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직
'''대수''' | '''역대 장관''' | '''역임 기간''' | '''비고''' |
1대 | 민병석 | 1911~1919 | 이완용 라인을 타고 친일파가 된 케이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영친왕과 이방자의 결혼 문제를 처리했다. 1912년 메이지 일왕의 장례식에 의친왕의 수행원 자격으로 참석한 것도 이때. |
2대 | 이재극 | 1919~1923 | 종친. 이왕직 장관이 종친이었던 경우는 이재극이 유일하다. |
3대 | 민영기 | 1923~1927 | 을사조약에 반대했다가 후일 변절한 사람. |
4대 | 한창수 | 1927~1932 | 찬시, 장시사장 등 이왕직 내부승격 코스를 걸은 사람. 이우가 박천주와 결혼하겠다고 할 때, 일본 황족과 결혼해야 한다면서 반대했다. 궁내성까지 개입해서 결혼을 허락하자 여기 반발하며 사퇴(...) |
5대 | 시노다 지사쿠 | 1932~1940 | 유일한 일본인 장관. 한창수의 사퇴로 직을 승계했다. |
6대 | 이항구 | 1940~1945 | 이완용 아들. 이왕직에서 의식과장으로 있다가, 시노다 지사쿠가 장관으로 올라가며 차관을 맡았다. 이후 장관으로 승진. |
7대 | 장헌식 | 1945 5월 ~ 11월 | 일본 유학파.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 여러 직을 두루 지냈다. 해방 이후에도 이왕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몇 개월을 더 지내고 사퇴했다. 그리고 1946년 이왕직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