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노래)
1. 개요
북한의 노래. 공훈예술가 박세영[1] 이 작사하였으며 1957년 고종환이 작곡하였다. 제목의 유래는 물론 실제 강 임진강이다.
지금도 많이 불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데모시절 추억하는 노래로, 대한민국은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조총련계는 아픔을 달래는 노래로.
2. 일본에서
일본의 조총련에도 알려지게 되어 일본 내 조총련계 재일 동포들 사이에서도 불리게 되었다.
일본 내에서 번안되어 불리는 임진강은 마츠야마 타케시(松山猛)가 번안 및 새로이 작사한 것이다. 그는 중학 시절 방문한 총련계 학교에서 처음으로 해당 곡을 들은 후 1절 가사를 알아내어 번안하였고 이후 일본의 포크 그룹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ザ・フォーク・クルセダーズ)의 멤버인 카토 카즈히코(加藤和彦)[2] 에게 멜로디와 1절 가사를 보내게 된다. 이후 마츠야마 타케시는 새로이 2~3절 가사를 작사하였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イムジン河(임진강)이란 제목으로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2번째 싱글로 발표될 예정이었다.[3]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임진강은 공연 당시 상당한 호평을 받았으며 일설에서는 帰って来たヨッパライ(돌아온 주정뱅이)를 제치고 데뷔 싱글로도 발매할 예정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곡의 발표 소식을 들은 북한과 조총련에서는 발매사인 도시바음악공업(東芝音楽工業, 현 EMI)에 대해 원곡이 북한의 노래라는 것과 작사자 및 작곡가의 이름을 밝힐 것, 가사를 원곡에 맞게 번역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국이 아니었으며 베른 조약 역시 가입하지 않았지만 조총련에서는 이 문제를 언론에 공론화시켰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북조선의 노래가 일본에서 유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런 남북 양국의 정치적인 압력으로 인해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와 도시바음악공업은 해당 곡의 발매 자숙을 결정하게 된다.[4]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싱글 발표는 취소되었지만 임진강은 당시 일본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안보투쟁 시기에 학생 운동과 연계되어 자주 불리게 되었지만, 이후 안보투쟁이 쇠퇴하고 원곡의 정치적인 성향이 부각되면서 잊혀져 갔다.
이후 90년대에 들어서부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서서히 재조명받게 되었다.
북한 공연을 준비하며 임진강을 배운 김연자는 2001년 12월 31일에 방송된 제52회 NHK 홍백가합전에서 임진강을 불렀다.
2002년에는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10번째 싱글로 悲しくてやりきれない와 함께 재발매되게 된다.
이후 2005년 개봉된 일본 영화 パッチギ!(박치기!)에서 팝페라테너 임형주가 불러 OST로 쓰이게 되어 한국 내에서도 나름의 유명세를 얻게 된다.
3. 한국에서
한국 내에서는 군사정권에 의해 한동안 금지곡의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후 가수 김연자가 90년대 처음으로 TV 방송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는 양희은이 부른 노래로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신나라레코드에서 발매한 북한 관현악 모음집인 임진강이라는 앨범에 지휘자 김홍재가 단악장의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수록하기도 했다.
4. 가사
4.1. 원곡
모두 2절(연)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절(연)은 박세영이 고향인 남한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지만, 2절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조선이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당시 1950년대엔 정말로 북한이 더 잘 살았긴 했다.[5]
2절이 너무 노골적인 북한체제 찬양이기 때문에 남한에서 부를때는 ‘메마른’을 ‘내마음’으로 바꿔 부를때가 많다.
4.2. 일본어판
- ザ・フォーク・クルセダーズ(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イムジン河(임진강)
5. 영상 자료
영화 パッチギ!(박치기!)에서의 임진강. 담당자가 금지곡이라며 방송 송출을 금지하려 하자 '''이유야 어찌 됐든 불러선 안 될 노래는 없는 거야! 이 넓은 우주를 천체 망원경으로 샅샅이 뒤져도 못 부를 노랜 없다고!''' 라며 막아서는 담당 PD[6] 의 모습이 압권.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도 리해랑이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도 이 노래의 반주가 BGM으로 흐른적이 있다.
팝페라테너 임형주의 임진강
양희은의 임진강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ザ・フォーク・クルセダーズ)의 イムジン河
이랑의 임진강
[1] 작사자인 박세영(1902년 7월 7일 ~ 1989년 2월 28일)은 경기도 출신의 월북작가로 일제 강점기 시절 문학계의 KAPF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월북 후 북한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하여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경력이 있다.[2] 훗날 사디스틱 미카 밴드의 프론트맨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3] 함께 들어갈 예정이었던 곡은 ヘビに喰われて死んでゆく男の悲しい悲しい物語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남자의 슬프고도 슬픈 이야기)였다.[4] 정치적인 압력으로 인한 2집 싱글의 발매 취소 이후 새로운 싱글의 발표를 위해 카토 카즈히코는 임진강의 멜로디를 반대로 재생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새로이 悲しくてやりきれない(너무 슬퍼서 참을 수 없다)를 작곡하였다. 해당 곡은 コブのない駱駝(혹이 없는 낙타)와 함께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의 3집 싱글로 발표되었으며, 2집 싱글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ヘビに喰われて死んでゆく男の悲しい悲しい物語는 1970년 大蛇の唄(오로의 노래) 라는 싱글로 발표되었다.[5]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수치상으로) 앞지른 건 1974년부터다.[6] 배우 오오토모 코헤이가 연기했다.