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족

 


1. 개요
2. 고대 한반도 일본어?
3. 분류

영어: Japonic languages
일본어: 日本語族 (にほんごぞく)

1. 개요


小林昭美
언어를 비교언어학적으로 분류할 때 쓰는 어족의 하나로 일본 열도에서 쓰이는 언어들이다. 여기에는 일본어류큐어가 속한다. 또 본토 일본어와 소통이 힘든 하치죠 방언을 별개 언어인 하치죠어로 놓고 여기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일본어는 흔히 고립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류큐어와 묶어서 이렇게 독립된 어족을 형성한다고 보는 시각이 보통이다. 일본어족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일본학자이자 언어역사학자인 리온 세라핌이 고안하였다. 일본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었고,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가설이 한때 설득력을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들 언어들이 어족을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지 못하여서 현대에는 그냥 독립된 언어/어족으로 여겨진다.
일본 열도에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아이누어는 일본어족의 언어가 아니다. 계통상 아이누어는 일본어족과 거리가 먼 고립어로 분류된다.

2. 고대 한반도 일본어?


한국어족은 그들이 기마술을 배운 내륙 아시아(한국 건국 신화들에서 볼 수 있듯 아마 중남부 만주일 것이다.)에서 왔을 것이라 믿는다. 많은 반대되는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언어는 한강 유역과 그 남쪽에 살던 사람들의 언어와 계통적 연관성이 없었다. 이들은 쌀을 재배하는 농경민족이었는데, 칼과 창을 든 보병력으로 북쪽에서 내려온 장갑기병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두 가지 선택, 곧 새로운 지배자를 받아들이든지, 혹은 수평선 너머의 섬(일본 열도)으로 이주하든지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일본어족의 후퇴는 그리 빠르고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또한 한국어는 원래 내륙아시아의 무기에 익숙한 기병을 가지고 한반도에 들어온, 한반도 중남부에서 일본어를 말하던 농경민족을 예속시킨 침입자의 언어였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 - 알렉산더 보빈(2013) 고구려에서 탐라까지

