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이성춘(李成春) 1577 ~ ?
원주 이씨(原州李氏) 해남(海南) 입향조(入鄕祖)인 이영화(李英華)의 후손(後孫)으로 이성춘(李成春)이고, 자(字)는 원보(元甫)이다.
아버지 판관(判官) 이호(李琥)와 어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 만호(萬戶) 박세우(朴世佑)의 따님 사이에서 선조(宣祖 10) 정축(丁丑 1577)년에 태어났다.
선조(宣祖) 갑오(甲午) 1594년에 무과(武科)에 올라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에 제수(除授)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아버지를 따라 의주(義州)까지 임금의 행차(行次)를 호위(護衛)하였는데 난당(亂黨)들이 어가(御駕)의 가는 길을 막으니 이성춘(李成春)은 몸을 날려 칼을 휘두르며 뇌성벽력(雷聲霹靂)같이 꾸짖고 20여 무리를 때려누이니 나머지는 박산(博山)되어 흩어지고 길이 깨끗이 트였다.
필로(蹕路)의 소임(所任)을 다한 장거(壯擧)를 가상(嘉尙)하여 특별히 주부(主簿) 감역관(監役官)을 제수(除授)하며 상(賞)으로 전마(戰馬) 11마리를 내리고 원종(原從) 2등공신(二等功臣)의 녹권(錄券)을 내렸다.
향리(鄕里) 유림(儒林)들이 해남(海南) 영산사(英山祠)에 배향(背向)하여 매년 8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1. 개요
원주 이씨(原州李氏) 해남(海南) 입향조(入鄕祖)인 이영화(李英華)의 후손(後孫)으로 이성춘(李成春)이고, 자(字)는 원보(元甫)이다.
2. 일생
아버지 판관(判官) 이호(李琥)와 어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 만호(萬戶) 박세우(朴世佑)의 따님 사이에서 선조(宣祖 10) 정축(丁丑 1577)년에 태어났다.
선조(宣祖) 갑오(甲午) 1594년에 무과(武科)에 올라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에 제수(除授)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아버지를 따라 의주(義州)까지 임금의 행차(行次)를 호위(護衛)하였는데 난당(亂黨)들이 어가(御駕)의 가는 길을 막으니 이성춘(李成春)은 몸을 날려 칼을 휘두르며 뇌성벽력(雷聲霹靂)같이 꾸짖고 20여 무리를 때려누이니 나머지는 박산(博山)되어 흩어지고 길이 깨끗이 트였다.
필로(蹕路)의 소임(所任)을 다한 장거(壯擧)를 가상(嘉尙)하여 특별히 주부(主簿) 감역관(監役官)을 제수(除授)하며 상(賞)으로 전마(戰馬) 11마리를 내리고 원종(原從) 2등공신(二等功臣)의 녹권(錄券)을 내렸다.
아!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하여 많은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전사(戰死)하거나 공(功)을 세운 사람이 호남(湖南)에 가장 많아 김건제(金健濟) 부자(父子)와 고재봉(高濟峰) 3부자(父子)가 더욱 이름 높으나 이성춘(李成春)은 부정(副正) 이원해(李元海) 이하 6~7명의 종형제(從兄弟)가 함께 일어나 수 천리(千里) 밖까지 근왕(勤王)에 정성(情性)을 다하고 험란(險難)한 고비를 겪었으니 사정에 따라 혹은 순사(殉死)하고 보신(保身)하는 것이 다를 뿐 그 충의(忠義)와 고절(苦節)에 있어서 천륜(天倫)과 천성(天性)의 타고남은 어찌 길고 짧음이 있겠는가.
아! 훌륭한지고. 그 충절(忠節)의 빛남이여,
3. 기타
향리(鄕里) 유림(儒林)들이 해남(海南) 영산사(英山祠)에 배향(背向)하여 매년 8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