-ев와 같이 별도의 음절로 аа를 구분하지만 국립국어원의 규정 용례에 따르면 '이사크', '차다예프'이다. 반면 북한에서는 Аараханский에 대해서 '아아라한스끼'로 표기한 사례가 있다.
4.5. е와 э의 표기 문제
서로 다른 두 모음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중대한 오류를 저질렀다. 특히나 이것이 2005년 표기법 제정 때 생겨난 문제라는 것이 문제다.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항공사인 Аэрофлот와 러시아 연방 내의 공화국인 Марий-Эл의 표기가 '아에로플로트', '마리엘'에서 '아예로플로트', '마리옐'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모음 э는 е와는 분명히 다른 '''단모음'''이다. 그런데 이것을 е와 묶어 이중모음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는 로마자 전사법에 의해서도 분명히 Aeroflot, Mari El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е를 'ㅖ'와 'ㅔ' 두 가지로 표기한다는 비판이 있다. 예를 들면 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а)에서 첫 음절의 е는 'ㅖ'로 표기하나 '테'의 е는 'ㅔ'로 표기하면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러시아어에서는 외래어가 아닌 이상 ㅔ와 ㅖ는 엄연히 э와 е로 구분되고, 실제로 앞의 э는 단모음인 반면 뒤의 е는 /j/ 발음을 포함하는 이중모음이라 아무리 э가 자주 쓰이는 문자는 아니라 해도 명확한 구분을 위해서는 두 문자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실제 로마자 전사법 역시 Екатерина에서 어두의 е는 ye로, 이외의 е는 e로 전사하여 Yekaterina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예'와 '에' 둘로 나누었다고는 볼 수 있다. 그리고 /ʃ/음이나 그와 비슷한 자음을 제외한 자음+/je/ 발음의 경우 대부분의 유럽 언어 표기법에서 단순히 'ㅔ'로만 적게 되어 있다.[10]
하지만 한국어로 엄연히 분별 가능한 발음을 굳이 로마자의 표기에 이끌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드는 것이 중국어 표기법의 ian 발음으로, 대표적인 예시로 톈진이 있다. 특히 연모음은 구개음화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е를 반드시 ㅖ로만 적는다면 산크트폐톄르부르크와 같은 낯선 표기가 된다. 물론 원음은 이쪽에 더 가깝다. 하지만 사실상 한국어에서도 '계', '몌', '폐', '혜'를 [게], [메], [페], [헤]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 초성을 앞에 둔 ㅖ 모음이 발음하기 힘든 모음이기 때문에 е를 어떤 경우든 ㅖ로 쓰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다.[11]
4.6. 강세에 따른 모음 변화와 구개음화 표기 무시
Потёмкин은 현행 표기법에 따르면 '포툠킨'이 된다. 그러나 Потёмкин은 강세가 두번째 음절(тём)에 있고, 구개음화가 적용되어 실제 발음은 '파촘킨'에 더 가깝다. 따라서 영어나 프랑스어의 -tion을 '-션', '-시옹' 따위로 변이된 음 그대로 적으면서 러시아어의 ди, дя, дю, де, дё/ти, тя, тю, те, тё를 구개음화를 반영하지 않고 '디, 댜, 듀, 테, 됴/티, 탸, 튜, 테, 툐'로 적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원음을 상당히 중시하는데[12] , 러시아어 표기법은 여기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강세 변화와 구개음화까지 다 반영하여 외래어표기법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혼란을 주게 된다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영어에서 일어나는 모음약화 현상이나 구개음화 현상은 인정하면서 러시아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영어 외래어 표기법은 본래부터 국제음성기호(발음기호)를 기준으로 표기하게 되어 있고, 심지어 영어 사전에도 국제음성기호가 병기되어 있으나, 러시아어는 사전에도 그런 것이 없으며, 러시아어 외래어 표기법 역시 발음기호가 아닌, 철자를 기준으로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의 경우 심각하게 꼬인 철자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제음성기호를 사용하는 반면 러시아어는 일부 예외 사항을 제외하고는 대단히 규칙적인 철자법을 가진 언어이기 때문에 사전에 음성기호가 필요가 없어서 사용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는 반박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전에 국제음성기호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것이 사전에 없다고 국제음성기호를 바탕으로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또한 러시아어 사전에서는 우다레니예라는 일종의 강세 표시로 모음 발음에 대한 정보는 준다. 문자와 실제 발음이 심각하게 꼬인 영어는 된소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제 음운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데 반해 러시아어는 전혀 그렇지 않아 비판거리가 된다. 그리고 구개음화는 규칙적으로 나타나므로 굳이 국제음성기호나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표기가 가능하다. 가령 북한에서 쓰는 표기법에서는 모음 약화는 인정하지 않지만 구개음화만은 인정하여 '블라디보스토크'를 '울라지보스또크'라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싼크뜨-뻬쩨르부르그'[13] 라고 쓴다.
4.7. 연음부호 ь의 표기 문제
유성자음-ь 꼴의 단어의 경우 무성음화가 되는데 새 표기법에서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opʲ]로 조음되는 Обь의 경우는 '오피'가 아닌 '오비'가 규정 용례이다.
또한 Ильич, Ильин과 같이 동일하게 '이'로 표기하는 연음부호 ь-и의 조합의 경우에는 '이'를 겹쳐 적지 않는다는 점이 언급돼 있지 않다. Ильич, Ильин의 경우에는 현행 러시아어 표기법으로는 '일리치', '일린'인데 북한에서는 이 경우에 '이'를 겹쳐 적게끔 했기 때문에 '일리이츠', '일리인'이다.
