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중
1. 개요
대한민국의 힙합 래퍼.
한국힙합 초창기의 중요인물 중 하나다.
실력에 비해 가장 과소평가된 대표적인 래퍼.
2. 상세
1996년 수정[1] 그리고 다른 남자멤버 박D와 함께 E.N.C.A.라는 힙합댄스그룹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타이틀곡 DV8이 영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으며 큰 활동 없이 흐지부지 해체되고 만다.
그러나 윤희중은 이 때 작곡가 김홍순과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한국 가요계에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기성 가요계에서 소위 말하는 랩선생님으로 활약하거나, 작사나 피처링 혹은 랩메이킹을 하는 식으로 활약했다. REF, 유승준, 이글파이브, NRG, 박지윤, 태사자, 이현우, 이지훈, J, 지누션, 김범수 등등 유명 가수들과 많이 작업했으며, 몇몇 가수들의 경우는 사실상 앨범의 랩 부분은 윤희중이 담당했다. 또한 박지윤의 하늘색 꿈 같은 경우에는 직접 랩을 했던 윤희중의 비중이 꽤 컸기 때문에 무대에 서기도 했다. 대한민국 앨범에도 참여하며 힙합계에서도 비중이 있음을 보여줬다.
99년 1집 앨범 3534를 발표하며 솔로 데뷔한다. 그리고 2집 앨범 Enlightment를 2001년에 발표한다.
대중적으로는 약간의 반향은 있었으나 두 앨범 다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00년을 전후로 해서 한국힙합은 별로 대중적인 장르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교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미국 서부 힙합색이 강했다. 그러나 윤희중은 미국 동부의 색깔을 추구했기 때문에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힙합계에서도 윤희중이 잘한다는 것은 다들 인정했으나 역시 별로 선호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윤희중의 색깔도 당시 힙합계와는 많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언더가 아니라 오버에 속해있는 사람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CB Mass의 피처링을 거절한 것으로 갈등을 빚어서 CB Mass 앨범에서 대놓고 쌍욕으로 까이면서[2] 상당한 위기를 겪었다.[3] 이것을 윤희중이 2집 what!에서 욕설 한 마디도 없이 받아쳤는데 완벽하게 승리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CB Mass나 무브먼트의 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윤희중은 오버 무대에 있다고는 하나 힙합계에서 별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세는 변함이 없었다.
또한 윤희중이 방송계에 오래 있으면서 댄스곡도 많이 했고, 또 본인부터가 춤에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방송에서 여자 백댄서들을 쫙 깔아놓고 자신도 같이 춤을 추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인다거나, 혼자 나와도 화려한 원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나오면서 끊임없이 춤을 추고 제스처를 보여줬다. 헌데 당시 대세는 남자다움이나 사나이다움에 대한 강조가 많았다.[4] 또한 많은 언더 힙합 가수들이, 아니 너희들은 빠른 템포의 신나는 노래를 하는데 왜 춤을 추지 않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원래 힙합은 춤을 추지 않는 것이 정통이다라는 식으로 답변을 했기 때문에 그것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윤희중은 좀 배척되는 경향이 있었다. 가사도 윤희중은 직설적이지 않은 은유를 많이 사용했지만 직설적이거나 사회비판 류의 가사를 쓰는 당시 힙합계의 풍조와는 많이 달랐다.[5]
두 장의 앨범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00년대까지는 그래도 좀 음악활동을 하는 것 같았으나 이후에는 음악활동에 대한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다.
윤희중은 당시 이현도나 김진표 바비킴 등과 더불어 90년대 후반의 방송가에서 몇 안 되게 힙합을 이해하는 선구적인 인물이었으며, 랩실력은 가장 좋았다.[6] 방송가에서 힙합적인 사운드나 랩에 관한 작업을 꽤 하면서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다. 또한 두 장의 앨범 역시 사운드, 유려한 플로우, 은유적인 가사와 같은 면에서 매니아들로부터는 호평을 받고 있다.[7] 하지만 본인의 외적인 스타일링이나 무대 구성, 빠르고 화려하지 않았던 음악적 색깔, 무브먼트와의 갈등 등등으로 아쉽게 사라졌다.
[1] 훗날 허니패밀리에 속하기도 하는 그 사람[2] [3] 당시 한국 힙합계에서 무브먼트와 갈등을 빚고 정치질에 휘말리면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CB Mass 시절이나 다이나믹 듀오 시절이나 끊임없이 앨범에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치질을 했으니 나중에 E-sens에게 대답해 개코나 랩퇴물이라고 디스받은 것은 그간의 업보가 돌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실 그간 그들이 정치질을 하고 남들을 비난해 왔으면서도 별다른 대가를 돌려받은 적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결코 충분하게 돌려받은 것은 아니다.[4] 윤희중이 얼굴도 잘 생겼고 옷도 잘 입긴 했어도 주석 같은 사람과는 달리 춤이나 화장 의상 등에서 뭔가 좀 여성스런 느낌이 났다.[5] 김디지 같은 인물의 당시 가사를 들어 보면 그 직설적임은 뭐 이루 말로 말할 수가 없다.[6] 1998년에 발표한 이글파이브의 궤도 같은 것을 들어보면 노래가 후렴을 담당하는 것을 제외하면 전부 다 랩으로 이루어져 있고, 의외로 힙합색이 진하며 동시기에 나온 어지간한 언더 힙합보다 완성도가 훨씬 뛰어나다. 랩은 윤희중이 전부 다 만들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윤희중이 상당히 빠른 시기에 한국말 랩을 나름대로 어느 정도 완성하는 것에 성공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윤희중 본인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이글파이브의 노래 중에서 별로 반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7] CB Mass 및 무브먼크 크루와의 디스전에서 혼자서 완승을 거둔 것만 봐도 당시 윤희중이 실력이 심상치 않았음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