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ΙΛΙΑΣ / ILIAS'''
1. 개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전통적으로 호메로스가 저자라고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기원전 8세기에 쓰여졌다고 전해진다.[1] 그리스 신화의 전체적인 세계관 자체도 이 일리아스 이후 체계화되기 시작했다고 하며 , 사실상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예술과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배경은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인 트로이아 전쟁의 51일간으로, 트로이아의 왕세자 헥토르와 아카이오이족의 장군인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하여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과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할지언정 가능한 한 충실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영웅들의 처절한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9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상황과 전쟁에 관여하는 올림포스의 신들, 장수들의 이야기 또한 조명된다.
일리아스는 화제 전개에 따라 24권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권마다 그리스 문자의 24 알파벳 순서로 이름이 붙어 있다. 그리스의 대표적 시운 중의 하나인 6각운(Hexameter)으로 작곡되었다.
2. 주요 등장인물
2.1. 신족(θεούς)
2.1.1. 올림포스 12신
- 제우스 (중립)
중립이지만, 트로이아에게 동정적이어서 트로이아의 멸망을 원하는 아내 헤라와 아테나의 생각을 바꾸려고 수시로 달랬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헥토르를 죽이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고, 운명을 바꿔서라도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결투의 승자를 헥토르로 바꿀 마음까지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세 여신인 모이라이가 결정한 운명을 맘대로 바꾸지 말라고 아테나가 극구 반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헥토르의 운명에서 손을 놓는다.
중립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원래 어머니 헤라와 아테나에게 아카이오이족의 편에서 싸우겠다고 약속했었지만(일리아스 5권 830~834행, 21권 410~414행), 아프로디테의 설득으로 트로이아인들의 편에서 싸웠다. 그리고 이후 어머니로부터 아카이오이 측의 장군인 아들 아스칼라포스가 전사했다는 것을 듣고 분노하여, 전쟁에 관여하지 말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아카이오이족의 편에 서서 싸우려고 했었다.
2.1.2. 그 외의 신
2.2. 영웅(ἥρως)
2.2.1. 아카이오이족(Ἀχαιός)
- 아가멤논 - 미케네의 대왕 & 아카이아 연합군의 총사령관
- 메넬라오스 - 스파르타의 왕
- 이도메네우스 - 크레타의 왕
- 메리오네스 - 이도메네우스의 조카
- 아킬레우스 -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의 아들
- 파트로클로스 - 아킬레우스의 부관
- 오디세우스 - 이타카의 왕
- 대 아이아스 - 살라미스의 왕 텔라몬의 아들
- 테우크로스 - 아이아스의 이복 동생
- 소 아이아스 - 로크리스의 왕 오일레우스의 아들
- 디오메데스 - 아르고스의 왕
- 네스토르 - 필로스의 왕
- 안틸로코스 - 네스토르의 아들
또한, 일리아스에서 '그리스인(Ἕλληνες / Hellenes)'이라는 표현은 아킬레우스와 그 부하들을 가리킬 때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아카이아인', '아르고스인' '다나이드인' 등으로 표현되었다.
일리아스 본문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카이오이', 그리스인을 뜻하는 즉 '아카이아인'이라 부르는 것이 맞지만, 그리스인이라는 말이 워낙에 널리 퍼져 있다.
혹 트로이아는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저쪽 아나톨리아 반도 쪽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페르시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자.
정작 페르시아 전쟁 이후 사람인 에우리피데스가 쓴 비극들은 트로이아인들을 모조리 '''야만인''', 즉 '''비 그리스인'''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것도 복잡한 문제인 것이, 일리아스 본문에선 트로이 인들을 딱히 풍습이 다른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대가 지나면서 인식이 다소 변했다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트로이아 진영과 함께한 동맹군들은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명백히 이방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2.2.2. 트로이아인(Τροίας)
- 뤼키아
- 사르페돈 - 왕
- 글라우코스
3. 작품 평론
고대 그리스 문학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작품이지만,[2]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리스 신화에 가지는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점이 다수 존재한다.