외국의 학자 중에 일본어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미국의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I. Beckwith)라는 학자가 있다. 벡위드는 『고구려어 - 일본을 대륙과 연결시켜 주는 언어』라는 책을 통하여, 일본어와 고구려어를 '부여어족'이라는 동계로 놓고 한국어는 철저히 떼어놓는 주장을 했는데,[1] 여기에서 그는 고구려어와 한국어 간의 유사성과 한국어와 일본어 간의 유사성은 단순한 차용으로 보고 기존 학설을 비판했다.[2] 또한 일본어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간의 영향마저도 무시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어학자인 정광 선생에 의해 번역 출간되면서 대차게 까였다. 한편, 일본어와 알타이어간의 연관성을 찾는 일본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일본어족설을 만주~한반도에 거주하던 민족이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 영향을 끼친 증거로 보나 일본에서는 반대로 한(韓)계의 신라어와 부여계의 고구려어를 분리해 놓고, 신라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이기문 교수도 신라어와 고구려어가 상당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한일 양국어의 유사점은 고구려어 및 부여어계(부여·백제)를 매개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에 대한 주장을 일본에서 주장하는 억지 주장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는 편이지만, 사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펼치면서 고구려어와 일본어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이 학계에 존재한다. 단지, 위에 서술되었듯이 중점으로 삼는 것이 한국에서는 '''민족'''인 반면 일본에서는 '''언어'''인 것. 즉, 일본에서는 민족 부분은 짧게 서술하고 넘어가고 언어를 중점으로 다루지만, 한국은 반대로 언어를 짧게 서술하고 민족 부분을 중점으로 서술한다.
동아시아의 여러 언어의 권위자로 유명한 러시아계 미국인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Alexander Vovin)은 여러가지 연구를 통해 고구려의 관직명, 지명 등에서 한국어와 연관된 단어들이 보이며[3] 고대 한국어는 만주 지역의 민족들이 쓰던 언어가 점차 한반도로 남하하여 형성된 언어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한반도 중남부의 지명들이 일본어와 유사한 면이 보인 점에서 원래 한반도 중남부에는 일본어계 언어의 사용자들이 있었는데, 점차 고구려어가 남하하여 퍼지면서 한반도 중남부의 일본어를 밀어내고 한국어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원래 제주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탐라일본어인 타(田)+무라(村) 혹은 타미(民)+무라(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4] 또한 일본어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던 건 오히려 초기 신라어이며 이마저도 삼국시대 중후기를 거치며 삼국의 언어 모두가 유사한 모습으로 수렴하였다고 한다. 탐라라는 국명은 신라에서 하사한 것으로 본래 '탁라'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하지만 탐라국은 신라에 입조하기 전부터 이미 탐라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백제 문주왕 2년(476년)이다. 탐라라는 이름 자체의 기원은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보빈의 가설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에 일본계 고대 종족이 일부 존재했다고 추정하며, 김부식(고려시대)이 쓴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 비교를 통해 신라어가 아스카~나라 시대 일본어의 6모음체계와 같은 것으로 보고, 고대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이주했다는 야요이 이주설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한다.
참고로, 보빈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어의 고유어와 일본어의 고유어 모두 서로의 고대 언어에서 차용한 것들이 있다. 한국어 내의 일본어족 귀화어로는 '섬', '바다', '쌀' 등이 있는데, 특히 양국 고유어 중에서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p-' 계열로 나타나면서 고대 일본어에서 'w-' 계열로 나타나는 것들은 거의 다 일본어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처럼 한국어 내의 일본계 귀화어의 수는 많지 않으며, 정작 그 반대로 중부~서부 일본어(특히 규슈 일대)에 들어간 한국계 귀화어의 수가 훨씬 많다고 한다.
이는 고대 한반도에서 세형 동검 등의 문물과 기마술을 바탕으로 한 한국어족 사용자들이 남하하면서 남부의 일본어족 사용자들을 힘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그 결과 한반도 남부의 일본어족 화자들을 동화시켰기 때문으로, 대개 지배-피지배 관계에서는 지배층의 언어가 피지배층의 언어로 흘러들어가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가야이진아시왕 등 한반도 삼국 시대의 주요 지배층의 이름들은 실제로 고대 일본어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이름들인 바, 한국어족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고 한다.[5]
얼핏 한반도 남부에 일본어족 화자들이 살았다는 가설을 보면 한국인 입장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떠올리기 쉬우나, 정작 보빈의 주장 및 역사적 연도를 따져 보면 임나일본부설보다 수백 년 이상 앞서며, 그마저도 한국어족 화자들이 일본어족 화자들을 압도한 정황들만 나타나기 때문에 오히려 임나일본부설과는 백만 광년쯤 멀어진다. 즉, 행여나 보빈의 주장을 어설프게 이용하며 임나일본부설을 들이미는 일빠넷우익이 있다면 친히 보빈의 주장을 인용해서 역관광시킬 수 있다. 애초에 일본어족 화자들이라고 일본인인 것도 아니다.[6] 반도의 일본어족 화자들과 열도의 일본인들은 야요이 시대가 시작할 무렵 갈라졌기 때문에 수 세기 후인 삼국시대쯤 와서는 서로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근대에 와서 명확하게 민족이 형성되기 전에는 여러 종족이 거부감 없이 뒤섞여 사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흔하게 있어왔던 일이며, 특히 삼한과 일본열도 사이에는 곡옥, 청동거울, 세형동검, 고인돌 등의 고고학적 교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교류는 백제야마토간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애초에 빙하기 이후, 항해기술이 발달하기 전인 고대시대에 대륙에서 일본열도로 대규모로 건너가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연안항해인데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한반도를 거쳐갈 수밖에 없다. 임나일본부와는 달리 여러 국가 형성 초기단계의 제민족 이동과정에서 (민족적인 의미의 일본인이 아닌) 일본계 고대 종족이 일부 한반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반대로 (민족적 의미의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고대 종족 또한 충분히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살았을 수 있다.[7]
일본서기 민달천황조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 야마토 왕조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계 어족'에 속하는 백제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역관을 따로 두었고 백제의 언어를 '한(韓)어'라고 구분하여 자국의 언어와는 별개의 언어로 따로 구분했다. (4세기 이후의 기록에는 '''백제는 고구려와 언어가 같다'''는 기록[8]이 있어 백제어는 고구려어와 좋은 비교대상이 된다.) 때문에 백제와 같은 '부여계 어족'에 속하는 고구려어와 고대 일본어 사이에 언어적 유사성이 있었다 해도 언어 계통 자체는 서로 완전히 달랐을 거로 추정 할 수 있다. 즉, 고대 일본어는 고구려어와 백제어 같은 '부여계 어족'과 완전히 다른 언어 계통이었지만 '부여계 어족'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서 부여계 어족에 속하는 고구려어, 백제어와 서로 비슷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9]

