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령 동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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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endudukan Jepang di Indonesia''' / '''Japanse bezetting van Nederlands-Indië''' / '''Japanese occupation of the Dutch East Indies'''[3]
일본 제국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침공, 점령 후에 세운 군정부이다. 인도네시아의 현대사에서 격변이 시작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 상세
일본 제국은 태평양 전쟁에 필요한 석유 공급을 위해 동남아 석유 공급의 거점인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침공한다.[4] 일본군은 1942년 3월에 자바 해전에서 승리해 인도네시아를 점령한다. 일본은 특이하게도 중국 대륙과 인도차이나 반도를 통치할 때는 괴뢰국으로 통치하였는데,[5]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군정#군정청으로 통치하였다.[6][7]
인도네시아인들은 처음엔 대동아 공영권에 속아 넘어가 일본군을 네덜란드로부터의 해방자인 줄 알고 다른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그랬듯이 열렬히 반겼다. 일본도 적어도 네덜란드의 지배 때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을 의식하게 하고, 인도네시아의 민중을 동원하기 위해 일본은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면서 자치권을 허용하였고, 인도네시아인 군대를 조직할 기회를 제공하였다.[8] 또한 일본 점령으로 섬에 유배되었던 수카르노는 일본에 협력한다는 조건 하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일본도 네덜란드와 다름없는 제국주의 열강이였기에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다른 지역에서도 그랬듯이 본국의 자급자족 정책을 따른 점령군이 착취를 시작했다. 먼저 전쟁을 위해 인구가 가장 많은 자바섬 사람들을 강제징집해 강제노역을 했고, 젊은이들을 일본군으로 징집시켰다. 오죽하면 네덜란드 치하보다 더욱 잔악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9]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도네시아에서도 독립 투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독립주의가 고조되어 일본 제국에 저항한 저항 운동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인들이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나기 전에 일본 제국은 1945년 8월 15일 자로 항복해버렸고, 일본군은 일본 제국의 항복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 철수한다.
그 후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재점령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침공한다(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그러나 미국의 압박으로 결국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포기해야 했다.
3. 의외의 순기능?
전쟁 후반에 패색이 짙어지자 온갖 수탈을 일삼는 등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일본 제국이었지만, 짧은 점령기 동안 현대 인도네시아의 형성에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다. 일본 점령기 동안 칙령으로 적국의 언어인 네덜란드어와 영어가 사용금지되고, 인도네시아어가 사실상 유일한 공용어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10] 이 칙령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어는 뜻밖에 급속도로 발전, 보급될 기회를 얻었다. 유럽어, 일본어 자료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하는 위원회가 일본의 지원으로 발족되어, 다량의 기술 문헌 등도 인도네시아어로 작성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를 회유시키기 위해 1944년 9월 7일 고이소 구니아키 총리는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언젠간 독립국가로 만들어주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11] 실제로 1945년 3월 1일에는 일본 점령당국에 의해 독립준비조사회라는 단체가 설립되었다. 1945년 8월 7일에는 21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을 위원으로하는 독립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일본이 조금만 늦게 항복했어도 아마 인도네시아에 일제의 괴뢰국이 설립되었을 듯하다.
이러한 인도네시아어의 발전은 독립 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인도네시아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데 밑거름이 되며[12] ,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와 일본의 관계 개선에도 한 몫 하게 되었다.
또 일부 일본군 패잔병은 전후 '''인도네시아군에 입대하여 네덜란드군을 상대로 싸우기도 했다.'''
4. 기타
일본의 인도네시아 지배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절에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우측통행을 하던 인도네시아는 일본의 식민지로 바뀌면서 통행방향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좌측통행으로 바뀌었다. 상술한 것처럼 일본이 패망한 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다시 지배하려고 시도했는데, 만약 네덜란드의 이러한 시도가 성공했다면 오늘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본토처럼 우측통행을 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한자로 바꾼 것. 난인(蘭印)이라고도 했다.[2] 군정부인만큼 군기인 욱일기도 일장기만큼 많이 쓰였다고 한다.[3] 각각 인도네시아어, 네덜란드어, 영어 순이며 만약 그냥 'Nederlands-Indië' 내지 Dutch East Indies라고 하면 평상시의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부르는 말이다.[4] 명목상으로는 네덜란드 망명정부가 일본 제국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때렸기 때문이었다.[5] 그런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같은 경우는 그대로 냅두었다가 1945년에 와서 괴뢰국을 설립하긴 했다.[6] 대동아 공영권에 전쟁 이후에 동인도 왕국이라는 괴뢰국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으나, 일본 제국이 패배하여 실현되지 못했다.[7] 다만 인도네시아는 어전회의에서 조선과 대만처럼 일본 제국의 직할 영토로 편입될 예정이었다는 증거도 있다.[8] 일본 육군 휘하에 PETA(Pembela Tanah Air, 향토방위의용군)라는 인도네시아인 부대가 설립되었다. 69개 대대, 57,000여명의 규모였다. 이 부대에 지원한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인도네시아군에 입대해 싸웠다.[9] 동남아 서구 열강의 식민지들 중 일본군에게 점령 당한 지역 대다수가 오히려 서구 열강은 일본 제국에 비하면 신사적이었다는 평가를 할 정도로 일본의 야만적인 전쟁 범죄가 심했다.[10] 물론 일본어도 공용어였지만 현실적으로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11] 물론 당시에는 인도네시아인들을 회유하고 형식상으로만 독립시켜 괴뢰국으로서 지배하려고 하는 거짓말이었겠지만, 본 문단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본의 인도네시아 지배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에 도움이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다.[12]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 안드레 블첵, 《작가의 망명》 1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