3.1. 줄거리 및 해설
이와 같이 작중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매우 짧다. 휴식기 등을 빼고 보면 정확히 4~5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리아스 이전에 있었던 일과 일리아스 이후에 있을 일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또 다른 신화에 대해서도 계속 언급하기 때문에 그리스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더불어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트로이아 전쟁의 진행 과정을 빗댄 듯이 유사하다. 1장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로 인해 갈등을 빚음은 트로이아 전쟁의 시작이 헬레네를 둔 다툼인 것과 대비되고, 2~3장에서 연합군이 진군하는 것은 트로이아로 연합군이 모이는 모습에 대비되는 식. 첫 번째 군사적 충돌이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대결이라는 것도 이 전쟁의 시작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다. 최후에 트로이아의 함락을 보여주는 대신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내는 것도 이런 구조의 연속. 트로이는 아직 함락되지 않았지만, 유일한 보루인 헥토르가 사망함으로서 트로이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음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는 2011년 출판된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의 일리아스 영역판의 개요 부분에 나온다.) 즉, 전쟁 막바지의 일부만 다루었지만 한편으론 전쟁 전체를 다룬 것이다.
헥토르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끝이라면 아킬레우스의 죽음이나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아 전쟁의 끝맺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그 부분은 서사시환 중 《일리오스 낙성》에서 다루었으리라 추정한다. 일리아스에서는 트로이아가 멸망하리라고 작품 전체에 걸쳐 암시할 뿐이고, 《오디세이아》에서도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불행히도 《일리오스 낙성》 등은 현재는 소실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평론을 보면 옛 그리스 사람들은 서사시환 중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제외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다고 여긴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미성숙한 인격이 성숙한 인격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아가멤논과의 불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헥토르와의 결투, 프리아모스 왕과의 대화와 용서 등의 에피소드를 묘사하고 있는데, 《트로이 목마》에서는 아킬레우스가 뜬금없이 트로이아의 공주 폴릭세네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이후 파리스에게 죽는 결말이, 다시 아킬레우스의 미성숙한 인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인격이 서서히 성숙해가는 과정, 즉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영웅(아킬레우스)이 마침내 적의 인간적인 고통까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의 흐름이, 《트로이 목마》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아킬레우스는 다시 제멋대로인 미성숙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
신화적인 서사시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근현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일단 트로이아 비슷한 도시가 존재했다는 것은 확인이 된 상태. 다만 일리아스에 서술된 만큼 큰 전쟁이 있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트로이아 유적 발굴 결과나 히타이트의 외교 문서 등의 자료를 보면 트로이아가 미케네와의 전쟁의 결과로 완전히 멸망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때문에, 서사시환의 나머지 부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고고학적으로도 대단히 애석한 일이다.
영웅들이 적의 귀족 계급 전사들을 무수히 죽이는데, 이것이 과연 영웅들이 호메로스의 묘사대로 신과 같은 전사로서의 무용을 뽐냈던 것인가 아니면 아킬레우스 부대나 헥토르 부대가 적의 귀족 계급을 죽인 것을 그냥 지휘관이 죽였다고 썼느냐 하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중국 고대 역사책도 병졸이 적장을 죽였다면 그냥 지휘관이 죽였다고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 글자에 따라 의미가 휙휙 바뀌는 한자의 특성상 세심하게 읽으면 정말 장수가 적장을 죽였는지 병졸이 죽였는지 구분되게 써 놓은 경우도 있긴 하나, 어쨌든 병졸이 죽여도 그 이름을 쓰지 않고 그냥 부대장 이름을 쓴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일리아스에서는 영웅들이 싸우기 전에 서로의 신분과 배경 등을 서로 확인하고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이 많으며, 선대에 친분이 있다거나, 상대의 격이 자기보다 낮다면 싸움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 그리스라 하면 방진을 짠 싸움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일리아스보다 시대적으로 뒤의 일이고, 폴리스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인 미케네 ~ 암흑기 그리스의 전쟁은 실제로 이런 형식이 많았다. 작성 시기상 그리스 암흑기의 작품인 일리아스가 그보다 더 전 시대인 미케네 시대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만큼 이것을 영웅들에 대한 미화로 보는가, 아니면 시대상의 고증인가로 구분해 볼 수도 있는 것.