4.8. 경음부호 ъ의 표기 문제
경음부호 ъ는 현대 러시아어에서 자체 음가를 지닌 문자가 아니며 사용되는 비중도 매우 적기 때문에 한글 대조표와 표기 세칙 상에서 관련 표기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인접한 우크라이나어에서는 ', 벨라루스어에서는 ’로 치환해서 비중 높게 사용한다. 우크라이나어의 Юр'ївка와 같은 지명이나 벨라루스어의 Соф’я와 같은 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인접 언어권에서는 경음부호가 러시아어에 비해 더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편이며 이들 언어를 표기할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러시아어 표기법을 참고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경음부호의 표기에 대해 국립국어원에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가 없다. 이 때문에 선행자음 + 경음부호 ъ + 후행 반모음이 오는 경우에 연음화되지 않은 반모음 [j]를 앞의 자음과 합치고 뒤의 모음과 갈라적을지, 앞의 자음과는 가르고 뒤의 모음과 합쳐 적을지, 앞의 자음과도 합치고 뒤의 모음과도 합쳐 적을지 임의대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가령 러시아어 Объект [ɐˈbjekt]는 [j]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서 오비엑트, 오브옉트, 오비옉트와 같이 표기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
비공인 표기방식 중에서는 우크라이나어의 경음부호 '를 연음부호 ь와 같이 '이'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이는 앞의 자음과도 합치고 뒤의 모음과도 합쳐 적기를 택한 것인데 Кам'янське와 Слов'янськ과 같은 지명의 경우 이에 근거해서 '카미얀스케'와 '슬로비얀스크'라는 표기가 정착돼 있다. 원칙적으로 ськ의 경우에도 현행 러시아어 표기법을 따르면 '시크'로 표기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어 지명인 Дзержинськ와 인명인 Зеленський에 대해 각각 '제르진스크'와 '젤렌스키'의 규정 용례가 있기 때문에 이를 준용하는 경우도 많다.
4.9. ш/ж 표기 문제
무성음/유성음 대립 관계인 두 글자를 '시', '즈'로 표기하게 되면서 표기하는 모음이 달라지는 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스', '즈'[14] 나 '시', '지' 둘 중 하나로 통일하였다면 이러한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부분은 ш를 '스'로 표기하면 а, у 등의 모음이 올 때 '샤', '슈'가 아니라 '사', '수'로 표기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며, ж를 '지'로 쓰면 ㅈ, ㅉ, ㅊ 다음의 이중 모음 불가 규칙에 걸려 жа를 '쟈'로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지' 대신 '즈'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쟈, 졔, 죠, 쥬' 등은 '자, 제, 조, 주' 등으로 표기한다는 세칙만 더하면 그뿐이긴 하지만...[15] 아니면 자음 앞에서는 '지', 모음 앞에서는 'ㅈ'으로만 쓴다고 해도 된다.[16]
[1] 헝가리, 폴란드 등의 비적성(非敵性) 공산 국가들과의 교류가 먼저 이루어지며 이들 국가 언어 표기법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먼저 대두되었다.[2] 같은 날 공표된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는 각각 제15항까지 있을 정도로 더 길다.[3] 원문에는 Mikaiil(Михаийл)이라고 적혀 있지만 오타다.[4] 로마자 전사[5] 해당 인물은 우크라이나인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어 발음을 준용하여 여전히 부브카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6] 이러한 점은 외국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실제로 라틴 문자권에서도 어두가 아닌 이상 ё가 들어간 경우 대부분 yo가 아닌 ye/e로 표기한다. Khrushchev(흐루쇼프), Gorbachev(고르바초프)가 대표적인 예. 러시아어에서 е와 ё 표기의 구분보다 러시아어 로마자 표기법이 더 빨리 확립되었기 때문이다.[7] 2019년 현재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사전은 표제어 수가 가장 많아 여전히 한국의 러시아어 학계에서 거의 표준으로 삼을 만큼 가장 쓸 만한 사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1987년 초판 발행 이후 30년 넘게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채 초판 그대로 발행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고려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주도로 독자적인 사전을 출간하기 위해 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상당히 지지부진한 상태다.[8] 만약 이 방식을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카작스탄'이 된다. 사실 같은 연구개음이니 만큼 그렇게 들으려면 그렇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찰성이 강한지라 불파음으로까지 표기하는 것은 다소 과하다.[9] 'f' /f/를 받침으로 적는 다른 사례인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kh' /x/도 일관되게 받침으로 적도록 하여 이러한 문제는 피했다.[10] 대표적인 예로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헝가리어. 현재 한국어에서 셰 정도를 빼면 자음 + ㅖ는 거의 다 자음 + ㅔ로 발음된다.[11] 특히 북한의 문화어에서는 '례'까지도 /레/로 발음하도록 규정했다. 그래서 '례절', '례의' 같은 단어도 /레절/, /레의/(/레이/)로 발음한다.[12] 다만 원음보다는 표기법을 그대로 읽은 쪽에 가까운 덴마크어처럼 예외도 있다.[13] 북한의 표기법에서는 어말 유성음의 무성음화를 반영하지 않는다. 이는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독일어에서도 마찬가지라 Deutschland를 '도이췰란드', Hamburg를 '함부르그'라고 적는다.[14] 이것은 중국어의 sh, zh 발음과 표기가 같다.[15] 중국어 표기법에 이러한 세칙이 있다.[16] 영어 표기법에 이러한 세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