3.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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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즉, 현대 한국어와 고구려어 사이에는 차용 이외에는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다.[2] 이에 따라 명백한 기초어휘까지 입맛 대로 차용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자음 재구에도 문제가 있었다. 국명 신라(新羅)가 Silla라고 발음되는 것을 한국어의 틀이 아닌 중국어 틀에서 해석하려 하여 新(신)의 한자음이 고대에 'Sir'로 발음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신라가 斯羅(사라), 斯盧(사로), 尸羅(시라) 등의 여러 표기가 있었으며, 한자어가 아니라, 우리말을 한자로 적었을 뿐인 것도 몰랐으며 'n+r→ll'의 자음동화현상도 보지 못했다. 이외에도 무턱대고 단어의 어원을 한자어 기원으로 몰아가려는 경향도 보인다.[3] 보빈의 주장에 따르면 고구려에서 왕비를 가리키던 어륙 및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던 어라하는 동일 계통의 단어로 추정되며, 일어서다라는 한국어 단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4] 실제로 탐라국의 시조들이 일본 여성과 결혼하는 등 교류가 존재했다.[5] 일본어에 비해 한국어가 역사언어학적으로 훨씬 따지기가 어려운데, 그 원인으로는 자료 부족이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도 한반도~일본 열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언어 조사를 통해서 동질성이 나타나는 어휘들을 추리면 한반도 중심과 일본 열도 중심의 것들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추적해 확인할 수 있는 아이누어, 일본어 계열을 빼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한국어 계열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 추론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나 중국티베트어족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들 언어들은 한국어족보다도 역사언어학적으로 연구할 건덕지가 풍부해서 반박된다. 즉, 한반도~일본 열도의 옛 고유명사 중에서 일본어족으로 보기 힘든 정체불명의 것들은 현재 전하지 않는 옛 한국어족 어휘들로 잠정적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6] 일본어족 화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과 동급 취급을 하는 것은 인도유럽어족 화자 집단인 게르만족, 슬라브족, 라틴족 등의 서양인 대부분과 이란계, 인도계 등을 단일한 민족으로 두는 것과도 같을 정도로 지나친 범주화이다.[7] 보빈은 가야와 관계가 깊은 한국계 왕조가 일본 열도에 일정 기간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했으며 여기에서 섬을 가리키는 일본어인 시마가 유래했을 것이라 추정했다.[8] 梁書 百濟: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 (양서 백제전: 지금 언어와 복장이 고구려와 같다.), 南史 百濟:言語服章略與高麗同 (남사 백제전: 언어와 의복이 고구려와 같다.)[9] 이런 현상을 언어동조대라고 하며, 인도 아대륙이나 발칸 반도의 언어들, 현대 한국어현대 일본어, 중국어, 스웨덴어핀란드어가 이런 사례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