3.2. 중립적 시각
일리아스는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시각이다. 일단 유명한 장수들이 주로 아카이오이 측에 포진해 있고, 트로이아 측에서 꾸준히 활약한 장수는 헥토르뿐이며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테티스의 탄원에 따라 아킬레우스의 편을 들어주는 등 기본 플롯이나 얼개는 아카이오이 측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제우스의 아들인 사르페돈도 트로이아 측의 장수로 출전해 사망하고, 수도 없이 죽는 클론 무장들의 각각의 출신지와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죽이면 끝인 적이 아니라 돌아갈 가족이 있고, 아버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호메로스에게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비중이 약간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이전의 서사시에 있던 모습 그대로 가져왔지만, 헥토르는 자기 손으로 다시 만들었다. 게다가 약간 덧칠을 했다. 어떤 의미에서 '''헥토르는 호메로스가 선택한 인물이다'''. 특히 모범적인 인간을 고를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닌, 헥토르를 고른다. 알다시피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고, 트로이아 전쟁에서 이긴 쪽은 그리스인이었고 호메로스도 그리스인이다. 호메로스가 제아무리 공정하려고 해도, 그리스 민족주의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메로스는 제일 좋은 것을 적장에게 주었다'''.
—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
다만 아카이오이 연합군 위주의 서술인 것은 분명한 것이 헥토르가 날뛰는 모습과 다른 아카이오이족 영웅들이 날뛰는 모습들을 묘사할 때 상당한 온도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헥토르가 귀족 전사들을 죽이면 한꺼번에 누구누구, 누구누구, 누구누구 이렇게 이름이나 읊어주고 끝인 경우가 많으나, 아이아스나 디오메데스가 트로이아 귀족 전사들을 죽이면 그들의 과거 업적이나 출신을 상세히 열거하는 경우가 많고 묘사도 좀 더 자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다른 방향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오히려 이런 서술을 통해 일리아스는 죽어가는 트로이아 전사들을 인간화함으로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트로이아 쪽에 공감하도록 한다. 승리는 아카이오이 쪽에 주되 패배한 트로이아 쪽에는 독자들의 동정심을 주어 균형을 맞추는 기법이라는 것. 또한 트로이아군의 장수들이 아카이오이 연합군 전사들을 죽일 땐 대부분 타깃이었던 주연급 장수를 못 맞추고 근처에 있던 다른 장수를 대신 맞추는 경우도 많다.
일리아스를 아킬레우스의 영웅담 수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부분의 비중이 헥토르에만 집중된 트로이아 측과는 달리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 내에서 대부분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분량이 적고 아카이오이 측의 비중은 디오메데스와 아가멤논, 아이아스 등과 적절하게 분배되어 있다. 정말로 아킬레우스의 영웅담에 불과했다면 제목도 '아킬레이드'였겠지만, 정작 호메로스는 이 서사시의 제목을 '일리오스의 노래'를 뜻하는 일리아스라고 지었다.
트로이아의 왕세자이자 총사령관인 헥토르는 특히 비중을 들여 묘사하고 있다. 파리스의 한심함에 분노하거나 결과적으로 패배하게 될 트로이아의 운명에 괴로워하고, 아내 안드로마케와 애틋한 감정을 나누는 등 상당히 높은 비중을 할애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서술한다. 제우스 또한 아킬레우스의 영광을 위해 헥토르를 죽게 만들긴 했지만 헥토르를 '인간 중 가장 신들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부르며 시체만큼은 온전히 보존해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결말부에서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의 이해 관계에 가장 깊게 얽힌 헬레네 또한 아프로디테의 압력으로 파리스 곁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와, 그로 인해 발생한 전쟁과 비극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전쟁에 얽혀 죽은 이와 괴로워하는 이의 관점을 자세히 조명한다는 점에서, 일리아스는 영웅 서사시가 아니라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대표적으로 Simone Weil의 논문.) 헤로도토스는 이런 점이 나약하다고 비판하며 레오니다스 1세의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영웅 이야기라고 부각시켰던 적도 있다.
