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王職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대한제국 황족의 의전 및 대한제국 황족과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 1910년 12월 20일 
개설되었다.
이후 해방이 찾아오자 1945년 11월 8일 "구왕궁(사무청)"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사무청 초대 장관은 독립운동가 윤홍섭.
1. 직제
-  장관 : 이왕직 사무 최고관리자. 조선 구황실을 담당하는 자리여서 그런지 웬만하면 조선인만 보했다.
| '''대수''' 
 | '''역대 장관''' 
 | '''역임 기간''' 
 | '''비고''' 
 | 
| 1대 
 | 민병석 
 | 1911~1919 
 | 이완용 라인을 타고 친일파가 된 케이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영친왕과 이방자의 결혼 문제를 처리했다. 1912년 메이지 일왕의 장례식에 의친왕의 수행원 자격으로 참석한 것도 이때. 
 | 
| 2대 
 | 이재극 
 | 1919~1923 
 | 종친. 이왕직 장관이 종친이었던 경우는 이재극이 유일하다. 
 | 
| 3대 
 | 민영기 
 | 1923~1927 
 | 을사조약에 반대했다가 후일 변절한 사람. 
 | 
| 4대 
 | 한창수 
 | 1927~1932 
 | 찬시, 장시사장 등 이왕직 내부승격 코스를 걸은 사람. 이우가 박천주와 결혼하겠다고 할 때, 일본 황족과 결혼해야 한다면서 반대했다. 궁내성까지 개입해서 결혼을 허락하자 여기 반발하며 사퇴(...) 
 | 
| 5대 
 | 시노다 지사쿠 
 | 1932~1940 
 | 유일한 일본인 장관. 한창수의 사퇴로 직을 승계했다. 
 | 
| 6대 
 | 이항구 
 | 1940~1945 
 | 이완용 아들. 이왕직에서 의식과장으로 있다가, 시노다 지사쿠가 장관으로 올라가며 차관을 맡았다. 이후 장관으로 승진. 
 | 
| 7대 
 | 장헌식 
 | 1945 5월 ~ 11월 
 | 일본 유학파.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 여러 직을 두루 지냈다. 해방 이후에도 이왕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몇 개월을 더 지내고 사퇴했다. 그리고 1946년 이왕직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됐다(...) 
 | 
-  차관 : 장관 보좌, 부재 시 직무대리. 역시 웬만하면 일본인만 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