3.3. 신화의 클리셰 부정
그리스 신화와 문학 전반에 걸친 편견인 '겉과 속의 아름다움은 일치한다'라는 테마도 부정하고 있다.
파리스는 분명 놀라울 만큼 미남이지만 나라의 위기를 목전에 두고서도 헬레네를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소인배이며, 형 헥토르의 괴로움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농담 따먹기나 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사상은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오디세이아'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 사람들에게 "누구는 용모가 불사신들과 같지만 그 하는 말은 우아함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그 외의 영웅들도 완벽초인과는 거리가 멀다. 왕 중의 왕인 아가멤논은 권위 의식에 눈이 멀어 아킬레우스를 이탈하게 만들고, 회유를 위해 사신을 보낼 때에도 끝끝내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자존심을 챙기려고 한다. 아킬레우스 또한 분노에 휘둘려 자신의 아군을 돌보지 않았다. 시종일관 도덕적으로 묘사되는 헥토르 또한, 신의 개입이 있었다지만 무리해서 성 밖에 남아 아킬레우스에게 죽음으로써 트로이아의 멸망을 확정지었다.
3.3.1. 신들에 대한 시각
일리아스에서 신들의 '개입'은 많은 경우 지극히 간접적으로만 벌어진다. 이는 제우스가 다른 신들의 직접적 개입을 막았기 때문.[5] 군대의 사기를 올리거나, 특정한 인물에게 축복 혹은 저주를 내리거나, 분노를 억누르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하는 식.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가 아킬레우스를 공격하는 장면과 디오메데스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아레스를 물리치는 장면을 제외한다면, 다른 장면들은 신을 빼고 보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신과 인간은 유리되어 묘사된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과 떨어져 있는 신들은 다시 트로이아 편과 아카이오이 편으로 나뉘어서 치열한 암투나 계략을 주고받고, 후반부에선 직접적으로 싸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울거나 자신의 자식이 맞이하는 죽음에 슬퍼하는 등, 흔히 '인간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신에 대한 묘사를 일리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구전 신화나 그리스 비극 등에서 흔히 초월자로 묘사되는 신들과는 대비되는 부분. 이 때문에 최초로 비판한 것으로 알려진 크세노파네스나 플라톤 등의 여러 철학자나 소피스트들이 호메로스가 신들을 '부도덕'하게 묘사한다면서 비판하기도 했다.[6]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해 유럽 신화 등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 신들은 철저한 '인본주의' 관점에서 묘사되었다. 부인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입질하는 제우스, 근친상간인 가이아, 우라노스, 크로노스, 또한 신화 내의 수 많은 신들의 어리석은 에피소드 등 신들의 어리석음을 통해 교훈을 주는 등 그리스 로마를 포함한 유럽 신화는 본래 인본주의적이다.[7]
인간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신에게는 상대가 안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그들의 운명은 신들의 손에 달렸다는 코즈믹 호러적인 면은 일리아스에서 가장 잘 묘사된다. 일리아스에서 묘사되는 트로이아 전쟁의 진행은 전적으로 제우스의 설계대로 흘러간다. 메넬라오스가 파리스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전쟁이 아카이오이족의 승리가 확실하다 싶을 때, 판다로스가 메넬라오스를 활로 쏘게 해서 다시 전쟁의 불씨를 지피고 헥토르가 방벽을 넘어 아카이오이족의 함대를 불태워서 트로이아의 승리로 끝날 것 같을 때, 다시 파트로클로스를 이용하여 몰아내서 수시로 전황을 교착 상태로 유지한다. 심지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의 승자 자체도 제우스가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지 헥토르로 바뀔 수도 있었다. 결국 인간들에게 달린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로지 제우스의 결정에 달렸던 것.
신과 인간의 격차 역시 아킬레우스와 스카만드로스의 일화로 알 수 있다. 트로이아 전쟁 최강의 전사인 아킬레우스가 '''주제도 모르고''' 하급신으로 분류되는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를 무시하다 익사할 뻔하는데, 인간 '''따위'''인 아킬레우스가 신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카만드로스보다 더 상위의 신들에게 살려달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것 밖에 없었다. 아무리 당대 적수가 없는 최강의 영웅이라도 신을 상대로는 보잘것 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
3.4. 번역 및 판본
- 일리아스의 번역은 오래 전부터 큰 이슈였다. 단순히 내용만 번역하는 게 아니라 원전의 운율과 분위기를 살려서 번역하는 게 워낙 고역이기 때문.
최초의 영역판은 조지 채프먼(George Chapman)의 번역이었는데, 존 키츠는 이를 읽고 감명받았는지 아예 소감을 다룬 시를 쓰기까지 했다. 영미권에선 알렉산더 포프의 번역[8] 이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9] 워낙 오래 전의 번역(1720년에 출판되었다)이고 오늘날의 번역과는 달리 라틴어 바탕이라 아킬레우스 대신 아킬레스, 오디세우스 대신 율리시스 등으로 지칭되고 아카이아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지칭된다. 그러나 포프는 원본의 운율을 살린 번역을 함으로써 번역된 시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란 평가도 받았다. 일리아스 번역 덕분에 포프는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고 할 정도로 성공했다. 물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아서 너무 형식에 맞춰서 기계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 외에 리치몬드 라티모어(Richmond Lattimore) 판, 로버트 페이글(Robert Fagle) 등의 번역 등이 유명하다.
그 외에 리치몬드 라티모어(Richmond Lattimore) 판, 로버트 페이글(Robert Fagle) 등의 번역 등이 유명하다.
- 국내에서는 '일리아드'(Illiad)라는 이름으로 훨씬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라틴어와 영어에서 쓰는 표기가 일리아드며, 국내에 알려진 그리스 신화 관련 자료 대부분이 영문 → 일문의 중역이기 때문. 그러나 일리아스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이니만큼 원제를 중시하여 일리아스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비유하자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제목을 놔두고 암굴왕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천병희 교수의 직역판도 일리아스라는 제목을 사용하며, 위키피디아나 백과사전에서도 일리아스를 기준으로 삼는다. 2010년대 들어서 차츰 교정된 결과, 2020년에는 일리아스라는 표기법이 훨씬 더 많아졌다.
- 여러가지 판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한 가지 판본으로 만든 것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인 제노도투스라고 한다.
- 일리아스 전체에서 트로이아의 첩자를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죽이는 10권은 후대에 추가된 부분이라는 설이 있다. 이런 탓인지 스티브 미첼 판의 영역판은 10권을 빼고 부록으로 넣어버렸다. 사실 10권을 빼도 전체 구성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많다.
4. 관련 문서
[1] 영국 레딩대학의 유전학자 마크 페이겔 및 그의 연구팀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쓴 것은 기원전 762년에서 50년 전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2] 서양권의 중 고등학교에선 일리아드(Illiad)와 오디시(Odyssey) 이 둘은 고대 그리스 문학의 '''대표적인 교과서'''들이다.[3] menin aeide thea, 메닌 아에데 테아로 읽는다. 일리아스의 첫 구절로 유명한 도입부이다.[4] 트로이아는 애초에 헥토르 하나만 믿고 가야 돼서 부상을 입는 게 문제가 될 만큼 중요한 장수가 '''없었다'''.[5] 이 때문에 본인도 아들 사르페돈의 죽음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6] 작중 등장인물들도 신들을 대놓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에게 박살나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귀환한 뒤 아프로디테는 헬레네에게 파리스에게 가서 동침하라고 하는데, 헬레네는 그렇게 파리스가 좋으면 당신이나 같이 자라고 따진다. 물론 이후 아프로디테가 자신에게 반항하면 헬레네에 대한 보호를 거두어서 죽게 만들겠다고 하자 마지못해서 파리스에게로 가게 된다.[7] 단 이 인본주의적이란 말이 그냥 좋은 것만도 아닌 게,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그리스 강대국들은 응? 정의가 어딨냐 약한 애들 죽이고 착취하는 게 인간본성이지 이러면서 약소 폴리스들을 마음대로 유린했다.[8] 참고로 일리아스를 번역하는 데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9] 심지어는 외국어 문학을 가장 훌륭하게 영어로 번역했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오죽하면 실낙원 다음으로 가장 훌륭한 영문시란 평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